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정치학
손민정 지음 / 음악세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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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의 정치학』이라고 해서 정치를 말하기 위해 트로트를 가지고 비유를 하는가 했더니, 말 그대로 이 책은 ‘트로트’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는 책이다. 트로트를 음악인류학적으로 접근해서 일본의 ‘엔카’를 계승한 왜색이 짙은 음악인지, 아니면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아 성숙한 우리만의 문화인지를 규명해보는데, 어차피 순수하게 만들어진 문화는 없는 법이니까 트로트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친일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불식시켜도 좋을 듯 하다. 그저 우리의 험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상한 심정을 위로하고 대변해주었던 트로트가 생성되기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2000년대 현대까지의 트로트 양식을 알아보는 것 뿐이니까. 그런데 참고로 말해두자면, 이 책은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라기보다는 대학원 논문에 가까운 책이다. 원래 이 책은 저자인 손민정 씨가 1998년부터 미국에서 음악인류학을 공부했을 때 주변 교수님들에게서 자극을 받아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가요인 트로트에 대한 논문을 썼던 것을 단행본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이 그렇게까지 어렵거나 읽기에 힘들었다기보다는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에게 품격없게 인식되었던 트로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시간이여서 참 흥미로웠다. 또한 페이지마다 그 때 당시에 나왔던 레코드 표지를 사진으로 들어놓고 있으니 눈에 쏙쏙 들어올 만큼 잘 이해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트로트의 형식도 트로트가 활성화되었던 1930년대가 아니라 미국음악이 많이 유입되어 트로트가 위축받았던 1950년대였던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때 등장했던 가수가 이미자 씨였는데 비음을 많이 섞지 않고 긴 음을 떨림 없이 쭉 뻗어주며 노래하는 이미자 씨의 창법은 미국음악의 스윙과 비슷한 창법이라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1950년대 활동햇던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는 어쩌다 한 번씩은 들어봤던 곡이지만, 처음에 존재했다는 1930년대의 잘 나가던 트로트 가수들의 창법은 들어보지 못했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시대적으로 변천해왔던 트로트들을 가수마다 들어보더라도 이렇다 할 공통된 특징을 잡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30년대 여자 가수들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계속 되는 것도 아니고, 이미자 씨의 쭉 뻗는 발성이 계속 되는 것도 아닌데다가 남자 가수들은 여성 가수들과는 다르게 같은 시기에서도 약간 오페라 투의 발성법을 해왔기 때문에 잡아낼 특징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트로트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트로트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 트로트 안에 들어가있는 가사의 내용과 분위기 등에 있는 것일 게다. 그래서 단순히 한 가수의 싱글 음반이 판매되기보다는 트로트 메들리로 된 카세트가 정규 음반보다 더 잘 팔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트로트 메들리는 계속 이어져 나오게 녹음되어 있어서 중간 중간에 신인 가수들의 노래를 끼워 놓으면 뛰어넘기를 누르지 않는 한 계속 들리게 되기 때문에 신인들이 음반 홍보용으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메들리 가수로 시작했던 주현미 씨도 자신의 다양한 창법과 모던한 사랑이야기로 트로트 주류에 들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벌써 80년 가까이 트로트는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런 그에게 저급한 문화, 고루한 문화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십대들의 음악에도 트로트풍의 음악이 가세하고 있는데 말이다. 장윤정 씨의 ‘어머나’는 20대에게 경쾌한 트로트를 선사했고, 아이돌 그룹인 빅뱅의 리더 G-Dragon가 만들고 대성이가 부른 ‘날 봐 귀순’도 십대들에게 열광적인 환호성을 끌어냈다. 그렇기에 이런 트로트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인생의 한 자락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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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
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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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셀러브리티!! 그녀들을 닮은 소설이 나왔다. 바로 정수현 작가의 『셀러브리티』가 바로 그것이다. 린제이 로한, 패리스 힐튼, 빅토리아 베컴, 안젤리나 졸리, 제니퍼 애니스톤, 다이애나 비, 마지막으로 오드리 햅번까지 빼놓을 수 없는 셀러브리티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고나 할 수 있겠다. 평소 내가 가진 그녀들에 대한 생각은 정신없다, 산만하다, 생각없다,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 등등의 부정적인 것 뿐이었었는데, 발랄 상큼 유쾌한 이 소설로 인해 조금은 바뀌었다. 물론 부정적인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도 조금은 진정성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조금 수정되었으니까. 다만 궁금한 것은 이런 칙릿소설의 주인공은 다 잡지사 기자일 수 밖에 없을까 하는 것이다. 전에 봤던 『스타일』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앞으로 몇 권 더 보면 조금은 식상하다고 생각될 텐데... 하긴 이 소설은 전자에 비해서 너무 톡톡 튀어서 만화에 근접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니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그러니 뭐, 상관없나...? 하지만 좀 아쉽다. 여덟 살이나 어린 꽃미남과의 러브스토리는 다른 현실성 있는 직종에선 좀 불가능하지 않나 해서...에구...

 

어릴 적 꿈이 ‘공주’였으나 실현 불가능한 꿈인 것을 깨닫고 진로 수정했던 것이 바로 셀러브리티였던 주인공 백이현은 셀러브리티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란 꿈을 안고 가십을 짜깁기해서 파는 〈플러스 텐〉의 기자가 된다. 좀 더 품격있는 잡지사에 들어가봤지만 너무나 짠 인턴월급에 눈물을 머금고 나와 들어간 곳이었다. 그녀는 사실 기자가 될 만한 성격은 아니였다. 더군다나 연예부 기자는. 냉정하게 보는 경쟁자 강윤지 기자가 한 말이니 아마도 맞을 것인데 그것을 아직 모르는 백이현은 한심한 린제이 로한 기획기사 짜깁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 맞닥뜨린 세계 최고의 한류스타 윤상현!!! 그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와 캐리 팍스와의 밀회 사진만 찍으면 받을 수 있다는 인센티브 생각에 편의점에서 본 그의 차에 냅다 들이박아 버린다. 그래서 시작된 인연이 묘하게 꼬여간다.

 

사진만 넘기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을 것인데, 그러면 그는 그의 길을 가고, 그녀는 그녀의 길을 갈 수 있을 터인데, 어찌나 착하신지 우리의 백이현 기자는 윤상현이 언급한 ‘그쪽’이야기에 엉겨붙어서 협상하기로 한다. 아마도 왜 그러고 사냐는 듯한 상현의 경멸조의 눈초리를 받고 난 뒤부터 발끈한 이현의 심기가 발동한 것이겠지. 현실과 타협해버리고 만 이현도 그의 그 눈초리만큼은 참아넘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일까,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그 이후에 동거하게 된 상현의 조카 환 덕분에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는 상현의 제안을 받게 되고, 여기에서부터 깜짝 놀랄 반전이 시작된다. 만약 나였다면 밀린 카드 값을 갚고, 차도 하나 근사하게 뽑고, 집도 넓은 데 이사가지 않았을까... 우선 난 협박을 한다든지 하는 간 큰 행동은 못했겠지만...

 

아마도 서로에게 느낌이 오간 것은 아닐까. 아예 여자로도, 인간으로도 보지 않았으면 이현의 도발에 상현이가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 되었다. “걱정 마. 너 같은 애는 약.혼.녀.로.도, 바.람.피.울.상대로도 두지 않을 거니까.” 처음에 상현의 이 대사를 봤을 때 그리 생각했다. 아마도 상현에게는 이현이 여자로 보이는가 보다고. 물론 외모로나 몸매로 보나 평소 상현이 보는 여자들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그저 느낌이, 어리숙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매력에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 소설을 보는 중간중간 이현이가 너무나 엉뚱하고 민망한 짓을 윤상현 앞에서 많이 저질러서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가 다시 보고, 또 덮었다가 다시 봤지만 아마도 그 때부터 예감했었다. 아하, 저 둘은 되는가보군!! 사실 일반인이 유명 연예인과 연결된다는 것이 쉽지도 않고, 그렇기에 그런 소설도 별로 없는 것로 알고 있어서 이렇게 연결될 줄은 몰랐었는데 나름 신기하고 유쾌했다.

 

다른 사람에게 우러러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 선망받고 싶어하는 마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 누구든지 왜 없을까. 다들 있지만 다른 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나름 잘 갈무리하고 있는 것일 뿐. 그런 대상이 셀러브리티는 아니여도 누구든 닮고 싶은 사람은 한 명씩 있을 것이다. 그런 존재가 있다고 해서 부끄러운 것도, 해로운 것도 아니지만 그 열망이 너무 커지지 않게,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이현이가 용기를 내었던 것도 그런 이유이니까. 가끔은 이런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보는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긴 한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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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박광수 글.그림, 김유철 사진 / 홍익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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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포토 & 카툰 에세이가 나왔다.

바로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박광수 씨의 에세이다.

전작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포토쪽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면 딱 답이 나온다.

멋진 사진작가 김유철 씨와의 합작으로 낸 포토 & 카툰 에세이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한 카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할 만하다.

다만 시간이 여유로울 때, 생각에 잠잠히 가라앉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 때 읽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시간을 잃고 생각 속을 유영하다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나는 박광수 씨를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광수생각」으로 처음 만났다.

이제껏 그런 그림체는 처음이었기에, 이제껏 잔잔한 카툰으로도 예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에,

또한 그렇게 갑자기 급 부상한 사람은 처음 보았기에 여러모로 그 사람, 박광수 씨는 내겐 신기한 사람이었다.

예약 판매로 받은 이 책엔 그의 사인도 같이 들어있는데, 내게 있어서 그가 가장 신기해보이는 것은 그의 아리따운 글씨체이다.

글씨체로만 놓고 보면 아리땁다고 하기보단 개성 넘치는 글씨라고 해야 옳을 텐데,

워낙 평범하고 고전적인 내 글씨에 비해 너무 멋진 글씨체를 가지고 있기에 내 눈엔 마냥 아리땁게 보인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제멋대로 삐쳐있는 그 글씨체는 자유롭지 않으면 결단코 나오지 않을 글씨다.

어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폰트가 하나 나온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광수체, 난 참 맘에 든다.

  

한동안 크게 성공했던 그이기에, 잠잠한 요즘의 생활이 좀 더 견디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스타들도 환호성을 지르는 팬들이 있다가 없을 때 그렇게 허전함을 느낀다는데, 그도 비슷할 것 같아서....

그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안쓰러움은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이 카툰에도 그러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씁쓸함을 넘어서는 인생에 대한 진리랄까 뭐 그런 것을 깨달은 듯한 느낌, 뭐 그런 흔적이... 

사실 누군가 알아봐주길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우리가 묵묵히 인내하며 감내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그런 진리를 그는 깨달았나 보다. 엄마에 대한 사랑도, 미안함도, 안쓰러움까지도...

그래서 더욱 애틋한 그런 포토 & 카툰 책이다.

  

그런데 아마도 이런 글은 글을 쓴 작가보다는 글을 읽는 독자의 이야기가 책에 더 많이 채워져 있지 않을까 싶다.

보는 독자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보면 이렇게,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이도록 쓴 책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글씨로 쓰여지진 않았지만, 보는 사람이 말하고 싶은 그 이야길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그런 책....아마도 그런 책일 게다.

그러니까 여백보다 더 적게 차지하고 있는 글을 가지고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음, 나도 한 번 이런 책을 하나 내고 싶은 맘이 드는 건 아마도 나도 할 이야기가 많아서겠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다양한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은 정말 그럴 듯 한 일이다.

광수 씨,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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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미술관
이은 지음 / 노블마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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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처음으로 싸운 어느 날, 못 보던 휴대폰에 전화가 울려왔다. “따르릉~” 받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받으니 엉뚱한 소리가 들려온다. “자네 아내를 데리고 있어. 내가 내는 퀴즈를 풀지 못하면 자네 아내는 죽어.”어떤 미친 놈이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흘려 들었는데, 현관문 밖에 있던 쇼핑백에는 아내의 옷이 들어가 있다!! 심지어 그녀의 속옷과 머리칼까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와 나의 숨막히는 미술관 퀴즈 순례기가~~~.

 

만약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업무상 한 어떤 일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며 접근해오는 협박의 그림자가 소중한 아내를 붙들고 있다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제 시간에 미술관에 도착해서 제 시간에 퀴즈에 답을 해야 한다면 말이다. 미술평론가 김이오에게 난데없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대학인 서울 아트 인스티튜트를 졸업했고 대학원 석사 과정에 다니던 중에 미술평론가로 데뷔까지 했고 박사 학위를 딴 뒤에도 모교에서 시간 강사 생활을 해오면서 틈틈히 미술 전문 저널에 평론을 발표해왔던 그 착실했던 김이오는 자신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안 좋은 소문이 몰려와 시간 강사 자리도 떨어지고, 미술평론 일도 없어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돈도 별로 되지 않는 아무 잡지에나 미술 평론을 올리다 보니 점점 냉소적이 되어버려 냉정한 비판의 글만 써서 주변에 보이지 않는 적들을 만들고 말았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던 중 아내와의 불화로 집을 나간 아내에게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 김이오의 평론 때문에 표절했다는 누명을 쓰고 불명예스럽게 학교에서 쫓겨난 한 대학교수가 그 충격으로 자신의 아내도 병으로 잃고 아들까지 가출해버렸다고, 이런 복수를 해온 것이었다.

 

극도의 절망감을 가지며 이리저리 이오를 끌고 다니던 납치범은 패러디와 표절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우리의 인생 자체가 패러디라면서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꾸려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모습을 따와서 그대로 프로그램화하여 존재하는 것 뿐이라고. 그러니까 김이오도 김이오 자체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부모 말 잘 듣는 착한 사람,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 대학 강단에 있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 저명한 미술평론가로 알려진 사람 등의 모습을 패러디한 것 뿐이라고, 자신이 김이오라고 믿는 믿음으로서 존재한다고 말이다. 실제로는 ‘김이오’란 사람은 없는데 있다고, ‘예술’이라는 것은 없는데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 다름이라고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하는가. 드라마를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가질 때가 있긴 하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데, 드라마에서 흔히 나왔듯이 아버지는 인자하고 근엄해야 하고, 어머니는 사려깊으면서 현명해야 하고, 오빠와 언니는 공부를 잘하고 잘나야 하고, 동생은 귀엽고 씩씩해야 한다는 등의 어떤 공식 같은 형태가 보인다. 가끔은 파격미를 추구하는 드라마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드라마는 그런 모습을 내보여준다. 마치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정말? 그럴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우리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들었던 것이 나중에 뒤섞여서 밖으로 나갈 수는 있겠지만, 단지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내가 프로그래밍이 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김이오는 이런 모든 논쟁을 잘 들어줄 순 있지만, 아내가 납치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따름이다. 한시가 급한데 패러디든 표절이든 자신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시간을 끄는 방법으로 자기 나름의 생각을 조리있게 전달하려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간 때우기용일 뿐, 진정한 김이오의 생각이 아니여서 너무 아쉬웠다. 그러니까 아내가 위험하다는 경고만 없다면 더 날카롭고 예리한 논리싸움을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첫 퀴즈인 유진 스미스의 「목욕하는 도모코」란 사진을 보고 「피에타」를 패러디한 것을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그는 꽤 문제를 잘 풀었다. 가야 할 미술관을 보곤 미리 문제를 예상해놓고 예비 답안을 준비한 것이 주효해서 거침없이 풀 수 있었던 것!! 아마 이런 상태라면 납치범이 말했듯이 퀴즈를 다 풀고 아내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역시 반전이 끝내준다. 윤 형사가 예상한 대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일을 꾸민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봐야 알 수 있다. 마지막 내용은 완전히 통쾌하게 끝나기 때문에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소설 중간중간에 그림과 사진까지 넣어서 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만들어주는 수상한 미술관은 읽어봐야 안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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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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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아프리카를 생각할 때마다 무척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전쟁 후에 많은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렇게 동정의 대상만으로 인식되었던 아프리카에도 자립의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말라위에 사는 열네 살인 캄쾀바의 손에서 말이다. 독재정치를 꾸려가긴 했지만 농민들을 우선시했던 반다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는 비료를 무한정 공급하고 씨앗도 싸게 팔아 땅만 있으면 누구나 굶어죽진 않았다. 그래서 상인이었다가 농부가 된 캄쾀바의 아버지도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일 년 내내 배고픔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 대통령이 들어선 다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캄쾀바의 기적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새로 대통령이 된 바킬리 물루지는 사업가인 탓에 농부들을 위한 보조금을 전면 중단해버렸고, 대량생산한 담배로 경매를 휩쓸어 담배값도 떨어져 소규모로 생산하는 농부들을 압박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지 않아 평소의 수확량의 반도 안되는 옥수수만 얻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굶어죽는 사람들을 위해 풀어야 할 곡식을 다른 나라에 팔아서 빚을 갚았다니!!!! 그때부터 사람들은 굶어가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끼로 생을 연명하는 그런 시간이 계속되고, 또 돈이 없어서 중등학교에 들어갔다가 쫓겨나오는 그런 고된 시간 속에서 캄쾀바는 조금씩 변해갔다.

 

가족들을 굶기도 싶지 않다는 욕망, 좀더 배워야겠다는 열망 덕분에 학교 대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다가 그 아이는 풍차에 대한 책을 보게 되었다. 바람의 힘으로 전기를 생산한다는 그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그런 내용에 그는 점점 빠져들었다. 전기가 없어 해가 지면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비싼 전기료를 내지 않고 전기를 쓸 수는 없을까 고민했던 그에게 그 책은 거의 구원이었던 것!! 전기만 있다면 밤에 책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라디오도 계속 들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양수기를 만들어 호수의 물을 대어다 쓸 수만 있다면 아버지가 가뭄 걱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풍차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만들어보고 잘 되면 크게 만들어 전기를 끌어다 쓸 것이라고. 그런데 캄쾀바가 이렇게 어린 열네 살 나이에 풍차 만들기에 도전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풍차에 달려들었던 그런 무모한 행동은 아니였다. 풍차에 대한 책을 손에 얻기 전에도 그는 라디오란 라디오는 다 분해해버려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라디오까지 수리해줄 정도의 기술을 얻었고, 사람들이 페달로 자전거의 등을 켜는 자전거 발전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연구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의 사촌 제프리와 함께 라디오 고물상도 해보고, 다양한 연구도 했던 그였기에 풍차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였다. 조그맣게 만든 풍차가 성공하자, 그는 본격적으로 풍차 세우는 데 달려들었다. 아버지의 고장난 자전거와 학교 근처에 있는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온갖 잡동사니들을 꺼내와서 하루종일 그것만 씨름했다. 엄마의 부엌에 들어가 쇠를 달구고 구멍을 뚫고 이어붙이는 등의 여러 일을 하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미친 놈, 게으른 놈”이란 소리를 듣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만큼은 그를 이해해주고, 그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농사일을 시키지 않고, 다른 가족들이 뭐라고 해도 막아주고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도 그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풍차는 성공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가족들을 빼고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가 풍차를 세우는 역사적인 자리에 모여들었다. “게으른 놈”이라고 욕은 했지만 평소의 그를 알고 있어서였을까, 사람들은 그의 기적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결과는 대성공!! 조그만 불빛과 라디오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캄쾀바는 영웅이 되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책을 선생님 삼아 풍차를 만들고 나서는 핸드폰을 충전해주는 것도 만들어보고, 자기 방까지 전선을 끌어다가 스위치까지도 만들었던 와중에 그의 초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발명품을 학교에도 모형으로 전시해줄 순 없겠느냐고. 그의 전시물을 보고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달음에 달려가서 모형을 세워줬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커다란 도약이었음은 그는 몰랐다. 그 모형을 본 말라위 교사 연수협회의 관리 중 한 사람이 자기 상관인 하트포드 므차지메 박사에게 보고했고, 그는 다섯 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고 캄쾀바를 만나러 왔다. 박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많은 기자를 불러모아 그를 소개했다. 그리곤 캄쾀바를 다시 학교로 보내기 위해 돈을 모금하고 교육부에 연락해봤지만 실질적인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기회는 다른 방향으로 찾아왔다. 「데일리 타임스」 에 기사가 나간 후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소야피 뭄파 씨가 그 신문을 바오밥 헬스란 자기 사무실에 가지고 갔고, 그의 상관이 마이크 맥케이 씨는 캄쾀바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던 것! 그 블로그를 본 에메카 오카포르 씨는 1년에 한 번 과학자, 발명가, 혁신가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회의인 <TED Global2007>라는 회의에 캄쾀바를 데리고 가기 위해 수소문해서 결국 므차지메 박사와 연락이 닿았다. 그 이후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회의에 도착해서 캄쾀바는 다른 여러 과학자나 혁신가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처음이라 무척 떨렸지만 그의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왔을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기근과 가족들에 대한 끝없는 걱정, 학교 중퇴, 아버지의 슬픔, 놀림 등의 많은 어려움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들과 같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훨씬 마음이 편해진 캄쾀바는 이제 자신의 마을을 혁신하기 위해 창업을 하게 되었다. 톰이 도와준 덕분에 많은 사업가의 투자를 받아서 가족들이, 마을 사람들이 물을 충분히 공급받아 굶어죽지 않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또 다른 꿈인 학교에 가는 것도 해결이 되었는데 ‘아프리카 바이블 칼리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해 떨어진 학습 진도와 영어 실력의 부족 때문에 많은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 모든 장애를 그 학교에선 알고도 받아들여주었다. 그 학교가 캄쾀바에게 더 좋았던 것은 그 학교에는 그처럼 역경을 이겨낸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거기서도 동료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어린 아이가 일으킨 기적적인 성공을 보는 일은 너무나 흐뭇하다.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박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 발을 더 내딛을 수 있었던 캄쾀바는 이제는 역경을 이겨내는 모든 아프리카인을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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