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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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김진명 작가의 소설 한 권쯤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여 읽어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소설 이름 하나 외고 있지 않은 이는 없을 만큼 그는 대한민국에서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는 그가 누군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학창시절에 집에 놓여져 있었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본 순간, 그 속도감 넘치고 강대국들의 자국 이익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우리 나라의 실상을 본 순간, 이것을 글로 엮여낸 그의 놀라운 실력이 뇌리에 각인되었을 뿐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그의 소설을 읽고서 가슴이 불끈거리거나 눈물이 핑 돌거나 2002 한일월드컵 때 목청껏 불렀던 "대한민국"란 구호보다도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라고 더 크게 외치고 싶어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런 작가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알고 있었으나 먹고 살기에 바빠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밀쳐두었던 문제를 끄집어내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주는 묘한 재주가 있는 그런 작가다. 450만 부나 팔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혹자는 김진명 작가에 대해서 '수백만의 독자를 가지고 있지만 단 한 명의 평론가도 갖고 있지 못한 작가'로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내 소견으로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설 중에서 문학적인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해도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며 대한민국의 자긍심에 대해서 늘어놓는 작가가 한 명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 많은 지성인들 중에서 우리 자신을 편협한 시야로 보거나 한국인의 무능만을 탓하지 않고 우리가 위대한 문명국의 후예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중소설가가 나서서 대중이 어려워하지 않은 문체와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찬양한다고 해서 무에 그리 해가 되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소설은 참 반갑다. 후대에서 잊혀지고 후손들의 손으로 부정되어 온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천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역사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소설이지만 흥미만을 쫓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김진명 작가가 얼마나 우리의 고대사에 대해 매달렸었는지, 얼마나 우리 민족을 아끼고 있는지, 얼마나 우리 민족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크나큰 진실을 담고 있어서 말 그래로 '위험한 책'이지만,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자랑스런 고대사를 알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백하기엔 너무나 부끄럽지만 난 한국사보다는 세계사가, 그 중 서양사가 가장 좋았다.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서도 고대사 부분에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신비로운 공백기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때의 일이지만, 처음은 어떻게 시작했던 간에 결국은 한일의정서로 연결되어 일본의 수탈을 당하게 되고 열강들의 세력 다툼에 희생되어 반으로 갈린 나라의 후손이라는 것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자랑스런 천년의 문명국을 이어갔던 우리의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나랑은 관계가 없는 머나먼 나라의 역사를 구경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것은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방관자로 있는 것에는 어떤 이득도 없지만, 절대 손해도 없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나왔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가 정한 '대한제국',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 들어가있는 '한(韓)'이 어디에서 유래되어 왔는지 알아낸 순간, 우리는 우리의 고대사 연구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다 뭐다 할 때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고구려를 빼앗길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고조선보다도 더 이전에 있었던 동국(東國), 즉 한(韓)나라를 되찾아야 할 때니까!! 중국의 상나라가 은허라는 유적지에서 갑골문자를 발견함으로써 그 나라의 실체를 인정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고조선보다도 천년 전에 융성했던 한(韓)나라의 흔적을 찾아낼 것이다. 아니다, 이미 찾아냈다. 우리가 무시하고 버려두었던 <단군세기>에도, 역사서는 아니지만 공자가 즐겨읽었던 <시경>에도, 그리고 중국 후한 때의 위대한 학자의 문서에서도 그 증거는 이미 있다. 고대사는 비교사학으로는 도저히 증명될 수 없음에도 일본사학자들의 세뇌교육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는 우리사학자들이 이제는 그것을 떨칠 때가 되었다. 이제 자주적인 정신으로 우리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하지 않을까. 마한, 진한, 변한이라고 하는 한반도 남부에 있는 조그만 나라를 본받자고 고종이 '대한제국'이라고 이름을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그 이전에 이미 거대한 나라가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당시에 다섯 개의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었던 문명국이 있었다는 것도 문헌에 나타난다면 이젠 무턱대고 덮어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문헌의 가치를 인정하고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 "잃어버린 천년"의 역사가 새로이 실린다면 그것부터가 시작일 게다. 그때가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나는 오성五星의 집결을 관측한 기록을 보고 동국東國이 이미 큰 나라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천 년 후 이들의 자손이 주周를 찾았으니 그 내력이 중화中華에 못지않으리라.

놀라운 일이로다! 놀라운 일이로다!  - p. 94

 

한중漢中에 든 후 일부 유학자들은 특히 동이東夷를 동국東國이라 부르기도 했다. -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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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블로거 29인의 내 삶의 쉼표 - 제3회 YES24 블로그 축제 수상작 모음집
YES24 블로거 29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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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블로거축제를 하면서 대상을 비롯해 여러 분야의 우수상을 타신 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같은 블로거로서 관심이 안 간다면 솔직히 거짓말이겠다. 글이란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게 되는 것이니까.

나도 그렇고, 그 분들도 그럴 테지. 그래서 열심히 읽었다. 그 글을 쓴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내 인생의 책」,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음악」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풀어내는 글을 보는 것은 다른 사람이 살아온 한 귀퉁이를 몰래 훔쳐본 느낌까지 들면서 나를 중독시켰다. 그들의 아련한 사랑이야기에 가슴 설레하기도 하고, 유쾌하게 뿜어내는 에너지에 같이 하하하 웃기도 하면서 마치 그들을 진짜로 아는 것처럼 그들을 응원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들과 친구가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까지도 경험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각각의 분야를 소설가 김연수 씨, 영화잡지 기자 김혜리 씨, 가수 김윤아 씨가 심사를 하고 마지막에 심사평까지 실어준 것을 보고 이제 블로거가 하나의 의사소통하는 수단이 되었음을 새삼 실감하기도 했다. 블로거가 아니라면 무명의 아무개 씨가 한 말을 이렇게 책으로까지 엮어낼 수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독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이름 있는 작가나 영화인이나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글에는 진정성이 살아숨쉬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 앞서 자신의 내밀한 고백을 담은 글이기에 대중적으로 읽히는 소설이나 보여지는 영화나 들려지는 음악보다도 오히려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필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은 책이나 영화, 혹은 음악을 조심스레 추억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어떤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가 경험한 것, 그가 본 것, 들은 것, 더 나아가 그것들로 인해 생각한 것들이 아닌가 하는데 그들의 귀중한 경험을 이렇게 손쉽게 뽑아내어 볼 수 있기에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휘리릭 넘기면서 한,두 시간에 걸쳐 다 읽는 것을 그들은 일생에 걸쳐 느낀 것을 정리한 것이니~. 어쨌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책이나 영화, 음악의 향연에 내심 씨익 웃음이 났다.

 

책이라면 나도 조금씩 보고는 있는데, 이렇게까지 인생을 뒤흔든 경험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내심 부끄러지고 안타깝다. 물론 여기 나온 책 중 신경숙 님의 외딴 방이외에 본 것은 하나도 없음은 물론이다. 어린 시절에, 인생을 뒤흔들 격동기에 봤어야 할 책을 이렇게 인생의 늦깎이 때 보니 그러할 텐데 어쩔 수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게다가 영화로는 몽상가 님의 <엑스맨>과 사유리와히로키 님의 <시네마 천국> 빼고는 본 영화가 없다는 것도 충격이다. 내가 이렇게나 뒤처져 있었었나. 마지막으로 음악은 기대도 안 했다. 워낙에 음악에 조예가 없던 터라 뭐, 마음을 비우고 봤으니... 그래서 좋다고 손꼽은 글도 많다.

 

꼭 들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음악은 초오록별 님이 추천해주신 「일 디보」의 Ancora이다. 사인조 팝페라 그룹이라는 그들은 이미 실력은 검증받았고, 빼어난 외모와 고풍스럽고 편안한 음악으로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단다. 국적은 다들 다르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언어인 스페인어로 대부분의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초오록별 님은 나중에는 스페인어까지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삶이 얼마나 윤택해졌는지, 엄마의 공부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을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다른 님들께서 추천해주신 음악이나 영화나 책은 보면 또 좋겠지만, 나와는 격이 다른 감성과 경험을 가지고 계신 터라 쉽사리 접근이 불가했는데 초오록별 님이 추천해주신 것은 편안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 외에도 자신의 사랑이야기에 접목시켜주신 몽상가 님의 <엑스맨> 이야기와 유쾌하고도 신기한 사고방식으로 읽는 내내 나를 웃겨준 달새 님의 「데프콘」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우리의 무지한 의식을 반성하게 해준 안또니우스 님의 「밥 딜런」이야기는 정말 가슴을 찌른다. 음악이, 영화가 이렇게나 사람을 울고 웃게 할 수 있는 것이로나 새삼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새삼 바라게 된다. 그들의 블로그를 방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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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한 줄
린다 피콘 지음, 유미성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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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매일 긍정적인 말을 듣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마도 그렇지 못할 때보다는 더  ......  혹은 덜 ......  하지 않을까?

더 기분이 좋거나 혹은 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살면서 좋은 말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왜 나쁜 말, 상처주는 말, 부정적인 말을 하냐는 경구를 어디선가 읽었다.

가만 생각하면 그럼 그렇지~ 당연해~ 하며 동의하게 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어디 그리 단순하기만 한가.

순간적인 흥분을 못 참고, 상대방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다는 파괴적인 욕구에 굴복해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오늘 또 하나, 후회할 일을 만들었다.

평소에 명랑 발랄을 넘어서 거의 엽기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철판 선생인 내가,

아이들의 순간적인 실수에 이해하지 못하고 그만 실언을 내뱉어버린 것~.

지나고 나서 이렇게도 후회를 할 것을 그 당시엔 왜 그랬을까.

예쁘고 좋은 말, 격려 하는 말만 해줘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모진 말을 내뱉었을까.

모르고 어려서 그런 것인데,,, 참을성이 그렇게나 없었을까. 왜?

 

상대방이 어리기 때문에, 만만해 보이기 때문에 무심코 하는 실수는 생각해보면 무지 많다.

아이들도 생각을 하고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 상황에서는 그냥 넘어가지만 마음 속에는 상처로 남아있을 거란 건 불 보듯 뻔하다.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내가 실언을 했다는 건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니가 덜된 인간이란 걸 이럴 때 꼭 티내는구나~. 왠만하면 그만 티내지...?

 

살다보면 열심히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도 매너리즘에 빠져 틀에 박힌 듯이 해버리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당연히 좋은 말, 행복한 말, 예쁜 말을 써야 함을 알면서도 지루해진 일상 때문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는 거다.

그래서 작은 깨달음이나 작고 좋은 것에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겠지...

아마 이 책의 저자인 린다 피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상의 현실을 끊어내기 위해서 의식적으로라도 나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아마 그랬을 거다. 그래서 새로운 말을 365일 나열해놓고 매일 같이 보도록 해두었겠지...

또 그게 싫으면 아무 곳이나 펼쳐서 그날 하루 읽을 긍정적인 말을 새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게다.

그저 이 모든 것은 사는 게 그저 그렇고, 내가 미치도록 미운 날에도

나에게 살만한 이유를 불어넣어주기 위해선~.

 

내게 생생한 아름다움을 주었던 말은 10월 7일자의 말씀이다. 바로 생텍쥐페리의 글귀...

 


 "한 사람이라도 돌무더기를 보면서 머릿속에 대성당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더 이상 그것은 돌무더기가 아니다."


 

내 자신에 대해 회의가 들던 어느 날, 이리저리 넘겨다보다가 발견한 글귀다...

어찌나 고맙던지... 나 자신조차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형편없이 널브러진 돌무더기조차도 대성당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다니...

그 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 하지만 그 글귀를 읽기 전과 후의 차이는 꽤 클 게다.

아직은 뭐라고 똑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내 가치를 잊지 않을테니까.

난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라 대성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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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버드의 어리석음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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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참으로 독특한 책이다. 우선 저자인 폴 콜린스부터가 독특한 사람인데, 스스로를 '잊힌 것들에 대한 따뜻한 기록자'라고 부르는 그는 날마다 도서관에 출몰해 희귀본 서가를 들락거리는 책벌레이자 골동품 수집가, 그리고 작가이자 교수이다. 대학원생 시절에 교수님이 시킨 19세기 잡지 전권의 목록을 복사하는 일을 하다가 맞닥뜨리게 된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묻힌 역사에 대한 그의 관심이 촉발되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고 오랜 시간 다락방에 묻어두었을 만한 이야기를 케케묵고 고루한 옛것이 아닌, 생생하고 재미나며 친근한 이야기로 만들어냈는데, 이 책이 바로 그의 첫 책이다. 이 책은 잊힌 이야기들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을 객관적 사실과 개인적 경험을 뒤섞는 독특한 일인칭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그래서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객관적인 근거를 조목조목 들어 제시하는 단조로움이 마구 뒤섞인 묘한 글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이 책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글은 워낙에 감정이 들어가있지 않게 정리되어 있지만 이 역사적인 사건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스한 눈길이 느껴지는 터라, 저절로 푹 빠지게 되어 버렸으니깐 말이다.

 

이 책에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 열세 사람이 등장한다. 분야도 다양해서 문학가에서부터 화학자, 육종학자, 음악가, 천문학자, 사업가, 화가, 시인, 배우, 치료사, 작가까지 등장한다. 단순히 명성을 얻기 위해 열광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했다기보다는 그저 그것만이 자신이 살 길이기 때문에, 아니면 그것에 미쳐있어서, 그것도 아니면 그것이 진리임을 아무런 의심없이 믿었기 때문에 순진하게 시도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여기에 나온 사람들 중 이미 대단한 명성을 지닌 사람은 단 한 사람 - N선이란 방사선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르네 블롱들로 - 뿐인데, 그 외에는 이름도 없고, 존재도 몰랐던 사람들 뿐이다. 그래서 정말 독특하고 흥미롭다. 이미 가지고 있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거짓으로 만들어 유포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순진하게도 주장한 것이 마침 시대를 잘 만나 유행을 일으키고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나중에는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능력이 있었으나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미처 잘 몰라서 자신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꼴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콩코드 포도의 주인공, 이프레임 볼이다. 평생을 다바쳐 미국 땅에 맞는 포도를 품종개량으로 성공했으나 그것을 포도 가지째 팔아버려서 나중에는 알거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생명체에는 특허 출원이 안되는데, 만약 특허 출원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미 가지째나 씨째 팔아버리면 다른 사람도 쉽게 그 종자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돈벌이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가 만약 포도째 팔지 말고 포도의 향미와 맛을 가공해서 팔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여기에 웰치란 사람이 등장한다. 한 직업에 정착하지 못한 그는 목사였다가 의사가 되기도 했었는데 술을 먹지 않는 그가 보기에 성찬식용 와인을 마시고 헤롱거리는 성직자 때문에 포도주스를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웰치 주스이다. 그래서 웰치가 부자가 되는 동안 평생을 바쳐 연구한 이프레임 볼은 안타깝게도 새로움 품종을 또 만들려다가 사다리에 떨어져서 요양하다가 죽었다. 이렇게나 안타까운 일이!! 그는 정말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사람인데 말이다.

 

그 외에도 많은 독특한 사람이 있는데, 너새니얼 호손조차 안타까워했었던 여류 작가도 있다. 바로 딜리아 베이컨인데, 어릴 적부터 학문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그녀는 커서는 역사, 문학, 과학을 가르치면서 보냈다. 그녀의 수업은 진보적으로 각 학문의 분야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면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뛰어난 지적 능력과 감수성과 작가로서의 성공할 수 있는 재능도 있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는 허구적인 인물이고 월터 롤리, 애드먼드 스펜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합작으로 작품을 만든 것이란 생각이었다. 지금도 심심치않게 나오는 그 이야기는 바로 그녀에게서부터 시작된 것!!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던 그녀가 외적 증거를 찾아내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면 좋았을 것을, 끝까지 내적 증거를 사용해서 증명한답시고 6백 쪽이 넘는 『셰익스피어 희곡 철학 해설』을 썼으나 앞뒤가 모순된 내용이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책을 쓰면서 현실과 과거를 오락가락 하는 그녀의 정신은 붕괴되어 버린 것. 사실 그녀와 서신을 교환했던 호손은 그녀의 창의력과 빛나는 지성에 찬사를 보내고 그녀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끝까지 지지해주었는데, 완전히 망가져버린 그녀를 보고 얼마나 안타까워했었는지... 정말 셰익스피어가 허구란 생각에 그렇게 매몰되지 않았다면 인류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었던 지성인이었는데, 인류 전체를 위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인간의 헛된 욕망도 자제해야 할 것 같고,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좋으나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증거를 들어 증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프레임 볼 같은 경우에는 정신은 멀쩡했으나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해 피폐해진 경우이지만 딜리아 베이컨의 경우에는 학문의 열정에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준 꼴이었기에 인간의 열정은 무서운 것이 아닐까 싶다. 미치지 않고서야 학문의 업적을 달성할 순 없겠지만, 항상 다른 것과의 항상성을 유지해서 자신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할 성 싶다. 마지막으로 이 열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니까 인류가 이만큼 성장한 것이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었음을,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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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라이프
윌리 블로틴 지음, 신선해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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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라이프는 말 그대로 갈곳없어 모텔을 전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그런 아무짝에도 쓸데없고 한 줄기 희망이라도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을 말한다. 그런 단어를 떡하니 제목으로 올려놓은 작가의 저의부터가 심상치 않다. 윌리 블로틴은 작가이기 전에 먼저 작사가이자 가수이다. 평단과 음악팬의 호평을 받는다는 - 그럼에도 전혀 들어본 적은 없는 - 「리치몬드 폰테인」의 리더로 보컬과 작사를 맡고 있단다. 꽤 맣은 음반을 냈고 안정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션인데, 이 소설로 데뷔를 했다. 게다가 '네바다 실버 팬 어워드', '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되면서 "최고의 데뷔 소설"이란 평을 들었다. 호평을 받는 뮤지션인데다가 소설가로도 좋은 평을 받다니 겹경사가 터졌다. 그렇게 좋은 일이 한가득이건만, 그의 소설 속 내용은 영 행복하지가 않다. 완전히 대놓고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제목을 붙어놓았던 것도 그렇고, 소설의 결말도 그렇고, 왜 이 소설에 "최고의 데뷔 소설"이란 평을 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을 따름이다.
 
이야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주인공 '나(프랭크)'와 그림이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고 하고자 하는 그의 형 '제리 리'는 모텔에 인생을 꾸리며 사는 별 볼일 없는 족속들이다. 어렸을 적 도박에 미친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강인하게 두 아들을 키웠지만 병으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그렇게 망가진 삶을 겨우 이끌어갔던 두 형제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희망 없는 삶이기에 술과 담배 없이는 이어가지도 못해서 시도때도 없이 술에 찌들어사는 것을 보면 정말 이해가 안 갔다. 저 상태에서 술만 어찌어찌 해서 안 먹고 야간기술대라도 어찌어찌 해서 미래를 기약하면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그게 안 보일까? 바닥까지 내려간 삶을 살면서도 남을 등쳐먹으려고 하지도 않고, 마약엔 손도 안 대는 것을 보면 아주 질이 나쁜 인간들은 아닌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있었던 것을 보면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형 제리 리가 술을 먹고 동네로 오다가 아이를 치어버렸던 것!! 애인의 집에서 쫓겨나다가 술 먹은 상태에서 차를 타고 온 것이 문제였다. 술을 먹은 상태니 그의 기억은 전혀 믿을 수가 없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면 별로 속도를 내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갑자기 뛰어나왔단다. 차에 내려서 보니 이미 숨지고 깨진 머릿속에 든 무언가 삐져나온 상태였다니... 없는 정신에 프랭크의 모텔로 와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프랭크는 이미 술로 빈사상태가 되어 버린 상황이라 올바른 판단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이런, 정말 되는 것이 없군!! 차분하게 생각하고 나서 경찰서에만 갔다면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불상사는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소설의 교훈점이라면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 - 고교 중퇴에, 엄마가 물려주신 유산도 병원비로 다 날리고, 집도 넘어가고, 미래에 계획한 일은 하나도 없고 - 에서도 더 나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랄까. 지금의 나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전에는 이렇게나 나빠질 수도 없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보다 더 나빠지고 보니 예전이 그래도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사실 소설답게 혹은 우리네 인생과는 다르게 조금은 희망차고 밝은 결말을 기대했다. 하지막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절망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들뜬 기분이 들고, 마냥 희망적이라고 하기에는 떨떠름한 그런 결말이라니~. 아마 진정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현실에서의 삶에선 그렇게 180°달라진 인생역전을 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뜨뜬미지근한 결말이 우리네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하곤 생각해본다. 그래서 이 소설이 "최고의 데뷔 소설"이 될 수 있었던 걸게다. 결말이 2% 아쉽긴 하지만, 주인공 '프랭크'에겐 아직 살 날과 아직 오지 않은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며 생각을 접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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