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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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살인_범죄·미스터리 소설에선 흔하다. 토막 난 시신이 담긴 유리병 속 보존액_끔찍한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한다. 관건은 이다음이라는 걸 독자도 알고 있고 작가 본인은 더욱 더 자각하고 있을 터다. 그리고 찬호께이는 멋지게 연착륙했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남은 것은 이야기를 어떻게 직조하느냐에 달려 있던 작품.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했다가 한 번 속았고, 뒤이어 또 한 번 속았다. 그리고 훌륭한 마무리와 함께 오는 것은 영 좋지 않은 뒷맛. '용의자' 앞에 어째서 '고독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놓았는지 납득이 간다.

은둔형 외톨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의 옷장에서 사람의 팔다리와 장기가 담긴 유리병이 스무 개 넘게 발견된다. 이웃인 남자는 사망자의 학창 시절 친구이자 추리소설 작가. 그는 경찰에 자신의 추리를 설파하는데, 경찰이 듣기에 또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도 꽤 납득이 가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당초에는 경찰과 민간인 콤비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의 탄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살한 남자는 왜 '고독'을 선택한 것일까. 훼손된 시신 일부로 판명된 피해자들은 왜 작디작은 병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이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뭘까.

타인의 얼굴을 궁금해하지 않는 풍조. 뭐든 이루어질 것만 같은 온라인 세계. 20년 동안이나 외출하지 않아 밀실과 같은 고독한 용의자의 방. 바깥출입이 전무한 자가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가, 이 핵심을 잡으려하는 경찰과 소설가.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한 홍콩의 건물들과 끈적이는 습한 기후, 언제 어느 곳에서건 범죄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것처럼 굳어버린 매체에서의 이미지와 더불어, 제목에서와 같이 고독하고 단절된 '자기만의 방'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쉽고, 허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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