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허버트 조지 웰스가 있었다. <투명인간>과 <타임머신> 등을 쓴 그의 <모로 박사의 섬>도. 동물 생체실험의 고발과 서구의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소설은 120여년 만에 <모로 박사의 딸>로 재탄생했는데, 여기에는 박사의 조수 몽고메리와 웰스의 작품에는 없었던 모로의 딸이 등장한다.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작중 모로 박사는 소위 다위니즘에서 '도약해'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처 같은 동물인간들을 만들어낸다. 물론 말미에 가서는 그의 딸 카를로타의 표현대로 비참함과 고통만이 유산으로 남았지만. 그러나 이것이 끝인가. 고전의 변주라기엔 다소 맨송맨송하지 않나?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쇠망치가 튀어나와 뒤통수를 가격한다. 망할, 이 정도라면 웰스도 만족하지 않을는지. 표면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는 모로 박사처럼, 작가도 <모로 박사의 딸>에 나쁜 짓(!)을 잔뜩 해놓은 셈이다…….웰스의 소설을 먼저 읽은 뒤 펼쳐도 좋지만 그러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웰스는 배가 좌초되어 섬에 도착한 화자를 내세웠고, 이쪽은 박사의 딸 카를로타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일그러진 존재들'은 양쪽 모두 존재한다. 실험 대상인 동물인간? 아니, 그들과 정반대에 선 '인간 동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