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통의 심리학 -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은밀한 본성에 관하여
리처드 H.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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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사람이, 다른 사람이 한 일이 잘되거나 못됨에 따라 내가 느끼는 바도 달라진다. 다소 과장되게 말하자면 내가 성공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망해야 한다는 것. 상대가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다. 물론 그/그녀가 위선자, 불의를 조장하는 자,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라면 쾌감은 배가되겠으나,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몰락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쾌감이다. 이러한 감정은 질투, 우월감과 열등감, 적대감 등에서 기인한다. 사실상 내가 어떤 대상을 부러워한다면 그것은 동경심이 아니라 질투심을 동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내가 질투를 느끼는 상대가 몰락하고 고통을 당한다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되는 ‘쌤통 심리’가 발동하게 되는 거다. 운동 경기를 보자. 내가 응원하는 팀이 라이벌 팀과 맞붙었다. 우리 측 응원단과 상대 응원단은 볼 때마다 으르렁거리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결과는 무승부. 하지만 경기 도중 상대 팀의 어떤 선수, 유망하거나 실력이 좋은 선수가 심한 반칙을 범해 퇴장을 당했다면. 비록 경기의 내용과 결과가 팽팽했다손 치더라도 왠지 모르게 나와 우리 응원단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연전에서 퇴장당한 바로 그 선수가 뛸 수 없기 때문이다(비슷한 다른 경우도 있는데, 결과는 똑같고 상대 팀의 실력 좋은 선수가 심각한 부상을 당해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을 때가 그렇다). 남의 부족함을 ‘즐긴다’고 해서 사디스트라 단정할 수 있을까? 글쎄, 그럴지도, 아닐지도. 다른 사람이 실패를 맛본 뒤 좌절한 경우 우리는 쉬 그/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다. 그러나 그/그녀가 무언가 성공의 과실을 얻었다면 우리가 진심을 담아 그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기란 여간해서 어려워 보인다. 왜 그런가. 우리 인간이라는 족속은 은근히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쌤통 심리’를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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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실험하다 - 재미와 호기심으로 읽고 상식이 되는 심리학
강사월 지음, 민아원 그림 / 슬로래빗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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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포비아. No, Mobile, Phobia의 합성어로, 휴대전화가 없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 초조함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이란다. 아마도 내 생각엔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의 개수에 비례해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아닐 것만 같다. 걸어 다니면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오늘날의 환경으로 보건대, 다분히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는 등 인터넷과 관련된 점 때문에 그러하리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누가 뭘 먹었고 어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따위의 글들이 넘쳐난다. 더군다나 그/그들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몇 달 전 스마트폰이란 걸 처음 사용하게 된 나로서는 인터넷 접속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따금 노트북을 열 때를 제외하고는. 그러니까 내게 휴대전화는 말 그대로 휴대용 전화기인 셈. 휴대전화 없는 하루? 나 같은 사람에겐 충분히 가능하리라. 하지만 일종의 불안 검사와 인터넷 중독에 대한 부분을 읽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물론 각종 SNS가 발달해 있는 상태이고, 또 그러한 것들은 대개 개인의 일기처럼 작동한다. 그러므로 외려 이런 세상에서 인터넷 없이 살아보라는 명령 자체가 애초 불가능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의 발달로 기업들 또한 온라인 매체를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고, 우리는 우리의 소소한 일기를 공유함과 동시에 소비 또한 키보드 몇 개로 해결하게 된다. 광고가 우리를 살찌우는가, 우리가 광고를 살찌우게 하는가? 불완전한 우리의 뇌와 인식 작용, 미디어 문제 등 책은 온갖 심리학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인지심리학, 미디어심리학, 소비심리학, 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이것들의 필연적인 공통점은 나와 당신의 관계, 우리의 관계에 있다는 거다. 혼자 도는 팽이는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만 맴돌다 끝나고 만다. 하지만 이리저리 부딪히게 되면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며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다른 팽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영원히 불가해하고 미스터리한 것으로 남을 인간관계란 문제, 조금만 더 이해를 넓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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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지도 위의 인문학>
지금의 지도가 나오기 전까지 있었던 일. 저 옛날 왜 그리도 지도를 그리려 했었는지. 엉망으로 그렸든 그렇지 않든, 지도를 그리고 만들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잡종사회와 그 친구들>
'잡종'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아나키스트 자유주의, 개인의 사회학 등을 논의하는 책. 오늘날의 사회이론에 대한 비평서이자 현실적 이념 구상. 그리고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온 아나키스트의 이념 여행.


<자아의 원천들>
공동체주의자 찰스 테일러의 길고도 긴 논박. 현실과 철학이 맺는 관계를 조명한단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관건인 것일까. 행동하는 철학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가능한 것일까.


<자연의 예술가들>
현대미술, 음악, 미학, 생물학, 화학, 심리학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연과 예술, 과학의 공진화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이끄는 안내서. 자연과 실용, 아름다움이란 예술, 세상을 보는 다채로운 눈.


<그것이 알고 싶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얼마 전 1000회를 맞은 한국 국가대표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간의 방송 내용뿐 아니라 진행을 맡았던 이들의 인터뷰 등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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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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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살던 집. 나뿐 아니라 내 가족이 함께 살던 집. 그 집은 오래전 다른 사람들에게 팔려버렸고, 나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는다. 좋이 이십 년은 발붙이고 살았던 집. 지독했고, 행복했고,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바로 그 집. 내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이 함께 잠을 자던 집. 끈덕지게도 기억 속에서 끌어올리는 레몽의 빌어먹을 그 집. 내 집, 우리의 집. 문득 옛날에 내가 살던 집 앞을 지나쳤다는 친구의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지금 그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 언제쯤 우리 가족은 그 집을 떠나왔던 것일까. 그리고 대체 그 집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골목에 틀어박혀있고, 마당이랍시고 길 건너 저쪽에 있는 공간에다가, 난방도 되지 않고 좁디좁게 쪼갠 방들이 그득했던 집. 내가 여섯 살 무렵 이사 갔던 집. 그 집에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느냐고? 친구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상관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난다. 내 머리통이 자라고, 누이와 형들이 함께 성장하고, 어느 날 아버지가 소형 오토바이를 가지고 오시고, 그러던 그가 돌아가시고, 나는 외국에 나가서 살게 되었다. 레몽은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집에서 이제 누가 어떤 기억을 쌓고 어떤 추억을 만들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다 그 집 앞을 지나는 때에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 집을 쳐다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저 옛날 아버지의 나이가 된 레몽은 이제 자신의 아버지 꿈을 꾼다. 그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고, 그는 여전히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장면을 떠올리며 겁을 낸다. 내가 있었던 공간에 나는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레몽의 친구가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쭉 지낼 수도 있었다. 그 집에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느냐고? 알다마다. 거기엔 내 형제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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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 운명을 읽다 - 기초편 명리 시리즈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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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오행은 운동 능력과 에너지를 갖는 기(氣)이자, 사물을 분류해 사물 사이의 상호관계를 규정한 원리이다.(『중국 사상 문화 사전』 미조구치 유조 외, 책과함께, 2011) 그러니까 밝음과 어두움, 단단함과 부드러움처럼 대립하는 속성으로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두 기(二氣)인 음양과 각각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물질 중의 하나인 오행이 얽히고설켜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포함한 모든 변화를 관장하는 작용인(作用因)이자 질료인(質料因)인 셈이다. 강헌이 쓴 『명리』는 명리학을 잠시 개괄한 뒤 바로 이 음양오행에서 시작한다. 대개 알다시피 명리학은 그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운명의 이치'에 관한 학문이라는 점에서일 것이다. 삼라만상의 작동과 이 세계 움직임의 이치를 헤아리는 학문이라고 해도 될 것을, 거기에 '운명'이란 단어가 끼어듦으로써 흡사 미신과도 같이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강헌의 말대로 명리학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점술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는 나 자신조차도 명리학과 점술의 불분명한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으나, 명리학이 일종의 숙명론이라기보다 '관계의 해석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 앞에서만큼은 확실히 미신이나 잡설이 아닌 하나의 학문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주를 본다, 점을 본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간들 그들이 내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을 과연 온전히 예언해줄 수 있을는지('예언'이란 단어조차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만 그들은 내 사주를 토대로 그것을 조언해줄 뿐인 거다. 바로 내가 명리학을 알지 못하니 명리학을 공부한 그들의 입을 통해 전달받는 것. 그런데 우습게도 강헌의 글을 읽다 보면 당장 누구라도 내 앞에 와 자신의 사주풀이를 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도 쉬 혀를 놀려 이런저런 말을 쏟아낼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가 공부하고 정리해놓은 명리와 명리학에 대한 이론은 쉬운 입말과 다양한 도표를 이용해 명리(학)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조차 선선히 받아들여진다(물론 그럴 목적으로 이 책을 썼을 터다). 강유위의 『강자내외편(康子內外篇)』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고 한다. 「사람은 음양의 기를 품수 받아 태어난다. 욕망, 기쁨, 즐거움, 슬픔은 모두 양기의 발출이고 노여움, 두려움…… 모두 음기의 발출이다 (...) 음양은 순환 상승해서 끝나는 일이 없다.」 자, 여기에 (많든 적든) 51만 8,400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천간의 열 글자(갑, 을, 병, 정……)와 지지의 열두 글자(자, 축, 인, 묘……)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 과거 한곳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51만 가지가 넘는 경우의 수, 거기에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대면할 수백수천의 사람들(바로 위에서 말한 '관계의 해석학'이다). 강헌은 말미에 이렇게 썼다. 명리학은 미래가 아닌 현세의 학문이라고. 그러니 『명리』를 읽고서 내 두 다리를 점집으로 달려갈 것에 사용할 것이 아니라 존 A. 셰드의 유명한 문장에 적용시키고 볼 일이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묶어 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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