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 영적 능력을 더하는 놀라운 은혜의 언약
찰스 스펄전 지음, 서하나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찰스 스펄전의 책은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영국의 대단한 영성가로 이름을 날리는 그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그가 복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복음을 말했는지는 아는 것은 없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는 청아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들리는 것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 책은 그다지 깊은 호소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한 마디로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복음을 이해하는 것도, 체득하는 것도 다 사람마다 때가 있다고 하셨던 목사님의 말씀을 참고로 하면 나는 아직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 말씀처럼 복음은 깊은 절망을 경험해봤을 때에게 겨우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아직 나는 절망을 더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 ‘어떤’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음은 단지 하나 뿐이지만 그것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고 삶으로 드러나기까지가 항상 어렵다. 생각해보면, 왜 이것이 어려울까 궁금하다. 인간의 삶이 복되길 기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래서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지 않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만 살아가길 기대하시며, 이 땅에서 화목과 화평을 누리고, 부족한 것을 흘러 넘치도록 채우시는 기쁨을 누리길 바라신다. 왜 아니 그러시겠는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미 이루어놓으신 그가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기쁜 소식은 이미 우리를 위해 이 땅의 모든 수치와 죄악의 사슬을 끊어놓으셨다는 예수님의 복음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정도까지 거룩해졌으며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그런데 이를 삶으로 살아낸다고 한다면 그 때는 또 문제가 달라진다. 요즘 GBS로 야고보서를 나누고 있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야고보 장로가 복음의 실천적 영역을 많이 강조했던 성경이지만 한때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지푸라기 성경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상당히 오해를 많이 샀던 성경이기도 하다. 믿음이 내 마음에 있고,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드렸다면 그것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란 것쯤은 이전부터 내 마음에 있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죄책감도 많이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의 영역이 그냥 한 마디 해버리는 말 한 마디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야보고 장로는 말한다, 우리가 제대로 된 믿음을 갖는다고 할 때는 연단과 시련을 경험해서 믿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연단과 시련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모든 것이 지나간다면, 이 모든 것에 승리한다면 일터에서 분을 내거나 험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과 부함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도, 말과 행동이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차별이 없기에, 마음에서 나온 말은 행동과 같은 것을 말하기에 우리는 차별하지도 말고, 언행일치도 해야 한다.

 

이 책은 언약을 말한다. 우리가 아무 것도 감당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만 이루어지는 불완전하고 미완의 언약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이 전혀 들어있지 않기에 완전하고 무결한 하나님의 언약을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그 언약의 특권은 대표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언약을 기록해주신다는 것이 있다. 성경에서 이 구절을 보곤 너무나 감사하고 은혜가 되어서 입에 두고 곱씹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패역한 마음을 바꿔 우리의 마음에 언약을 기록해주신다면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언약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 때문에 그렇다.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다. 나는 내 스스로의 정욕과 사욕을 끊을 수가 없는데 오로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언약을 기록해주심으로 해서 나는 정욕을 끊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일이므로 인간은 관여할 수가 없다. 어찌나 감사한지. 이제껏 내 스스로 해야 한다고 얼마나 족쇄를 차고 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 다 하실 테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다시 입혀주실 테니까 말이다. 물론 죄악에 대해서 발버둥칠 일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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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