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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파는 빈티지샵
이사벨 울프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나는 빈티지샵을 방문해본 적이 없다. 약간의 구제 느낌이 나는 샵을 흘끗거리긴 했지만, 이 소설 속에 나온 드레스처럼 몇 십년 전의 명품디자이너가 만든 옛날 옷은 본 적도 없거니와 별로 관심도 없었다. 이제까지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피비의 드레스는 다 상상이 된다는 것이다. 귀엽게 벽에 걸린 컵케이크 드레스하며, 피비가 전투력을 드러내며 경매에서 얻어냈던 마담 그레의 드레스하며, 전 약혼자인 가이가 사주었다는 오이스터핑크 색의 새틴 이브닝드레스까지... 이러니 어찌 빈티지 드레스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여기에 나온 드레스를 실제 눈으로 봤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하나같이 명품이니 내가 사들일 일은 만무하겠지만, 꿈을 파는 빈티지샵이니 꿈은 내 맘대로 꿀 수 있지 않겠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영국의 어느 한 지역이지만 꼭 프랑스에 휴가를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껴지게 만드는 나른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느껴진다. 물론 피비가 옷을 구하느라 프랑스의 벼룩시장에도 가고, 프랑스의 포도농장도 방문하게 되긴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상당히 몽환적이랄까 아기자기하달까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렇게 아름다운 표지에 아기자기한 제목을 달고 나온 소설치곤 내용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피비의 25년 단짝 에마의 죽음부터가 그렇고, 열렬히 사랑했던 가이와의 이별이 그랬고, 일로 관계되어 만난 벨 부인의 말 못할 과거까지도 피비를 가만 놔두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어두운 흔적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는 꼭 있어야 할 것들이다. 어둠이 없다면 어찌 빛이 그 광채를 내뿜을 수가 있을까! 우리네 인생에 어두운 부분까지도 어떻게 이겨내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피비는 말해준다.
뭐,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약혼자를 대신할 수 있는 매력적인 남자도 만나고, 일적인 관계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진심어린 소통을 하고, 부하직원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애정을 보여주며, 사랑스러운 십대 아이들에게까지 조그마한 배려를 베푸는 피비인지라 인생의 어두운 부분가지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잘 극복해낸다. 아니다,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더 큰 것을 얻는다.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마도 꿈을 파는 빈티지샵을 열었기에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가능했었을까. 어쨌거나 그녀의 샵을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진다. 더할 나위 없이!! 25년 지기인 에마와의 소통이 단절된 것에 대해서, 에마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을 느껴서 더욱 더 피비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노력의 최대 수혜자는 아무래도 벨 부인일 게다.
벨 부인의 과거에는 피비의 과거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동병상련이라고 서로의 상처를 보았던 것인지 일 관계로 만났던 첫 순간부터 3개월 간의 우정을 지속해오는 동안 벨 부인과 피비는 같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제 일처럼 벨 부인의 일을 도와주고 찾아주고 수소문해주었던 것일 게다. 이렇게 나이와 경험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을 행복해지게 해주고, 더 나아가 그런 과정을 돕는 동안 자신을 치유하려고 했던 피비는 정말 성숙해졌다. 벨 부인을 위해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에 특별한 목적 - 자신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목적- 을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벨 부인을 돕고자 했던 행동이 자신을 돕는 일이었다는 것은 보는 사람까지도 따스하게 해주었다. 아,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로구나!
벨 부인의 과거를 돌아보며 나치 전범들에 대해서, 비밀 경찰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일이 많았다.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여파를 완전히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고. 어른이 되면 선택 후의 상황을 유추하도록 훈련받지만 그렇다고 절대 완벽하지는 않다. 우리는 인간일 뿐이니까. 세상엔 그저 악인은 없다. 한 사람에게 선과 악이 공존할 뿐이다. 아니다, 어쩜 선과 악이 아니라 덜 배려하거나 더 배려하거나의 차이가 아닐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기 위해 한 행동들이 아니라 그런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몰라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마는 것이라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있는 셈이다. 피비가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도 행복을 찾아, 꿈을 파는 빈티지샵에 놀러 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