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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김진명 작가의 소설 한 권쯤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여 읽어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소설 이름 하나 외고 있지 않은 이는 없을 만큼 그는 대한민국에서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는 그가 누군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학창시절에 집에 놓여져 있었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본 순간, 그 속도감 넘치고 강대국들의 자국 이익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우리 나라의 실상을 본 순간, 이것을 글로 엮여낸 그의 놀라운 실력이 뇌리에 각인되었을 뿐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그의 소설을 읽고서 가슴이 불끈거리거나 눈물이 핑 돌거나 2002 한일월드컵 때 목청껏 불렀던 "대한민국"란 구호보다도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라고 더 크게 외치고 싶어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런 작가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알고 있었으나 먹고 살기에 바빠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밀쳐두었던 문제를 끄집어내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주는 묘한 재주가 있는 그런 작가다. 450만 부나 팔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혹자는 김진명 작가에 대해서 '수백만의 독자를 가지고 있지만 단 한 명의 평론가도 갖고 있지 못한 작가'로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내 소견으로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설 중에서 문학적인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해도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며 대한민국의 자긍심에 대해서 늘어놓는 작가가 한 명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 많은 지성인들 중에서 우리 자신을 편협한 시야로 보거나 한국인의 무능만을 탓하지 않고 우리가 위대한 문명국의 후예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중소설가가 나서서 대중이 어려워하지 않은 문체와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찬양한다고 해서 무에 그리 해가 되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소설은 참 반갑다. 후대에서 잊혀지고 후손들의 손으로 부정되어 온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천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역사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소설이지만 흥미만을 쫓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김진명 작가가 얼마나 우리의 고대사에 대해 매달렸었는지, 얼마나 우리 민족을 아끼고 있는지, 얼마나 우리 민족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크나큰 진실을 담고 있어서 말 그래로 '위험한 책'이지만,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자랑스런 고대사를 알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백하기엔 너무나 부끄럽지만 난 한국사보다는 세계사가, 그 중 서양사가 가장 좋았다.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서도 고대사 부분에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신비로운 공백기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때의 일이지만, 처음은 어떻게 시작했던 간에 결국은 한일의정서로 연결되어 일본의 수탈을 당하게 되고 열강들의 세력 다툼에 희생되어 반으로 갈린 나라의 후손이라는 것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자랑스런 천년의 문명국을 이어갔던 우리의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나랑은 관계가 없는 머나먼 나라의 역사를 구경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것은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방관자로 있는 것에는 어떤 이득도 없지만, 절대 손해도 없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나왔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가 정한 '대한제국',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 들어가있는 '한(韓)'이 어디에서 유래되어 왔는지 알아낸 순간, 우리는 우리의 고대사 연구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다 뭐다 할 때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고구려를 빼앗길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고조선보다도 더 이전에 있었던 동국(東國), 즉 한(韓)나라를 되찾아야 할 때니까!! 중국의 상나라가 은허라는 유적지에서 갑골문자를 발견함으로써 그 나라의 실체를 인정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고조선보다도 천년 전에 융성했던 한(韓)나라의 흔적을 찾아낼 것이다. 아니다, 이미 찾아냈다. 우리가 무시하고 버려두었던 <단군세기>에도, 역사서는 아니지만 공자가 즐겨읽었던 <시경>에도, 그리고 중국 후한 때의 위대한 학자의 문서에서도 그 증거는 이미 있다. 고대사는 비교사학으로는 도저히 증명될 수 없음에도 일본사학자들의 세뇌교육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는 우리사학자들이 이제는 그것을 떨칠 때가 되었다. 이제 자주적인 정신으로 우리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하지 않을까. 마한, 진한, 변한이라고 하는 한반도 남부에 있는 조그만 나라를 본받자고 고종이 '대한제국'이라고 이름을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그 이전에 이미 거대한 나라가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당시에 다섯 개의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었던 문명국이 있었다는 것도 문헌에 나타난다면 이젠 무턱대고 덮어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문헌의 가치를 인정하고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 "잃어버린 천년"의 역사가 새로이 실린다면 그것부터가 시작일 게다. 그때가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나는 오성五星의 집결을 관측한 기록을 보고 동국東國이 이미 큰 나라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천 년 후 이들의 자손이 주周를 찾았으니 그 내력이 중화中華에 못지않으리라.
놀라운 일이로다! 놀라운 일이로다! - p. 94
한중漢中에 든 후 일부 유학자들은 특히 동이東夷를 동국東國이라 부르기도 했다. - p.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