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스타일」의 원작소설은 사실 드라마가 나오기 전부터 이슈를 일으켰던 것으로 안다. 고료로 1억이나 주는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선전이나 그 작가가 어리다는 소식이 아마 그 이슈에 부채질을 더했을 것이다. 참새가 이런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다. 너무 갖고 싶다 설레발을 치다가 아주 맘이 예쁘신 분께 선물로 받게 되었다. 그러나 소설은 손에 잡으면 놓기 싫다는 것, 혹은 손에 잡기까지가 힘들다는 등의 여러 핑계를 등에 업고서 뭉개고 있다가 겨우 이제야 보았다. 원래 계획은 드라마 하기 전에 보려고 했었는데 말이다. 보고 나니까 진작 볼걸~ 하는 후회의 탄식이 흘러나오게 만들 만큼 너무 재미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패션잡지 기자로, 내용이 그 전에 읽었던 외국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좀 비슷하다. 다만, 한국소설이 훨씬, 아주 훨씬 더 재미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리고 전에 읽었던 책이 패션계의 산만하고, 허황되고, 덧없는 꿈만 그린 것 같아 보였다면 이번 소설은 정신없어 보이는 그 이면에 사람들의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 좀 더 좋았다. 작가가 패션지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서 그런지 정신없이 돌아가는 패션계의 현황을 생생하게 묘사해주어 몰랐던 별천지를 낱낱히 까발린 것도 볼 만했다. 기자라면 기사를 쓰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기사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배우 섭외하고 일정 조정하고 스타일리스트의 비위도 맞추어야 하는 등의 어려 잡동사니를 처리하는 잡부의 역할이었다는 것도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아침은 담배, 점심은 커피, 저녁은 폭식하는 세월을 겪어낸 서른 한 살의 이서정 기자를 중심으로 선배 기자, 편집장과의 관계, 선배 스타일리스트와의 묘한 교류, 사내에 물 밀듯 퍼져나가는 유언비어 등등 여러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된다. 그 중 제일 압권인 것은 서정이 우연히 7년 전에 5분만에 차인 맞선남을 다시 만나게 된 것!!! 사람이 아픈 데 또 맞으면 당연히 더 아프지 않겠는가. 실연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았던 그 때 5분만에 도망간 그 맞선남은 서정의 상처에 아예 쐐기를 박았던 거다. 그러니 그 사건이 마지막 물방울이 되어 서정에게 남자란 존재를 냉정하게 경계하게 된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 말갛게 잘 생긴 얼굴을 들이밀면서 카페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그녀의 테이블에 무턱대고 앉다니,,,, 아는 척 안하겠다고 그렇게나 다짐했건만, 얼결에 속내를 다 보여준 서정은 있는 없는 쪽팔림을 당하고... 에휴~ 왜 사니~ 왜 살아? 이런 질문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그런 재수없는 날을 보내고 나니까 하늘이 도우셨는지 쥐구멍에도 볕이 들 날이 있었다. 모델 같은 몸매와 환상적인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김민준 선배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를 남자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깐깐하기로 이를 데 없는 마녀 한지선에게서 벗어난 것만해도 얼마나 행복한 나날인지... 그러다가 그 맞선남 박우진이 「어바웃」이란 환상적인 레스토랑의 요리사이자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가 떨리도록 미운 놈이지만, 기사를 따내겠다고 그의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으니, 오호~ 통재라~~~ 하지만 이서정은 선배 기자에게 깨지고, 스키니 진을 입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남자와의 결정적인 순간에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등의 바보 같지만, 그녀만이 갖는 번뜩이는 재치와 성실함, 인내, 끈기 속에서 드디어 왕자를 쟁취해낸다. 소문으로 가득한 패션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그마한 계략을 지어내고도 소심하게 후회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동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아픈 기억을 끌어안고 산다. 겉모습은 가벼워 보일지라도 속마음까지 가볍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달까. 까탈스럽고 표독스러움의 대명사인 기자 선배도 그렇고, 맞선 자리에서 바람 맞힌 박우진도 그렇고, 여기 우리의 주인공 이서정도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견뎌내고 온 것이었다. 오히려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준 것은 그런 상처다. 박기자가 표독스러운 것도, 박우진이 서정이를 바람 맞힌 것도, 서정이가 우진을 기억 못하는 것도 다~ 살아남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런 상처와 아픔이 소설 전반에 적절하게 녹아들어가 패션계만의 현란하고 가벼움으로 자칫 생동감을 잃어버릴 뻔했던 소설에 진정성을 부여해주었다. 그래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보다도 더 재미있고 현실감 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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