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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독일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훨씬 더 많은 저자 임혜지 씨가 책을 냈다. 자유로운 생활을 지키기 위해 생활의 윤택함을 포기한 임혜지 씨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생활의 여유를 포기한 독일남자랑 결혼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다. 그런데 단순히 국제결혼한 한 가정의 자유롭게 살아간 이야기를 읽는 것 뿐이었는데 왜 이리 재미있었을까. 가족구성원은 남편과 대학생인 아들, 고등학생인 딸과 그리고 그녀가 전부다. 단촐하니 평범해보이는 가정이지만 그녀의 인생은 보통 사람이라면 살아내기도 힘들 만큼 독특하다. 가족의 친목을 위해서는 하루 세 끼를 같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녀이기에 좀 먼 거리에 있는 일거리를 거절하는 수가 태반이고, 그녀의 남편되시는 분도 중책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어린 아이들이 있기에 몸과 열정을 바쳐 회사에 충성하기는 어렵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비범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물질적인 여유에서 오는 혜택일 것이다. 그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면서 제 인생에서 모든 쓸데 없는 것을 제외했다. 그러고 나니 필요한 사야 할 물건이 없어 돈을 조금 벌어도 그 돈을 다 쓰지도 못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니 물질적인 것에서도 자유롭고, 정신적으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 다 있는 차도 없어 언제나 자전거로 이동하고, 차가 필요할 때는 적당한 돈을 내고 빌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니 얼마나 진솔한 삶인지....
그런 그들이기에 아이들의 교육문제에서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기본적으로 성적에 연연해하는 한국의 몇몇 부모님들과는 질적으로 다를 거라는 것은 예상을 했지만, 이 정도로 파격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원체 독일의 교육학제는 정말 실용적이여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진로와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진로가 나뉘어져 있다.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제도가 불만인 나로서는 이런 모습만으로도 독일의 교육과정이 참 마음에 든다. 게다가 이런 학제가 서독과 동독이 통일이 된 이후부터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단다. 그러나 세계화의 물결이 넘나드는 요즘에서는 독일 내에서도 비효율적이라고 문제제기가 많이 나온다는데, 아무래도 잠재력이 있는 아이들이 미리 한계를 그어둔 것이니까 문제가 있을 듯 싶다. 같은 초등학교 4학년이라도 이전에 이미 머리가 깨친 아이들도 있지만, 또래 아이들보다는 늦게 머리가 발달한 아이들도 있을텐데, 그 아이들에게는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교육 정책이 박탈해버린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좀더 개선의 여지를 줄 수 있을거라 보여지는데 이런 독일의 교육 정책과 별개로 그녀 자체가 독특한 면이 있다. 남편과 시아주버님이 어릴 적에 난독증이 있어서 아들과 딸도 난독증의 증세를 보였을 때 별로 걱정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이 흥미있어 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던 것부터, 난독증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성적이 올라갈 수도 있는데 그런 조치도 깡그리 무시했다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없었다. 또한 아들에게 성적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않아서 공부를 잘 하는지, 어떤지도 모른다니 도대체가 엄마가 맞나 싶다.
게다가 더 압권인 것은 바로 딸아이에게 했던 성교육이다.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아이가 피임약도 먹어야 안심을 하겠다고 하면, 긍정해주면 될 일이지 그 말에 딴지 걸 필요는 없지 않나.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아기가 생겨도 인생은 망가지지 않는다고, 엄마와 아빠가 많이 도와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이야기해주니 딸이 더 정신을 차린다. 엄마는 정상이 아니라고, 제 앞가림은 똑 부러지게 하는 딸이 되었다고나 할까. 어디선가 엄마가 철이 없으면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워진다고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딱 그 짝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녀가 엄마로서 완전 실격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삶을 누리고, 여유를 즐기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별로 필요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절대 끌려다니지 않는 그런 현명함을 보여줄 뿐이지... 그래서 그 밑에서 자라는 두 아이는 제 분야에서는 확실한 사람이 되었다. 난독증에다, 단체로 모여서 뭔가를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극도로 하기 싫어했던 아들이 2학년 때 「파드핀더」라는 일종의 보이스카웃에 가입하여 야생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매듭 묶는 법, 별자리로 길 찾는 법, 야외에서 야영하는 법 등의 어려운 활동을 하면서도 절대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던 것부터 고등학생이 되어 학생회다, 특별활동이다 새벽부터 자정이 넘게 활동을 하면서도 졸업 때는 성적우수자로 뽑히는 등의 여러 일화로 확고한 주체자로 성장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딸도 마찬가지로 난독증이 있어 어릴 적엔 성적이 나빴는데 식사 중에 부모랑 하는 말싸움으로 단련된 토론실력이 고학년이 되면서 빛을 발하더니 성적도 향상되었던 것부터 부모가 돈을 많이 들여서 미국 대학교에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미국에 한 달간 갔다 온 어학연수로 알차게 공부를 해서 전교에서 영어를 가장 잘 하는 아이로 불린다고 하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고 해서 절대 손해만 보지는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 밖에 독일 사회의 과거 청산 이야기부터 독일 거주 일본인 기자와의 경술국치에 대한 토론 이야기가 나와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국제적인 시각으로 우리 민족을 바라보지 못했던 내겐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할까. 우리가 당연히 안다고 해서 남들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런 사실은 자료를 들어 서로의 오해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걸, 그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독일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로 인해 현재를 세계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할지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단지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 한 명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세계인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필요한 때이겠다. 그녀의 다른 책도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