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야생중독
이종렬 지음 / 글로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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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광활한 평야에 작열하는 태양, 더불어 한가롭게 노니는 아기 사자 무리들... 이것이 아프리카 평원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아프리카 사막에는 한 번 가고 싶다는, 혹은 그곳에 내 뼈를 묻고 싶다는 자학적인 충동을 느낀 적은 있지만 아프리카는 터를 잡아 살아갈 곳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저 지평선을 바라보이는 자연환경이 부럽고, 살아있는 동물들을 보기엔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지 집이 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 지구상에서 제일 살고 싶지 않은 나라를 꼽으라고 한다면 적어도 5등 안에는 들지 않을까, 아프리카란 나라는? 그 나라에 살아가는 주민들이 무식하다거나 무능력하다곤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네들이었으니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멸종되지 않고 민족을 이루어나갈 수 있었을 거란 감탄을 하곤 한다. 올림픽 육상 종목 중에서 흑인 아닌 선수가 얼마나 되나. 각기 국적만 다를 뿐 종족은 다 한 종족이더라. 그렇게 따지면 가장 강인한 종족은 흑인이고, 그랬기에 그 끔찍한 노예였던 시기가 있었어도 그것이 이겨내고 존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햇볕을 보면 주근깨나 기미가 얼굴에 가득해지는 백인들이 노예로 되었더라면 바로 멸종(?)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아프리카란 야성적인 곳에 아예 가족까지 다 불러 모아 터를 잡아 앉아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쓴 글은 아마 여행기라기보단 생활기라고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다큐멘터리를 찍느라 아프리카를 10년이 넘도록 다녔댄다. 10년이 넘도록 17개국을 돌아다녀보니 아프리카가 매혹적이란다. 그래서 아예 짐을 싸서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왔단다. 나 같은 겁쟁이가 가족들 중에 한 사람 끼어있었다면 가족들의 반대가 있지 않았을까 살짝 우려도 해보지만, 뭐 일단 왔다니 접어두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가 아프리카에 매혹돼 이주를 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탄자니아에 있는 아름다운 세렝게티를 세계에 알린 故 휴고 반 라윅 이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인 이종렬, 그가 세렝게티 무상출입 촬영권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촬영료가 하루 씩해서 100달러가 넘는다는데, 촬영을 하다보면 누가 지나가는 것을 세,네 시간씩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사자를 하루 종일 따라다녀도 하품 한 번 하는 것을 찍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큰 혜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이 가장 아름다웠나. 어쨌든 누구 말마따나 한국인은 손으로 하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 있는 듯 싶다.

 

이 책은 그가 아프리카에 온 주된 목적인 야생의 모습이 대다수 나와있다. 거의 사진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매혹적인 자연의 사진들이 대거 들어가있고, 그가 본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등장한다. 아무래도 아프리카라고 하면 자연 풍광이 기대가 되는데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스라이 안개 속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나 저녁 놀이 지는 평원 그림자는 돈 주고도 사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그리고 사자의 생태와 하이에나와의 공생 관계, 들개와의 상관 관계도 자세히 나타나있고, 가장 중요한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흔들리는 생태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딜 가나 똑똑한 줄 아는 인간이 개입하면 생태계로선 스스로 조절하는 기능을 잃어버리기 마련인 듯 하다. 사자가 전염병에 걸려 앓고 있을 때, 들개들이 모여 공격하는 경우가 늘었던 것을 보고 들개의 개체 수를 줄인다는 것이 멸종시켜버린 것이다. 그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사자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들개가 없어지니 사자의 수가 늘었고, 그러다보니 사자끼리 쟁탈전이 빈번해진데다가 먹이가 없으니 하이에나가 사자 새끼뿐 아니라 표범이나 치타의 새끼까지 죽여 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먹을 것이 없어진 표범이 8살짜리 아이를 하나 물어 죽이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인간이 개입해서 큰 코 다친 사례가 아닌가 한다.

 

그런 양육강식의 이야기 말고도 멋진 마사이 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옛날 국경이란 경계가 없을 때부터 마사이족은 국경을 넘나들며 누처럼 유목을 했던 민족이다. 지금도 문명을 거부한 채 제 부족의 풍습을 지켜나가고는 있지만, 몇몇 마사이족들은 자기 문화를 보여주고 돈을 받으면서 부를 축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젊은 마사이 전사들이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고 자기만의 부족을 만들어가는 것도 보이는데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강인하고 용감한 마사이족들이 아직까지도 존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싶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란 증거물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따뜻하고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그런 아프리카가 가난해서 무궁한 자원을 제대로 개발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곤 많은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엔 희망이 없다고 한단다. 하지만 그네들, 아프리카인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앞으로 100년 후에 충분히 이 세계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여긴다니, 다행한 일이다. 육체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그들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발휘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조금 아프고 가난하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니까 기대가 된다.

 

참고로, 아프리카의 야성적이고 귀여운 동물 사진을 담은 엽서가 같이 왔다. 책 속에서 간직하고 싶은 사진들은 다 모아두었나 싶다. 너무 예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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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창조 -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이어령.강창래 지음 / 알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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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과 나눈 대화를 담은 인터뷰집 『유쾌한 창조』는 이제껏 접했던 지승호 인터뷰어가 아니라 강창래 인터뷰어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 읽을 땐 이제까지 익숙했던 인터뷰어가 아쉽단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였으나 다 읽고 나니까 인터뷰이가 이어령이었기에 이런 방법밖에는 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나름의 수긍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문학평론가, 소설가, 에세이스트, 희곡작가, 시인, 대학교수, 언론인, 전 문화부장관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해온 터라 이제까지 그가 쏟아놓은 글은 어마어마하다. 강창래 인터뷰어의 말을 빌리자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어령을 검색해보면 단행본 355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도 147건이 뜬단다. 중복되는 책도 몇 권 있을 테니 거의 반만 잡아도 250여 권이 될 텐데 절대 한 번에는 다 볼 수 없는 양이다. 넉넉히 잡아 2년 동안 읽으면 모를까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글들이다. 그런데 이제껏 그의 글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니, 이 세기의 지성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햇수가 벌써 31년이 되었다.

 

문화부장관으로 계셨을 때 얼핏 신문지상에서 그를 본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변명을 해보자면 그가 워낙에 대단한 인물이여서 그의 글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하, 그가 우리 문단의 우상과 같은 존재들을 신랄하게 비판을 했던 글 「우상의 파괴」를 발표한 때가 1956년, 스물세 살 때의 일이고, 첫 단행본 『저항의 문학』을 낸 때가 1959년의 일이었으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 시대를 휩쓸었던 인물이었다. 그 후 10년쯤을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다시 13년쯤을 『문학사상』 주간으로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굳게 자리매김을 해왔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진짜 이상하다. 그런 대단한 인물을 내가 그토록 뒤늦게 알게 되다니... 보통 한 번쯤 들어보는 한국소설은 중고등 필독서 목록에 들어가 있지 않는가. 마치 그 외 책들은 읽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매해 필독서 목록에 들어가는데 이어령의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또한 그의 글을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언어영역 지문에 나온 적도 없고, 교과서에 실린 적도 없으니 이것 참 어색하다고 해야 할지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거참 헷갈린다.

 

나중에 가서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대단한 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어령은 항상 정확한 평가를 받지 못했단다. 그가 했던 수많은 인터뷰나 대담에서도 인터뷰어의 이해조차 구하지 못해서 그렇게 어긋한 소통을 보여주곤 했다고. 내가 태어나기 전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치기 어린 젊음에 겨워 세상의 모든 규칙에 대해서 저항하고 비판의 칼날을 겨누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비상하지만 과격한 표현을 일삼는 한 지식인이,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상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계속 받아왔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될까. 서른여섯이 되기 전에 12권의 전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써왔고, 그가 쓴 글들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그로 인해 돈도 꽤 벌었으니 우리 같이 보통 사람들보다도 같은 지식인들끼리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같은 사람인데 혼자서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혼자서만 다 해먹는 것을 보니 배알이 꼬였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과 했던 불온시 논쟁이라는 사건이 생겼고, 그로 인해 그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작가의 작품이 청소년들 필독서 목록에 들어가고,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등장하고,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어떤 뒷배경을 필요로하는 일이다. 같은 문학계의 스승 밑에서 수학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문파가 있다면 이어령도 분명 큰 세력을 얻었을 것이다. 그럴 만한 대단히 비상한 능력과 사람을 부릴 수 있는 파워풀한 카리스마를 가졌기에. 하지만 보통 인간들은 천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에게 없는 것을 끄집어 내고 뒤에서 험담하고 자기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기에 아마도 이어령은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고독과 싸워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라 하는 족속들은 모두 자기와의 싸움과 고독과의 한 판승을 해야 하는 인종들이지만 그래도 같은 문학계에서도 외톨이였다면 상당히 외롭지 않았을까. 그가 천재였기에 그것을 감당해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노인이 된 지금은 다른 사람이 싸움을 걸어도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지도 않고 상처 받지도 않고 덤덤히 받아줄 수 있게 되었단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돌아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 인간이?

 

아마도 그래서 지성에서만 머물던 그가 영성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예전 얼핏 봤다던 신문 기사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장관이 된 이어령이 앞으로 계획인지 무언가를 발표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가 세례를 받는 기사이었다. 이제는 그 전모를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세례받는 것까지 기사화 되는 그의 삶에 조금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런 개인적인 체험에 대해서도 기자회견을 해야 한단 말인가. 책을 보니, 기자들 몰래 하려고 했던 그의 계획이 무산되었기 때문이었음을 알 순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으로 사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기독교에 대해서 무심하기도 하고 때론 공격적이기까지 했던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단했다는 것에 대해 놀랍기는 하다. 솔직히 명예도 있고 나이도 있고 어느 정도 누릴 것은 누려야 한다고 생각할 법도 한 때에 이제껏 자기가 내뱉었던 말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어찌 신경쓰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껏 이 책으로 알게 된 그는 고리타분하고 명예나 체면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닌 탓에 자신의 파격적인 행동이 어울리기까지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것도 죽을 준비였는데, 그것은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창조 학교’, ‘한국인 이야기’이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인데, 이것 모두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시작한 일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한국문화론과 일본문화론은 써봤지만 중국문화론은 너무 방대하여 엄두도 못내고 있을 정도로 어려운데 이것을 해내기 위해 여러 학자들을 모집하고 그들을 진두지휘하려는 일을 하려니까 돈도 많이 들고 자신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혼자서만 일을 하다가 다른 사람과 같이 하려는 것도 부담되고 자금문제도 부담이 된다고. 또 창조 학교는 한국인의 수준 높은 창조성을 전국민 차원에서 개발하여 소수의 창조성이 높은 사람들을 말려죽이는 일이 없도록 만들고 싶단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다가 경기도지자체의 후원을 받고 있어서 앞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많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 이야기는 본인이 쓰면 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편견을 뛰어넘어 근현대사를 조명해낼 자신이 없다고.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왔던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파악한 대로 쓰겠지만 그것이 또한 하나의 한계를 가지고 있을까봐, 혹은 글쓴이가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는 인정해준다고 해도 자신의 편견이나 한계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걱정이란다. 

 

대단히 의미있는 일을 생각해내고 추진하는 것도 대단한데,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시도하는 것이 더욱 대단해보인다. 자신의 시도가 분명 실패하겠지만, 그 실패가 실패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솔직히 말년에 실패했다는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기에 전무후무한 대단한 천재가 아닌가 한다. 그것도 파격적인 의식 구조를 가진 천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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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2 - 천문편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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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인기 칼럼 '조용헌 살롱'을 1권 인사편, 2권 천문편으로 나누어 동양학 사전처럼 세밀하게 재구성한 책 중의 2권 천문편이다. 그런데 1편의 서평에도 말했다시피 그의 칼럼을 찾아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 이 책이 그의 칼럼을 모아 낸 책일 거라 알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차라리 책 제목은 그대로 두고, 부제라도 '조용헌 살롱' 칼럼이라고 표기라도 해놨다면 조금은 접근성이 용이했을 것이다. 서문에도 나왔듯이 아예 제목을 현학적인 '동양학 강의'라고 하지 말고 강호에서 배운 이야기란 의미에서 '강호동양학'으로 했다면 체계적인 학문의 깊이를 기대하고 읽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개인이 강호에서 배운 여러 가지 이야기와 학문적으로 배운 동양 사상의 깊이 있는 내공이 두루 섞인 쉽고도 깊은 이야기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줘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은 너무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것만 같은 겉표지와 제목에 놀라 보려들지 않을까 봐. 혹은 궁금하다. 칼럼 제목과도 동일한 제목의 책도 나와있던데, 그 책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하는 것들이. 하지만 이제 처음 접하는 조용헌 저자의 깊은 내공을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

 

2권 천문편은 자연, 천문, 종교, 운명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의 자연 부분은 말 그대로 산, 바다, 동물, 식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천문 부분은 날짜, 주역, 풍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종교 부분은 종교랑 유뷸선에 대해 잡담을 하고, 마지막 운명 부분은 예언, 생사, 사주, 관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이 천문편이니 아무래도 천문이 많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운명 부분이 가장 분량이 많다. 보통 사람들도 운명 부분에 관심이 더 많지 않을까. 그래서 책의 이런 구성은 사람들의 관심도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학문으로서의 주역에 호기심을 느끼긴 했지만 읽기에는 사주나 관상 부분이 훨씬 더 쉬웠으니 말이다.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옛적부터 사주나 팔자를 보고 관상을 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사주가 나쁘다고 나오면 썩 기분이 좋지 않을 게 아닌가. 반대로 사주가 좋게 나와서 내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내 손해가 아닌가. 그러니 풍수, 사주나 팔자 같은 것은 신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이해해두면 좋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이 세상에 나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사군자라 이름 하는 매(매화), 난(난초), 국(국화), 죽(대나무) 중에서 난초를 빼내어 매, 연(연꽃), 국, 죽으로 불러도 군자를 의미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하면서 설명해준다. 매화는 이른 봄에 추운 눈을 이기며 꽃을 피우는 점이 군자 같고,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워도 더러움이 물들지 않으며, 국화는 서리를 맞아도 꿋꿋하게 꽃 피워있는 점이 군자와 비슷하고, 대나무는 겨울의 흰 눈 속에서도 청청함으로 군자로 이름한다. 난초는 왜 빠졌는가. 그가 군자의 상징으로써 특별히 모자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연꽃이 여름에 날 뿐. 그래서 난초의 성품도 찬양한다. 난은 향기가 멀리 가고, 멀리서 맡으나 가까이서 맡으나 향의 농도가 일정한 점이 군자의 성품과 같다고 본다. 또한 뿌리가 90%이상이 썩어가도 그 잎은 멀쩡하게 유지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자기 어려움을 표현하지 않는 군자와 같다고 하고, 빗물과 깨끗한 이슬만 먹는 것도 군자가 닮아야 할 성품이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연도 좋고 난도 좋다고, 너도 좋고 나도 좋다고 그렇게 다짐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돼지나 오동나무, 방어, 민어, 새, 매화, 참나무, 작약, 백도화 같은 동식물이나 금강산, 월출산, 지리산, 화왕산, 영산강, 관음포, 해운대, 태안 앞바다 등 산수를 한꺼번에 알고 이해할 수 있어서 자연 부분이 제일 제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 외에는 별로 좋아하는 부분이 아니여서 그런지 그리 쉽게 읽히진 않는다. 인간의 육체가 지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명당이나 산수, 관상, 사주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짓는 것처럼 보여서 그다지 운명 부분에 대해선 반갑지 않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어쨌든 좋은 재담꾼을 하나 만나서 오랜 만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강호유람은 하지 못하지만 내 대신 강호를 유람하고 좋은 이야기만 선별해서 들려주는 사람이 있으니 이것도 복이로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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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1 - 인사편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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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인기 칼럼 '조용헌 살롱'을 1권 인사편, 2권 천문편으로 나누어 동양학 사전처럼 세밀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그런데 그의 칼럼을 찾아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 그의 이름조차 생소하고 제목의 '동양학'이란 단어부터가 처음엔 내게 두려움만 안겨주었다. 하지만 학문은 서양 것과 동양 것을 두루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해서 고른 책인데, 조금은 허탈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고 간단한데다가 동양학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난이도로 친절히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가 신문 칼럼을 편집해놓은 것이다 보니까 2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딱딱 읽기 쉽게 만들어놓았을 뿐, 그다지 동양'학'이라고 말할 정도의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였기에 부담이 없었다. 딱 호기심이 유지될 정도의 분량이라고나 할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목을 '동양학 강의'라고 할 게 아니라 '동양학 잡설'이나 '동양학 잡담'이라고 했더라면, 아니 '동양학 채담'이라고 바꿨더라도 훨씬 더 친근하고 이 책의 목적에도 딱 맞을 뻔했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다.
 
그 중 1권 인사편은 크게 인물, 사회, 문화, 문명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좀 더 세분화하여 설명되어 있다. 만약 찾아보고 싶다면 충분히 찾아 읽을 수 있을 만큼 책의 측면에 인쇄도 잘 해놨다. 예를 들어, 인물 편을 보면 이름, 역사, 사회, 정치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를 충분히 찾아보기 쉽게 측면 인쇄가 잘 되어 있으니 사전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찾아볼 만큼의 방향이 모호해서 문제이지만. 그러니까 사회 편에는 가족, 민속, 시사, 지역, 의식주로 나뉘어있는데 솔직히 사회 편에서 의식주를 찾아볼 생각이 들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목차를 준비해두고 있긴 하지만, 책 소개에 나온 것처럼 딱히 사전의 역할을 하진 못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사전'이란 표현을 뒤늦게 봤는데 조금 웃겼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가 사실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그런 모든 이야기를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 뭣하러 동양학 사전을 찾아보겠는가. 이치나 깨달음이라면 또 모를까.
 
그러니까 이 책은 동양학의 개론서도 아니고 동양학 사전도 아니고 동양학 '강의'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신영복의 강의란 책 덕분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오해하고 접근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일단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이 책은 어찌 보면 심심풀이 땅콩으로, 어찌 보면 인생을 향유하는데 큰 가르침으로 시시때때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다. 그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기만 하면, 충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 자체가 동양인이지만 오히려 동양인인 우리가 모르는 많은 동양의 강호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 속에 숨겨진 주옥 같은 진리들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그의 말대로, 그는 "밥 대신 바람을 먹고 이불 대신 이슬을 덮고 자는 풍찬노숙의 과정을 거친(거쳐야만) 강호학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이고 바람을 먹어보아야 기백이 무엇인지 알고, 이슬을 맞아보아야 인생의 깊은 시름과 깊이를 아는 사람이니(안다)"(p. 4) 충분히 그에게서 들을 이야기가 많지 않겠는가.
 
스스로 채담가로 여겼듯이, 그가 들은 이야기는 수백 수천 가지가 넘는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번 나와 우리가 제대로 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내기도 한다. 현재 간송미술관으로 남아있는 간송 전형필은 쌀값 1만석을 내놓고 문화재를 제값을 주고 사들였던 인물로 유명하다. 만석가는 부자였지만 재산을 그렇게 고귀하게 쓴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의 일화는 인물 편의 사회에 등장하기도 하고, 문명 편의 유물에도 등장해서 거듭 강조해주고 있다. 부자들이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는 것은 외국에서만 있는 사례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이루어진 것을. 간송 말고도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부잣집들은 항상 가난한 백성들을 잊지 않고 챙겼는데 그것이 도토리죽이든 수확할 때 나락을 가져가도 눈 감아주는 것이든 그 모양이 다양했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택들은 그 자손들의 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난리가 일어나면 개인적인 감정으로 집에 불을 지르거나 잡혀가도록 모함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집안의 자손들은 항상 잡혀왔더라도 슬그머니 풀어준 보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옥 같은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범주야 워낙 다양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라서 체계적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충분히 그 이야기는 읽을 만한 것들이다. 특히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조차 생소한 현대인이라면, 그리고 동양인으로서 유구한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이 한낱 미신이나 고루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의 것을 부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역사나 문화가 서구의 것보다 실용성이 부족하고 학문의 체계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니,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와 문화와 인물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깨달으면 바로 해결될 문제이지 않는가. 자칫 우리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국수주의로 빠지는 것도 물론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이 때에 우리의 자랑스런 뿌리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이순간 어느 땅에 발을 디디며,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음식을 먹을지라도 우리가 동양의 유구하고 고귀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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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명적이다 - 경계를 넘는 여성들, 그리고 그녀들의 예술
제미란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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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의 여성미술가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들의 작품과 열정!

한국을 대표하는 14명 여성미술가들의 예술과 열정을 담은 책, 『나는 치명적이다』는 여성미술 순례가 제미란이 한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여성미술가들을 선별하여, 그녀들의 전시장과 아틀리에를 직접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느낀 것들을 담은 기록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순전한 기쁨이었지만 무절제한 배설이 아니라 의미를 구축하고 책임져야 하는 작가의 의무와 혹독한 수련의 시간 앞에서 도망치고 만 그녀는 뛰어난 감성과 공감의 능력으로 많은 여성미술가들을 찾아나섰다. 그녀가 아니였다면 멋진 여성미술가들을 아직도 알지 못했을 테니까 그녀의 도망은 나로선 행복이겠다. 뛰어난 감성으로 어렵기만 한 미술 작품들을 해체해서 가볍게 소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내겐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미술가는 현재 네덜란트 암스테르담에 거주하고 있는 송상희씨다. 그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폭발하는 상상력을 무기로 숭고한 주제를 설파하고 있다. 이 책이 단지 화가만 담고 있는 책이 아니기에 이런 귀중한 여성미술가를 알게 되어 행복할 따름이다. 사진이나 설치, 애니메이션까지 다재다능한 그녀는 일단 「메타모르포시스 16」란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서사시에서 차용한 소재에 종을 넘나들고 생사를 초월한 환생, 창세기와 종말론의 기지 있는 변환, 석유 전쟁과 생태계 파괴에 대한 통찰력까지 환상적인 그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다. 책 안에 그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실려있는데 정말 감동적이다. 그 외에도 자신이 직접 등장하여 사진을 찍거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데 하나같이 실험적이다. 정말 미래가 기대되는 분이다.

 

또 가족이 모여 운영하는 금속 공예와 주얼리 전문 공방이 있어 화제다. 60세에 글을 익히시고, 70세에 그림과 자수를 익혀 80세 되는 해 〈홍옥순 할머니의 바느질 이야기〉전을 여신 홍옥순 할머니와 그녀의 딸들이 직접 운영하고 만드는 아원공방이 그 주인공인데, 정말 작품 하나가 모던하고 유려해서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 만한 디자인을 품고 있다. 백동과 동, 황동으로만 만든 꽃과 새 모빌은 차가운 금속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투박한 따스함이 묻어난다. 꽃과 새가 모두 자연에 속한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푸른 빛을 내뿜는 줄기로 한데 연결한 것은 이 모빌의 백미가 아닐까. 이런 금속을 다루는 인아씨와 매장을 운영하는 인정씨, 그리고 목걸이나 귀걸이를 만드는 막내 인자씨까지 이 집안은 홍옥순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예술적 재능과 감각으로 제각각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꿰차고 있었다. 

 

마지막으론 경북 봉화에 사는 류준화씨를 손에 꼽고 싶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여성예술가들이 대단한 분들이지만, 미천한 내 눈에 좀 이해될 만한 분들로 꼽은 것이다. 준화씨는 사회폭력에 대해 분노를 품고 대학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동안 마음을 둘 곳 없어 대학을 떠나 미술 '황토'에서 작업을 하다가 남편을 만났단다. 그녀의 그림은 솔직히 아마추어인 내 눈으로 볼 땐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실물에 가깝고도 아름답게 그리다가도 2등신의 여인들을 내세우기도 하고 아예 네모진 몸매를 가진 여인들을 그리니, 그런 변화가 별로 맘에 들진 않는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나로선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이 더 좋으니까. 그러나 이 책의 표지에도 나와있지만 「물의 몸」이란 작품을 보면 그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가. 아름답지만 어딘가 불온한 듯 보였던 이전 그림보단 훨씬 안정감이 곁들여졌다. 자그마한 여자아이의 등뼈에서 가지가 뻗어나와 붉은 색 꽃을 피어낸 「꽃이 피다 지다 피다」만 봐도 시선을 잡아끄는 따스함이 느껴지니, 이것이 그녀의 힘이겠다.

 


세계 여러 곳에서 예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미술가가 이렇게 많이 있다니 정말 놀랍고도 자랑스럽다. 하지만 여기에 나온 14명의 여성예술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더욱 많은 곳에서 이름이 있거나 없거나 끊임없이 자기 수양을 하며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부단히 자신을 이겨가고 있을 테니까, 우리의 미술계도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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