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랜드 - 신경심리학자 폴 브록스의 임상 기록
폴 브록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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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TV, 책을 말한다」라는 방송에서 소개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은 적이 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정신학의 대가로 그의 임상 사례를 객관적으로 정리하여 소개한 책이다. 정말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뇌의 여러 부분 중 미세한 부분이라도 어긋나면 안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인간의 뇌가 얼마나 복잡미묘한지를 말이다. 그 책을 보고 호기심을 느껴 그의 여러 책도 보게 되었는데, 『뮤지코필리아』도 그 중 하나이다. 음악을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과정에 의해 머릿속에 저장되는지, 그리고 가장 신기한 음악 이해 반응까지도 소개되어 있는 무지 두꺼운 책이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눈 앞에서 색깔을 보인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 모든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었다. 나도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색색깔로 알록달록한 영상이 눈에 보인다면 얼마나 신기하고 멋질까. 이런 모든 특이한 사례는 뇌에 이상이 생겼을 때 많이 접할 수 있는 것이란다. 그 놀랍고도 방대한 사례들이라니~ 그 모든 뇌의 비밀을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싶다.

 

이런 올리버 색스와 같은 계통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임상학자의 책 한 권이 나왔다. 그의 이름은 바로 폴 브록스~ 그의 글에는 그의 계통에서 들을 수 있는 찬사가 아닌 다른 찬사들이 뒤따른다.

 

아름다운 산문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대가라 할 만하다.    - 앤드류 마, 《데일리 텔레그래프》

개인적으로 시적으로나 진실을 말한다는 측면에서나 .... 깊은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 존 매크론, 가디언

잘 쓴, 아름다운 책이다. 투명하면서도 압축된 문장은...      - 윌 코후, 《데일리 텔레그래프》

아주 아름답게 집필된 두뇌 관련 서적이다.      - 존 오코넬, 타임 아웃

 

어랏~ 뇌신경학의 임상사례를 제시하면서 '아름다운 산문'이라니, '시적으로'라는 표현이 가능하기나 할까. 더군다나 딱딱한 과학책에 '투명하면서도 압축된 문장'이라고?? 이게 시인가?? 뒷표지에 적혀있었던 많은 추천 문구를 보면서 왜 이런 수식어들이 붙었을까 고심을 했다. 올리버 색스의 책처럼 많은 분량을 자랑하지도 않아 겨우 335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사이즈의 책을 앞에 두고 말이다. 그리고 호기심에 냉큼 책을 낚아채어 읽어댔다. 아아~ 읽어보면 안다. 왜 저런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어쩜 시적이라고 표현(「수술실에서」)할 수도 있을 법도 하고, 오히려 공상과학소설에 가깝다고도 표현(「텔레포테이션과 복제인간」)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이렇게 기이한 "형식"의 이야기가 또 있을까. 올리버 색스의 책을 봤을 때는 뇌신경과 환자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어서 그 "내용"에 경악을 금치못했는데, 이번 폴 브록스의 책에서는 그 "형식"에 경악을 금치못할 듯 싶다.

 

가만히 읽다보면 브록스이 주장하는 뇌 - 마음에 있어서의 근간이 되는 생각을 찬찬히 이해되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놀랍다. 책을 읽으면 몽환적인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우리가 예상할 수?는 무신론자이다. 그리고 유물론자이다. 신경심리학자답게 이제까지 보아온 많은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현재까지 얻어진 결론은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이 머릿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머릿속에 '자아'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이 손상될 경우 인간의 본성이 바뀌는 것이야 누구나 수긍할 만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봐도 '자아'라는 놈은 안 보이는데, 뇌의 어떤 부위가 손상이 될 경우에 사람의 본성이 180° 바뀌어버리는 경우로 볼 때, 결국 인간의 자아는 뇌의 정신 활동의 부산물이란 결론밖에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록스는 인간의 영혼이란 것을 믿지 않는다. 자아라는 것이 바로 영혼에 속할 듯 한데, 그것이 뇌에 몇 번 손상을 가하면 언제든지 바뀌는 것이라면 한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자아'는 없다고밖에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폴 브록스의 어리광을 담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연구를 해도 우리의 상식(인간에게는 고유한 '자아'가 있다는)과는 어긋나는 결과(인간의 '자아'는 뇌 활동의 부산물일 뿐)만 나오니 스스로도 어떻게 확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기에~ 그러나 워낙에 이런 뇌과학 분야는 아직도 확실히 밝혀낸 부분이 얼마 되지 않아 계속적인 혼란과 사례가 쌓여야 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신경심리학자인 브록스의 생각으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 요원한 일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 말은 그만큼 인간의 뇌가 신비롭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단 이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신의 혼란스런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택했던 표현방식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읽고 있노라면 꿈을 꾸는 것 같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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