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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의 정치학
손민정 지음 / 음악세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트로트의 정치학』이라고 해서 정치를 말하기 위해 트로트를 가지고 비유를 하는가 했더니, 말 그대로 이 책은 ‘트로트’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는 책이다. 트로트를 음악인류학적으로 접근해서 일본의 ‘엔카’를 계승한 왜색이 짙은 음악인지, 아니면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아 성숙한 우리만의 문화인지를 규명해보는데, 어차피 순수하게 만들어진 문화는 없는 법이니까 트로트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친일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불식시켜도 좋을 듯 하다. 그저 우리의 험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상한 심정을 위로하고 대변해주었던 트로트가 생성되기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2000년대 현대까지의 트로트 양식을 알아보는 것 뿐이니까. 그런데 참고로 말해두자면, 이 책은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라기보다는 대학원 논문에 가까운 책이다. 원래 이 책은 저자인 손민정 씨가 1998년부터 미국에서 음악인류학을 공부했을 때 주변 교수님들에게서 자극을 받아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가요인 트로트에 대한 논문을 썼던 것을 단행본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이 그렇게까지 어렵거나 읽기에 힘들었다기보다는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에게 품격없게 인식되었던 트로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시간이여서 참 흥미로웠다. 또한 페이지마다 그 때 당시에 나왔던 레코드 표지를 사진으로 들어놓고 있으니 눈에 쏙쏙 들어올 만큼 잘 이해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트로트의 형식도 트로트가 활성화되었던 1930년대가 아니라 미국음악이 많이 유입되어 트로트가 위축받았던 1950년대였던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때 등장했던 가수가 이미자 씨였는데 비음을 많이 섞지 않고 긴 음을 떨림 없이 쭉 뻗어주며 노래하는 이미자 씨의 창법은 미국음악의 스윙과 비슷한 창법이라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1950년대 활동햇던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는 어쩌다 한 번씩은 들어봤던 곡이지만, 처음에 존재했다는 1930년대의 잘 나가던 트로트 가수들의 창법은 들어보지 못했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시대적으로 변천해왔던 트로트들을 가수마다 들어보더라도 이렇다 할 공통된 특징을 잡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30년대 여자 가수들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계속 되는 것도 아니고, 이미자 씨의 쭉 뻗는 발성이 계속 되는 것도 아닌데다가 남자 가수들은 여성 가수들과는 다르게 같은 시기에서도 약간 오페라 투의 발성법을 해왔기 때문에 잡아낼 특징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트로트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트로트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 트로트 안에 들어가있는 가사의 내용과 분위기 등에 있는 것일 게다. 그래서 단순히 한 가수의 싱글 음반이 판매되기보다는 트로트 메들리로 된 카세트가 정규 음반보다 더 잘 팔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트로트 메들리는 계속 이어져 나오게 녹음되어 있어서 중간 중간에 신인 가수들의 노래를 끼워 놓으면 뛰어넘기를 누르지 않는 한 계속 들리게 되기 때문에 신인들이 음반 홍보용으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메들리 가수로 시작했던 주현미 씨도 자신의 다양한 창법과 모던한 사랑이야기로 트로트 주류에 들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벌써 80년 가까이 트로트는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런 그에게 저급한 문화, 고루한 문화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십대들의 음악에도 트로트풍의 음악이 가세하고 있는데 말이다. 장윤정 씨의 ‘어머나’는 20대에게 경쾌한 트로트를 선사했고, 아이돌 그룹인 빅뱅의 리더 G-Dragon가 만들고 대성이가 부른 ‘날 봐 귀순’도 십대들에게 열광적인 환호성을 끌어냈다. 그렇기에 이런 트로트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인생의 한 자락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