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이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
롬 브래프먼 외 지음, 강유리 옮김 / 리더스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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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에게 비이성적이라는 평가는 상당히 치명적이다. 비이성적이라는 말에는 과학과는 반대되는 무지, 몽매, 미신, 점술 같은 말과 일맥상통하는 법이여서 기술과 과학이 이렇게 발달한 때에 무식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매사에 이성적인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철두철미한 회장 옆에서 수십 년간 모셔온 수석 비서들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능수능란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면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그들도 사적인 영역에서는 그런 완벽하게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주 중요하고 아주 긴급할 일일수록 우리는 더 비이성적인 면모를 보이게 될 때가 많다. 나만 해도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에 관계된 아주 중요한 모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책을 밤을 새서 보는 등의 행동을 자주 반복하기 때문이다. 몸은 죽어나지만, 내 머리는 도대체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를 못한다. 그래도 이성적인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우리의 뇌는 최대한 일의 능률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간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 속에서도 내게 중요하고 흥미있어 할 만한 정보와 지식을 가리기 위해서는 한 번의 필터링을 거치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렇게 한 번 필터링을 거치고 나서 내게 필요없다고 간주된 정보는 여지없이 사장되고 그 외에 걸러진 것만 가져가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것만 보인다'든가, '보이는 것만 보인다'고 말하는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그렇기에 정답을 모르는 학생이 지문에 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답을 찾지 못하고, 그림에 관심없어 우연찮게 대가의 그림을 발견하더라도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가치귀착(사람이나 물건에 처음 지각된 가치를 바탕으로 한 특성을 부여하려는 성향) 진단편향(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최초의 평가와 상충되는 모든 증거를 인식하지 못하는 성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에는 이것 말고도 집착 손실기피(가급적 손실을 피하려는 인간의 속성)도 있는데, 이런 심리적 성향을 방치한다면 우리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성향은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생존에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내면화했던 성향이기 때문에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면 아주 훌륭하다. 우리의 심리는 은연 중에 영향을 받는다. 와인을 마셔도 전문가가 극찬한 와인이 그렇지 않은 와인보다 더 맛있게 느낄 수 있고, 남성이 여성에게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그 여성은 아름다운 여성처럼 행동하게 되고, 못한다고 꼬리표가 붙은 선수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흔들리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은 절대 견고한 반석이 아니다. 그렇기에 실력있는 의사도, 노련한 기장도, 경험 많은 장군도, 절대권력인 대통령도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테네리프 섬에서 이륙하려 했던 KLM 4805편 기장 야코프 반 잔텐은 경험 많고 실력 좋은 사람이었다. 그 항공사의 얼굴로 알려질 정도로 대단한 명성과 실력을 보유했던 그가 관제탑의 이륙 허가도 받지 않고 이륙하다가 팬암 비행기와 충돌하여 584명이 전원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것만 보아도 증명이 된다.

 

실력만 가지고 판단을 내렸다면, 이성적인 판단만 내렸다면, 아니, 부기장이 옆에서 강하게 말렸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경력과 능력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그가 잘못하고 있다면 주저말고 그를 말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또 비이성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우리가 알고 있던 가치(반 잔텐 기장님은 대단한 실력을 지녔어! 그런 그가 실수를 하지는 않으실 거야!!)에 귀착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혹은 우리가 처음 내렸던 진단(반 잔텐 기장님은 세계 제일이야!)에 반하는 증거('관제탑의 이륙 허가 없이는 이륙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어김)를 보지 않는 쪽으로 편향된다는 것이다. 이 놀랍도록 지능적인 우리의 뇌가 더 이상 뇌를 사용하기 싫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아니면,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수도)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그렇게 권위가 있는 쪽으로 무조건적 수용을 지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나는 한 번도 인간이 절대적이란 생각은 해본 적은 없다. 그 모든 실수가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언제나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렇게 사소한 요소 때문에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드는 존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다. 회사에 알맞은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면접이 필요하다고, 자동차를 렌트할 땐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휴대폰은 무제한 요금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왔던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비이성적인 판단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손해일 것이 분명한 항목인데도 우리는 제가 가지고 있던 가치를 놓지 않으려고 편파적인 생각을 하거나 손실을 피하려고 다른 손해를 떠안는다. 그래서 이런 인간의 비이성적인 성향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좀더 똑똑하게, 좀더 이성적으로 굴어서 없는 손해까지 만들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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