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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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든 사람이든 오랜 시간 서로를 인정해주고 배려해준다면 교감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여기 아주 멋진 교감을 나눈 동반자들을 보았다. 야생 올빼미와 생물학자와의 19년 간의 만남.

날개를 지나는 신경을 다쳐 일반 야생올빼미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어린 가면올빼미를 기르지 않겠냐는 권유를 들은 저자 스테이시는 감격해 마지않으면서 그 꼬마를 받아들였다. 지금은 올빼미 같아 보이지 않게 빨간 살과 솜털 뿐이지만, 좀 더 크고 나면 황금빛 털과 우유빛 털이 멋진 현명한 올빼미로 자라날 것이기에 '현명하다'는 뜻을 지닌 '웨슬리'라고 이름 지었다.

 

눈을 뜰 때부터 스테이시를 처음 봤기 때문에 그녀를 엄마라고 인식하는 웨슬리는 스테이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자신이 해야할 행동을 배워갔다. 스테이시가 올빼미는 아니기에 행동이나 날개짓하는 것을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행동, 눈빛, 말하는 어투 등을 보면서 자기 나름의 방식을 터득해간 것을 보면 정말 현명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스테이시가 좋아하는 인물들은 웨슬리도 경계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스테이시와 외모가 가장 많이 비슷한 사람은 더 좋아하지만, 간혹 스테이시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경계하는 사람도 나름 있었다. 그것이 웨슬리의 기준에서 무언가 맞지 않은 행동을 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밖엔 없지만, 어린 생물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여기서 우리는 야생동물과 인간과의 교류를 많이 하는 사회적 동물의 차이점을 알 아야 한다. 개나 고양이 같은 사회적 동물들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훈련을 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더라도 그것이 자신을 공격하는 행동이라고 오해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행동을 못 하게 가르치는 것이란 걸 그들은 안다. 하지만 올빼미와 같은 야생동물들은 인간에 대해 근본적으로 경계심이 발동하기 때문에 한 번 소리를 지르거나 혼을 내면 그 행동을 자신에게 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영원히 길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올빼미를 키우기 위해서는 무한한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인내심이 왜 필요할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읽어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나무에 올라앉기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는 웨슬리의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아장 걷는 아기일 때 웨슬리가 스테이시의 몸을 타고다니면서 걸음마를 연습하는 것은 스테이시에겐 온 팔과 온 다리에 크고 작은 흉터가 생기는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아프다고 소리를 치면 웨슬리는 절대 우리에게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올빼미란 종족은 평생 하나의 짝만을 갖고, 배우자가 죽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고결하기 때문에, 혹은 사소한 사고로 별로 안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에 걸려 먹이를 거부해 죽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외길로만 가는 고집을 가진 대단한 생명체를 가까이 지켜볼 수 있고,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팔다리에 있는 상처쯤이야 뭐 별거 아니겠나.

 

게다가 웨슬리는 자신이 실수를 할 때는 민망해하기도 했다. 아직 어른이 되기 전, 그러니까 혼자서 나는 연습을 하던 웨슬리가 식탁에 착지를 하려다가 '우르르 탕탕~' 소리가 나며 굴렀을 때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보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두번 웃고 나니까 웨슬리가 스테이시를 쳐다보지도 않고 멍하니 벽만 보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알아채곤 부끄러워하는 것을 깨달았다. 고도의 정신 훈련과 신체 훈련이 병행되어야 할 날기 훈련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웃기만 했던 것이 미안해서 다시는 그 앞에서는 웃지 않았다고 한다. 이윽고 좀 시간이 지난 후 웨슬리가 비행에 성공했을 때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을 으쓱거리며 받아들였다는데, 상상만 해도 너무 귀여웠을 것 같다.

 

이제 비행이 가능할 수 있을 무렵에는 어른이 된 것이기에 독립하는 야생의 본능이 발휘될 때다. 그래서 엄마라고 점찍어둔 스테이시 말고는 어떤 누구의 손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테이시가 세들어 사는 친구, 웬디조차 경계하는 것을 보고 웬디가 속상해하긴 했지만 이것이 바로 올빼미의 길이니 어쩔 수 없다. 스테이시 같은 동물학자들은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기 마련인데, 일단 위험하다고 판단해 공격하겠다고 마음먹은 야생동물들은 인간의 눈을 자주 공격한다고 한다. 특히나 올빼미는 위험신호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No~No~" 하는 동작을 취한다고 하는데, 인간이 보기엔 절대 경고 표시가 아니기에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야생의 본능을 발휘될 때도 웨슬리가 스테이시에게만은 귀여운 행동이나 애교를 부리기도 하는데 그것을 보기 원했던 한 남자동료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복하기로 했다. 40분이 지난 다음에 방으로 올라갔던 스테이시는 횃대에서 날아올라서 눈을 공격하려고 하는 웨슬리를 볼 수 있었다고. 그 시커멓게 덩치가 큰 남자 동료가 식은땀을 흘리며 쫄아있었던 것을 보노라니 올빼미가 대단하긴 대단하다. 올빼미는 인간과는 다르게 청각적인 신호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발소리, 심장울리는 소리까지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불 속에 숨은 사람이 스테이시가 아니란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동물이다.

 

처음 스테이시가 아기 올빼미였던 웨슬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지도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다.

네가 그 동물을 길들이면, 그가 네 생명을 구할 거야.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스테이시가 불치병에 걸려 너무나 큰 고통에 죽고만 싶어했을 때, 자살을 생각했을 때,

웨슬리 때문에, 오로지 웨슬리 때문에 죽지 못했다.

자신이 죽으면 그 충격으로 따라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외길을 가는 웨슬리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나서 19년을 산 웨슬리를 먼저 보내고 나서 이 책을 쓴 뒤에야 조금씩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니까

웨스리가 스테이시를 살린 게 맞다.

그런 감동을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너무 고맙지만,

그 귀엽고 앙증맞은 웨슬리의 다양한 표정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현명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고결한 올빼미 - 웨슬리를 알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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