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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양장)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 알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책을 학살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다. 음, 언뜻 들어도 과거에 자행되었던 몇 가지 경악스런 사건들이 떠오르는 단어이긴 하지만 그래도 생명이 아닌 책에게 '학살'이란 단어를 쓰다니, 참 독특했다. '책의 학살' 이란 뜻의 libricide란 영단어는 나치의 유대인 인종 청소로 대표되는 인종말살 즉, genocide란 영단어와 '문화말살'이란 ethnocide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옥스퍼드 사전에도 정의되어 있는 이 단어는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책'을 '죽임'을 뜻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책의 학살'은 정부가 승인한 책과 도서관 파괴를 가르치는 용어로 쓰이는데, 그 중 특히 20세기에 자행된 일들을 말한다. 실례를 들자면,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나 세르비아의 보스니아 내전, 이라크가 쿠웨이트에게 자행한 일들, 중국공산당이 티베트에게 저지른 일 같은 것들. 사실 그런 일이 자행된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편안히 매스컴에서 보도되어진 모습만 전해받는 우리에게도 지식인들과 함께 책을 불태우고 도서관을 파괴하는 일들은 경악스러운 일로 비춰지는데 그것을 눈 앞에서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이 안 간다. 내가 이렇게 책을 끔찍이도 사랑하게 되기 전에도 책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인간들만 사는지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치의 유대인 책 파괴나 세르비아의 무차별적인 폭격에는 인간의 한순간에 벌어지는 광폭한 광기 같은 악마성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의 산물임을 증명하는 여러 흔적들이 남아있다. 먼저 이런 '책 학살'은 절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인종말살'이나 '문화말살' 정책과 함께 진행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말은 책이 곧 문화의 보고이자 정수임을 증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한 인종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지식인과 그 지식인의 지식 창고인 책이 더불어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책이 같이 말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왜 자행되는 것일까. 왜 한 민족을 청소해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같은 인간에게 드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답할 수 있으려면 우선 역사적인 상황을 알아야 한다. 일단 나치 독일을 예로 들어보면,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암울한 상황에서 독일은 자신들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위해서 철저하게 전체주의와 민족주의를 신봉했다. 그런 사상을 신봉하기 위해서 그 사상과 배격되는 다른 사상을 일체 거부했는데, 이 때 나타난 것이 '책 학살'이다. 자신들이 신봉한 사상을 1%라도 위협할 수 있는 사상이 있다면 철저하게 배격하고 배제했는데, 그렇다보니 개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휴머니즘과 인권을 보장할 수 없었다. 워낙에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요시하는 전체주의와 선민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독일이다보니까 자신들과 조금만 달라보여도 금방 마음이 불안해져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종청소다.
자신이 옳다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나치의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다른 의견이라도 존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인간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원칙을 지킨다면 '책 학살'이나 '인종말살'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 보장이 중요하다고 해서, 휴머니즘이 기본 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강요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해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것이니까 말이다. 또한 지식인들을 자신의 권력대로 조종하기 위해서라도 '책 학살'을 이용하기도 한다. 나치 독일이 인종주의라는 근거를 내세워서 유대인들은 비천하고 아리아인들이 가장 우수한 인종임을 주장했던 것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책을 버리고 자신의 사상을 뒷받침하는 책들만 남겨두고 보급한다면 뭔가 알고 있다는 지식인까지도 최면을 걸 수가 있다. 사회분위기를 한 가지 사상만을 옳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지식인들을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그런 지식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책이 없는 것을 찬양하고 심지어 스스로 개인 소장물을 파괴하는 행동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기까지 한다면 이런 최면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상을 통제하는 방법으로도 '책 학살'을 이용하는데 닫힌 사회에서는 그런 최면이 절대적으로 유지가 되기 때문에 인류 전체의 보고인 도서관을 파괴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마는 끔찍한 일을 벌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인류 문화 유산을 파과하는 행위에 대해서 국제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책 학살'이 인류 문화의 발전에 위배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면서 강제적인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국제사회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정신을 차렸다. 먼저 헤이그조약, 로에리히조약을 체결했고, 더 나아가 유엔의 설립과 유네스코의 설립으로 문화재를 보호하는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인류의 번영에 위배되는 행위를 마음껏 자행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자마자 움직인 것이다. 그러나 각 민족의 중심 가치가 국제사회에서 생각하는 휴머니즘과 어긋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탈레반이 종교적인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고대의 바미안 석불을 파괴했을 때도 국제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단 탈레반이 그런 일을 자행한 것은 서구열강들이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에는 원조를 해주면서 아이들이 굶어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굳이 그런 일을 행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도서관과 문화재가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모든 민족들이 공통된 가치로 생각하고 있어야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가 있는데, 모든 민족의 가치가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일단 이제 시작이니까 개방된 생각으로,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해서 차차 이루어나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