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 - 명문가 고택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3
이용재.이화영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저자 이용재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진 건축학도이다. 건축평론을 하다가 돈이 안돼 건축현장으로 돌아가지만 외환위기 때 전 재산 날리고 감옥도 다녀오고 건축잡지사 편집장으로 일을 하다가 박봉으로 그만 두고 건축현장 감리(난 감리도 모르지만 대충 때려맞쳐서)로 일하지만 부실공사 유혹에 맞서다 잘리고 결국 택시 운전사로 소일하면서 건축답사하는 것으로 삶의 낙을 누린다. 처음에 문과로 가고 싶다던 그를 아버지의 강권으로 이과를 간 것부터가 어쩌면 잘못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건축과 어울리는 그의 글을 보니 또 그건 아니겠다. 그렇다면 건축을 공부했어도 건축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탄해봐야 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한국 건축학계가 척박하고 부정으로 얼룩졌든 그가 마지막으로 낸 책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이 대박나면서 그는 건축 글쟁이로 낙찰을 받았으니 어쩌면 그의 운명은 글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의 「궁극의 문화기행」시리즈는 그 전의 1편과 2편도 출간된 것을 알고는 있지만 딱히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고 하여, 또한 나보다 건축에 대한 지식의 끈이 긴 분들이 어련히 알아서 읽으실까 하여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책은 고택이라는 점도 흥미가 생겼고 계속 그의 이름이 눈 앞에서 맴돌아 호기심에 읽었는데, 우와!! 대박이었다.

 

일단 그의 글은 글밥이 적어 좋다. 물론 코끼리 다리 하나 만진 것을 가지고 코끼리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책도 이런 식으로 글밥이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그의 책이 다 이런 식이라면 다 모으고 싶을 정도로 나랑 코드가 맞다. 건축에 문외한이 학자 수준으로 깨알 같이 정리된 책을 가지고 있으면 읽으려고 용 쓰다가 눈만 버리지 무엇 하겠느뇨. 그저 몇 가지 상식 수준의 정보만 던져주고 가타부타 주저리주저리 정리해놓지 말고 그처럼 깔끔하게 한 마디 던져놓으면 그것만큼 깔끔한 것이 어디있을까 싶다. 글밥이 적다고 글의 수준끼지 낮은 것은 아니다. 고택이 중심이다 보니, 우리 역사 이야기가 한가득 풀어져있는데 할 말은 다 하면서 설명을 하니 읽다가 킬킬대며 웃고 만다. 물론 그 말 한 마디 가지고 속이 후련해지지도, 현실이 바뀌지도 않지만 일반 대중이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니, 이 책이야말로 교양서로 등극해야 하겠다. 우리 역사 고적 중에 고택이 있다는 것은 사실 잘 몰랐다. 문화재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궁궐이나 사찰 정도만 생각했지, 일개 명승이나 절개가 높은 선비 정도가 살았던 집을 가지고 문화재로 여길 수 있겠나 싶었는데, 그 집의 구조나 공사된 방법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고택을 기리고 지켜야 할 이유는 그 안에 품은 선비 정신에서 찾아야 할 듯 싶었다. 선비들이 제 집에 이름을 붙일 때 품었던 마음과 사상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하고 되지도 않는 머리를 굴려 한 번 떠올려보았다.

 

그런 고택이 관리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진짜 사람이 살아 그 주인의 사상과 절개의 명목을 잇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그 중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주거지로 마땅치 않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택들은 찾는 이가 적어 살림집으로 손색이 없다. 다만 서울과 거리가 멀어 직장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귀농하시는 분들이 그런 고택의 유지로 남으면 안되는 것일까. 물론 종가의 명맥을 잇는 종손들이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손이 귀해 양자로 들인 집안이 한둘이 아닌데 이제와서 꼭 종손이 남아있으리란 법은 없다고 본다. 실은 그 가문의 가풍과 가훈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그가 바로 진정한 가문의 후예가 아닐런지. 어쨌든 황손인 이구의 낙선재에서부터 아계 송희규의 백세각, 만산 강용의 만산고택, 은농재라 불린 사계 김장생의 사계고택, 전주의 부호 백낙중의 학인당, 실제로 살았던 것은 아니고 그의 제자들이 인품에 감동해 바친 윤증의 명재고택까지 총 21개의 고택을 유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자신이 얼마만큼의 역사적 지식이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의 주류뿐만 아니라 비주류까지 골고루 등장하여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글밥이 적은데도 품고 있는 지식은 어찌나 방대한지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글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마도 생각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줄 한 줄 생각하고 읽어야 내용을 따라갈 수 있으니, 역사를 좋아하고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분들은 자만하지 말고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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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10-0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