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드 Googled -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켄 올레타 지음, 김우열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구글드! :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세상은 이제 구글로 시작하고 구글로 끝이 날 것이다. 사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무시무시하고 가공할 만한 변화를 체감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미디어를 좋아하고 재미있는 컨텐츠를 즐기는 데에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에 그다지 많이 차지하고 있다곤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포털사이트라곤 네이버 혹은 다음이 전부이고, 그 안에서 하는 것이라곤 서평을 쓰거나 재미있는 것을 보는 것뿐이라 구글이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이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그 세상인지 의아할 때가 많았다. 음악도 별로 즐기지 않고, 영화도 다운받아 볼 것이라면 영화관에서 보는 것을 즐기는 터라 영 와닿지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동영상 프로그램인 유튜브를 구글이 인수했다는 것도 사실 이 책을 보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구글의 여러 프로그램인 애드센스, 애드워즈, 구글 애널리틱스, G메일, 구글 뉴스, 구글 어스, 구글 맵스, 구글 비디오, 피카사, 구글 북스, 오컷, 데스트톱, 닥스가 있다는 것도 사실 처음 듣는 소리다. 구글이 하나의 검색엔진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로선 당혹스러울 만큼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의 제목인 구글드는 ‘구글 되다’, ‘구글 당하다’ 혹은 ‘구글이 만들어낸 가공할 변화’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 외에도 ‘구글러’나 ‘구글링’이란 여러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구글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글이 이제 생긴 지 단 1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아함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책은 신문, TV, 영화, 통신과 같은 기존의 미디어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거대한 기업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생각과 이념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그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해 쓰여졌다. 우선 이 책을 쓴 저자부터 살펴보면 참으로 대단하다. 켄 올레타, 그녀는 뉴요커 수석 칼럼니스트로서, ‘20세기 100명의 기자’로 뽑힌 가장 존경받는 칼럼니스트이자, 빌 게이츠, 루퍼트 머독, 테드 터너, 빌 클린턴 등 정재계 거물들을 직접 독대해 적나라한 심층 분석 기사를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저널리스트 중 하나다. 그는 총 13주에 걸쳐 뉴욕과 팰러앨토를 오가며, 구글의 경영회의와 미팅, 컨퍼런스 등에 동석해 경영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에릭 슈미트를 비롯한 150여 명의 구글 내부 임직원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리고 구글플렉스를 드나들며 협력과 경쟁의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쟁사와 재계 주요인사 150여 명을 추적해 심층 인터뷰했다. 그렇듯 3년여에 걸친 취재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컴퓨터 공학 쪽에 몸을 담고 있는 동생이, 가끔 흥분되는 목소리로 구글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몇 년전부터 들어오긴 했었는데 사실 밋밋한 화면 달랑 한 줄 검색창만이 표시되어 있는 구글의 메인화면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히 찾고 싶은 것이 없는 나로선, 그래서 어쩌다 찾고 싶은 것이 있을 때라도 잘 못 찾고 헤매는 나로선 구글의 간결함이 별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알게 된 구글의 목적 즉, ‘사용자들이 빠르게 검색하고 빠르게 구글을 벗어나서 그 장소로 가게 하는 것’을 알게 되니, 왜 구글의 메인 화면이 단조로운지 알 수 있었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긴 하더라도 네이버의 메인화면이 안 띄여져 있으면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드는 나는, 소소하게 올라오는 여러 기사나 블로거기사 보는 재미로 인터넷을 하기 때문에 아마도 관점이 다른 탓이었을 게다. 그래서 야후나 AOL이 검색엔진으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하지 않고 포털사이트로서만 남아있으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구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광고를 많이 보여주기 위해서는 빠른 검색이 오히려 문제가 있었겠지만, 사용자의 편의라는 목적을 위해서 구글의 창립자 페이지와 브린은 처음의 뜻을 절대 굽히지 않았다. 다른 사이트가 광고료를 내면 상위 링크에 올라가도록 했던 것도 비열한 짓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해서 검색 키워드와 연관성이 뛰어난 것 순서대로 상위에 링크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사용자들에게 맞아들어갔다.

 

아직도 구글이 일으킨 변화의 물결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미디어세계의 판도를 뒤엎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제 신문사도, 출판사도, 영화업계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아 여러 방면으로 구상중이다.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는 아마도 혁신과 창의력에 있지 않을까 한다. 엔지니어로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페이지와 브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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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성질, 한 방에 보내기? -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의 성질 개조를 위한 심리 처방전
하지현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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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 같은 성질, 정말 한 방에 보낼 수 있을까?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가 서문에서 말하길, 정답은 ‘아니다’가 맞단다. 그러나 완전히 180°로 바꿀 수는 없지만, 360°를 찍고 돌아오면 사람은 좀더 성숙해지고 자신을 좀더 잘 제어할 수 있기에,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은 문제라고 확신한 답안을 내놓는다. 처음 제목에 홀려서 본 서문에서 ‘아니다’라고 제시해버리니 완전 김새버렸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경우의 상황을 직접 접한 전문가답게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할까’ 싶을 정도로 청산유수로 흐르는 문제점 지적에 내심 반해버렸다. 책을 많이 냈었는데 한 번도 그의 책을 접하지 못해서 그의 명쾌한 해설에 마음이 끌렸달까. 해결책이 더 중요하긴 하지만 처음엔 그의 문제점 지적에 더 감동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나니깐 이럴 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도록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다양한 나의 모습, 직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 천차만별인 애정 관계의 모습, 가깝고도 먼 가족들의 관계들이 조목조목 나열되는데 걔중에는 끔찍한 이야기도 더러 있었지만, 대개 우리가 만나봤음직한 사람들과,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 중 내 모습과 겹쳐지는 사연도 몇 군데가 있었는데,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갈대같은 것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그때마다 내가 표출하는 모습이 정말 달랐다는 것이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이런 사연들이 다 이메일로 저자에게 온 사연인 것 같은데, 그들에게 듣기 편한 말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례를 들자면, 결혼 전에 맞아본 적이 있었는데도 결혼한 한 주부가 맞고 사는 남편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완전 따끔하게 답변한 것이 그것이다. 

 

맞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때리는 사람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은 당연하지만, 더불어 그것을 허용하려는 피해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해자가 점점 더 그렇게 공격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처음 맞을 때 격렬하게 제지를 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사를 표현해야 설사 배우자가 호전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었을지라도 그런 성향이 학습되지 않고 제어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한 번 맞았다면 절대로 결혼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럼에도 결혼했다는 것은 그런 폭력성을 조장한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솔직히 연인 사이에 폭력이 오가면 그 후엔 무섭지 않을까. 어떻게 그런 사람과 계속 사귀거나 결혼까지 할 수가 있는 것인지... 혹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강하지 않은 것인지... 그래서 저자는 자신에게 동정심을 유발해서 위로의 말을 듣기 위해 이메일을 보낸 것이냐고 따끔하게 혼줄을 낸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주위에 동정심을 유발해서 그것에 기대어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정신과 전문의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에 정말 신기했다.

 

보면서 가장 뜨끔했던 부분은 [친밀한 관계일수록 부담스러운 이유]였다.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몇 번 만나서 이야기가 오고가고 갑자기 너무 좋아지는 마음이 생기고 마음이 많이 들뜨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에 대해 나쁜 점을 찾게 되고 그러면서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것을 이 책에서 보니까 꼭 내 마음이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내 모양새가 약간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흡사하니, 혹 내가 그렇게 사람들간의 ‘최적의 거리’를 찾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어릴 적엔 그것이 심해져서 아직까지 안 보는 사람도 있는데, 이제는 좀 둔해졌는지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나가는 편이다. 어쩜,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거리’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속 시원하게 서로에게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을 밝히면서 관계를 이어나가라고 하는데, 사실 내겐 그게 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해보고 실패하는 것이 좀더 성숙하는데 더 도움이 될 테니 꼭 시도는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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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이단과 마지막 폭풍 기사 아이단 시리즈 3
웨인 토머스 뱃슨 지음, 정경옥 옮김 / 꽃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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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이단과 마지막 폭풍』은 기사 아이단과 비밀의 문시리즈의 완결편이다. 그 전의 2편에서 긴장감이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훨씬 기대가 많이 되었던 소설이었는데, 드디어 만났다. 상큼발랄한 녹색으로 된 표지도 마음에 들고 도톰하니 두께감이 있는 것도 반가웠다. 그전까지는 알지도 못했던 판타지 소설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시리즈와 『반지의 제왕』시리즈 덕에 접하게 되고부턴 판타지 마니아가 되었는데, 이번 시리즈는 표지부터가 마음에 든다. 가끔은 읽고 싶어도 너무 유아틱한 표지이거나 촌스러워 보이는 표지 덕에 - 예를 들면, 예전『퍼시 잭슨과 번개도둑』표지같이 - 안 보고 싶을 때가 많았었는데 참 다행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번 완결편을 읽으면서는 정말 독특하게 느껴진 것이 많았다. 2권을 읽으면서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점이 있었는데, 3권에서는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는 요소들에게 포위당했으니까 말이다. 두란노의 한 계열사인 꽃삽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니만큼 이 책에는 기독교적인 요소가 군데군데 많이 보이는데 2권에선 약간 그런가 하고 말 뿐이었다면, 3권에서 본격적으로 그 후광에 난타당했다고나 할까. 특히 마지막의 결말이 마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암시하는 것 같아서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영화로 먼저 접한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아슬란’이 아무 이유없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고 부활한 장면에서 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었는데 이 책의 마지막도 약간 그러하다. 하긴 그 때쯤이면 그러한 모습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으니 그렇게까지 감동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사 아이단이 열두 번째 기사로 렐름에 들어가서 모험을 하고 온 이후에 렐름에서 만난 글림스 그웬의 쌍둥이인 앤트워넷을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났던 것이 2권의 시작이었다. 렐름의 세계를 믿는 앤트워넷은 처음부터 아이단의 단짝 친구가 되었지만, 상황이 급박한지라 아이단과 만난 지 얼마 안 있어 렐름에서의 부름을 받았다. 그때 렐름에 가서 선택받은 기사로서의 임무도 중요하지만 아이단에게서도 가장 중요한 부탁을 부여받았다. 자신의 단짝인 로비의 글림스인 컨 경을 돌봐달라고, 혹은 죽이지 말아 달라고. 완결편까지 다 읽고 생각하니 그 이유가 앤트워넷이 렐름으로 간 분명한 목적이었을 것이란 확신이 섰다. 세 번이나 컨 경과 대결을 벌이면서도 끝까지 죽이지 않고 설득하려는 앤트워넷이 의아해 죽이지 않고 그녀를 생포해 좋은 먹을거리를 주고 심지어 그녀의 검까지 찾아주었던 것을 본다면 컨 경도 분명히 앤트워넷의 마음을 이해했을 테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엘리엄 왕이란 존재도 조금씩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충성을 바칠 수도 있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좋은 깨달음도 하나 얻었다.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면서 엘리엄 왕은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는데 사실 그 명령은 별 소득이 없는 내용이었다. 이미 파라고어가?? 없는 일이었고 게다가 그 때문에 소중한 군사들까지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살다 보면 아픔과 어려움만 남아있을 일을 하라는 부름을 받을 때가 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든, 부모님이 시키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내게 한 임무를 부여받았을 때 정 얻지 못한 것 같았던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나. 하지만 멀리 내다볼 수 없는 인간적인 눈으로만 봤을 때, 단편적안 한쪽 측면에서만 바라보았을 때는 실패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전혀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중한 두어 명의 군사를 잃고 전문적인 군사 수천 명을 얻었다면 절대 그것이 실패라곤 할 수 없지 않은가.

 

"폐하를 오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게 폐하의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저도 왜 모든 일들이 그렇게 일어나야만 했는지 오랫동안 궁금했어요. (...)

아이단도 절대 만나지 못했을 거고요. 그 다음에는 아이단이 왜 이사를 가야 했는지 궁금했죠.

하지만 아이단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앨리블에 대해 알아야 했어요.

 그래야 내 머리에 진실을 심어 줄 수 있었을 테니까요.....

내가 이곳에 오도록 하기 위해 아주 많은 일들이 일어나야 했어요."

(p. 398-399)

 

여기 또다른 엘리엄 왕의 추종자의 고백이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을 부여안고 울부짖는 그의 고백이 너무 값지다. 아아, 맞아! 내가 이제까지 슬퍼했던 모든 일들은 사실 나를 위해 준비했던 것이었구나!! 내가 이렇게 성장하기 위해서, 그 수많은 일들을 미리 준비하셨던 것이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울부짖었던 것이 너무 부끄럽다. 그래, 이런 소중한 교훈을 안고 또 하나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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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여인 -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비전 메이커가 된 여인들
정영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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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하나님이 찾으시는 여인...이라 하면 드보라...라합...룻...한나.....라합....아비가일...에스더까지 이렇게 굵직굵직한 일을 행한 여인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에는 내가 생각하기엔 절대로 순위에 들지 못할 인물들이 많이 보였다. 이 세상에 죄악을 들여온 하와, 하나님의 말씀에 피식 웃었던 사라, 이스마엘을 낳고 사라를 무시한 하갈, 아름다운 외모로 언니와 경쟁한 라헬,시아버지와 동침을 한 다말, 아름다운 몸매를 왕을 꾀여낸 밧세바 등 정말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던 여인들의 이름도 보인다. 과연 그들도 하나님이 부르신 여인이 맞을까?

 

사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들도 뭐 하나 흠 없고 아름다운 구석이 있어서 부르신 것은 아니다. 애굽에서 친히 선택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주셨어도 항상 다툼과 원망만 쏟아냈던 그들이 아니였던가. 그렇다면 내가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여인이라 할 수 없는 그들까지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이라는 말도 가능할 터인데.... 예전에 사무엘상하를 목장별로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아비가일과 밧세바였다. 그저 그렇게 보고 지나쳤던 그 이야기를 다시 들춰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비가일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알았고, 밧세바가 얼마나 악했는지를 알았다. 만약 동침을 요구했던 다윗 왕에게 밧세바가 저항했던 미약한 흔적이라도 있었더라면 성경에 왜 그런 이야기가 없었겠나. 아비가일은 부드럽게 돌려서 다윗의 분노를 잠재웠던 일도 했었는데,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윗에게 지금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이라는 말을 했어야 했다, 밧세바는. 그래서 말씀을 전해준 언니는 밧세바더러 멍청한 여인이라는 말도 했었는데... 그래서 그 언니는 현숙하고 현명한 아비가일을 놔두고 몸매만 예쁜 밧세바에게서 얻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 것은 다윗의 실수였다고까지 주장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할만하지 않나? 밧세바가 그 어떤 현명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하지만 이 책은 다르게 말한다. 물론 처음에 밧세바가 어떤 항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다윗이 선지자 나단의 질책을 듣고 몰랐던 그의 범죄 - 우리야를 죽게 한 일 - 를 밧세바에게 고백하지 않았겠냐고, 하나님께도 회개하는 이 때에 밧세바에게도 고백하지 않았겠냐고 한다. 그러면서 죽을 거라고 예언을 들었음에도 그 아이를 위해 울며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을 옆에서 가까이 본 밧세바에게도 뭔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 피해자, 방관자였을지라도 나중에는 다윗의 회개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성장하고 변화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반역을 꾀하던 아도니야도 밧세바에게 찾아와 다윗을 돌보던 아비삭과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 것이란다.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그 부분도 어찌보면 밧세바가 멍청해서 솔로몬에게 그 부탁을 가져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론 솔로몬이 적을 완전히 쳐부술 수 있도록 빌미를 마련해준 것이기에 밧세바의 지략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냐고 이 책은 말한다.

 

내가 이때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이 책을 알려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용모라면 그 용모대로, 미약한 힘이라면 그 힘대로, 놀라운 지혜가 있다면 그 지혜대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투기가 있다면 그 투기대로 그의 일을 하는데 쓰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렇게 실례를 들어서, 특히 내가 평소에 무시했던 인물을 통해 말해주니 확실하게 전달이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하나님이라는 것, 그 말외에는 할 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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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매튜 메이 지음, 박세연 옮김 / 살림Biz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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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은 이상하게도 처음볼 때부터 내 마음을 끌었다. ‘우아함’이라는 아리송한 형용사로 표현하는 것이 그 주제를 그다지 명확하게 명시한 것으로는 보여지진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단어가, 이 제목이 내 마음을 끌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마도 내 마음을 끈 그것도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명확하게 보여지지는 않아도 살며시 느껴지는 것이 ‘우아함’이란 단어가 아닌가 싶다. 무언가를 수행하고 만들어가기 위해서 복잡다단한 미사여구나 설명 방식, 전달 수단 등을 이용하지 않고서 깔끔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더 훌륭한 방식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것을 바로 ‘우아함’이란 불분명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그 ‘우아함’의 방식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된다. 수학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의는 깔끔하게 한 줄로 표현된 정의인 것처럼 실생활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깔끔한 것인니까.

 

이 책의 저자, 매튜 메이는 전작 『우아한 해결책』을 통해서 ‘신고 리서치 상’을 수상하면서 화제를 일으켰고, 전 세계의 기업과 정부 및 대학에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법과 혁신적인 사고를 이끌어 내는 방법을 주제로 활발한 강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는 ‘우아함’이란 이제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롭고도 놀라운, 그러면서도 간단하고 깔끔한 그런 문제 해결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그가 보고 느꼈던 이 세계에 통용되고 있는 수많은 ‘우아함’의 사례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고 명쾌하게, 우리에게 모호하게만 보이는 ‘우아함’의 의미를 전달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우리에게 적합한 ‘우아함’의 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에서부터 영국 보험회사의 광고에 이르기까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이팅에 이르기까지, 「인앤아웃」햄버거의 메뉴판에서부터 「애플」사의 아이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쏟아진다. 우리는 이것에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채워넣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래서 아마도 ‘사족’이란 고사성어도 생겼을 것이다. 뭔가를 더 하면 더 빨리, 더 잘 이루어질 거란 환상에 빠져 중복, 과부하, 낭비에 빠져 자유롭지 못하고 여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우아함’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아함’은 무언가를 뺀 상태, 그러니까 생략과 여백의 상태에서만 나올 수 있다. 교통이 혼잡하면 왠지 신호등이나 교통 시스템을 더 만들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네덜란드 북부에 위치한 드라흐텐에는 신호등이 없다. 단지 바닥을 빨간색 벽돌로 만들어 뭔가 특별한 표시만 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단순한 이 거리에선 과속도 줄이고, 교통사고도 훨씬 더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아이디어는 교통 조사원 출신의 기술자 한스 몬더만의 머리에서 나왔다. 인간과 기계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뒤집고 인간과 기계가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한 점이 그가 생각한 해결책이다. 좁은 S자 도로, 교통신호, 안내선, 가드레일, 제한속도 등을 하나씩 없애고 나니, 전에는 신호등이나 안내선만 믿고 아무런 생각없이 운전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런 시스템이 없으니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게 되고, 조금 더 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프랑스 자동차 부품 회사인 파비는 인사부를 없애고 모든 사원들의 조직을 수평적으로 재편성했더니, 지나치게 낭비되는 회사의 자원과 시간을 훨씬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예전에 있었던 인사부나 직책에 따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어떤 비품을 하나 써도 그 책임 소재가 상부에게 있으니 개선점을 찾거나 좀 더 오랫동안 쓸 경우에 일이 복잡해졌다. 그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실제 현장에 나가있는 현장 직원에게 그 책임과 권한을 주어 문제점이 있으면 바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도록 유도했던 것이 파비의 대단한 점이다. 그 회사의 모토는 경영진은 바보가 되고 현장 직원이 모든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니, 그 아이디어가 정말 대단하다. 인간에게라면 본능과도 같은 복잡함을 버리고 단순함을 찾는 것... 그것이 복잡해져버린 오늘 날에 우리가 찾아야 할 마지막 지향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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