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 아름답게 만들기 - 화장보다 아름다운, 성형보다 놀라운 뷰티혁명 내몸 시리즈 4
마이클 로이젠.메멧 오즈 지음, 유태우 옮김 / 김영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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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커피를 마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잔다는 말이 정말 맞기나 한 건가?(나는 잠이 모자라 죽을 지경이다) 또 나는 새벽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자는데, 자리에 눕기만 하면 바로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땐 항상 피곤에 절어 있다. 아무래도 이 책 6장 <에너지 재충전하기>에서 말하는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이 증상은 의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며 이러한 에너지 수준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없단다 ㅡ 말도 안 돼. 당신들은 피 한 방울로도 온갖 질병들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는 훌륭한 인간이잖아. 어떤 의사들은 이것이 병이 아니라 신경성 또는 노이로제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내몸 아름답게 만들기』에 따르면, 나는 에너지는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남는 에너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읽다 보니 이런 사람인 나에게 해주는 충고가 있다. <더 많이 움직이고 녹차를 마실 것>, 이거다. 더 많이 움직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 선순환을 시작하는 것, 그래서 혈관을 확장시켜 더 많은 영양소가 공급된다는 거다 ㅡ 나는 쉽게 군대에서의 병장 생활을 떠올렸다. 할 일이 없어(!) 운동을 하고 몸을 움직였던 그 때를. 그리고 녹차? 녹차엔 비타민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내는 폴리페놀(이름이 어렵지만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은)이란 성분 ㅡ 바로 쓴맛을 내는 이 성분이 40퍼센트에 가깝게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나에게 효과가 있을 방법들을 주시한다(또한 나로 하여금 큰 관심을 끌게 한 주제는 치아에 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보험 적용이 안 되며, 만약 혜택을 받고 싶다면 해당 보험에 별도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지전능하며 파워풀한 치아 역시 갖고 싶다!).

 

그런데 9장 <일과 돈 문제 해결하기>에 다다르자 나는 갑작스레, 이 책이 자기계발에 관한 거였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돈 문제는 각 개인이 경험하는 주요 스트레스 중 거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p.321)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은 제목처럼 <아름다움>에 관한 책이었다. 여기서 말하려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관한 것이기 때문 ㅡ <백만 달러짜리 미소>와 같은 문장으로 아름다움과 돈을 엮어 넣을 수도 있다! 게다가 돈에 관한 스트레스라면 자신의 연봉이나 충동구매를 예로 들 수도 있다(하지만 정작 내게 조금이라도 더 중요한 건 잠에 대한 투쟁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과거 『내몸 사용설명서』란 책은 근본적으로 우리 몸을 생물학적으로 다뤘다. 『내몸 아름답게 만들기』는? 좀 더 넓고 재미있으며 정신적인 것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 책 프롤로그에서 <외적인 아름다움을 내적인 아름다움과 연결시키지 말라. 그 둘은 으깬 감자와 메이플 시럽만큼이나 각기 다르다>고 말한 것을 보면 쉬이 긍정할 수 있다.

 

하다못해 이 책은 몸의 작은 부분인 손톱까지도 언급함으로써 더욱 친숙한 의학서에 다가가고 있다(페이지마다 실린 <토막상식>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움이란 단어에 대한 선입관 ㅡ 선입관이란 말 자체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고정관념의 뜻에 더 가깝다 ㅡ 은 참 무서운 관념의 산물이다.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그런데 사실 외적인 미는 내 몸의 건강을 표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말이다. 나는 책 겉표지에 인쇄된 <뷰티>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핑크빛 디자인마저도) 이젠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그 단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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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 - 당신은 무엇을, 왜 먹고 있는가?
크리스토퍼 그린슬레이트 & 케리 레너드 지음, 김난령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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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왜 하루에 1달러로 먹고 살려는 시도를 하는 건가. 무한도전으로 시작해서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젠장. 달러를 한화로 계산하든 말든 난 1달러로는 하루를 (먹고) 살 수 없다. 식욕은 본능이니까. 그것도 원초적이고 말초적인. 나는 <1달러로 먹고 살기>를 실천하는 도중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버거킹에 가 무료로 주는 시럽 두 봉지를 얻고서 <마이 프레셔스!>를 외치는 골룸이 되고 싶지는 않다(p.54). 이 책의 저자 중 남편인 크리스토퍼처럼 한 달 동안 했던 <악마의 프로젝트> ㅡ 나는 이렇게 부르려 한다 ㅡ 를 끝내고 난 후유증(!)으로, 처가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식사 때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에 놀라 <물, 물이면 족해>라며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싫다(p.125). 1달러 프로젝트는 분명 영양 상태와 체력 그리고 에너지에 관해서도 충분치 않은 계획이다. 저자는 이 계획을 실천하기 전 식료품을 구입하는 비용에 대해 생각했고,  나아가 그 생각은 저소득층 가정들에게까지 미쳤다. 그리고 대학 시절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거기서 저소득층을 위한 식량보조 프로그램인 <푸드스탬프food stamps>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적 한계를 느낀 거다. 그리고 이런 탁상공론에 염증을 느끼고 여러가지 탐구를 하게 된다. 물론 그 실천은 위에서 말한 <악마의 프로젝트>로 귀결되지만. 그리고 우리(나)는 여기 『하루 1달러로 먹고 살기』에서 중요하고도 단순명쾌한 결과를 얻는다. 쉽게 먹는 것은(이를테면 인스턴트 식품) 말 그대로 간단한 일이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건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는 걸 ㅡ 진부한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더해 <건강하게 먹으려 노력하면 식비는 자연스레 절약된다>고 한다(p.266). 물론 현대의 편리성과 이기성에 맞서 최소한의 노력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결국 이 책은 뻔한 소리만 늘어놓게 될 운명에 처하지만 빠뜨리지 않아야 할 한 가지는, 저자가 실제로 이 1달러 프로젝트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의 탁상공론보다는 보다 현실감 있고 지혜로운 <먹고 살기>를 피력한다. 『하루 1달러로 먹고 살기』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저자의 실험이 아니라 그것에서 파생된 실제 현실과의 고민이다. 과거 TV 프로그램 <만 원의 행복>이란 타이틀에 왜 <행복>이 함께 있는가는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해준다 ㅡ 실제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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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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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란 타이틀의 이 책은 1946년에 조지 오웰이 쓴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제목 그대로 사용한, 그의 29편의 에세이를 모아 엮은 책이다. 나로서는 무려 29편이나 되는 (양적으로) 투박한 이 에세이들을 한 권의 책에 담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조지 오웰이니 넘어간다. 그런데 『나는 왜 쓰는가』는 에세이와 소설의 접점에 있다 ㅡ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인지, 에세이를 가장한 소설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저녁 9시쯤 되면 정신이 비교적 맑아지기 시작할 것이고,
오밤중이 되도록 방에 앉아 능숙한 솜씨로 책을 한 권씩 훑은 다음
하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이걸 책이라고!> 소리를 덧붙일 것이다 (...)
두 가지 업을 다 해본 입장에서 말하건대 서평자는 영화평론가보다는 낫다.
영화평론가는 집에서 일할 수도 없고,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오전 11시면 시사회에 참석해야 하며,
한 잔의 싸구려 셰리주 값에 자신의 명예를 팔아야 하는 것이다.
ㅡ 본문 「어느 서평자의 고백」 中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ㅡ 본문 「나는 왜 쓰는가」 中
 



조지 오웰은 식민지 경찰 생활 덕분에(!) 교수형을 집행하기고 했고(「교수형」), 코끼리를 해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세 번이나 총의 방아쇠를 당기기도 했다(「코끼리를 쏘다」). 이러한 <흔치 않은 별의별> 경험들은 ㅡ 헌책방 직원, BBC 라디오 프로듀서, 서평 쓰는 일 등등 ㅡ 그의 문학적이고 지적인 자양분으로서 충분한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지 오웰이란 이름을 언급할 때 『1984』나 『동물농장』의 작가란 것 외에 <훌륭한 에세이스트>라는 점을 함께 떠올려야 한다 ㅡ 아내와의 사별과 일 년 반 동안이나 출판사를 못 만나 출간이 지연되었던 『동물농장』이나, 폐결핵 상태에서 매달린 소설 『1984』가 너무도 대단해서 감히 <에세이>의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어느 서평자의 고백」에서 그는 책과 일종의 직업적 관계에 놓이다 보면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알게 되고,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적어도 여기서는) 틀렸다. 비록 내가 쓰는 이 글은 변변찮은 것이지만, 내 본심은 『나는 왜 쓰는가』가 조지 오웰이 말한 <열에 아홉의 책>이 아니며, <서평자의 본심>의 그것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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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테라피 - 크리에이티브는 뇌로하는 섹스다
윤수정 지음 / 상상마당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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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creative>와 <테라피therapy>라는 단어의 조합이 희한하다. 책을 펴면 크리에이티브<로> 테라피하다, 크리에이티브<를> 테라피하다, 이렇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걸 알 수 있다. 저자는 카피라이터다. 우리는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꽃 같은 세상 날려버린다!>, 《워낭소리》의 <고맙다. 고맙다. 참말로, 고맙다...>, 《가족》의 <일곱 살 당신과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열일곱 당신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떠날까봐 눈물납니다>라는 문구를 기억한다. ㅡ <꽃 같은 세상...>에서의 <꽃>은 비속어 <좇>을 바꾼 거다. 어감도 살아 있으며, 기발하고 발칙하다. 이 책의 카피 <크리에이티브는 뇌로 하는 섹스다>에서도 드러나듯.

다시 돌아간다. 이 책은 <크리에이티브>와 <테라피>를 학문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말할 수 있다 ㅡ <아마도 이 책은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팔리게 될 것이다>라고 저자는 적고 있지만. 그런데 왜 크리에이티브는 <뇌로 하는 섹스>인가. 저자는 섹스와 자위로 예를 든다. 그리고서 자위는 버리고 섹스의 손을 들어준다. <소통과 배려, 책임, 사전에도 고민하고 사후에도 고민하고,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고, 늘 조심해야 하는 그 과정(p.133)>이란다. 나는 이 말을 근저로 <삐딱>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삐딱>은 나쁘거나 불손한 의미가 아니다. 그저 다수결에서 밀려났을 뿐이니까.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는 거다 ㅡ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렇게 살았다. 그래서인지 괴상하다는 소리도 들어왔다. 왜냐하면 나는 다多에 속하지 않는 생각들 역시 했으니까.

카테고리를 찾고, 그것을 어떤 상태로 상징화하며, 어떤 방식으로 어필할 것인가. 우리(인간)는 항상 뭔가를 하고 싶어 하고, 궁금해한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간단한 정보에 스토리를 입혀 대다수가 ㅡ 여기서도 다수결이라는 걸 전제로 하고 있지만 이건 정말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ㅡ 아! 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조언. 그래서 이 책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크리에이티브<를> 크리에이티브<로> 테라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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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홀로틀 로드킬
헬레네 헤게만 지음, 배수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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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서평처럼 <확실히 완전히 개운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Ctrl +C>와 <Ctrl +V> 만으로는 세상만사가 탈 없이 흘러가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이기주의적이고 무신경한> 열일곱의 작가는 본문에서 이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혹은 그렇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가차없이 빼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줄거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왜 이다지도 극찬을 받고, 미프티는 (맙소사!) 세상의 모든 원죄를 혼자서 짊어진 얼간이가 되었는가에 대한 감흥은, 책 겉표지의 새빨간(혹은 핏빛의) ㅡ <핑크색>이나 <분홍색>으로 묘사하는 것은 죄를 짓는 기분이다 ㅡ 아홀로틀로 대신하자.

나는 죽었다 깨도 미프티처럼은 될 수 없다. 심하게 탈골된 언어를 구사하며 마치 카타콤catacomb에 갇힌 로마 병사처럼 기는 그녀의 삶은, 당최 이해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프티는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限りなく透明に近いブルㅡ』의 미군기지 근처에 사는 소녀로 대체되어도 무방하다 ㅡ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처럼 읽었다면 과장일까?(그렇다, 고 나는 생각한다) 미프티의 트라우마가 진짜이든 그렇지 않든 그녀를 설명하는 모든 단어 앞에는 수식어로서 <탈脫>이나 <반反>을 붙이는 것도 좋겠다. 『아홀로틀 로드킬』은 성장 소설보다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어린이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불온서적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이렇게 일관되게 악마적일 수는 없다!) ㅡ 이것은 다양한 의미로 그렇다는 얘기다.


 

왜 다른 사람들은 너의 염병할 시야에
단 한 발짝도 들어설 수가 없는 건데?
ㅡ 본문 p.43


그래. 우리(나)는 <너(미프티 혹은 헤게만)의 염병할> 시야에 단 한 발짝도 들어설 수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는 좀처럼 진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지 않고는 인간은 자신을 끝까지 사랑할 수 없다(조르주 바타이유의 『문학과 악』)는 말처럼. 알 수 없는 어긋남, 통찰력을 잃고 더쳐가는 상처들. 이것들은 작위성이나 상투성, 비개연성이란 말로는 쉬이 해결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봉합>이 안 된다는 거다. 헤게만의 연출력은 평면적이지만, 붕괴, 그 직전이다. 그래서 미프티에게 유토피아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우주적으로 변할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보편의 문턱을 넘어 버린, 착한 어린이는 될 수 없는, 반추상의 구어체로 이야기하는 미프티만 남는다 ㅡ 나는 분명 『아홀로틀 로드킬』이란 <책>을 읽었음에도, 에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게다가 미프티는 좀먹은 행려병자 꼴을 하고 <자동 응답기의 부재중 전화 표시를 보고서, 언젠가 죽으면 자신의 일부도 이렇게 남아 있게 되리라(p.300)>는 것을 알고 있다(물론 우리도 안다). 상당히 불쾌하고 조금은 위악적이며, 동시에 순수하고 쉽사리 로드킬 같은 건 당하지 않을 미프티 ㅡ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에 스스로 뛰어들었으면 뛰어들었지. 헤게만의 실험은 텍스트를 그러모으는 것에 더해 그녀 자신을 해부하는 실험을 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덮는 순간 내 귀에 이명이 일며 어디선가 블러드하운드 갱bloodhound gang의 Foxtrot Uniform Charlie Kilo」가 들려오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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