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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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쉽게도 독립영화로는 최초로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워낭소리」를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아직까지 어떤 경로라도 본 적이 없다. 영화야 DVD를 빌려보더라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여러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소통했을 그 깊은 교감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 동시대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그 묘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고 말았던 것이 가장 후회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 영화였기에, 우리에게 존재하긴 했었지만 그저 잊어버리고만 있었던 우리네 아버지, 우리네 소, 우리네 농촌 ... 고향을 떠올리게 해주었기에 그렇게나 갈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독립영화로는 유일하게, 국내외 할 것 없이 최초로 300만을 기록하다니~! 이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라거나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다 이러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숨겨진 감성이 드러날 수 있게 잘 머무려서 보여준 영상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이 아닌가!! 또 하나 괄목한 성과는 이 영화로 중장년층의 남성층 관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이제껏 영화를 관람하는 연령층이 2,30대 여성층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나의 연령대가 극장을 점령을 해버리면 그 관객의 입맛에만 맞는 영화만 생산될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의 내용만 좋으면, 작품만 진실하다면 중장년층도 언제든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기에 더욱 기특하다.
 
독립영화의 관객이 300만이라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요즘 한국영화가 천만 관객을 기록한다지만 제작비용이나 볼거리 면에서 볼 때, 독립영화는 일반 영화와 경쟁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300만을 달성하다니!! 국내에서는 조선족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를 담은 「우리학교」가 최고 10만 명을 동원했고, 국외에서는 「원스」가 20만 명을 달성한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300만이라니~!! 정말 놀랄 일이다. 이 책은 그런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낸 인디스토리 팀이 그런 놀라운 기적을 선물해준 관객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너무 갑작스레 인기를 끌어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워낭소리」이지만 되돌아보니 이 모든 기적은 모두 관객들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고 그 깨달음을 글로 옮긴 것이다. 어떤 식으로 영화를 구상했고, 어떻게 할아버지와 늙은소를 만나게 되었는지, 어떤 식으로 영상을 찍고 어떤 구상대로 작품을 만들어갈 것인지 그 과정을 따라가보니 시작할 당시에는 얼마나 착찹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 숙식을 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오고가는 차비가 없어 못간 적도 부지기수이고, 제작과정을 1년밖에 주지 못한다는 제작사측의 문제 등으로 인해 감독은 그렇게 힘들어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크게 성공하려고 그렇게 힘들었나 싶도록 그 때의 어려움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만큼이다. 쌀독에 쌀이 떨어질 정도라니~
 
이 책에는 감독, 프로듀서와 할아버지, 할머니, 늙은소, 젊은소에 대한 이야기와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된「워낭소리」를 본 어떤 PD의 감상평과, 「워낭소리」의 10년간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10년에 걸쳐서 만든 작품이야기를 들으니까, '장인정신이'란 말을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열정적으로 올인하는 모습 그 자체가 '장인정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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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
롬 브래프먼 외 지음, 강유리 옮김 / 리더스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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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에게 비이성적이라는 평가는 상당히 치명적이다. 비이성적이라는 말에는 과학과는 반대되는 무지, 몽매, 미신, 점술 같은 말과 일맥상통하는 법이여서 기술과 과학이 이렇게 발달한 때에 무식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매사에 이성적인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철두철미한 회장 옆에서 수십 년간 모셔온 수석 비서들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능수능란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면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그들도 사적인 영역에서는 그런 완벽하게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주 중요하고 아주 긴급할 일일수록 우리는 더 비이성적인 면모를 보이게 될 때가 많다. 나만 해도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에 관계된 아주 중요한 모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책을 밤을 새서 보는 등의 행동을 자주 반복하기 때문이다. 몸은 죽어나지만, 내 머리는 도대체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를 못한다. 그래도 이성적인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우리의 뇌는 최대한 일의 능률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간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 속에서도 내게 중요하고 흥미있어 할 만한 정보와 지식을 가리기 위해서는 한 번의 필터링을 거치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렇게 한 번 필터링을 거치고 나서 내게 필요없다고 간주된 정보는 여지없이 사장되고 그 외에 걸러진 것만 가져가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것만 보인다'든가, '보이는 것만 보인다'고 말하는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그렇기에 정답을 모르는 학생이 지문에 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답을 찾지 못하고, 그림에 관심없어 우연찮게 대가의 그림을 발견하더라도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가치귀착(사람이나 물건에 처음 지각된 가치를 바탕으로 한 특성을 부여하려는 성향) 진단편향(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최초의 평가와 상충되는 모든 증거를 인식하지 못하는 성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에는 이것 말고도 집착 손실기피(가급적 손실을 피하려는 인간의 속성)도 있는데, 이런 심리적 성향을 방치한다면 우리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성향은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생존에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내면화했던 성향이기 때문에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면 아주 훌륭하다. 우리의 심리는 은연 중에 영향을 받는다. 와인을 마셔도 전문가가 극찬한 와인이 그렇지 않은 와인보다 더 맛있게 느낄 수 있고, 남성이 여성에게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그 여성은 아름다운 여성처럼 행동하게 되고, 못한다고 꼬리표가 붙은 선수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흔들리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은 절대 견고한 반석이 아니다. 그렇기에 실력있는 의사도, 노련한 기장도, 경험 많은 장군도, 절대권력인 대통령도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테네리프 섬에서 이륙하려 했던 KLM 4805편 기장 야코프 반 잔텐은 경험 많고 실력 좋은 사람이었다. 그 항공사의 얼굴로 알려질 정도로 대단한 명성과 실력을 보유했던 그가 관제탑의 이륙 허가도 받지 않고 이륙하다가 팬암 비행기와 충돌하여 584명이 전원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것만 보아도 증명이 된다.

 

실력만 가지고 판단을 내렸다면, 이성적인 판단만 내렸다면, 아니, 부기장이 옆에서 강하게 말렸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경력과 능력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그가 잘못하고 있다면 주저말고 그를 말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또 비이성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우리가 알고 있던 가치(반 잔텐 기장님은 대단한 실력을 지녔어! 그런 그가 실수를 하지는 않으실 거야!!)에 귀착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혹은 우리가 처음 내렸던 진단(반 잔텐 기장님은 세계 제일이야!)에 반하는 증거('관제탑의 이륙 허가 없이는 이륙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어김)를 보지 않는 쪽으로 편향된다는 것이다. 이 놀랍도록 지능적인 우리의 뇌가 더 이상 뇌를 사용하기 싫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아니면,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수도)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그렇게 권위가 있는 쪽으로 무조건적 수용을 지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나는 한 번도 인간이 절대적이란 생각은 해본 적은 없다. 그 모든 실수가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언제나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렇게 사소한 요소 때문에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드는 존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다. 회사에 알맞은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면접이 필요하다고, 자동차를 렌트할 땐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휴대폰은 무제한 요금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왔던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비이성적인 판단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손해일 것이 분명한 항목인데도 우리는 제가 가지고 있던 가치를 놓지 않으려고 편파적인 생각을 하거나 손실을 피하려고 다른 손해를 떠안는다. 그래서 이런 인간의 비이성적인 성향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좀더 똑똑하게, 좀더 이성적으로 굴어서 없는 손해까지 만들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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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다움 - 자녀를 성공으로 이끄는 54가지 가르침의 길잡이
이충호 지음 / 하늘아래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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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모가 되어 보지 않았기에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좋은지 이론적인 내용은 여러 책을 통해 익히 들어는 왔지만, 실전 경험이 없으니 그 실상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육만큼 힘이 들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학원에서 아이들을 입으로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평생을 걸쳐서 아이의 인격적인 부분에서 능력적인 부분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그 고충과 어려움은 이루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맞겠다. 그런데 이런 진리를 깨닫는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자의 오만함으로 똘똘 무장한 나는 제 생각만 진리이고, 제 행동만 정도(正道)라 생각했었다. 아이의 부모가 제 아무리 교수이고, 의사이고, 교사일지라도 제 자식은 그 모양, 그 꼴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을 진리인 양 주워섬기며 뒤틀린 제 자만심을 만족시켜가며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이의 부모가 가진 능력을 가지지 못했음에 오히려 감사하며, 아이에게 더 다가가 부모에게 가야 할 사랑을 빼앗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지한 자의 오만함으로...

 

그런데 내가 다니는 학원의 특성상 정상적으로 자라온 아이들보다는 시험 스트레스에 치인 아이들, 또래 아이들의 따돌림에 아픈 아이들, 주위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생각해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 기초능력조차 갖추어지지 못한 아이들, 웃음과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들 등등을 대하다보니 어린 때의 내가 요즘의 학부모들을 고깝게 생각했던 것도 한편으론 이해될 만 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학원 선생님 앞에서도 제 아이를 무시하는데 아이 앞에서는 오죽이나 기를 죽였을까 싶기도 했고, 아무리 학원 선생님이 학교 선생님만큼 권위를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학원 선생님 앞에서 반말로 이야기하는 학부모를 봤을 때는 집에서는 얼마나 더 막말을 했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학원 선생님에게 험담을 한 것에 대해 뭐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학원이든 학교이든 선생님의 험담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 될 뿐이다. 가르침을 받는 자로서 가르침을 베푸는 자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그러니 그런 부모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간혹 이렇게 학원에서 선생님에게 버릇 없게 구는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이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해서 통상적으로 버릇이 없다고들 하지만, 선생님에게 버릇 없게 구는 아이들은 그 뒤에 선생님을 업신여기는 부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우리도 생각이 있고, 판단이 있다. 부모만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학원에 오가는 수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를 보면서 우리라고 왜 비교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온 결론은 단 하나!! 문제 아이들 뒤에는 항상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 간혹 문제 부모가 아님에도 문제 아이가 나올 수는 있지만 열이면 열, 문제 아이들은 다 문제 부모들을 본받고야 만다. 그러니까 학원에서 아이들이 어떤 문제 행동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그 때는 자신이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는 자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게 무슨 말일까.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본받는다는 말이지 않을까. 요즘은 많은 부모들이 인식의 변화를 가지고 아이를 강제적으로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아이의 뜻을 존중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예의만큼은 확실하게 잡길 바라는 부모도 생겨나고 있고, 틀린 것은 확실하게 고쳐주길 바라기도 하신다. 가장 멋진 모습은 집에서도 공부하는 모습, 책 읽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학부모도 계시다는 것이다.

 

확실히 자기 자아실현에 몰두하는 부모님들은 아이들에 대해서 그렇게나 심하게 간섭하지는 않으신다. 자신의 일도 바쁘기에 서로의 역할을 확실히 지키는 것인데, 정말 보기가 좋다. 만약 아이가 너무 기초학력이 부족한 친구라면 자아실현에 앞서서 아이에게 신경을 써주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본인이 스스로 하도록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확실히 요즘 너무 할일 없는 엄마를 많이 볼 때가 많다. 자기가 확실한 교육 주관이 서지 않아서 이렇게 휘둘리고 저렇게 휘둘리니, 어찌 아이가 바르게 설 수 있을지 걱정이 될 때도 너무나 많다. 세상에 살아가는 일에는 순전히 좋은 대학, 좋은 고등학교, 좋은 내신 점수말고도 생각해야 할 문제가 태산인데, 어찌 이렇게나 어린 나이에 안달복달을 하는지... 그런 것보다 좋은 인격의 함양은 어떻게 하며, 양심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남을 배려할 때는 어떻게 하며, 세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환경은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등등 우리가 21세기 지구땅에서 살아가려면 꼭 생각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나 말이다.

 

아마 내가 이렇게 성토를 할 수 있는 것도 제 자식 낳아 길러보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이를 낳으면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 짓고 살고픈 마음이지만, 그 때가 닥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니까... 어쨌거나 난 교육 문제만 나오면 민감해진다. 당연히 교육에 관련된 책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말한 내용뿐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는 내용이 모두 들어가있어서 내게 새로움을 주진 못했다. 사실 너무 실망스러울 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재미없는 영화를 본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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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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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훨씬 더 많은 저자 임혜지 씨가 책을 냈다. 자유로운 생활을 지키기 위해 생활의 윤택함을 포기한 임혜지 씨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생활의 여유를 포기한 독일남자랑 결혼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다. 그런데 단순히 국제결혼한 한 가정의 자유롭게 살아간 이야기를 읽는 것 뿐이었는데 왜 이리 재미있었을까. 가족구성원은 남편과 대학생인 아들, 고등학생인 딸과 그리고 그녀가 전부다. 단촐하니 평범해보이는 가정이지만 그녀의 인생은 보통 사람이라면 살아내기도 힘들 만큼 독특하다. 가족의 친목을 위해서는 하루 세 끼를 같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녀이기에 좀 먼 거리에 있는 일거리를 거절하는 수가 태반이고, 그녀의 남편되시는 분도 중책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어린 아이들이 있기에 몸과 열정을 바쳐 회사에 충성하기는 어렵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비범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물질적인 여유에서 오는 혜택일 것이다. 그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면서 제 인생에서 모든 쓸데 없는 것을 제외했다. 그러고 나니 필요한 사야 할 물건이 없어 돈을 조금 벌어도 그 돈을 다 쓰지도 못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니 물질적인 것에서도 자유롭고, 정신적으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 다 있는 차도 없어 언제나 자전거로 이동하고, 차가 필요할 때는 적당한 돈을 내고 빌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니 얼마나 진솔한 삶인지....

 

그런 그들이기에 아이들의 교육문제에서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기본적으로 성적에 연연해하는 한국의 몇몇 부모님들과는 질적으로 다를 거라는 것은 예상을 했지만, 이 정도로 파격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원체 독일의 교육학제는 정말 실용적이여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진로와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진로가 나뉘어져 있다.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제도가 불만인 나로서는 이런 모습만으로도 독일의 교육과정이 참 마음에 든다. 게다가 이런 학제가 서독과 동독이 통일이 된 이후부터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단다. 그러나 세계화의 물결이 넘나드는 요즘에서는 독일 내에서도 비효율적이라고 문제제기가 많이 나온다는데, 아무래도 잠재력이 있는 아이들이 미리 한계를 그어둔 것이니까 문제가 있을 듯 싶다. 같은 초등학교 4학년이라도 이전에 이미 머리가 깨친 아이들도 있지만, 또래 아이들보다는 늦게 머리가 발달한 아이들도 있을텐데, 그 아이들에게는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교육 정책이 박탈해버린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좀더 개선의 여지를 줄 수 있을거라 보여지는데 이런 독일의 교육 정책과 별개로 그녀 자체가 독특한 면이 있다. 남편과 시아주버님이 어릴 적에 난독증이 있어서 아들과 딸도 난독증의 증세를 보였을 때 별로 걱정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이 흥미있어 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던 것부터, 난독증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성적이 올라갈 수도 있는데 그런 조치도 깡그리 무시했다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없었다. 또한 아들에게 성적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않아서 공부를 잘 하는지, 어떤지도 모른다니 도대체가 엄마가 맞나 싶다. 

 

게다가 더 압권인 것은 바로 딸아이에게 했던 성교육이다.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아이가 피임약도 먹어야 안심을 하겠다고 하면, 긍정해주면 될 일이지 그 말에 딴지 걸 필요는 없지 않나.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아기가 생겨도 인생은 망가지지 않는다고, 엄마와 아빠가 많이 도와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이야기해주니 딸이 더 정신을 차린다. 엄마는 정상이 아니라고, 제 앞가림은 똑 부러지게 하는 딸이 되었다고나 할까. 어디선가 엄마가 철이 없으면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워진다고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딱 그 짝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녀가 엄마로서 완전 실격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삶을 누리고, 여유를 즐기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별로 필요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절대 끌려다니지 않는 그런 현명함을 보여줄 뿐이지... 그래서 그 밑에서 자라는 두 아이는 제 분야에서는 확실한 사람이 되었다. 난독증에다, 단체로 모여서 뭔가를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극도로 하기 싫어했던 아들이 2학년 때 「파드핀더」라는 일종의 보이스카웃에 가입하여 야생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매듭 묶는 법, 별자리로 길 찾는 법, 야외에서 야영하는 법 등의 어려운 활동을 하면서도 절대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던 것부터 고등학생이 되어 학생회다, 특별활동이다 새벽부터 자정이 넘게 활동을 하면서도 졸업 때는 성적우수자로 뽑히는 등의 여러 일화로 확고한 주체자로 성장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딸도 마찬가지로 난독증이 있어 어릴 적엔 성적이 나빴는데 식사 중에 부모랑 하는 말싸움으로 단련된 토론실력이 고학년이 되면서 빛을 발하더니 성적도 향상되었던 것부터 부모가 돈을 많이 들여서 미국 대학교에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미국에 한 달간 갔다 온 어학연수로 알차게 공부를 해서 전교에서 영어를 가장 잘 하는 아이로 불린다고 하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고 해서 절대 손해만 보지는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 밖에 독일 사회의 과거 청산 이야기부터 독일 거주 일본인 기자와의 경술국치에 대한 토론 이야기가 나와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국제적인 시각으로 우리 민족을 바라보지 못했던 내겐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할까. 우리가 당연히 안다고 해서 남들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런 사실은 자료를 들어 서로의 오해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걸, 그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독일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로 인해 현재를 세계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할지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단지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 한 명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세계인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필요한 때이겠다. 그녀의 다른 책도 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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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파는 빈티지샵
이사벨 울프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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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나는 빈티지샵을 방문해본 적이 없다. 약간의 구제 느낌이 나는 샵을 흘끗거리긴 했지만, 이 소설 속에 나온 드레스처럼 몇 십년 전의 명품디자이너가 만든 옛날 옷은 본 적도 없거니와 별로 관심도 없었다. 이제까지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피비의 드레스는 다 상상이 된다는 것이다. 귀엽게 벽에 걸린 컵케이크 드레스하며, 피비가 전투력을 드러내며 경매에서 얻어냈던 마담 그레의 드레스하며, 전 약혼자인 가이가 사주었다는 오이스터핑크 색의 새틴 이브닝드레스까지... 이러니 어찌 빈티지 드레스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여기에 나온 드레스를 실제 눈으로 봤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하나같이 명품이니 내가 사들일 일은 만무하겠지만, 꿈을 파는 빈티지샵이니 꿈은 내 맘대로 꿀 수 있지 않겠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영국의 어느 한 지역이지만 꼭 프랑스에 휴가를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껴지게 만드는 나른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느껴진다. 물론 피비가 옷을 구하느라 프랑스의 벼룩시장에도 가고, 프랑스의 포도농장도 방문하게 되긴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상당히 몽환적이랄까 아기자기하달까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렇게 아름다운 표지에 아기자기한 제목을 달고 나온 소설치곤 내용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피비의 25년 단짝 에마의 죽음부터가 그렇고, 열렬히 사랑했던 가이와의 이별이 그랬고, 일로 관계되어 만난 벨 부인의 말 못할 과거까지도 피비를 가만 놔두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어두운 흔적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는 꼭 있어야 할 것들이다. 어둠이 없다면 어찌 빛이 그 광채를 내뿜을 수가 있을까! 우리네 인생에 어두운 부분까지도 어떻게 이겨내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피비는 말해준다.

 

뭐,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약혼자를 대신할 수 있는 매력적인 남자도 만나고, 일적인 관계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진심어린 소통을 하고, 부하직원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애정을 보여주며, 사랑스러운 십대 아이들에게까지 조그마한 배려를 베푸는 피비인지라 인생의 어두운 부분가지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잘 극복해낸다. 아니다,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더 큰 것을 얻는다.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마도 꿈을 파는 빈티지샵을 열었기에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가능했었을까. 어쨌거나 그녀의 샵을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진다. 더할 나위 없이!! 25년 지기인 에마와의 소통이 단절된 것에 대해서, 에마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을 느껴서 더욱 더 피비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노력의 최대 수혜자는 아무래도 벨 부인일 게다.

 

벨 부인의 과거에는 피비의 과거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동병상련이라고 서로의 상처를 보았던 것인지 일 관계로 만났던 첫 순간부터 3개월 간의 우정을 지속해오는 동안 벨 부인과 피비는 같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제 일처럼 벨 부인의 일을 도와주고 찾아주고 수소문해주었던 것일 게다. 이렇게 나이와 경험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을 행복해지게 해주고, 더 나아가 그런 과정을 돕는 동안 자신을 치유하려고 했던 피비는 정말 성숙해졌다. 벨 부인을 위해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에 특별한 목적 - 자신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목적- 을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벨 부인을 돕고자 했던 행동이 자신을 돕는 일이었다는 것은 보는 사람까지도 따스하게 해주었다. 아,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로구나! 

 

벨 부인의 과거를 돌아보며 나치 전범들에 대해서, 비밀 경찰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일이 많았다.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여파를 완전히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고. 어른이 되면 선택 후의 상황을 유추하도록 훈련받지만 그렇다고 절대 완벽하지는 않다. 우리는 인간일 뿐이니까. 세상엔 그저 악인은 없다. 한 사람에게 선과 악이 공존할 뿐이다. 아니다, 어쩜 선과 악이 아니라 덜 배려하거나 더 배려하거나의 차이가 아닐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기 위해 한 행동들이 아니라 그런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몰라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마는 것이라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있는 셈이다. 피비가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도 행복을 찾아, 꿈을 파는 빈티지샵에 놀러 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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