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길 -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전기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7
데이빗 맥캐스랜드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오스왈드 챔버스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그의 책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선물받고 나서였다. 그 책을 선물해준 때가 아주 시기적절했던 때였는데, 그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으면서 어쩌면 그가 그렇게 놀라운 영적 체험과 깊은 인간적인 절망을 느낄 수 있었는지 내가 경험했던 깊은 나락을 거기서 다시금 느끼는 듯 했다. 그렇게 그 책을 읽으면서 그는 어떻게 이런 것을 깨달았을까 하는 오스왈드 챔버스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과,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사랑했던 하나님, 그보다 앞서 그를 이끄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남긴 55권의 책을 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지만, 이 책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완전히 쓰임 받은 인간 오스왈드 챔버스를 알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되어 준다. 이 책을 보면 그가 어떻게 영적인 깊은 절망을 느꼈는지, 그리고 어떻게 내가 경험한 영적 무지와 두려움과 외식과 절망을 위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후, 15살의 어린 나이에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회심하고 그로부터 13년 동안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기 위해 찬양의 시간과 괴로운 고난의 시간을 겪고 나서야,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삶을 살다가 43살에 하늘나라로 갔다.
 
내 인생에 회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작년 8월에 일어났는데, 그는 15살의 나이에 회심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또 그처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을 받으려면 지금부터 1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가 질리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던 하나님이 실체의 모습으로 보여진 것 같아서, 그러니까 13년이라는 구체적인 기간이 보여져서 조금은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어려운 것일 테니까 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생각해서 이제는 머릿속에 박힌 생각이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이라는 것, 분명히 다른 사람들보다도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내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 안에서 자라면서 보고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영향 때문인데, 만들어진 하나님의 사람도 있지만 분명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교회 안에 존재함을 알아서, 나는 아직 덜 된 사람이고 나 같이 죄악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은 없다고 자책하는 것이었다. 또한 내게는 어릴 때라도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어서 어린 아이의 순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대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도 의아하다. 항상 계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했던 것 같아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서는 조심스러워지고 몸을 사리게 되었다. 열정적이고 순전히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이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분명 하나님 안에서 기쁨으로 노래했던 적도 있고, 내 안에 평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점점 나이가 먹어가면서 내 안에 충족되지 못한 영적 갈급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무지하고 게을러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거나, 혹은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체험이 가능하리란 것을 몰랐기에 영적인 갈급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 또한 몰랐다. 사람들이 고백하는 첫사랑의 기쁨이나 회복에서의 그 ‘첫사랑’이란 단어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교회는 꾸준히 출석하면서도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였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지 못했던, 성령님의 체험에 대해 말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어리석은’자였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런데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확실히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 성품 자체가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 같은 이였다. 그가 15살에 회심하기 전까지는 어떤 아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뒤늦게 회심한 나도 내가 이전에 어떻게 세상을 바라봤는지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는 오죽하랴 싶다. 어쨌든 그는 온유한 심정의 사람으로 회심하기 전부터도 나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다.
 
한동안 나는 내 육신이 죄악의 도구로 쓰여지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나 자신은 왜 이렇게 죄와 친한지 정말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또한 내 품성은 또 어떤지. 다른 사람들은 온유하고 점잖고 차분한 것 같은데, 난 또 왜 그리 덤벙대고 신경질적이며 다혈질적인지, 이런 모든 성품이 내게 덕이 되지 못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자책만 가득했던 삶을 보냈다. 교회 안에서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왜 그리 다들 영적으로 충만해 보이고 거룩해 보이고 온유해 보이는지... 어딜 가나 좌절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의 눈을 지극히도 의식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자녀라며, 교회를 다니는 성도라면 누구나 이런 샹황에서 이런 행동을 해야 하고 저런 상황에서 저런 행동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뇌리에 박혀버린 것이다.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 상황에 처해있을지라도 분노하거나 마음이 상하지 말고 평강의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가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절대로 교만하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것 등 내게는 해야만 하는 것과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들의 목록을 가진 것만 같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런 모든 완전해보이는 품성과 행동들이 인간적인 힘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했던, 반드시 성도라면 가져야 할 성품들은 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내 마음과 삶에 주인으로 맞아들이기만 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성령의 선물일 뿐인데, 그것을 인간의 정욕대로 만들어내려고 했으니 내 안의 좌절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는 정반대의 성품을 가진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도 이런 고민을 하셨다. 나와는 좀 다른 방향의 고민이지만, 근본적인 것은 같다. 회심하고 나서 미술 분야에서의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했던 그에게 목사가 되라는 강한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더눈 대학을 다녔을 때의 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품성과 행동과 설교에 반해 그를 칭송하지만 그는 자신의 끔찍한 이중성과 끊을 수 없는 죄악으로 인해 절망의 심연 속에 잠겨야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그의 끊을 수 없는 죄악된 본성 때문에 고민하고 번민했던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도움, 은총, 섭리, 은혜로 인해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고, 그 스스로는 절대로 경건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과 함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다 내쳐버리는 결단의 시간을 가지셨다. 그로써 그는 온전히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네가 나를 섬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너 없이도 할 수 있다.”(p.86) 이 말씀은 꼭 내게 하신 것 같아서 읽으면서도 뜨끔했던 부분이다. 내가 대학원을 갈까, 간다면 어떤 분야로 갈까에 대해서 한창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한 후배가 나에게 한 마디를 했다. “하나님은 언니가 대학원을 가든 안 가든 관심 없으세요.” 꼭 내가 어떤 분야로 대학원을 가야 하나님께서 나를 쓰실 것처럼, 오만방자하게 생각했던 내 콧대를 완전히 내려누르시는 말씀이었다. 그 당시 나이도 있고 비전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초조함에 나는 그런 고민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맞다, 절대로 내 대학원 입학 여부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핑계로 내 감투를 만들고 싶었던 것 뿐이니까. 그러니 그 고민을 했을 때는 나는 하나님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비전을 생각한다는 핑계를 대고 하나님은 간곳 없고 오로지 나 자신만 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식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 많이 있는데, 하나같이 놀라운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생각하고 넘어졌을 뻔한 일들이 다 기록되어 있다. 외식을 경계하라는 것, 하나님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정말 곰곰히 생각해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챔버스 목사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미술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고, 문학도 관심이 많고 심리학, 윤리학도 좀 아는 박학다식한 그에게 부족한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악성에 대해 샅샅이 고찰했기에 그것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외식적인지, 그 안에는 하나님이 하나도 계시지 않은지를 알기에 그는 자신을 버리고 내어드렸다. 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는 다시는 우리의 심장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을 대신 뛰어주시는 심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신기했던 것은, 같은 목회자들끼리도 친하지 않으시고 목회자들에 대한 냉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이었다. 챔버스 목사가 종종 유럽과 미국의 목회자들에 대해서 냉소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이유는 목회자들이 하나님 없는 기도모임, 예배, 말씀 강의를 해내기 때문이었단다. 지금도 그것을 가장 경계해야 할 때인데, 당시에도 많은 교회에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다니 조금은 씁쓸하다. 한편으로는 친근하기도 했고. 그 당시가 상당히 특별한 때가 아니라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또다른 책 『하나님의 일꾼』을 보면, 영적인 사람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 곁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 했다.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바로 그렇게 영적인 사람이었다. 종교적인 사람이 얼마나 편협하고 알팍한 지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에게 그는 자연스레 그의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에게 호감을 일으킬 수 있었고, 더구나 그의 종교 집회에 참석해서 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되는 도구가 되어주었다. 그랬던 그는 잘 되던 성경대학을 내려놓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바로 군인들이 있는 이집트로 목회하러 간다. 거기서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 없을 것만 같던 군인들과 대거 소통하며 기도 시간을 가지며 성경공부 시간을 만들어 복음을 심어놓는 주의 일을 감당했다. 그.러.다.가. 정말 어이없게도 맹장수술의 합병증으로 43세에 그는 소천한다. 그 때, 아내에게 주셨던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요 11:4) 그럼에도 그는 죽었다. 그러나 그 뒤에 말씀이 더 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그랬기에 그의 아내 비디는 굳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남편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고 그녀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해낼 수 있었다. 바로 오스왈드 챔버스의 모든 강의와 설교를 속기한 것을 책을 편찬해내는 일을 말이다.
 
혹자는 평생을 힘들게 수고만 하고 죽었다고 볼 수 있는, 영광스럽지 않은 죽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내 꿈은 호상이었는데, 고통스럽지 않고 병마와 싸우지 않고 죽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남들이 보기에 나쁘게 복 없게 죽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진정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암으로 고통받고 죽어도 그 중에 하나님과의 긴밀한 소통이 있다면, 암이 하나님을 찾는 구원의 끈이 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밖에 나가서 주를 증거하다가 목이 잘리거나 돌에 맞아 죽어도 말그대로 개죽음을 당해도 그것은 더할 나위없이 귀중한 순교일 것이기에 우리는 인간의 잣대로 평가해선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영광돌려드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찌되어도 상관없으니까. 그것이 더 내게 주신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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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3-2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