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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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 퍼런 총구 위에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앉아있는 사진을 보는, 그런 서사인 건가? 이 층짜리 보육원 건물 '아이들의 집'을 나간 베르너는 또 다른 아이들의 집에서, 거기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사는 장님 소녀 마리로르는 폭격을 피해 옮긴 작은할아버지의 집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만든다. 두 아이를 관통하고 이어주는 것은 라디오. 100만 개의 귀를 단 하나의 입으로 결박하는 빌어먹을 라디오다.(1권 p.104) 마리로르는 6시 방향에 감자가, 버섯은 3시 방향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베르너는 자신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야만 한다ㅡ 한쪽에선 라디오가 불법이며 한쪽에선 그 라디오를 찾아내야 하는 거리(영원히 볼 수 없을 다이아몬드는 언제쯤 빛을 발할까?). 탄광촌의 고아가 군사 학교에 들어가 매일을 실험실에서 보내고 있을 때, 자물쇠 장인의 어린 딸은 아버지가 만들어 준 마을의 모형을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동네의 라디오를 손볼 수 있는 꼬맹이 재주꾼이 이제는 총을 든 채 그 (불법적인) 라디오들을 찾으려는 순간, 베르너와 마리로르의 평행선은 서서히 교차될 준비를 시작한다. 마리로르가 라디오로 읽어주던 책이, 검은 줄이 죽죽 그어져 온전히 읽을 수 없던 베르너의 (여동생과 주고받았던) 편지처럼 그의 귀에 띄엄띄엄 들리기 시작한 순간 ㅡ 얇은 판벽 하나를 사이에 둔 남녀가 서로를 확인하고 ㅡ 거기 있어요? ㅡ 티끌보다도 작은 세포에서 나뉘고, 증식하고, 더해지고 덜어지며, 분자들이 빙글빙글 돌고, 미세한 전기가 모이면서 그들 존재가 비로소 시작된 뒤(2권 p.368) 서로의 모습을 보고 손을 만질 수 있는 거리에 다가서서 ㅡ 베르너는 줄곧 라디오를 통해 마리로르의 목소리를 들었고, 마리로르는 이제 옷장을 치워 베르너의 존재를 확인한다. 새로운 문짝을 열어 생긴 탈출인가, 아니면 드디어 요새가 낯선 방문객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건가. (어린이 여러분, 실제로는 말이죠, 수학 상으론 어떤 빛도 눈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나니아의 옷장은 현실의 판타지가 되어, 어지러운 수학 공식 위에서 그들이 볼 수 없었던 모든 빛을 끄집어낸다. 복숭아 통조림 속에서 손가락을 맞부딪히고, 서로의 발자국과 지팡이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각자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그들이 볼 수 있을 것만 같던 빛이란 건 찰나인가 영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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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간 평가단 도서로 선정된 책들 중

내 맘대로 좋은 책 BEST 5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혐오와 수치심>

<씨네샹떼>

<불안들>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절망의 나라'에 있는 모든 절망을 물 먹는 하마로 죄다 빨아들이고 싶다)

'우리 시대에는' 하며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는데,

혹 나에게조차도 그런 꼰대스러운 면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다 내려놓고 득도의 경지에 다다라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지

아니면 포기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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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넘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평등을 넘어 - 정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앤서니 앳킨슨 지음, 장경덕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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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당한다. 사회 정의를 고취하거나 불평등을 타개하고자 이런저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매번 그런 일은 무위로 그치고 나 자신조차도 종종 그럴 마음 또한 없어 보인다. 그런 와중에 일단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약간 놀라게 된다. 기회의 불평등과 결과의 불평등.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건 다들 동의할 텐데, 여기서 결과의 불평등이 간섭하게 된다. 예컨대 똑같은 출발선에서 경기를 시작하지만 결과에 따라 서로 다른 상이 돌아간다는 것. 또 특히 어떤 개인이 무료 급식소에 죽을 서게 된 것이 환경 요인 탓인지 노력 부족 탓인지 따진 후 그에 따라 수프를 나눠준다는 조건은 도덕적으로 혐오스럽다는 거다. 과거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3명 도와주기'가 결코 현실성이 없다는 데에 동의했지만 경기 결과나 급식소의 차등 시상과 조건부 무료의 '결과의 불평등'에 또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번 당한다고 느끼는 것은 이러한 정의와 불평등 구조에 관한 책을 읽을 적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돌아서면 곧 공허한 외침이라는 현실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윤이 가파르게 늘어났다고 해서 노동자의 임금 또한 그에 따라 비슷한 비율로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개인이 일생 동안 유지한 부(富)가 사회 전반에 걸쳐 환원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가족과 세대에만 대물림되었기 때문이며, 국가의 각종 경제 지표 상황이 좋아졌음에도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그대로이거나 이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매한가지다(따라서 앳킨슨이 자본소득의 역할과 소유권의 균형에 대해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고 있긴 하나 책을 덮은 뒤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소름이 끼친다. 기업 이익의 상당 부분은 재투자를 위해 유보되지 않던가? 누진 과세와 최고 세율이 언제 우리의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었나?). 빠르게 결론으로 가자면 앳킨슨은 불평등의 크기가 줄어들기를 바라며 말한다. 우리가 경제적 결과의 불평등을 줄이면 이는 민주사회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여겨지는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다. 범죄와 질병 같은 여러 사회적 악은 오늘날 사회의 매우 불평등한 특성에 기인한다. 이런 것들은 빈곤과 불평등 수준을 낮춰야 할 수단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극단적인 불평등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두려움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앳킨슨처럼 지금과 같은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좋은 사회의 개념과 맞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유로 염려하든 간에 질문은 그대로다…….(p.418) 그가 덧붙였듯이 이 책은 공상적 이상주의의 실행 방안은 아니다. 그러나 '불평등 회귀'는 언제고 또 올 것이며, 심지어 내가 불평등한 기회와 결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활인이라 나는 생각한다). 일자리 보장이 우리를 가난에서 탈출시킬 수 있을까? 소득 격차의 확대에 따른 소득 불평등을 확고하게 인지할 수 있을까? 단순히 빈곤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불평등에 대한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까? 『불평등을 넘어』는 크게 어렵지도 않고 많은 전문가적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앳킨슨이 미래를 낙관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도운 3명의 사람들이 각각 또 다른 3명씩의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한들, 그 이전에 나부터 다른 사람에게 먼저 도움을 받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3명 도와주기'가 시작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에서다. 달리 말하면 불평등을 불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기득권층 또한 많고 굳건하다는 우려에서일 텐데, 앳킨슨의 여러 가지 제안들이 실질적인 개혁과 진보적인 방향성을 띠기 위해선 분명 행동하려는 욕구와 정치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ㅡ 불평등과 정치의 상호관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p.425) 그가 말미에 써놓은 19세기 미국 상원의원이었던 마크 해나의 말을 들으니 다시금 어깨가 축 처지긴 하지만 말이다. 「정치에는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돈이고 두 번째는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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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기지 만들기
오가타 다카히로 지음, 임윤정.한누리 옮김, 노리타케 그림 / 프로파간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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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화 『명탐정 코난』에서 본 기억이 있다. 멈춰있는 벽시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내려가면 그 아래 흩어진 트럼프가 있고, 유일하게 핀으로 고정된 카드의 무늬(아마도 스페이드였을 것이다)를 따라가면 또 다른 단서가 있어서 결국엔 누군가가 숨겨놓은 재미난 것들을 발견한다는 에피소드. 책에서 비밀기지라고 거창하게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 비밀이라는 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거다.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도시에 현대적 건축물이 많아짐에 따라 공략할 수 있는 비밀스런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비상금을 숨기기도 하며, 자물쇠 달린 상자를 구해서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넣어 놓는가하면, 학교 창고 어딘가에서 몰래 빨간책을 공유하기도 한다(때때로 거기에서 오는, 그러니까 나만이 혹은 나와 몇몇의 친구들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매료되어서 즐거움을 느낀다). 사탕이 들어있던 네모반듯한 깡통에다가 어린 시절의 물건을 담아 묻은 뒤 십수 년이 지난 후에 땅을 파내 친구들과 파안대소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타임캡슐을 비롯해 아파트 주차장 부근의 어두침침한 공간, 퀴퀴한 다락방, 체육관 창고, 집 근처 공터에서는 아직도 어린아이들이 저들만의 비밀기지를 만들어 즐거이 놀고 있으리라(정말이지 그랬으면 한다). 『비밀기지 만들기』의 첫머리에선 '세 가지 간(間)'을 언급한다. 하나, 공간(空間). 둘, 시간(時間). 셋, 친구(仲間, 일본어로 동료, 친구라는 뜻). 도시에서의 공간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이 짬을 낸다는 것 역시 쉽지 않고, 같은 이유로 자신의 또래와 어울리는 것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책에서는 아주 작은 비밀기지부터(집 안의 매트리트 틈새, 다리 밑, 폐허 등) 아예 사람 몇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물까지 다루는데, 그보다 저자 오가타 다카히로라는 양반이 설립한 일본기지학회라는 단체가 흥미롭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2006년에 회원이 120명에 달했고 각종 워크숍이나 앙케트, 전람회 등의 활동을 한단다(회칙도 있는데, 기지학회 회원은 기지에 대해 말할 때 자연스레 미소 짓는 사람, 무엇을 보아도 '기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을 좀 더 재미있게 살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것은 이미 이 책만 가지고라도 많은 부분을 달성한 듯싶다. 이렇듯 가전제품을 싸고 있던 골판지나 빈 페트병만으로도 얼마든지 비밀스런 작업이 가능할 텐데, 그런데, 그런데, 얼마 전 SNS에서 접한 누군가의 멘트가 생각난다. 텔레비전 방송이 ‘사람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는 거였다. 말인즉슨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집을 바꾸는 걸 보여주다가, 어딘가에 나가 하룻밤을 자며 노는 것을 보여주다가, 결혼하는 것을 보여주다가, 애 키우는 것을 보여주다가, 이제는 집에서 밥 먹는 것까지 보여준다는 사실이었다. 들판에 자란 잡초를 묶어 어설픈 덫을 만들거나 골판지 상자를 접어 구멍을 뚫은 뒤 멍하니 밖을 내다보는 일이 점점 없어진다는 이야기일까? 그럼 앞으로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노는 법'을 알려줘야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쓰레기라도 생각했던 그 물건이 근사한 나만의 비밀기지로 탄생할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물이랍시고 만들었던 걸 들켜 혼났을 때, 총 공사비 0원의 말도 안 되는 건축물을 완성했을 때, 그때 까무러칠 듯 좋아했던 기억이 그저 기억으로만 남아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이미지 출처: 출판사 홈페이지 http://graphicmag.co.kr/wordpress/?p=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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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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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무감동에 불안이 더해진다. 오늘의 사람/사람들은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는 것을 거리끼지 않고 이제는 다른 사람/사람들의 불안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혹여 그 불안이 현실이 되어 내게 오지는 않을까 하면서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불안감에 불안해한다. 동시에 (대체로) 내 신체와 소유물을 해치지 않는 한, 그러니까 내게 실질적 위협이 없는 한 다수의 쪽에 서 있고자 한다. 그편이 내 불안감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불안(감)이라는 건 때때로 내게 긍정의 작용을 이루어내기도 하는데, 적절한 불안과 긴장은 나를 무기력에 빠뜨리지 않고 더 이상 내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추진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한편 또 당연히, 그러한 불안은 그것 스스로 추진력을 얻을 수도 있다(따라서 책의 결론 부분이 다소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터라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기도 하다). 불안은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수작을 건다. 전쟁, 건강하지 않음, 자연재해, 욕망 채우기에 실패한 뒤 느끼는 불만족. 특히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실은 단순한 긴장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면 또 다른 불안이 야기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소비자인 우리의 '선택의 자유'라 일컬어지는 방식에서 오는 '선택의 권력'이 각각의 소비자가 아닌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것, 좀 더 나은 조건을 기대하며 통신사를 끊임없이 바꾸는 사람들, 이런저런 불안을 덜고자 자기계발서와 각종 멘토를 찾는 모습 등에서(p.112),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시콜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의 틈바구니를 돌아다녀야만 한다는 한층 더 나아간 새로운 불안에 휘둘리고 만다. 때문에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게끔 설계되어 가면서도 그런 만큼 인간관계 또한 단속적이거나 혹은 정반대로 흐를 가능성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즉 선택지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고만은 볼 수 없다는 의미인데, 예컨대 가짓수 많은 선택지에서 특정한 것을 고르기는 쉬워도 '무한에 가까운 선택의 자유' 앞에 서면 외려 갈팡질팡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선택지는 없으니 그냥 원하는 것을 아무거나 하시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될는지도 모른다. (p.113: 오늘날 소비 지상주의 사회에서는 파트너를 구하는 논리와 새 차를 사는 논리가 다르지 않다. 즉, 먼저 광범위하게 시장조사를 한다. 다음으로는 욕망하는 ‘대상’의 품질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그러고는 혼전 계약서를 작성한다. 시간이 지나면 중고를 새것으로 바꾸거나, 번거로운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정하고 단기 임대 계약을 맺기도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 첫머리에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위험(과 거기서 생겨나는 공포 혹은 불안)에 대해 말한다. 우리의 신체와 재산을 위협하는 위험, 사회질서의 지속 가능성과 안정성을 위협하는 것,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 등. 그러나 이런 위험의 가짓수는 비단 바우만이나 살레츨이 지적하고 있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가 불안 요소라 인정하는 것들 외에 새로운 공포의 영역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불안감과 무서움으로 점철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서 늘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공포에 빠져서 지내지는 않을 것이므로. 바우만의 말대로 우리는 그런 무서운 사태의 가능성을 잊어버릴 교묘한 전략을 넘칠 만큼 갖고 있다.(앞의 책 p.17)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계속해서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안의 형태 또한 그럴 공산이 커야 하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불안 요소를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개인/단체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좋지 않은 부담스러운 것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될 텐데, 살레츨이 책을 끝내며 말한 '불안이 없는 사회도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위험한 곳'이 가지는 의미, 즉 약간의 불안에 대한 경험은 우리의 안녕과 평온을 저해한다기보다 주의의 결여를 방지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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