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으로 밥을 짓다 - 스님들의 자연 밥상 비법
함영 지음 / 타임POP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스님들의 자연 밥상 비법 : 스님들의 소박한 밥상에 웰빙이 담겼다
 
이 책을 지은 함영 씨는  「스님들의 소박한 밥상, 알콩달콩 공양간, 함영의 밥맛 나는 세상스타들의 소박한 밥상, 밥상만사 등 여러 밥에 대한 글을 썼거나 쓰고 있는 분이다. 그런 이야기가 인연이 되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펴내게 되었는데 너무나 소박한 글쓰기에 마음이 빼앗겼다. 그녀가 쓰고 있는 글이 앞으로 단행본으로 묶여서 나온다면 당장 구매하고 말 정도로 소박한 글쓰기이다. 겉치레가 가득한 세상을 보노라면 순간적으로는 혹할 수도 있겠지만 점차적으로 질리기 마련인데, 정갈하고 소박한 먹거리와 읽을거리를 보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 책을 읽었던, 모두들 잠든 그 시간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참으로 마음이 포근해졌던 한 순간이었다. 비판적인 글읽기가 잘 안되는 요즘인데, 이 책은 언제 한 번 절밥을 얻어먹으러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겨주기도 했다. 정말로 절밥이 저렇게나 소박하고 맛날까 궁금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영향을 주고 받는 모든 것을 인연이라고 볼진대 그 중에서 스님을 공양하고 중생들을 섬기는 공양간에서 만난 인연 또한 대단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 자기 집도 아니고 남을 순전히 섬기는 마음으로 공양주 노릇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게다. 먼저 음식 솜씨도 뒷받쳐주어야함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에서 심정적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공경만 받다보면 사람들이 열심히 섬기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제 이익만 챙기는 것을 왕왕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공양주 노릇을 하는 사람들의 인연은 더욱 더 특별하지 않을까. 이 책에는 그런 특별한 공양주분들이 나오신다. 북한산 국립공원의 광륜사에서 모시는 공양주인 자성월 할매와 공덕심 할매와, 전남 함평 광암리 마을에 있는 용천사의 진정희 여사와 선덕행 보살, 부산 토성동 고갯마루에 위치하는 광성사에서 수행하시는 티베트 스님들까지 제각각 특별한 인연을 뽐내며 더불어 스님들이 드시는 음식이야기까지 들려주신다. 
 
불가에서는 속세와는 달리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김치 종류를 담글 때 젓갈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젓갈 대신 무엇으로 김치를 담그는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바로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비밀은 바로 요것이다. 다시마와 말린 표고버섯의 육수와 찹쌀풀, 그리고 조선간장~!! 다시마와 표고버섯 우린 물이 젓갈의 역할을 한다니 정말 독특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궁금했다. 절집 김치는 또 어떤 맛이 날까? 이런 소스를 가지고 일년 간 긴요한 음식이 되어주는 김장을 절에선 또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절집 식구들이랑 오고가는 보살님들을 대접하려면 몇 백 포기는 예사로 해내야 할 텐데, 진정희 여사와 선덕행 보살의 김장이야기를 전해들으니까 장난이 아니다 싶다. 이번에는 조촐하게 300포기로 정해졌는데, 이 정도가 조촐하다니 대단한 양이다. 그런데 그것도 쉽게 처리하는 그분들이 대단하다. 본격적으로 김장을 하면 삼일 정도 걸리는데 첫날은 배추 절이기이고, 둘째 날은 양념 준비하기와 배추 씻고, 마지막 날은 김장을 담근다. 척척 손발이 맞는 인연이 있으니까 이런 대대적인 작업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걸게다.
 
김장말고도 또 맛나 보였던 음식은 바로 젓갈이다. 이는 자성월 할매와 공덕심 할매의 이야기인데, 종류도 다양하다. 깻잎장아찌, 무장아찌, 김장아찌까지 다양하게 갖추어진 음식을 보니까 너무 맛나보여서 군침이 흐른다. 그 중에 가장 신기했던 것은 바로 김장아찌인데, 해산물인 김을 장아찌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만드는 법을 보자면, 먼저 김을 구워 잘게 찢어놓고 물이나 다시마 우린 물에 물엿과 간장을 넣고 끓여 뜨거울 때 김 찢어놓은 것에다 붓는다. 이 때 간장과 물엿과 물의 비율은 같아야 한다. 거기에 고추를 썰어넣고 깨와 참기름을 넣고 무치면 끝이다. 너무 간단하지만 맛나보이는 김장아찌이다. 이 외에도 박나물이나 갓김치, 비빔밥과 우거지된장국, 집장, 감잎차 등의 소박하지만 몸에 좋은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티베트 스님들이 소개해주시는 텐툭이나 모모, 고추치즈볶음도 별미이다. 티베트 음식은 우리네와 거의 비슷해서 거부감 없이 쉽게 따라해 먹을 것 같아 좋다.
 
책을 다 보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음식은 인연이라고~. 모든 식재료가 만나는 그 모든 과정들이 오묘하지 않은가. 같은 식재료라도 누구랑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맛이 날 수 있으니까. 공양주로서 살아가는 많은 보살들을 만나보니 절을 꾸려가는 그 오묘하고도 신비한 이야기가 바로 인연이니까 말이다. 이런 인연대로 맛나는 음식을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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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야마 만화경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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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의 첫 출간된 작품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아직 못 봤지만, 그의 다른 작품 『태양의 탑』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 모리미 도미히코님께서 또다른 책을 출간하셨다. 이름하여, 『요이야마 만화경』이다. 만화경은 어릴 때 자주봤던 삼각기둥 모양의 기구에 여러 가지 색지나 구슬을 넣어 흔들어서 보는 장난감인데, 말 그대로 한 번 봤던 이미지는 다시 보지 못한다. 그런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던 것은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품은 채, 보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만화경'이 이 소설에서 주요한 매개체로 사용되었다. 현란해보여서 어쩐지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환상의 세계가 마치 '만화경'이란 단어로 표현된다면 '요이야마'란 단어는 일본에서 크게 열리는 기온제를 의미한다. 지방축제가 화려하게 잘 개최되는 일본에서는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마치 야시장이 열리면 이렇겠다는 생각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일본의 축제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 그다지 보고 싶지도 않았었던 내가 이 작품을 보니까 일본의 축제를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는 것이다. 나 같이 낭만이 없는 사람도 축제의 열기에 취할 수 있다면 아마도 모리미 도미히코님은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총 여섯 편의 소설이 연작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모두 한 날에 일어난 일을 다양한 군상들의 관점과 상황에서 펼쳐지는데, 정말 키득거리면서 읽었던 부분이 있을 만큼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이루어낸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섬뜩한 부분도 있고, 다 읽고 나서도 풀리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똑같은 상황에서 이편에서 바라본 관점과, 저편에서 바라본 관점으로 나뉘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제일 처음 등장하는 「요이야마 자매」와 「요이야마 만화경」이 어떤 자매의 언니 편과 동생 편으로 나뉘어진 이야기이고, 「요이야마 금붕어」와 「요이야마 극장」이 서로 연결된 이야기라 읽는 재미가 있다. 제일 묘한 느낌이 드는 작품인 「요이야마 회랑」과 「요이야마 미궁」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읽으면 딱 어울려서 순서배치가 상당히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묘한 느낌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일 이해가 안 가고 어려웠던, 아니 무서웠던 부분은 한 자매의 언니 편의 이야기가 나왔던 「요이야마 만화경」이다. 작품집의 제목과 같아서 무언가 의미는 있겠다고, 아마 이런 이름이 붙인 이름이 나오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저 한 바탕의 꿈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서 조금은 섬뜩했다. 이런 류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엔 제대로 당한 듯 하다. 도미히코 씨, 가만 안 두겠어~~
 


 
“내 하나 묻겠는데, 이런 일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데?”

물어봐 주서 고맙다. 의미는 없어, 전혀.”

 

오토카와는 기쁜 얼굴로 웃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고교 친구만 보면 항상 놀려대길 좋아하는 오토카와의 기상천외하고도 절묘한 사기행각을 다 마무리하고 나서 친구랑 한 대화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친구를 속이면서 재미를 찾는, 아주 한량스러운 일을 즐기는 오토카와를 내 상식선에선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돈이 얼마나 많이 들던, 친구가 얼마나 황당해하던 상관없이, 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 아무런 의미도 없이 - 그저 놀려먹는 재미가 있지 않나.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하고 친목도 다지기도 하고 노력하면서 서로의 우애를 돈독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으니까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실 목적과 명분이 살아있는 일을 시도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좋은 명분을 내세워 제 잇속만 챙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아무 의미도 없이 이렇게 노는 것에 초점을 맞춰 친구를 놀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인 「요이야마 금붕어」와 「요이야마 극장」은 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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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키티 성공신화 - 전략적으로 디자인하고, 치밀하게 마케팅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라!
김지영 지음 / 살림Biz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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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대학을 다닐 무렵 어느 잡지에서 ‘키티’로만 꾸며진 카페 소개를 읽은 적이 있다. ‘키티’로 된 앙증맞은 쇼파에서부터 조그만 인형들, 소품들까지 ‘키티’가 아닌 것이 없는 카페였는데,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키티’ 모양이 그려진 오므라이스와 케익들이었다. 캐릭터로 음식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리고선 ‘키티’는 내게 별 존재감이 없는 캐릭터로 남아버렸다. 오므라이스 위에 올려진 ‘키티’ 그림은 너무나 앙증맞고 아름답기까지 했었지만, 이미 대학생이 되어버린 내겐 그 캐릭터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어떤 캐릭터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국의 유명한 토끼 캐릭터인 ‘피터 래빗’도 좋아하고, ‘벅스 바니’나 ‘곰돌이 푸우’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캐릭터이기에 어른이 된 이후에도 캐릭터는 충분히 좋아할 수 있다. 대학 때 만난, 그것도 이미 유행이 다 지난 후에 만난 「포켓몬스터」란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피카츄’만 해도 너무 귀여워 인형이나 스티커 사느라도 열을 올렸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라면 어른에게도, 아니 구매력이 있기에 어른이기에 더욱 어필이 가능하다. 그런데 ‘키티’라는 캐릭터는 나랑 어느 부분이라도 접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끌리지 않았던, 내게 별로 이뻐보이지 않았던 ‘키티’ 캐릭터가 35년간이나 장수해왔던 캐릭터로 자리잡았고 전세계적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내심 알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내가 원래 유행을 늦게 타는 편이라 지겨울 만큼 눈에 많이 비춰주면 유행이 한풀 꺽였을 때 겨우 좋아하게 되어 이 캐릭터에 대해서도 뒤늦게 호기심이 일었던 것이다. 처음엔 ‘키티’로 만든 물건이 그다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책으로 만나보니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디자인이 훨씬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놀랐다. 만약 엄마가 어릴 적부터 ‘키티’로 된 머리핀부터 사주었다면 또 달랐을까. 어릴 적엔 전혀 보지도 못했던 ‘키티’물품에 환장하며 책을 들여다봤다. 키티 디자인은 기본적인 컨셉 안에서 자유롭게 변형되어 인기를 누려왔다는데 나는 얼굴만 댕그러니 있는 캐릭터만 제일 먼저 떠오르고, 또 그 모양이 제일 예쁘다. 지금까지 ‘키티’를 만든 디자이너는 세 명인데 그렇게 다양한 모양을 시도한 것은 2대 수석 디자이너인 요네쿠보 세쓰코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얼굴만 나오는 것을 만든 디자이너는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는 3대 수석 디자이너인 야마구치 유코이란다. 마지막 3대 디자이너는 1980년부터 햇수로 30년째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니까 ‘키티’를 만든 엄마는 아니여도 실질적인 엄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매년 계속 하고 있는 키티 사인회도 그녀가 시작한 것인데, 그렇게해서 조금씩 세상에 ‘키티’를 알렸다니까 역시 일등공신이 아닐까 한다.

 

입이 없어서 대사가 나오는 애니매이션에서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입이 없기에 감정이입이 가능한 독특한 캐릭터였기에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팬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신생아용품에도, 초등학생에게도, 10대 학생에게도, 20대 여성에게도, 미시족에게도, 그리고 가전제품에도 사용할 수 있는 전전후 캐릭터가 되었다. 그리고 10대를 잡기 위해서 모노톤으로 과감하게 바꾸기도 하고 처음에 나왔던 몸도 자유롭게 바꾸기도 하고 그때 그때 유행하는 상황에 따라 캐릭터를 자유롭게 변형시켰던 것도 장수하는 비결 중의 하나였다. 아시아 캐릭터가 전세계를 뒤흔든 아주 독보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30년 이상 유지되는 캐릭터가 살아숨쉬는 날을 오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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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양장)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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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책을 학살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다. 음, 언뜻 들어도 과거에 자행되었던 몇 가지 경악스런 사건들이 떠오르는 단어이긴 하지만 그래도 생명이 아닌 책에게 '학살'이란 단어를 쓰다니, 참 독특했다. '책의 학살' 이란 뜻의 libricide란 영단어는 나치의 유대인 인종 청소로 대표되는 인종말살 즉, genocide란 영단어와 '문화말살'이란 ethnocide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옥스퍼드 사전에도 정의되어 있는 이 단어는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책'을 '죽임'을 뜻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책의 학살'은 정부가 승인한 책과 도서관 파괴를 가르치는 용어로 쓰이는데, 그 중 특히 20세기에 자행된 일들을 말한다. 실례를 들자면,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나 세르비아의 보스니아 내전, 이라크가 쿠웨이트에게 자행한 일들, 중국공산당이 티베트에게 저지른 일 같은 것들. 사실 그런 일이 자행된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편안히 매스컴에서 보도되어진 모습만 전해받는 우리에게도 지식인들과 함께 책을 불태우고 도서관을 파괴하는 일들은 경악스러운 일로 비춰지는데 그것을 눈 앞에서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이 안 간다. 내가 이렇게 책을 끔찍이도 사랑하게 되기 전에도 책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인간들만 사는지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치의 유대인 책 파괴나 세르비아의 무차별적인 폭격에는 인간의 한순간에 벌어지는 광폭한 광기 같은 악마성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의 산물임을 증명하는 여러 흔적들이 남아있다. 먼저 이런 '책 학살'은 절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인종말살'이나 '문화말살' 정책과 함께 진행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말은 책이 곧 문화의 보고이자 정수임을 증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한 인종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지식인과 그 지식인의 지식 창고인 책이 더불어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책이 같이 말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왜 자행되는 것일까. 왜 한 민족을 청소해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같은 인간에게 드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답할 수 있으려면 우선 역사적인 상황을 알아야 한다. 일단 나치 독일을 예로 들어보면,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암울한 상황에서 독일은 자신들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위해서 철저하게 전체주의와 민족주의를 신봉했다. 그런 사상을 신봉하기 위해서 그 사상과 배격되는 다른 사상을 일체 거부했는데, 이 때 나타난 것이 '책 학살'이다. 자신들이 신봉한 사상을 1%라도 위협할 수 있는 사상이 있다면 철저하게 배격하고 배제했는데, 그렇다보니 개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휴머니즘과 인권을 보장할 수 없었다. 워낙에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요시하는 전체주의와 선민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독일이다보니까 자신들과 조금만 달라보여도 금방 마음이 불안해져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종청소다.

 

자신이 옳다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나치의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다른 의견이라도 존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인간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원칙을 지킨다면 '책 학살'이나 '인종말살'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 보장이 중요하다고 해서, 휴머니즘이 기본 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강요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해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것이니까 말이다. 또한 지식인들을 자신의 권력대로 조종하기 위해서라도 '책 학살'을 이용하기도 한다. 나치 독일이 인종주의라는 근거를 내세워서 유대인들은 비천하고 아리아인들이 가장 우수한 인종임을 주장했던 것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책을 버리고 자신의 사상을 뒷받침하는 책들만 남겨두고 보급한다면 뭔가 알고 있다는 지식인까지도 최면을 걸 수가 있다. 사회분위기를 한 가지 사상만을 옳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지식인들을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그런 지식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책이 없는 것을 찬양하고 심지어 스스로 개인 소장물을 파괴하는 행동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기까지 한다면 이런 최면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상을 통제하는 방법으로도 '책 학살'을 이용하는데 닫힌 사회에서는 그런 최면이 절대적으로 유지가 되기 때문에 인류 전체의 보고인 도서관을 파괴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마는 끔찍한 일을 벌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인류 문화 유산을 파과하는 행위에 대해서 국제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책 학살'이 인류 문화의 발전에 위배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면서 강제적인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국제사회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정신을 차렸다. 먼저 헤이그조약, 로에리히조약을 체결했고, 더 나아가 유엔의 설립과 유네스코의 설립으로 문화재를 보호하는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인류의 번영에 위배되는 행위를 마음껏 자행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자마자 움직인 것이다. 그러나 각 민족의 중심 가치가 국제사회에서 생각하는 휴머니즘과 어긋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탈레반이 종교적인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고대의 바미안 석불을 파괴했을 때도 국제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단 탈레반이 그런 일을 자행한 것은 서구열강들이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에는 원조를 해주면서 아이들이 굶어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굳이 그런 일을 행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도서관과 문화재가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모든 민족들이 공통된 가치로 생각하고 있어야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가 있는데, 모든 민족의 가치가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일단 이제 시작이니까 개방된 생각으로,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해서 차차 이루어나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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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사의 천공법 - 천천히 공부하는 학습법
도임자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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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신 분은 울산과학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 지금은 울산광역시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기셨지만 항상 아이들의 학습법에 대한 관심을 끊이지 않았던 탓에 고민하고 배우고 묻는 과정에서 얻어진 학습법을 실제로 활용해보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 발간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나도 학습에 대해 관심은 많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아이들에게 놀라운 관심과 애정을 쏟으면서 아이들의 ‘팔자’를 바꾸는데 열의를 보이셨다는 것이 대단하다 싶다. 교장선생님으로서 해야할 일도 많이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런 분이 계셨기에 많은 아이들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고 이 나라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말해서, 현재 아이들이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다못해 중학생들에게 ‘객관적’, ‘주관적’의 뜻을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기초 개념을 알고 있는 것이 더 말이 안 되지 않을까. 그런 아이들에게 마치 순간만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르는 단어를 다 알려주고 꼭꼭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방법으로 학습을 지도했던 지난 나를 되돌아보니, 정말 한심했다. 나도 급한 성격 탓에 아이들에게 ‘빨리, 빨리~’만을 외쳐왔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천천히 공부하는 학습법, 즉 「천공법」은 내가 꼭꼭 씹어서 입에 넣어주었던 것을 혼자서 맛나게 씹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습법이다. 인간에겐 무언가를 탐구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그것이 책이거나 십자수이거나 게임이거나 사진인 것처럼 그 방향이 다양하게 뻗어나가서 공부와 관계없어 보여서 그렇지, 무언가를 알고 싶고 깨달아가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도 공부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자신을 소개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공부를 할 때의 원동력이 되는 것 중에 힘들고 괴로운데 엄마 때문에 한다든지, 혼나기 때문에 한다든지 하는 것은 길게 가지 못한다. 그저 그 순간만 모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알아가는 기쁨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나는 수년간 학원에 있으면서 수동적으로 엄마 말만 곧이곧대로 하다가 나중에는 공부와 담을 쌓는 아이들을 많이 봤다. 엄마가 다니라고 하는 학원이나 과외를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서 이미 그 아이의 안에는 공부에 대한 티끌만큼의 호기심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도임자 선생님은 아이 스스로 깨달아가는 기쁨, 공부를 하는 기쁨을 알려주려고 「천공법」을 개발하셨다. 이 방법은 외국의 여러 학교에서의 교수법도 응용한 아주 단순한 학습법이다. 엄마이든 선생님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니 아이가 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적절하게 칭찬만 잔뜩해주는 학습법인 「천공법」은 아이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자 하는 과정이다. 우선 교과서보다 자세한 참고서를 준비해서 정독을 천천히 한다. 그러면서 모르는 단어는 국어사전을 이용해 찾아서 적어놓고 계속 읽는다. 한 번 읽을 때마다 시간을 참고서 여백에다 적어놓는데, 보통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아이가 자신감이 붙은 것 같으면(혹 아니여도) A4 용지에다가 보지 않고 쓰도록 한다. 다 적어내는 방법으로 한 단원을 끝내면 칭찬을 바가지로 부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선 단원별, 과목별로 제본을 뜨면 이제 반쯤 되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로 정독을 하고 그 다음에 A4 용지에 쓰면 100%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수학과 과학을 방학 동안에 마무리하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다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 수학, 과학이기에 이렇게해서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면 다른 과목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학습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습관을 자리잡도록 100일만 엄마 또는 선생님이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놀 궁리만 한다. 그것만 잡아준다면 다음에는 일사천리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할 때 모르는 단어나 문제가 나와도 절대 가르쳐주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찾아낼 때까지 기다리면서 자세는 바른지, 주변 정리는 잘 하는지 꼭 확인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는 산책이나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인성을 기본으로 하면 나머지 공부 또한 자연히 따라오기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또한 이 책에는 중등뿐만 아니라 어린 초등생의 이야기도 있다. 우선 고학년이면 같이 할 수 있는데 일단 인성이 중요하므로 인사하기, 자세 바르게 하기, 주변 정리 하기부터 젓가락질 바르게 하는 것까지 손봐 주셨다. 사실 그런 것부터 가정에서 교육해야 하는데, 정말 요즘엔 뭔가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집에서는 그저 공부하는 기계로만 아이를 키우니... 사실 공부 더 잘하는 데 관심둘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바꾸는데 더 힘써야 하지 않을까?

 

독일 초등학교에서는 숫자 1에서 10을 배우는데 일년이 걸린다고 한다. 다양한 사물을 가지고 숫자 1을 한 달동안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기본부터 닦으면 그 이후에 나오는 어려운 개념은 자연히 스스로 터득할 수가 있단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아이들이 태반이고, 수업보다는 과외나 학원을 선호하는 세상이라니~ 정말 근본부터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근본부터 지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 바른 자세, 바른 인사법, 바른 교우관계, 바른 사제관계를 가르치고, 점수에 연연하기보다 기본 개념에 연연한다면 충분히 우리도 바뀔 수 있다. 나는 그리 믿는다. 앞으로 교육과정이 어떻게 바뀌든 기본부터 닦아서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으면, 그렇게 도와주는 부모가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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