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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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스타일」의 원작소설은 사실 드라마가 나오기 전부터 이슈를 일으켰던 것으로 안다. 고료로 1억이나 주는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선전이나 그 작가가 어리다는 소식이 아마 그 이슈에 부채질을 더했을 것이다. 참새가 이런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다. 너무 갖고 싶다 설레발을 치다가 아주 맘이 예쁘신 분께 선물로 받게 되었다. 그러나 소설은 손에 잡으면 놓기 싫다는 것, 혹은 손에 잡기까지가 힘들다는 등의 여러 핑계를 등에 업고서 뭉개고 있다가 겨우 이제야 보았다. 원래 계획은 드라마 하기 전에 보려고 했었는데 말이다. 보고 나니까 진작 볼걸~ 하는 후회의 탄식이 흘러나오게 만들 만큼 너무 재미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패션잡지 기자로, 내용이 그 전에 읽었던 외국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좀 비슷하다. 다만, 한국소설이 훨씬, 아주 훨씬 더 재미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리고 전에 읽었던 책이 패션계의 산만하고, 허황되고, 덧없는 꿈만 그린 것 같아 보였다면 이번 소설은 정신없어 보이는 그 이면에 사람들의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 좀 더 좋았다. 작가가 패션지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서 그런지 정신없이 돌아가는 패션계의 현황을 생생하게 묘사해주어 몰랐던 별천지를 낱낱히 까발린 것도 볼 만했다. 기자라면 기사를 쓰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기사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배우 섭외하고 일정 조정하고 스타일리스트의 비위도 맞추어야 하는 등의 어려 잡동사니를 처리하는 잡부의 역할이었다는 것도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아침은 담배, 점심은 커피, 저녁은 폭식하는 세월을 겪어낸 서른 한 살의 이서정 기자를 중심으로 선배 기자, 편집장과의 관계, 선배 스타일리스트와의 묘한 교류, 사내에 물 밀듯 퍼져나가는 유언비어 등등 여러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된다. 그 중 제일 압권인 것은 서정이 우연히 7년 전에 5분만에 차인 맞선남을 다시 만나게 된 것!!! 사람이 아픈 데 또 맞으면 당연히 더 아프지 않겠는가. 실연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았던 그 때 5분만에 도망간 그 맞선남은 서정의 상처에 아예 쐐기를 박았던 거다. 그러니 그 사건이 마지막 물방울이 되어 서정에게 남자란 존재를 냉정하게 경계하게 된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 말갛게 잘 생긴 얼굴을 들이밀면서 카페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그녀의 테이블에 무턱대고 앉다니,,,, 아는 척 안하겠다고 그렇게나 다짐했건만, 얼결에 속내를 다 보여준 서정은 있는 없는 쪽팔림을 당하고... 에휴~ 왜 사니~ 왜 살아? 이런 질문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그런 재수없는 날을 보내고 나니까 하늘이 도우셨는지 쥐구멍에도 볕이 들 날이 있었다. 모델 같은 몸매와 환상적인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김민준 선배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를 남자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깐깐하기로 이를 데 없는 마녀 한지선에게서 벗어난 것만해도 얼마나 행복한 나날인지... 그러다가 그 맞선남 박우진이 「어바웃」이란 환상적인 레스토랑의 요리사이자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가 떨리도록 미운 놈이지만, 기사를 따내겠다고 그의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으니, 오호~ 통재라~~~ 하지만 이서정은 선배 기자에게 깨지고, 스키니 진을 입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남자와의 결정적인 순간에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등의 바보 같지만, 그녀만이 갖는 번뜩이는 재치와 성실함, 인내, 끈기 속에서 드디어 왕자를 쟁취해낸다. 소문으로 가득한 패션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그마한 계략을 지어내고도 소심하게 후회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동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아픈 기억을 끌어안고 산다. 겉모습은 가벼워 보일지라도 속마음까지 가볍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달까. 까탈스럽고 표독스러움의 대명사인 기자 선배도 그렇고, 맞선 자리에서 바람 맞힌 박우진도 그렇고, 여기 우리의 주인공 이서정도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견뎌내고 온 것이었다. 오히려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준 것은 그런 상처다. 박기자가 표독스러운 것도, 박우진이 서정이를 바람 맞힌 것도, 서정이가 우진을 기억 못하는 것도 다~ 살아남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런 상처와 아픔이 소설 전반에 적절하게 녹아들어가 패션계만의 현란하고 가벼움으로 자칫 생동감을 잃어버릴 뻔했던 소설에 진정성을 부여해주었다. 그래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보다도 더 재미있고 현실감 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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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 - 《타임》지 에세이스트가 권하는
로저 로젠블라트 지음, 권진욱 옮김 / 나무생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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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이 드는 것이야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은, 유쾌하게 나이 드는 것은 어떤 노력이 필요해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젊은 시기를 후회없이 보내야 나이 들어서 이런 책도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아직은 젊다는 나도 너무나 공감되는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어서 이제껏 내가 살아왔던 과정을 돌아보며 저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고, 어떤 말에는 신기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와 내 주변 세계가 전혀 달라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책은 이미 유쾌하게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왔기에 상당히 유쾌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만 읽어도 얼마나 유쾌하게 할지, 미쳐돌아가는 세상에서 얼마나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지 볼 수 있었다. 글은 간단하게 떨어지는 여러 경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부연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아니면 단지 그 경구만 적어놓은 것도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것은 저자가 그 항목에 대해서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기에 그의 생각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29번 항목이나 32번 항목이 그러한데, 29번은 「시샘하지 말라, 어느 누구도」이고, 32번 항목은 「모두가 뜯어말리는 일은 하지 말라」이다. 이 말 외에는 아무 설명도 없는 페이지를 보면 저자가 이것만큼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완벽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마 젊은 적에 그런 경험을 해서 된통 당했겠지.

 

그런데 32번처럼 저자가 인생의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에서 쓴 것이라서 진취적이거나 모험적인 면모는 없다. 하지만 충분히 한창 때인 내게도 그의 진취적이지 못한 경구가 진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전해져온다. 단지 진취적으로 어떤 일에 노력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16번인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파고들지 말라」도 그렇다. 내게 약점인 분야를 지금부터 노력한다고 해서 그 분야에서 성공하기란 정말 불가능하다. 저자가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한다고 해서 노래 실력이 더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행동으로 재미를 느끼지 말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분야에서 성공할 것을 꿈꾸지 말라는 이야기니까 적당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여기에 나온 경구들 중에서 가장 압권인 내용이 하나 있다. 이것은 여자라면 누구든지 긍정할 수밖에 없는 아주 유쾌한 내용이다. 저자가 남자이라는 점에서 아주 고무적인 내용인데, 바로 21번이다. 21번은 「남자와 여자가 사이좋게 살아가려면」이란 제목 밑에 두 가지 항목만 나와있고 부연 설명은 없어서 상당히 강렬하게 보인다.

 

                                     가. 그녀가 옳다

                                     나. 그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정말로 (p. 82)

 

여자라면 누구나 옳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는 (나)가 더 재미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니~~ㅋ 어쩜,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 유교적인 사고방식에 아직까지 물들어 있는 남자가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는 이런 농담 하나 들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런 농담은 영미권 책에서 많이 접했고 또 많은 웃었다. 그런데 이런 자기비하적인 말이 체통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진짜 한국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 유머는 유머일 뿐인데 말이다. 5번의 「당신이 잘못한 일은 당신이 먼저 야유를 퍼부어라」처럼 자신의 약점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그런 사고방식이 있어야 좀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아직은 나부터도 안 되는 것이라 조금은 아까울 뿐이다.

 

여기에 나온 경구들은 하나같이 생판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살면서 나도 깨달아졌던 것도 있고, 내가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내용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8번의 「당신을 지겹게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이다. 말로는 '심심하다', '무료하다' 하면서 자주 불평했었는데 그 원인이 바로 내게 있었다는 것, 그 당연한 진실을 정확히 꿰뚫지 못했다. 아~ 이제는 알았으니 뭔가 달라질 수 있겠지? 정말 이제는 좀 더 유쾌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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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내비게이터 - 내 마음대로 떠나는 서양문화사 여행안내서
조너선 바이런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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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밭에서 아주 대단한 책을 편찬했다. 바로 영국 교양인인 조너선 바이런의 책, 『교양 내비게이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교양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터의 역할을 해준다. 몇 천년의 역사를, 문화를, 철학을, 학문 등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기에 교양의 "경전"을 제시한다기보다는 그것의 맛을 보여주는 일종의 샘플로 생각하면 좋을 듯 싶다. 서문에서, "비교적 읽기가 쉽고, 재미가 있으며, 어쩌면 자극적인 느낌까지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고 하니, 읽어보는 것에 주저할 필요가 뭣에 있는가. 간단한 교양을 유희하듯 보여준다고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 책은 내 마음에 쏙 들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내가 돌아다니며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책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이다!!! 솔직히 책의 판형도 일반 사이즈보다 큰데다가 416페이지나 되는 분량의 책을 들고 다니며 읽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종이 재질도 컬러판이여서 코팅된 종이였다면 이것은 진짜로 말도 안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책은 교양의 방대한 내용을 다 집어넣고서도, 교양의 그 옛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고서도 가볍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바이런은 - 사실, 그 유명한 시인 바이런인 줄 알고, 살짜쿵 설레였다 - 교양의 전부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면서 교양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피아차 유로파」라는 가상도시를 설계했다. 이 가상도시는 지역적 -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식 - 으로, 연대순 - 고대, 중세 식 - 으로 나뉘어있기에 헷갈리는 일 없이 교양의 맛을 볼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는 바이런이 교양의 여러 개별적인 사건들을 정리하다 보니까 모두 시간과 지역적인 구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각각의 내용에는 여러 삽화 - 석상 그림, 미술품 그림, 지도 등  - 가 있어서 알아보기도 용이하다. 이렇게 보면 서양문화사에 대한 백과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보면 볼수록 참 잘 만들어진 교양서적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책의 뒷머리에는 읽어두면 좋을 교양 서적을 나열해두고 있으니까 각 분야별로 몇 권씩 골라두고 읽어내리면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교양 책이 되지 않을까. 한 편으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 책이 이제서야 나왔느냔 말이다. 이 책이 내 대학시절에 나왔다면 대학 역사나 철학 등을 배울 때 얼마나 재미있고 좋았을지 상상이 되니, 휴~!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서양사 시간에 실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나로서는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그 때 샀던 서양사 책은 아직까지 가지고는 있지만 너무 방대하고 딱딱해서 쳐다도 보기 싫다.

 

역시 철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에서도 철학 편을 우선적으로 보았다. 저자도 말했듯이, 이 책은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내려가는 것보다 자신의 흥미에 따라 골라보는 것이 더 훌륭한 방법이라고 했으니, 나는 주저없이 철학 편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제목이 「철학」이 아니라 「대학」으로 되어 있다. 과거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모든 학문은 신학의 시녀 역할을 했기 때문일거란 추측이 들었지만 역시 확인할 방도는 없다. 어쨌거나 「대학」편의 제일 첫 장에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짧은 경구로만 이루어져 있고, 그 다음부터 소크라테스부터 프리드리히 니체까지의 철학자들의 사상들이 나열되어 있다. 보기에 정말 편하게 되어 있고, 중간 중간 삽화나 그림으로 내용을 보완해주기 때문에 절대 어렵지 않다. 한 내용이 두세 페이지 정도밖에 안되니 그리 어려울 만한 내용도 없지만. 그런데 각각의 구역으로 나뉜 구분은 처음에 봤을 때는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구역을 다 읽어가면 왜 그렇게 묶어놨는지 나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개별적인 여러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의 목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 책은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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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랜드 - 신경심리학자 폴 브록스의 임상 기록
폴 브록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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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TV, 책을 말한다」라는 방송에서 소개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은 적이 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정신학의 대가로 그의 임상 사례를 객관적으로 정리하여 소개한 책이다. 정말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뇌의 여러 부분 중 미세한 부분이라도 어긋나면 안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인간의 뇌가 얼마나 복잡미묘한지를 말이다. 그 책을 보고 호기심을 느껴 그의 여러 책도 보게 되었는데, 『뮤지코필리아』도 그 중 하나이다. 음악을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과정에 의해 머릿속에 저장되는지, 그리고 가장 신기한 음악 이해 반응까지도 소개되어 있는 무지 두꺼운 책이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눈 앞에서 색깔을 보인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 모든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었다. 나도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색색깔로 알록달록한 영상이 눈에 보인다면 얼마나 신기하고 멋질까. 이런 모든 특이한 사례는 뇌에 이상이 생겼을 때 많이 접할 수 있는 것이란다. 그 놀랍고도 방대한 사례들이라니~ 그 모든 뇌의 비밀을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싶다.

 

이런 올리버 색스와 같은 계통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임상학자의 책 한 권이 나왔다. 그의 이름은 바로 폴 브록스~ 그의 글에는 그의 계통에서 들을 수 있는 찬사가 아닌 다른 찬사들이 뒤따른다.

 

아름다운 산문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대가라 할 만하다.    - 앤드류 마, 《데일리 텔레그래프》

개인적으로 시적으로나 진실을 말한다는 측면에서나 .... 깊은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 존 매크론, 가디언

잘 쓴, 아름다운 책이다. 투명하면서도 압축된 문장은...      - 윌 코후, 《데일리 텔레그래프》

아주 아름답게 집필된 두뇌 관련 서적이다.      - 존 오코넬, 타임 아웃

 

어랏~ 뇌신경학의 임상사례를 제시하면서 '아름다운 산문'이라니, '시적으로'라는 표현이 가능하기나 할까. 더군다나 딱딱한 과학책에 '투명하면서도 압축된 문장'이라고?? 이게 시인가?? 뒷표지에 적혀있었던 많은 추천 문구를 보면서 왜 이런 수식어들이 붙었을까 고심을 했다. 올리버 색스의 책처럼 많은 분량을 자랑하지도 않아 겨우 335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사이즈의 책을 앞에 두고 말이다. 그리고 호기심에 냉큼 책을 낚아채어 읽어댔다. 아아~ 읽어보면 안다. 왜 저런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어쩜 시적이라고 표현(「수술실에서」)할 수도 있을 법도 하고, 오히려 공상과학소설에 가깝다고도 표현(「텔레포테이션과 복제인간」)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이렇게 기이한 "형식"의 이야기가 또 있을까. 올리버 색스의 책을 봤을 때는 뇌신경과 환자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어서 그 "내용"에 경악을 금치못했는데, 이번 폴 브록스의 책에서는 그 "형식"에 경악을 금치못할 듯 싶다.

 

가만히 읽다보면 브록스이 주장하는 뇌 - 마음에 있어서의 근간이 되는 생각을 찬찬히 이해되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놀랍다. 책을 읽으면 몽환적인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우리가 예상할 수?는 무신론자이다. 그리고 유물론자이다. 신경심리학자답게 이제까지 보아온 많은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현재까지 얻어진 결론은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이 머릿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머릿속에 '자아'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이 손상될 경우 인간의 본성이 바뀌는 것이야 누구나 수긍할 만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봐도 '자아'라는 놈은 안 보이는데, 뇌의 어떤 부위가 손상이 될 경우에 사람의 본성이 180° 바뀌어버리는 경우로 볼 때, 결국 인간의 자아는 뇌의 정신 활동의 부산물이란 결론밖에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록스는 인간의 영혼이란 것을 믿지 않는다. 자아라는 것이 바로 영혼에 속할 듯 한데, 그것이 뇌에 몇 번 손상을 가하면 언제든지 바뀌는 것이라면 한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자아'는 없다고밖에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폴 브록스의 어리광을 담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연구를 해도 우리의 상식(인간에게는 고유한 '자아'가 있다는)과는 어긋나는 결과(인간의 '자아'는 뇌 활동의 부산물일 뿐)만 나오니 스스로도 어떻게 확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기에~ 그러나 워낙에 이런 뇌과학 분야는 아직도 확실히 밝혀낸 부분이 얼마 되지 않아 계속적인 혼란과 사례가 쌓여야 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신경심리학자인 브록스의 생각으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 요원한 일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 말은 그만큼 인간의 뇌가 신비롭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단 이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신의 혼란스런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택했던 표현방식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읽고 있노라면 꿈을 꾸는 것 같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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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낳은 뽕나무 - 사치와 애욕의 동아시아적 기원
강판권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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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를 뽕나무 하나로 볼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아주 신기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었던 중국의 역사들, 혹은 새로운 역사들이 모두 뽕나무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니 말이다. 뽕나무를 10년 간 연구한 저자가 이렇게 야심차게 『중국을 낳은 뽕나무』라는 책을 냈다. 얼핏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제목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개가 절로 주억거리게 될 것이다. 특히나 중국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차이나'가 비단을 가리키는 '지나'라는 말에서 왔다면, 그리고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진시황제의 '진'에서 음역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바로 '중국을 낳은 뽕나무'라는 제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대표격인 나라가 로마 제국이었다면, 아시아의 대표격인 나라는 바로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중국의 역사를 뽕나무 하나로 본다는 건 뽕나무의 위상이 그만큼 높다는 것일 테니 자아~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중국의 역사가 하, 은(상), 주에서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로 이어지는 것은 다들 아실 것이다. 그런데 기원전 2070년대 시작된 하나라 때부터 비단을 짰다는 것은 다들 아실런지~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자라는 고고학적인 증거로 겨우 은나라의 존재를 인정받았지만, 그 전대의 하나라는 이렇다할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어 전승되는 최초의 왕조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가 인정되지 않고 있었다. 특히나 《사기》 〈하본기〉 같은 문헌의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하나라 우임금이 도읍한 산서성 해주의 안읍에서 가까운 하현 서음촌에서 중국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채도 문화의 유적과 포주 만영현에서의 앙소 문화의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하나라가 중국 최초의 왕조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게다가 1926년에 발견한 하현 서음촌 유적지에서는 사람이 반으로 갈라 실을 뽑아낸 듯한 누에고치 껍질이 발견되었단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고치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누에고치인지는 논란이 일었다니 50%의 확률이긴 하지만, 하나라의 뒤를 잇는 은나라와 주나라의 시대에 고도로 발달한 잠상 관련 유물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누에고치로 보는 편이 타당할 듯 하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잠상이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우와~ 대단한 나라일세~ 사진으로도 보았지만 은나라 때의 무덤에서는 옥으로 만든 누에가 출토되기도 했고, 갑골문에서도 잠상에 관련된 문자가 많이 나온다. 이렇게나 오랜 세월 이어져내려온 잠상기술이니 중국의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거란 예측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흔히 비단길로 불리는 서역과의 무역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단은 중국의 위상을 높여줄 하나의 도구였다. 로마와의 교류에서도 비단은 으뜸이어서 로마의 의복체계를 바꿀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머나먼 서역까지 중국의 비단이 전해진 것은 바로 중국과 아둥바둥 세력을 겨루었던 흉노족 때문이었다. 중국의 힘이 다소 약해졌을 때는 비단 등의 공물을 바치면서 서로 유대관계를 도모해왔는데, 비단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이 받았던 흉노족이 다른 나라에게 가서 물건으로 맞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나라는 물론이고,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청나라, 명나라까지 교역품의 일순위로 비단이 빠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뽕나무 재배와 잠상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었다. 《맹자》 〈양혜왕〉에도 "5무의 집 가장자리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 먹은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다"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을 만큼 잠상업은 농가의 수입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니 나라에서도 적극적으로 잠상을 장려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나. 잠상업을 잘 일으키기 위해서는 잠상 관리사를 배출하기도 하고, 농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여기 나온 농서는 나라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관리로서 몇몇 개인이 스스로 편찬한 것이 대부분인데, 인류 최초의 농서인 《범승지서》는 지금부터 대략 2000년 전의 농서이다. 우와~ 범승지가 편찬한 《범승지서》는 아쉽게도 현재 남아있지는 않고 북위 사람 가사협이 쓴 《제민요술》에 일부 인용된 것만 남아있는데, 이 책에 제시되어 있는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높이는 방법 중 구전법은 청대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2000년 전에 그런 지혜가 있다니~ 그리고 인류 최초의 종합 농서인 《제민요술》는 화북지역 농업 기술의 전모를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선조들의 여러 노력들이 모여서 찬란한 중국 문화를 만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왠지 좀 부러웠다.

 

대외적으로도 비단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중국 내에서도 화폐로 사용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았던 물품이었다. 그러니 비단을 많이 생각하는 지역의 화려함이란 거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을 것이다. 운하의 종착지인 항주는 다섯 겹을 껴입어도 사마귀가 보인다는 고급 비단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온 거리마다 비단을 휘장으로 두른 집집에 등이 켜졌다는데, 서양에서 온 마르코폴로에겐 얼마나 별천지로 보였을지 상상도 안 간다. 그런 위상과 부를 안겨준 뽕나무가 이제는 약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니 정말 쓸모도 많은 나무다. 이렇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보고 나니까 중국이 중화주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뛰어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바로 뽕나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나마 든다. 이제 우리나라도 그런 뽕나무 연구 전쟁에 매진한다고 한다. 대단한 연구 결과가 쌓여있는 중국을 따라가기에 바쁘겠지만 우리의 근성도 알아주지 않는가.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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