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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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까지 국내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는 『스노우맨』, 『레오파드』, 『레드브레스트』 총 세 권인데, 가장 최근 나온 『레드브레스트』를 맨 위로 올려놓고 싶다. 『스노우맨』과 『레오파드』가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며 스릴러가 가진 자랑거리를 마음껏 풀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레드브레스트』가 지닌 충실한 서사는 단연 발군이다. 요 네스뵈의 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자원입대해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서 싸웠다는 것, 또 반대로 그의 어머니와 외가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독일군에 대항했다는 두 가지 이야기를 잇는 장대한 서사가 있었기에 이 『레드브레스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가 붕괴된 상황에서의 독일과 소련 사이에 낀 노르웨이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독일군과 레지스탕스로 다시 과거와 현재로 양분된다. 여기에 『스노우맨』에서처럼 유전이랄까 정신적 질병이라는 매개가 끼어들어 좌우로 나뉘어 구분된 것들을 넘나든다. 87분서 시리즈로 유명한 에드 맥베인의 『살인의 쐐기』는 무대극으로 만들어질 뻔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 프로듀서와 회의를 하던 중 그가 이건 통속극이 아니냐고 하기에 맥베인은 『햄릿』 같은 작품이라도 되는 줄 알았냐며 반문했다고 한다. 그는 프로듀서가 통속극은 하고 싶지 않으며 보다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말에 “알았소. 잘 가시오.” 하고는 이야기를 끝냈단다. 『레드브레스트』는 어떨까. 물론 『햄릿』 같은 작품은 아니다(그렇다고 『햄릿』이 엄청나게 뛰어난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통속극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모르게 깎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통속극의 가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레드브레스트』는 통속극의 그것과 약간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네스뵈가 라켈을 반쯤만 지켜 주었다는 점과 엘렌 사건의 범인을 뒤로 미루었다는 점에서는 좀 악랄하다는 느낌도 있긴 하지만. 과거 2차 대전 당시 동부전선에서 싸웠던 노르웨이 청년들과 현재 암살을 위한 라이플을 넘나드는 이 소설은 나치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버무린 작품이다. 이는 얼마 전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손꼽히는 빈 필하모닉이 나치 정권에 부역했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과는 다르다. 소설 속의 청년들은 나치 정권에 부역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故 이윤기의 장편 소설 『하늘의 문』에 삽입된 단편 「하얀 헬리콥터」처럼 『레드브레스트』 곳곳에 등장하는 1940년대는 소설을 그대로 관통하며 현재를 대변한다. 죽은 시체 한 구가 이야기 전체를 뒤흔드는 것만 제외하고는. 또 『레드브레스트』의 과거는 레마르크의 작품에서와 같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이거니와, 거기에 현재로 이어지는 미스터리를 심어 놓았다. 왜 노르웨이의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조국을 지키려고 독일군에 동조했는지, 그리고 현대인의 일부 왜곡된 시각이 그들의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이제 이 소설을 읽는 것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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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2
자크 스트라우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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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짜리 애새끼가 대체 뭘 알 수 있겠나. 그래도 일단 내 쪽에서 접어줘야 할 것은 잭이 그 나이에 샴푸 병으로 자위를 했다는 건데, 이것만 봐도 나보다는 행동 발달이 좋긴 하다 ― 나이도 나이지만 대체 샴푸 병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알고 싶긴 한데). 행동 발달이 좋다는 건, 지(智)와 덕(德)까지 겸비할 수 있다는 건데, 나로 말하자면 지덕체에서 체(體)가 맨 앞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야말로 잭을 지지할 수 있는 요건은 갖춘 셈이다. 이것은 자신의 신체를 돌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기쁨도 슬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으로, 예컨대 조콘다의 눈썹 같은 거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없다면 왜 없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는,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는 것. 이 세계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동작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는 것. 이런 세계에 발을 디밀고 살아가고 있는데 누가 샴푸 병으로 자위를 안 할 수 있을지. 나는 전반적인 상황이 점점 나빠져서, 그것을 계기로 이전에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되고, 나중에는 고통과 상실을 거쳐 서글프고도 멋진 과거를 추억하고야 마는, 그러니까 썩어 빠진 싸구려 성장 소설이라면 질색이다. 잭이 처한 세상이 『구원』의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이 소설도 그렇게 됐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물론 나에게). 『구원』에 티핑 포인트는 없으며, 그것의 유의미한 가능성조차도 찾을 수 없다. 대신 덜떨어진 이스터 에그나 꾀바르지만 개개풀린 자질구레한 각론이 (그의 말에 의하면) 부비 트랩처럼 산재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일단 싫어하게 되면, 이것은 거의 변할 수 없게 굳어 버리곤 한다. 죽을 때까지 그럴지도 모른다.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망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그랬는데, 이런 식으로 타인의 불행과 자신의 처지 ―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 하더라도 ― 를 비교하고 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이치다. 마치 지구 멸망은 영화나 소설에서만 등장하므로 현실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인간이란 족속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생겨 먹었다. 불행을 입은 타인이 죽을 정도의 위기에 봉착하지 않는 한은 그렇다. 반대로 내가 지옥에 떨어지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 친구 페트뤼스가 했던 것처럼 나 아닌 다른 남자가 내 물건을 주물럭거리는 정도의 위험천만한 상황 같은 거 말이다…… 라는 건 (반쯤은) 농담이고, 자기보다 멋지게 보이는 남자에 대해 묘한 질투심이 들어 그를 쫓아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어 버릴 것만 같은 느낌, 더군다나 그에게 나의 치부가 드러났다면 말할 것도 없다. ‘생긴 대로 살자’ 식의 사고방식을 탑재해 살고 있는 나로서는 온전히 용납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남자들의 이런 복수 행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굉장히 멋진 여자와는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만 굉장히 멋진 남자는 도리어 멀리하게 되는 심리 말이다(여자도 매한가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식의 같잖은 사유의 남발이라면 『구원』은 망한 것임에 다름 아니겠으나, 이런저런 사람들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남아공의 상황이 더해짐으로써 마뜩잖은 것도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수지, 수지를 갖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자신이 수지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 모르는, 발육이 덜된 파락호의 느낌이랄까. 내가 보기에 잭과 수지는 평행선 두 개다. 퍼시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왜? 열한 살짜리 애새끼가 대체 뭘 알 수 있겠냔 말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러길 세상은 인간의 복수형이라던데, 아마도 당신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 세계는 당신의 불알을 잡고 늘어질 것이므로 미련퉁이처럼 핼금거리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다. 그렇지 않을 리가 없다. 나를 잡아채려는 인간들을 떼어 내려고 할수록 그 손들은 더 옥죄어 오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부비 트랩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으니까. 흑묘(흑인)건 백묘(백인)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허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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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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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만큼은 아니지만 애초에 『경우』만 놓고 보자면 그것과는 경우(처지)가 다르니까, 물리적 비극은 없을지언정 불편함은 있다. 물론 대개의 인간관계는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란 어지간해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마련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카피에도 「우리 모두는 타인의 행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다!」라고 드러난 것처럼 단순하게 보자면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나는 성악설에 기울어져 있으므로). 슬픔을 함께 나누면 절반이 되지만 기쁨을 함께하면 배가 되는가? 진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남의 고통을 즐기는 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타인의 불행과 자신의 처지 ㅡ 비록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 하더라도 ㅡ 를 비교하고 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구 멸망은 영화나 소설에서만 등장하므로 현실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인간이란 족속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생겨먹었다. 타자의 불행을 보고도 웃을 수 있고 타자가 욕망하는 걸 가지고 싶은 욕구 ㅡ 남의 욕망이 내 것이 되어버리는 이치다. 『경우』가 복수와 용서 중 어느 쪽이냐 하면 물론 『고백』과는 달리 후자에 속하겠지만 어찌 보면 이 작품이 더 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의 기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상대의 잘못을 선선히 용서해줄 수 있는 동물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러니 현실감으로 치자면 『고백』 쪽이 더 근접했을 수도 있겠다. 당연하게도 『경우』는, 드라마의 양상을 취할 수밖에. 싸늘한 현실이 아니라 그렇게 됐으면 하고 바라는 이상(理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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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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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책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잘 들지 않지만 정호승이라면 읽을 만하다. 이해인 수녀의 추천사처럼 차 한잔 나누며 듣는 사랑의 고백서 같기도 하고 눈물겨운 참회록 같기도 하고 깨우침 가득한 교훈서 같기도 한 이 책은, 내 인생에 용기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평범하고 진솔한 것을 시적 표현으로 버무려냈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호승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무거운 엉덩이를 지탱하며 둥실 떠 있게 한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자 그건 사회생활을 하는 저의 외면적 모습이고, 저의 내면적 영혼의 모습은 소가 아니라 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갈수록 저 자신이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동물 중에서도 개나 늑대라면 인생이라는 포식자를 향해 거세게 짖으며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만일 양 중에서도 거대한 뿔이 달린 산양이라면 그 뿔로 인생을 향해 격렬한 싸움이라도 한바탕 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정호승)은 강한 존재가 아니다. 당연히 사람을 둘러싼 주변 또한 그를 안온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강한 사람에게도 정으로 돌을 다듬듯 뾰족한 입김을 불어넣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상처를 입힌다. 그럼으로써 점점 강한 사람이 되어 가는가하면 그렇지 않고 여전히 연약한 심상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다. 바로 그 여린 사람들에게는 다시 정호승의 한마디가 전달될 것이다. 별것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평범함을 고귀함으로 바꿔버리는, 당신의 인생에 용기가 되어줄 한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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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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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러를 잘 읽지 않는다. 한국 소설도 잘 읽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 스릴러는 읽지 않는다. 『B파일』이 철저하게 시나리오 작업을 염두하고 영화로서 만들어졌다면, 오히려 그쪽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이다. 한국 스릴러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구석이 있었던 것은 반대로 좋았다. 그러나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느꼈던 기분은, 『B파일』은 재미없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고 재미있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가 없다는 거다. 희한한 일이다. 조선족 은행원 리영민은 반드시 조선족이거나 은행원이 아니더라도 극의 진행에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민주일보 조성철 국장의 메모는 암호가 아닌 바에야 굳이 액자 뒤에 숨겨놓을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흉내 내는 것도 아니면서 원더랜드라는 이상스런 건물이라니.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ㅡ 이 이야기가 더 다듬어지고 다듬어져 책이 아닌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킬링타임용 공항 소설 언저리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아직 그럴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탄탄한 스릴러로서의 면모를 갖춘 소설의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바에야 한국 사회에 깊은 메스를 들이미는 것은 차치하고서, 날렵하고 빠른 몰입이 관건인 스릴러이니까. 최근 한국 소설에서 갈수록 많아지고 인기를 끄는 이야기가 ‘무기력 청춘’과 ‘이방인 명제’인데 『B파일』은 후자를 취함으로써 일단 안전한 발판은 디딘 셈이다. 더군다나 내가 본 『B파일』과 다른 사람들이 읽은 『B파일』은 분명 다를 것이므로 앞서 언급했던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작가의 전작 『B컷』은 영상문자로 치환되어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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