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
존 오트버그 지음, 오현미 옮김 / 두란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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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고~!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첫 생각은, 기쁨이었다. 내 일로 하나님을 높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내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 되는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살지 않는가. 물론 매일 같이 넘어지고 무너지고 교만하고 성내고 자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고, 내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 되는 그 날이 오리라고 굳게 믿는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한다면. 이쯤에서 전에 봤던 『예수님의 임재 연습』이란 책을 안 언급할 수가 없는데, 그 책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부터 차근하게 알려주셨다. 특히 ‘임재’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우리가 항상 들어왔던 말씀 중에 포도나무 비유는 내겐 사실 너무 어려운 비유였다. 그 비유가 생각만큼 딱 내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이 책 덕분에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이다. 가지에 열매가 많이 맺히기 위해서는 당연히 포도나무에게 붙어있지 않을 수 없다. 그 가지가 자신이 가지이기만을 분명히 한다면, 즉 포도나무에 붙어있어 포도나무임을 인정하지 않고 가지로서의 정체성만 분명히 갖고 있다면 그 가지에는 열매가 맺힐 수 없다. 포도나무가 뻗은 뿌리에서부터 양분과 물을 빨아들이지 않는다면 가지는 곧 말라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우리인 것은 내세우지 말고 우리 안에 예수님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역설한다. 그래서  ‘임재’라는 것은 우리가 포도나무가 되는 것, 그것으로 이해하면 알맞겠다.

 

그 책에서 얻었던 정말 획기적인 깨달음은 가지가 포도나무를 필요로 하는 것 같이 포도나무도 가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어 아무 상관이 없어서, 혹 나 같이 먼지 같은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만 하지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될 수 없어서, 혹 나 없어도 충분히 하나님의 영광, 섭리는 다 이루어질 것인데, 왜 나를 태어나게 하셨을까 하는 자책을 하곤 했었다. 정말 내가 태어난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정말 답답하기도 했었다.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피해만 보이고 나란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던 가장 극심한 시기를 겪었더랬다. 가장 바닥을 쳤던 때가 바로 중국에 다녀오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중국에 다녀오고 하나씩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면서 변화되었던 이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왠지 이 책이 그 때의 내 의문에 답해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은 나를 필요로하시다고.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는 내가, 꼭 내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 말, 그 뜻이 너무나 기뻤고 감격스러웠다. 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런 모양이 아니더라도 내 삶이 너무 팍팍해서 혹은 곤고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고통스러운 날이 한 번쯤은 다들 있을 것이다. 사람은 미련해서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그 상황과 그 시기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만약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하나님은 천하보다 한 영혼을 더 귀히 여기신다고 말이다.

 

경건서적을 여러 권을 겹쳐서 읽으니까 각각의 말하는 바와 문체가 상당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이전에 봤던  『예수님의 임재 연습』은 1800년대의 사람이 쓴 것이고, 이번의 책은 2000년대에 썼던 글이라 확실히 깊이가 좀 얕다고 느껴진다. 과거의 글은 딱 하고 싶은 말만 정리해서 상당히 들어가기가 쉽지 않지만, 요즘의 글은 문체가 가볍고 수필 같아서 오히려 읽기에는 부담이 없었다. 깊은 내용이 나올 때는 그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의 핵심은  ‘비교’ 같았다. 저자의 체험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나를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데 그것을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져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예뻐해주고 있으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런데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붙으시면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 즉 내가 짜증나고 싫어하는 부분을 완전히 변화시켜서 새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게 있는 독특한 성격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런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탐욕, 질투, 미움, 자책, 정죄, 음란, 분노 등의 악한 것들은 사라질지라도 내 본연의 성격, 즉 소심하거나 대범한 것,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내향성이거나 외향적이거나 등 이런 것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절대 다른 인격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말이 너무나 내겐 위로가 되었다. 나 자신을 부정했던 과거의 상처도 상처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어서 시야가 밝아진 느낌이다.  그러니까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일 때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겠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혹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높인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 아닐까. 헨리 나우웬은 말한다. 기도는 내가 사람이고 당신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그의 말대로 당신은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인 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인정하는 것부터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은혜는 매일 새롭게 구하는 것이란 것도 깨달았다. 다른 기도모임을 하고 돌아와선 기도 많이 했다고 기도생활에서 게을러지는 나를 인식했을 때, 놀랐다. 아, 내가 과거의 은혜만 붙잡고 살았구나. 기도를 게을리하고 즐겨하지 않았구나. 다시 말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가슴이 덜커덕했다. 즉각 회개를 하곤 다신 그 길을 가지 않고자 한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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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imi 2014-11-1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매니아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 얘기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께 다가가는 삶 사시길
존 오트버그 목사님의 책을 직접 읽어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