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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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아프리카를 생각할 때마다 무척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전쟁 후에 많은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렇게 동정의 대상만으로 인식되었던 아프리카에도 자립의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말라위에 사는 열네 살인 캄쾀바의 손에서 말이다. 독재정치를 꾸려가긴 했지만 농민들을 우선시했던 반다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는 비료를 무한정 공급하고 씨앗도 싸게 팔아 땅만 있으면 누구나 굶어죽진 않았다. 그래서 상인이었다가 농부가 된 캄쾀바의 아버지도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일 년 내내 배고픔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 대통령이 들어선 다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캄쾀바의 기적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새로 대통령이 된 바킬리 물루지는 사업가인 탓에 농부들을 위한 보조금을 전면 중단해버렸고, 대량생산한 담배로 경매를 휩쓸어 담배값도 떨어져 소규모로 생산하는 농부들을 압박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지 않아 평소의 수확량의 반도 안되는 옥수수만 얻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굶어죽는 사람들을 위해 풀어야 할 곡식을 다른 나라에 팔아서 빚을 갚았다니!!!! 그때부터 사람들은 굶어가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끼로 생을 연명하는 그런 시간이 계속되고, 또 돈이 없어서 중등학교에 들어갔다가 쫓겨나오는 그런 고된 시간 속에서 캄쾀바는 조금씩 변해갔다.

 

가족들을 굶기도 싶지 않다는 욕망, 좀더 배워야겠다는 열망 덕분에 학교 대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다가 그 아이는 풍차에 대한 책을 보게 되었다. 바람의 힘으로 전기를 생산한다는 그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그런 내용에 그는 점점 빠져들었다. 전기가 없어 해가 지면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비싼 전기료를 내지 않고 전기를 쓸 수는 없을까 고민했던 그에게 그 책은 거의 구원이었던 것!! 전기만 있다면 밤에 책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라디오도 계속 들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양수기를 만들어 호수의 물을 대어다 쓸 수만 있다면 아버지가 가뭄 걱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풍차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만들어보고 잘 되면 크게 만들어 전기를 끌어다 쓸 것이라고. 그런데 캄쾀바가 이렇게 어린 열네 살 나이에 풍차 만들기에 도전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풍차에 달려들었던 그런 무모한 행동은 아니였다. 풍차에 대한 책을 손에 얻기 전에도 그는 라디오란 라디오는 다 분해해버려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라디오까지 수리해줄 정도의 기술을 얻었고, 사람들이 페달로 자전거의 등을 켜는 자전거 발전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연구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의 사촌 제프리와 함께 라디오 고물상도 해보고, 다양한 연구도 했던 그였기에 풍차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였다. 조그맣게 만든 풍차가 성공하자, 그는 본격적으로 풍차 세우는 데 달려들었다. 아버지의 고장난 자전거와 학교 근처에 있는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온갖 잡동사니들을 꺼내와서 하루종일 그것만 씨름했다. 엄마의 부엌에 들어가 쇠를 달구고 구멍을 뚫고 이어붙이는 등의 여러 일을 하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미친 놈, 게으른 놈”이란 소리를 듣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만큼은 그를 이해해주고, 그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농사일을 시키지 않고, 다른 가족들이 뭐라고 해도 막아주고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도 그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풍차는 성공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가족들을 빼고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가 풍차를 세우는 역사적인 자리에 모여들었다. “게으른 놈”이라고 욕은 했지만 평소의 그를 알고 있어서였을까, 사람들은 그의 기적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결과는 대성공!! 조그만 불빛과 라디오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캄쾀바는 영웅이 되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책을 선생님 삼아 풍차를 만들고 나서는 핸드폰을 충전해주는 것도 만들어보고, 자기 방까지 전선을 끌어다가 스위치까지도 만들었던 와중에 그의 초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발명품을 학교에도 모형으로 전시해줄 순 없겠느냐고. 그의 전시물을 보고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달음에 달려가서 모형을 세워줬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커다란 도약이었음은 그는 몰랐다. 그 모형을 본 말라위 교사 연수협회의 관리 중 한 사람이 자기 상관인 하트포드 므차지메 박사에게 보고했고, 그는 다섯 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고 캄쾀바를 만나러 왔다. 박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많은 기자를 불러모아 그를 소개했다. 그리곤 캄쾀바를 다시 학교로 보내기 위해 돈을 모금하고 교육부에 연락해봤지만 실질적인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기회는 다른 방향으로 찾아왔다. 「데일리 타임스」 에 기사가 나간 후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소야피 뭄파 씨가 그 신문을 바오밥 헬스란 자기 사무실에 가지고 갔고, 그의 상관이 마이크 맥케이 씨는 캄쾀바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던 것! 그 블로그를 본 에메카 오카포르 씨는 1년에 한 번 과학자, 발명가, 혁신가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회의인 <TED Global2007>라는 회의에 캄쾀바를 데리고 가기 위해 수소문해서 결국 므차지메 박사와 연락이 닿았다. 그 이후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회의에 도착해서 캄쾀바는 다른 여러 과학자나 혁신가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처음이라 무척 떨렸지만 그의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왔을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기근과 가족들에 대한 끝없는 걱정, 학교 중퇴, 아버지의 슬픔, 놀림 등의 많은 어려움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들과 같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훨씬 마음이 편해진 캄쾀바는 이제 자신의 마을을 혁신하기 위해 창업을 하게 되었다. 톰이 도와준 덕분에 많은 사업가의 투자를 받아서 가족들이, 마을 사람들이 물을 충분히 공급받아 굶어죽지 않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또 다른 꿈인 학교에 가는 것도 해결이 되었는데 ‘아프리카 바이블 칼리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해 떨어진 학습 진도와 영어 실력의 부족 때문에 많은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 모든 장애를 그 학교에선 알고도 받아들여주었다. 그 학교가 캄쾀바에게 더 좋았던 것은 그 학교에는 그처럼 역경을 이겨낸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거기서도 동료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어린 아이가 일으킨 기적적인 성공을 보는 일은 너무나 흐뭇하다.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박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 발을 더 내딛을 수 있었던 캄쾀바는 이제는 역경을 이겨내는 모든 아프리카인을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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