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미술관
이은 지음 / 노블마인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아내와 처음으로 싸운 어느 날, 못 보던 휴대폰에 전화가 울려왔다. “따르릉~” 받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받으니 엉뚱한 소리가 들려온다. “자네 아내를 데리고 있어. 내가 내는 퀴즈를 풀지 못하면 자네 아내는 죽어.”어떤 미친 놈이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흘려 들었는데, 현관문 밖에 있던 쇼핑백에는 아내의 옷이 들어가 있다!! 심지어 그녀의 속옷과 머리칼까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와 나의 숨막히는 미술관 퀴즈 순례기가~~~.

 

만약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업무상 한 어떤 일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며 접근해오는 협박의 그림자가 소중한 아내를 붙들고 있다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제 시간에 미술관에 도착해서 제 시간에 퀴즈에 답을 해야 한다면 말이다. 미술평론가 김이오에게 난데없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대학인 서울 아트 인스티튜트를 졸업했고 대학원 석사 과정에 다니던 중에 미술평론가로 데뷔까지 했고 박사 학위를 딴 뒤에도 모교에서 시간 강사 생활을 해오면서 틈틈히 미술 전문 저널에 평론을 발표해왔던 그 착실했던 김이오는 자신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안 좋은 소문이 몰려와 시간 강사 자리도 떨어지고, 미술평론 일도 없어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돈도 별로 되지 않는 아무 잡지에나 미술 평론을 올리다 보니 점점 냉소적이 되어버려 냉정한 비판의 글만 써서 주변에 보이지 않는 적들을 만들고 말았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던 중 아내와의 불화로 집을 나간 아내에게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 김이오의 평론 때문에 표절했다는 누명을 쓰고 불명예스럽게 학교에서 쫓겨난 한 대학교수가 그 충격으로 자신의 아내도 병으로 잃고 아들까지 가출해버렸다고, 이런 복수를 해온 것이었다.

 

극도의 절망감을 가지며 이리저리 이오를 끌고 다니던 납치범은 패러디와 표절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우리의 인생 자체가 패러디라면서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꾸려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모습을 따와서 그대로 프로그램화하여 존재하는 것 뿐이라고. 그러니까 김이오도 김이오 자체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부모 말 잘 듣는 착한 사람,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 대학 강단에 있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 저명한 미술평론가로 알려진 사람 등의 모습을 패러디한 것 뿐이라고, 자신이 김이오라고 믿는 믿음으로서 존재한다고 말이다. 실제로는 ‘김이오’란 사람은 없는데 있다고, ‘예술’이라는 것은 없는데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 다름이라고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하는가. 드라마를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가질 때가 있긴 하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데, 드라마에서 흔히 나왔듯이 아버지는 인자하고 근엄해야 하고, 어머니는 사려깊으면서 현명해야 하고, 오빠와 언니는 공부를 잘하고 잘나야 하고, 동생은 귀엽고 씩씩해야 한다는 등의 어떤 공식 같은 형태가 보인다. 가끔은 파격미를 추구하는 드라마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드라마는 그런 모습을 내보여준다. 마치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정말? 그럴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우리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들었던 것이 나중에 뒤섞여서 밖으로 나갈 수는 있겠지만, 단지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내가 프로그래밍이 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김이오는 이런 모든 논쟁을 잘 들어줄 순 있지만, 아내가 납치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따름이다. 한시가 급한데 패러디든 표절이든 자신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시간을 끄는 방법으로 자기 나름의 생각을 조리있게 전달하려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간 때우기용일 뿐, 진정한 김이오의 생각이 아니여서 너무 아쉬웠다. 그러니까 아내가 위험하다는 경고만 없다면 더 날카롭고 예리한 논리싸움을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첫 퀴즈인 유진 스미스의 「목욕하는 도모코」란 사진을 보고 「피에타」를 패러디한 것을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그는 꽤 문제를 잘 풀었다. 가야 할 미술관을 보곤 미리 문제를 예상해놓고 예비 답안을 준비한 것이 주효해서 거침없이 풀 수 있었던 것!! 아마 이런 상태라면 납치범이 말했듯이 퀴즈를 다 풀고 아내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역시 반전이 끝내준다. 윤 형사가 예상한 대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일을 꾸민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봐야 알 수 있다. 마지막 내용은 완전히 통쾌하게 끝나기 때문에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소설 중간중간에 그림과 사진까지 넣어서 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만들어주는 수상한 미술관은 읽어봐야 안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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