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원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김진주 옮김 / 퍼플레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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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기적의 연속임을 체험하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면서, 눈물 흘리면서 봤던 영화들이 다 이 사람의 작품이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어쩜, 하나같이 내 취향을 그대로 간직한 작품일 수 있을까. 니콜라스 스파크스~! 이젠 찜해뒀어!! 동생이 너무 재미있다고 소개해준 영화 《워크 투 리멤버》는 섹시 가수인 맨디 무어의 작품이기도 한데,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때 가수일 거라고는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자연스런 연기 때문에 정말 포옥 빠져버렸다.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래 「Only Hope」는 아직도 내 심금을 울린다. 지금 내 컬러링이기도 한데, 그 영화를 모르는 사람조차도 노래가 매우 좋다고 야단들이다. 그랬던 그 영화가 원래는 소설이 원작이었다니, 이거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그리고 현실같지 않은 사랑을 담은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병 속에 든 편지》란 영화도 뭣모르고 봤을 때조차 날 울리게 했다. 그리고 난 보지 않았지만 대단한 감동을 주었던《노트북》과 리차드 기어 주연의 《나이트 인 로댄스》까지 모조리 썼다고 하니, 어찌 이번에 나온 신작에 기대가 안 갈수가 있을까. 그런데 가만 보아하니, 니콜라스 스파크스 작가는 정말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사랑이야기를 주로 소재로 사용하는 것 같다. 이번에 내가 접한 『럭키 원』도 그런 신비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우연이 등장하는데, 소설의 끝 부분으로 갈수록 운명적으로 만난 두 남녀의 인생이 서로에게 잘 물리는 나사와 볼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여인을 실제로 만날 확률을 몇 %나 될까? 아니, 우연히 만나지는 않더라도, 그녀를 찾을 확률은?

이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되고, 끝이 난다. 한 장의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사연은 왠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등장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진짜 있었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남자가 이라크에 파병되어서 한 여자 사진을 줍는다. 그녀의 사진을 주워서 주인을 찾아주려고 게시판에 걸어두었지만, 아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자 자신이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그 사진에 실린 믿음이 그를 살렸다. 비록 그 남자의 믿음이 아니였을지라도 말이다. 결국 그 보답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난 그는 그 여자를 만나게 된다. 기적이라면 기적일 수도 있고,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게 찾았다.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서로의 인생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는 그런 줄거리이다. 자,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런 간단하고도 묘한 이야기가 그렇게나 감동을 줄까. 이젠 그것을 생각해볼 때다.

 

니콜라스는 평범한 것에서 비범함을 보는 작가다. 아이랑 눈높이를 맞추어주는 일, 아이에게 인내심을 갖고 대해주는 일, 셰퍼드를 길들이는 일,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일, 사람이 사람을 존경하는 일, 세상을 아름답고 즐겁게 바라보는 일,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해주는 일, 아이를 구하려는 일... 이런 모든 평범한 일들 속에 그는 애정을 곁들이고, 존경을 우려내고, 인정과 안정과 행복을 살살 뿌려넣어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사?지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런 기적의 기억을 금방 잊기 마련이기에 이런 작가는 꼭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통해 기적을 체험하고,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임을 잊지 않게 되는 걸거다. 삶이 기적임을 잊지 않는다면, 매순간 삶이 흥미롭지 않을까. 그리고 흥미로운 삶 속에서 어찌 기적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삶이 기적의 연속임을 체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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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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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적혀있는 말이 내 맘을 사로잡아 버렸다~!

「눈물 나게 맛있는 사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환호하는 사과, 심까지 먹어 버리게 되는,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

표지에 나와있는 빨간 사과는 너무 아름답지만, 실제로 기적의 사과는 유기농이여서 벌레도 먹은 게 있고, 상처도 입은 게 있을 것이다. 기적의 사과라고 해서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마구 암시를 주는 데도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사과를 보면 꼭 그런 모습의 기적의 사과가 상상하게 된다. 꿀꺽~ 한 번이라도 먹어보고 싶다. 야생의 맛이 살아숨쉰다는 사과라니~~!!

 

이 책은 2006년 12월에 일본 NHK의 〈프로페셔널 - 프로의 방식〉이란 프로그램에 소개된 기무라 아키노리의 사과 이야기를 책으로 다시 엮은 것이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7백여 통의 응원의 편지를 받은 방송국은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책으로 엮기로 했단다. 그의 사과는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지 3분 만에 품절이 되어 버리고, 이 사과를 재료로 만든 수프를 먹으려면 1년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나 인기가 많은 사과이기에 가격도 무척 비쌀 것 같지만 이런 유기농 사과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런 사과를 먹을 수 있는 가격이 되어야 한다는 기무라 아키노리 씨의 철학 덕택에 다른 사과의 가격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주문하려면 한국보다 10배나 비싼 일본의 물가 탓에 좀 비싸겠지만 그 정도면 먹어볼 만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쩝~ 먹고 싶다.

 

도시로 나가 열심히 기계에 파고들던 기무라 씨는 형이 입대를 하는 바람에 고향에 와서 가업을 이으려다가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어 사과농사를 맡았다. 처음에는 시시때때로 13종이나 되는 농약을 뿌려가며 열심히 농약 재배를 했지만, 우연히 보게 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 농법』으로 그는 완전히 180˚로 바뀌었다. 농학자이라기 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운 후쿠오카 마사노부 씨는 '연속 불경작 직파' 재배법으로 갈지 않은 땅에 쌀과 보리와 클로버 씨를 직접 뿌리고, 자라난 쌀과 보리를 벤 후 그 짚을 논에 그대로 뿌려 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농약을 쓰는 현대 농업 수준의 수확을 얻었다고 했다.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가능한 에히메 현과 겨울이면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아오모리 현의 기후가 너무 다르기에 이 책대로 똑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했던 기무라 씨는 무농약 사과 재배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가 무농약에 도전했던 것은 농약에 민감한 아내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공적인 손질 없이 자연은 그대로 완결된 시스템이라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사상에 깊이 감화된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강했던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나온 것이다.

 

그러나 사과 재배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원래 사과는 아기사과라 불릴 만큼 아주 알이 작고 시큼해서 먹을 수가 없는 품종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품종 개량으로 알을 크게 만들고, 맛에 단맛을 첨가하는 대신 병충해에는 아주 취약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단다. 그래서 농약이 크게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과는 농약이 있다는 전제 하에 개량된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과 재배를 완전히 무농약으로 한다는 것은 사과 농부들에게는 완전히 상식 이하의 행동이라고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기적의 사과를 만들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기무라 씨밖에 없었던 것!! 호기심이 많고 끈기 하나는 죽여주는 그이기에, 그리고 뿌리부터 농사꾼이 아니였던 장인이 있었기에 그의 정신나간 생각이 시도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농약의 종류를 줄여가면서 시도했던 무농약 재배를 아예 농약을 안 뿌리고 일일히 손으로 벌레를 잡는 방식으로, 잡초만 제거해주는 방식으로 무턱대고 시작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나와서 열심히 일하지만 해충이 그득하게 끼고, 심지어는 병충해까지 극성이여서 잎이 다 떨어지고, 말라가는 그의 사과농장을 바라보면서 다른 농부들은 그를 대놓고 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번 말리기도 했지만 전혀 들어먹지를 않았던 기무라 씨였기에 이제는 완전히 원수까지 된 것이었다. 자기 과수원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이웃의 사과과수원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농약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식초를 뿌리기도 하고, 고춧가루, 마늘 등 안해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할 정도로 10년간 그의 사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벌레라면 일일히 잡아서 죽일 수도 있겠지만, 병충해는 어찌 한단 말인지~

 

그런 그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가족들 보기에도 미안하고, 주변 이웃들과 친척들과 부모에게 볼 면목도 없어지고... 결국에 그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바로 죽음 뿐이었다. 어느날 죽기 위해 산으로 깊숙히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는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사과나무의 환영을 보았다!! 사실은 도토리나무였는데 숲에서 자연스레 적응하는 그 나무를 보고는 기무라 씨는 나무가 아니라 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신의 농장에 있는 흙은 깊이가 깊어질 수록 극심하게 온도가 떨어지는데 숲의 흙에서는 깊이가 깊어져도 온도가 일정하게 따뜻했다. 이는 미생물의 활동 때문이었는데 농장의 흙은 비료도 안 뿌려주는데다가 흙의 자생력이 떨어진 상태라 메말랐고, 숲에는 온갖 잡초와 곤충들의 사체들로 인해 영양분이 풍성하게 있는 상태였던 것!! 그 사실은 안 후에 기무라 씨는 과수원의 풀 베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공기 중에 떠 있는 질소를 땅속 영양분으로 만들어주는 콩과식물을 심어 땅의 자생력을 만들어주었다. 숲의 나무에는 뿌리가 깊고 굵은데 비해 과수원의 사과 뿌리는 심각할 정도 연약해서 그 부분을 강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나머지는 자연이 알아서 움직여줄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과연 그의 생각은 성공이었다. 정말로 콩과 식물 덕에 흙의 영양분이 생겼고, 미생물의 활동도 시작해서 온도가 일정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과가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알이 너무 작아서 팔기도 민망했지만, 야생의 맛이 살아있는 사과 때문에 입소문이 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나뭇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태풍이 와서 다른 사과나무가 뿌리째 뽑힐 지경이 되어도 그의 사과나무만큼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을 정도까지 나무들이 자생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자연은 그대로가 완전무결하다는 기무라 씨의 믿음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인간은 그저 나무가 열매를 맺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하는 것은 오로지 나무 뿐이다. 그런 자연의 역할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기무라 씨는 병충해가 극심해서 나무들이 다 말라죽어갈 것 같았을 때 나무들에게 부탁을 했다. 나무마다 붙잡고 제발 죽지 말아달라고, 꽃을 피우지 않아도 좋으니 죽지만 말라고 말이다. 아마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였기에 그런 행동이 가능했을 것이다. 남들이 보고 미쳤다고 할까봐 다른 농장과 경계선에 있는 한 줄의 나무에게만 애원하지 못했었는데, 그만 그 줄의 나무만 다 죽어버렸다는 비극적인 결과를 보면, 나무는 그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고, 숨을 쉬며, 인생을 즐기는 하나의 생명체임을 우리는 이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기무라 씨의 도전 덕에 우리는 또 하나의 경이로움을 체험하게 되었다. 기무라 씨,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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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 그림과 나누는 스물한 편의 인생 이야기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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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나누는 스물한 편의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 느낄 수 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 그림과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일기와 같은 책이다. 그림이라면, 화가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나로선 대환영일 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그림이란, 무심코 스쳐지나갔던 인생의 한 부분에 대해서 꼭 집어 알려주는 자서전과 같다. 내가 남과 똑같지 않다고 내심 차별을 두고 생각하면서도 - 그 차별이 나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건지, 열등하게 생각하는 건지는 아직은 몰라도 -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런 사소한 감정을 느끼는 다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그런 안도감이 드는 것을 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열등하게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흔히 길로 은유되는 【인생】편을 보노라면 길의 화가라 불리는 이영희 화가가 떠오른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황톳길을 주로 그리는 그녀의 그림에는 무수하게 은유되는 수많은 인생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때는 깨끗하게 포장된 아스팔트길보다는 인적이 드문 비포장도로나 인간의 흔적만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오솔길을 주로 그리는데, 그것은 화가가 바로 거기에 인생이 숨어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섬세한 표현을 위해 이영희 화가는 극세필용 붓을 많이 구비해놓고 끊임없이 그리고 그린다고 한다. 다른 현대적인 표현 방식을 빌리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노동력으로만 그림을 완성하는 화가는 흡사 그녀의 그림 속의 황톳길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영희 화가가 길을 그린 것처럼 고흐도 구두 한 켤레를 그혔다.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화가마다 깊게 다가오는 소재나 표현양식이 다른 것처럼 똑같은 인생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이영희와 고흐가 다른 소재로 그린 것은 세상을 관계로 인식하는 동양인과 세상을 명사 대 명사로 인식하는 서양인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내심 생각해본다. 어쨌든 길과 구두에서 느껴지는 감동만큼은 동서양의 구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 다음으로 솔깃했던 화가는 '행복의 화가'란 별명을 가진 르누아르이다. 평생을 아름다운 그림만을 그려 행복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던 르누아르의 그림은 정말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법할 그림이다. 『뱃놀이 일행의 오찬』을 보면 젊음, 친구, 사랑, 대화, 여유, 음식, 술, 과일 등등 흥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부르짖는 르누와르 본인의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 그림은 바라보기만 해도 흥겨운 기분이 들게 한다.  『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는 또 어떤가. 화목한 가정이라는 부제가 붙을 만큼 인자하고 선량한 부인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남매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지 않는가 말이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평생 행복한 그림만을 그렸는데, 혹자는 그에 대해서 인생의 한 면만을 본 화가라고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모습이 예술가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삶 속에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다가올찌라도 그것을 견뎌내고 이겨내면 행복한 순간이 꼭 찾아온다는 희망을 주지 않는가 말이다. 그가 유명 화가였던 샤를 글레르의 제자로 있던 시절에, 스승과 맞부딪쳤을 때 그가 한 말이 그의 예술관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었지 않았나 싶다.

 

"너는 오직 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구나. 정말 그런가?"

"물론입니다. 선생님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시잖아요." (p. 98)

 

진짜 르누아르가 위대한 점은 그렇게 아름답고 밝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때, 그가 류마티즘성 관절염과 중풍에 걸린 상태라는 점이다. 자신의 처지가 힘들고 아프더라도 세상을, 인생을 아름답게 보았던 그였기에 그런 아릅답기만 한 그림이 공허하지 않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드러내주지 않았나 싶다. 단지 그림만 예쁘게 그렸던 환쟁이가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생각했던 위대한 예술가란 것은 여기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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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시아, 그 바람이
신해영 지음 / 청어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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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있다. 어디에서도 부는 바람.

어디로도 통하는 바람. 에테시아, 그 바람이.

 

아련하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추억을 그렇게 말할까. 바람이라고~

나를 휘감아 이제껏 도달해보지 못한 그 어떤 곳으로 데려가는 바람이라고.

민영은 오빠에게 그리스 거물 기아니스 Y. 이아코바키스와의 거래에 통역을 부탁받아 에브게니아란 세계 최대 규모의 크루즈에 탑승했다. 

루즈에서 맡았던 바닷바람은 한국의 짭짜름한 소금기를 품지 않고 습기가 거의 없어 쾌청한 바람이었다. 아마 그래서 에테시아는 스물여덟 살의 민영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애원하고 구걸했던 그런 과거의 민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현실을 망각할 수 있게 했던 그런 기회였는지도.

 

한국계 입양아란 사전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그런 정보가 무색하게도 태어나면서 귀족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외모와 명령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의 특유한 무심함과는 또 다른, 작은 동작에서 보여주는 푸른 예기가 이아코바키스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민영은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바람이, 에테시아가, 그녀의 인생에 불어왔다.

 

에테시아란 지중해 동부 그리스 및 소아시아 지방에서 4월에서 10월에 걸쳐 북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이다. 이 바람은 아조레스 고기압의 동쪽에 돌출한 봉우리 부분에서 아라비아 부근의 저압부로 불어오는데, 풍속은 그리 강하지는 않으나 지속성이 있어서 항해의 장애가 되어 왔단다. 그래서 이 바람은 강수량이 거의 없는 쾌청하고 건조하고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데, 한국과는 전혀 다른 바람이라 이 소설에서 일상에서의 탈피를, 추억과도 같은 아련함을 나타내는가 싶다. 꽁꽁 묶여놔서 자신에게 일말의 가능성을 주지 않는 민영은 입양아다. 다섯 살 때 한 번 파양된 경험으로 사랑받기 위해 구걸했던 어린 시절을 가진 그녀는 완벽하게 보이는 한 가정에 입양되었어도 그 상처가 지워지지 않아 스물여덟이 된 지금까지도 그다지 다른 사람에게 애착을 느끼지 않는다. 완벽한 성공가도를 걷고 있는 양오빠 서준희에게만 제외하고.

 

남녀간의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녀의 인생에 남자는 오로지 서준희였던 단조로웠던 그녀의 인생에, 기아니스 Y. 이아코바키스라는 바람이 불어왔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어는 전혀 못한다는 그는, 이아코바키스 가문의 실질적인 오너로 세상을 주무르는 대단한 권력자다. 차세대 대한민국 리더라 불리며 경제부 차관의 보좌관인 준희가 그의 크루즈 시장에 발을 들이밀려고 야심차게 준비한 카드가 바로 그녀, 서민영이었다. 어떤 경로로 얻은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실력자인 기아니스가 바로 그녀를 찾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준 마리아의 딸이라는 그녀가. 서준희에게는 이번 사업에 서민영이란 카드말고는 들이밀게 없었다. 그 카드가 잘 활용되면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일 것이고 안 되더라도 그만일테지만, 그 바람을 맞게 될 민영이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에게 끌리지 않았다라면 거짓말일 테고, 15일간의 짧은 여정일 뿐인 일탈에 민영은 그가 제안한 하룻밤에 동의했다. 그녀가 누군가를 만나서 마음을 주기까지 생각하는 모든 것을 그는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그에게 또한 그녀에게도 이것은 게임일 뿐일 테지만,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상황에, 낯선 충동도 허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로서는 전혀 손해가 아니라고. 하지만...가슴 깊이까지 스며들던 아름답고 아름다운 서늘한 눈만은 가슴에 남았던 것은 어찌할까.

 

그녀가 느끼는 아주 작은 인력을 그도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인력 후에는 필연적으로 척력이 온다고 그렇게 자위했지만 그렇게 끝나지만은 않았다. 그 날밤, 그의 비서가 뒷처리를 확실하게 한 이후로 그녀 마음에 계속 바람이 불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연히 그와 마주쳐도 그에게 관심갖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에게서 어떤 기별이 올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어도, 마음만은 달랐나보다. 준희의 일도 성사되지 않았고, 그와의 일탈 후유증으로 멀뚱멀뚱 갑판에 기대만 있는 그녀의 마음은 스산하기 이를데 없었으니까. 그저 살아왔던 대로 그렇게 재미없이 살아가는 것 뿐이니.

 

반면, 그저 한 번 즐긴 것뿐이라고, 게임판에 나온 졸을 한 번 손에 넣은 것뿐이라고, 평소 느끼던 경멸만을 느끼면 된다 생각했던 기아니스는 그녀가 가고 난 후부터 그저 짜증이 났다. 그런 여자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너무 신경이 쓰인 그녀이기에 손이 가는데로 그저 뻗었고, 그녀를 잡고나서야 짜릿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나서 크루즈에서 내리는 날인 7일 동안 그녀를 납치해버렸다. 서준희와의 점심 약속을 마치고 난 후에. 그리고 둘만의 사랑놀음. 그가, 그녀가 마음 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렇게 마음에 서로를 담고 그렇게 불 같은 나날을 보냈지만, 뿌리 깊이 드리운 민영의 불안에 둘은 아쉽게도 헤어졌다. 사실은 민영이 화를 냈지만, 그건 더 깊이 사귀면 상처받을까봐, 기아니스가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을까봐 그리 생각하곤 미리 쳐내버린 것. 평생 무언가를 원하지도 않을 것이고, 주어진 대로만 살아갈 것이라는 민영을 보는 준희는 사랑하는 동생이 그렇게 시름시름 말라가는 것이 안타까워 여러 노력을 한 끝에, 그를 기아니스 Y. 이아코바키스를 데려온다, 한국에.

 

끝내 한국에 온 그를 거절해버린 그녀는 이제 고맙다고, 이제 마음 속에 넣고 그를 음미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그를 보낸다. 바보같이~

설명하는 방법을 몰라서, 평생 누군가에게 설명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미숙하고 서투르고 낯설어 하는 그를 그렇게 버려둔다. 하지만 민영이를 사랑하는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녀가 용기를 내도록, 사랑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것이라고, 누구나 밖에서 보면 그럴싸해보여도 안에서는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인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가족이 있기에, 다시 민영은 사랑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고결해보이는 사랑은 평생 사랑이란 감정을 모르고 살았고, 그래서 사랑을 얻으려 노력해보지도 않았던 두 사람에게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닮았던 그들에게 내리는 하늘의 선물일까, 아니면 바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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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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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든 사람이든 오랜 시간 서로를 인정해주고 배려해준다면 교감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여기 아주 멋진 교감을 나눈 동반자들을 보았다. 야생 올빼미와 생물학자와의 19년 간의 만남.

날개를 지나는 신경을 다쳐 일반 야생올빼미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어린 가면올빼미를 기르지 않겠냐는 권유를 들은 저자 스테이시는 감격해 마지않으면서 그 꼬마를 받아들였다. 지금은 올빼미 같아 보이지 않게 빨간 살과 솜털 뿐이지만, 좀 더 크고 나면 황금빛 털과 우유빛 털이 멋진 현명한 올빼미로 자라날 것이기에 '현명하다'는 뜻을 지닌 '웨슬리'라고 이름 지었다.

 

눈을 뜰 때부터 스테이시를 처음 봤기 때문에 그녀를 엄마라고 인식하는 웨슬리는 스테이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자신이 해야할 행동을 배워갔다. 스테이시가 올빼미는 아니기에 행동이나 날개짓하는 것을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행동, 눈빛, 말하는 어투 등을 보면서 자기 나름의 방식을 터득해간 것을 보면 정말 현명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스테이시가 좋아하는 인물들은 웨슬리도 경계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스테이시와 외모가 가장 많이 비슷한 사람은 더 좋아하지만, 간혹 스테이시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경계하는 사람도 나름 있었다. 그것이 웨슬리의 기준에서 무언가 맞지 않은 행동을 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밖엔 없지만, 어린 생물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여기서 우리는 야생동물과 인간과의 교류를 많이 하는 사회적 동물의 차이점을 알 아야 한다. 개나 고양이 같은 사회적 동물들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훈련을 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더라도 그것이 자신을 공격하는 행동이라고 오해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행동을 못 하게 가르치는 것이란 걸 그들은 안다. 하지만 올빼미와 같은 야생동물들은 인간에 대해 근본적으로 경계심이 발동하기 때문에 한 번 소리를 지르거나 혼을 내면 그 행동을 자신에게 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영원히 길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올빼미를 키우기 위해서는 무한한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인내심이 왜 필요할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읽어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나무에 올라앉기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는 웨슬리의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아장 걷는 아기일 때 웨슬리가 스테이시의 몸을 타고다니면서 걸음마를 연습하는 것은 스테이시에겐 온 팔과 온 다리에 크고 작은 흉터가 생기는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아프다고 소리를 치면 웨슬리는 절대 우리에게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올빼미란 종족은 평생 하나의 짝만을 갖고, 배우자가 죽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고결하기 때문에, 혹은 사소한 사고로 별로 안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에 걸려 먹이를 거부해 죽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외길로만 가는 고집을 가진 대단한 생명체를 가까이 지켜볼 수 있고,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팔다리에 있는 상처쯤이야 뭐 별거 아니겠나.

 

게다가 웨슬리는 자신이 실수를 할 때는 민망해하기도 했다. 아직 어른이 되기 전, 그러니까 혼자서 나는 연습을 하던 웨슬리가 식탁에 착지를 하려다가 '우르르 탕탕~' 소리가 나며 굴렀을 때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보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두번 웃고 나니까 웨슬리가 스테이시를 쳐다보지도 않고 멍하니 벽만 보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알아채곤 부끄러워하는 것을 깨달았다. 고도의 정신 훈련과 신체 훈련이 병행되어야 할 날기 훈련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웃기만 했던 것이 미안해서 다시는 그 앞에서는 웃지 않았다고 한다. 이윽고 좀 시간이 지난 후 웨슬리가 비행에 성공했을 때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을 으쓱거리며 받아들였다는데, 상상만 해도 너무 귀여웠을 것 같다.

 

이제 비행이 가능할 수 있을 무렵에는 어른이 된 것이기에 독립하는 야생의 본능이 발휘될 때다. 그래서 엄마라고 점찍어둔 스테이시 말고는 어떤 누구의 손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테이시가 세들어 사는 친구, 웬디조차 경계하는 것을 보고 웬디가 속상해하긴 했지만 이것이 바로 올빼미의 길이니 어쩔 수 없다. 스테이시 같은 동물학자들은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기 마련인데, 일단 위험하다고 판단해 공격하겠다고 마음먹은 야생동물들은 인간의 눈을 자주 공격한다고 한다. 특히나 올빼미는 위험신호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No~No~" 하는 동작을 취한다고 하는데, 인간이 보기엔 절대 경고 표시가 아니기에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야생의 본능을 발휘될 때도 웨슬리가 스테이시에게만은 귀여운 행동이나 애교를 부리기도 하는데 그것을 보기 원했던 한 남자동료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복하기로 했다. 40분이 지난 다음에 방으로 올라갔던 스테이시는 횃대에서 날아올라서 눈을 공격하려고 하는 웨슬리를 볼 수 있었다고. 그 시커멓게 덩치가 큰 남자 동료가 식은땀을 흘리며 쫄아있었던 것을 보노라니 올빼미가 대단하긴 대단하다. 올빼미는 인간과는 다르게 청각적인 신호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발소리, 심장울리는 소리까지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불 속에 숨은 사람이 스테이시가 아니란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동물이다.

 

처음 스테이시가 아기 올빼미였던 웨슬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지도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다.

네가 그 동물을 길들이면, 그가 네 생명을 구할 거야.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스테이시가 불치병에 걸려 너무나 큰 고통에 죽고만 싶어했을 때, 자살을 생각했을 때,

웨슬리 때문에, 오로지 웨슬리 때문에 죽지 못했다.

자신이 죽으면 그 충격으로 따라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외길을 가는 웨슬리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나서 19년을 산 웨슬리를 먼저 보내고 나서 이 책을 쓴 뒤에야 조금씩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니까

웨스리가 스테이시를 살린 게 맞다.

그런 감동을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너무 고맙지만,

그 귀엽고 앙증맞은 웨슬리의 다양한 표정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현명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고결한 올빼미 - 웨슬리를 알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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