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박사의 딸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지음, 김은서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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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허버트 조지 웰스가 있었다. <투명인간>과 <타임머신> 등을 쓴 그의 <모로 박사의 섬>도. 동물 생체실험의 고발과 서구의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소설은 120여년 만에 <모로 박사의 딸>로 재탄생했는데, 여기에는 박사의 조수 몽고메리와 웰스의 작품에는 없었던 모로의 딸이 등장한다.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작중 모로 박사는 소위 다위니즘에서 '도약해'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처 같은 동물인간들을 만들어낸다. 물론 말미에 가서는 그의 딸 카를로타의 표현대로 비참함과 고통만이 유산으로 남았지만. 그러나 이것이 끝인가. 고전의 변주라기엔 다소 맨송맨송하지 않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쇠망치가 튀어나와 뒤통수를 가격한다. 망할, 이 정도라면 웰스도 만족하지 않을는지. 표면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는 모로 박사처럼, 작가도 <모로 박사의 딸>에 나쁜 짓(!)을 잔뜩 해놓은 셈이다…….

웰스의 소설을 먼저 읽은 뒤 펼쳐도 좋지만 그러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웰스는 배가 좌초되어 섬에 도착한 화자를 내세웠고, 이쪽은 박사의 딸 카를로타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일그러진 존재들'은 양쪽 모두 존재한다. 실험 대상인 동물인간? 아니, 그들과 정반대에 선 '인간 동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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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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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구분하자면 호러 혹은 호러 엔터테인먼트랄까) 소설 속 무대가 되는 학교는 교육 현장이라기보다 복마전에 가까우며 꽤 많은 선생들은 양복 입은 뱀이라 할 만해서 외려 학생들의 일탈이 그저 애교스럽게만 느껴진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이코패스 주인공은 본인의 약점을 회피하거나 편의를 위해 살인을 하고 여학생을 성적으로 유린하는가 하면 귀찮게 하는 학부모의 집에 방화를 저지른다. 그의 행동에 트리거는 따로 없다. 자신을 거스르는 모든 것이 사건의 기폭제이므로.

<악의 교전>은 후반보다 전반부가 더 매력적이다. 기시 유스케스럽지 않게 몰아치는 중후반의 진행도 매력적이지만, 대외적 이미지와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한 주인공의 책략과 그에 대한 덤덤한 서술을 통해 차근차근 살인마의 사고방식과 도덕관을 묘사해 나가는 부분이야말로 소설의 백미.

학교를 왕국화하며 지배, 군림하려는 자. 궁지에 몰린 뒤 반 아이들을 모조리 살해하려는 자. 종국에 이르러 경찰에 붙들리면서도 자신의 신병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찰나의 계책까지. 늘 아름답기만 해도 모자랄 학교는 작가의 말대로 '좋지 못한 결말'을 향해 철저히 계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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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크라임 이판사판
덴도 아라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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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남성다움', '여성'과 '여성다움'은 '나'와 '너'만큼 다르며, 성 정체성과 젠더가 한데 묶여(혹은 동일시되어) 펼쳐지는 살풍경은 때론 '배제당하는 삶'으로 정의되기도 한다(따라서 위의 단어들에 '-다움'을 붙이는 것도 조심스럽다). 물론 <젠더 크라임>이 거대 담론을 만지는 것은 아니다.

덴도 아라타는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경찰이 주인공이자 그 무대인 조직을 저울 왼편에, 남녀의 불평등과 역할에 대한 강요를 오른편에 두고서 위태로운 변화를 꾀하려 한다. 거기에는 사고를 입어 부자유스러운 하반신 탓에 성생활이 불가한 남성도 있고 어릴 적 학대를 당해 온 여성도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던 보부아르를 부정했다. 그것조차 남성 주체 하에서의 주장으로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지점에서 덴도 아라타는 마초 경찰 구라오카로 하여금 세상의 불균형에 의심을 품게 했고, 그 의심은 <젠더 크라임>이라는 묵직한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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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요괴 나라 대만 1~2 세트 - 전2권 - 300년 섬나라의 기이한 판타지 요괴 나라 대만
허징야요 지음, 장지야 그림, 김영문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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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북펀딩 참여하길 잘했다.
책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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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단편집 스티븐 킹 걸작선 5
스티븐 킹 지음, 김현우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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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스티븐 킹 <스티븐 킹 단편집>(황금가지, 2003)

소름 끼치는 상상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층은 한정되어 있다, 어느 정도의 상상력과 더불어 일상과의 분리 능력을 지닌 독자만이 그런 이야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러브크래프트의 말이다. 이처럼 현실성의 부재로 장르문학을 기피하는 독자들이 의외로 많다(고 본다).

스무 편의 소설이 담긴 <스티븐 킹 단편집>은 러브크래프트의 설명처럼 어쩌면 제한된 독자층을 타깃으로 삼고 있을지 모르고, 또한 스티븐 킹 본인이 자신의 다른 책에 적었듯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자신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보다 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킹은 지하실의 쥐 떼('철야 근무'), 악마 들린 빨래 건조기('맹글러'), 실제로 총을 쏴대는 장난감 군인('전장'), 스스로 움직이는 트럭들('트럭'), 43층 건물 벽 난간을 타는 남자('벼랑') 등에서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본인의 방식으로 환상과 공포를 처리한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두려움들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들), 이것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환상 속으로 진입하고 공포의 대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닌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서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뭔가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공포를 느끼며, 바로 그것이 잘못됐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마음속에 경고가 울린다. 이 앙상블은 우리를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그때가 바로 공포라는 예술적 부름이 위협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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