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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체면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4월
평점 :
_도진기 <법의 체면>(황금가지, 2025)
표지의 황금빛 사과는 무얼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던 금단의 열매인가? 그러나 저 사과의 겉엔 씹은 흔적이 없다. 따라서 선악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도 될 수 없는 거다.
당연히, 여기 여섯 개의 단편들에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자들로 그득하다. 교묘한 발상으로 재판정의 법대(法臺)를 농락하거나('법의 체면'), 란포가 쓴 '인간 의자'를 흉내 내듯 멋대로 뇌까리며 살인을 저지르는 자('당신의 천국').
그리고 증거가 없어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범죄 자체를 알아챌 수 없는 살인('완전범죄')에, SF('애니', '컨트롤 엑스')와 호러 냄새마저 풍기는 수록작('행복한 남자')까지. 강퍅하리만치 인간의 복수, 회한, 괴상한 신념 등에 몰두하는 이야기들이다.
어떻든 법조인이라는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탁월하다 느꼈던 건 역시 법정물인데, 특히 '완전범죄'의 결말에 가서는 탁 하고 무릎을 치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이런 발상도 가능하구나, 이런 이야기도 있을 수 있구나 하며 내처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인지 책 말미 작가의 말에는, 법정과 인간에게서 느꼈던 실망, 안타까움으로 촉발된 글쓰기였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낙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을 재단하려는 법의 그 불완전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