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창조 -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이어령.강창래 지음 / 알마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과 나눈 대화를 담은 인터뷰집 『유쾌한 창조』는 이제껏 접했던 지승호 인터뷰어가 아니라 강창래 인터뷰어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 읽을 땐 이제까지 익숙했던 인터뷰어가 아쉽단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였으나 다 읽고 나니까 인터뷰이가 이어령이었기에 이런 방법밖에는 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나름의 수긍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문학평론가, 소설가, 에세이스트, 희곡작가, 시인, 대학교수, 언론인, 전 문화부장관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해온 터라 이제까지 그가 쏟아놓은 글은 어마어마하다. 강창래 인터뷰어의 말을 빌리자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어령을 검색해보면 단행본 355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도 147건이 뜬단다. 중복되는 책도 몇 권 있을 테니 거의 반만 잡아도 250여 권이 될 텐데 절대 한 번에는 다 볼 수 없는 양이다. 넉넉히 잡아 2년 동안 읽으면 모를까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글들이다. 그런데 이제껏 그의 글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니, 이 세기의 지성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햇수가 벌써 31년이 되었다.

 

문화부장관으로 계셨을 때 얼핏 신문지상에서 그를 본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변명을 해보자면 그가 워낙에 대단한 인물이여서 그의 글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하, 그가 우리 문단의 우상과 같은 존재들을 신랄하게 비판을 했던 글 「우상의 파괴」를 발표한 때가 1956년, 스물세 살 때의 일이고, 첫 단행본 『저항의 문학』을 낸 때가 1959년의 일이었으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 시대를 휩쓸었던 인물이었다. 그 후 10년쯤을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다시 13년쯤을 『문학사상』 주간으로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굳게 자리매김을 해왔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진짜 이상하다. 그런 대단한 인물을 내가 그토록 뒤늦게 알게 되다니... 보통 한 번쯤 들어보는 한국소설은 중고등 필독서 목록에 들어가 있지 않는가. 마치 그 외 책들은 읽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매해 필독서 목록에 들어가는데 이어령의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또한 그의 글을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언어영역 지문에 나온 적도 없고, 교과서에 실린 적도 없으니 이것 참 어색하다고 해야 할지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거참 헷갈린다.

 

나중에 가서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대단한 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어령은 항상 정확한 평가를 받지 못했단다. 그가 했던 수많은 인터뷰나 대담에서도 인터뷰어의 이해조차 구하지 못해서 그렇게 어긋한 소통을 보여주곤 했다고. 내가 태어나기 전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치기 어린 젊음에 겨워 세상의 모든 규칙에 대해서 저항하고 비판의 칼날을 겨누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비상하지만 과격한 표현을 일삼는 한 지식인이,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상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계속 받아왔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될까. 서른여섯이 되기 전에 12권의 전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써왔고, 그가 쓴 글들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그로 인해 돈도 꽤 벌었으니 우리 같이 보통 사람들보다도 같은 지식인들끼리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같은 사람인데 혼자서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혼자서만 다 해먹는 것을 보니 배알이 꼬였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과 했던 불온시 논쟁이라는 사건이 생겼고, 그로 인해 그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작가의 작품이 청소년들 필독서 목록에 들어가고,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등장하고,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어떤 뒷배경을 필요로하는 일이다. 같은 문학계의 스승 밑에서 수학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문파가 있다면 이어령도 분명 큰 세력을 얻었을 것이다. 그럴 만한 대단히 비상한 능력과 사람을 부릴 수 있는 파워풀한 카리스마를 가졌기에. 하지만 보통 인간들은 천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에게 없는 것을 끄집어 내고 뒤에서 험담하고 자기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기에 아마도 이어령은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고독과 싸워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라 하는 족속들은 모두 자기와의 싸움과 고독과의 한 판승을 해야 하는 인종들이지만 그래도 같은 문학계에서도 외톨이였다면 상당히 외롭지 않았을까. 그가 천재였기에 그것을 감당해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노인이 된 지금은 다른 사람이 싸움을 걸어도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지도 않고 상처 받지도 않고 덤덤히 받아줄 수 있게 되었단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돌아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 인간이?

 

아마도 그래서 지성에서만 머물던 그가 영성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예전 얼핏 봤다던 신문 기사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장관이 된 이어령이 앞으로 계획인지 무언가를 발표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가 세례를 받는 기사이었다. 이제는 그 전모를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세례받는 것까지 기사화 되는 그의 삶에 조금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런 개인적인 체험에 대해서도 기자회견을 해야 한단 말인가. 책을 보니, 기자들 몰래 하려고 했던 그의 계획이 무산되었기 때문이었음을 알 순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으로 사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기독교에 대해서 무심하기도 하고 때론 공격적이기까지 했던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단했다는 것에 대해 놀랍기는 하다. 솔직히 명예도 있고 나이도 있고 어느 정도 누릴 것은 누려야 한다고 생각할 법도 한 때에 이제껏 자기가 내뱉었던 말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어찌 신경쓰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껏 이 책으로 알게 된 그는 고리타분하고 명예나 체면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닌 탓에 자신의 파격적인 행동이 어울리기까지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것도 죽을 준비였는데, 그것은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창조 학교’, ‘한국인 이야기’이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인데, 이것 모두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시작한 일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한국문화론과 일본문화론은 써봤지만 중국문화론은 너무 방대하여 엄두도 못내고 있을 정도로 어려운데 이것을 해내기 위해 여러 학자들을 모집하고 그들을 진두지휘하려는 일을 하려니까 돈도 많이 들고 자신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혼자서만 일을 하다가 다른 사람과 같이 하려는 것도 부담되고 자금문제도 부담이 된다고. 또 창조 학교는 한국인의 수준 높은 창조성을 전국민 차원에서 개발하여 소수의 창조성이 높은 사람들을 말려죽이는 일이 없도록 만들고 싶단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다가 경기도지자체의 후원을 받고 있어서 앞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많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 이야기는 본인이 쓰면 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편견을 뛰어넘어 근현대사를 조명해낼 자신이 없다고.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왔던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파악한 대로 쓰겠지만 그것이 또한 하나의 한계를 가지고 있을까봐, 혹은 글쓴이가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는 인정해준다고 해도 자신의 편견이나 한계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걱정이란다. 

 

대단히 의미있는 일을 생각해내고 추진하는 것도 대단한데,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시도하는 것이 더욱 대단해보인다. 자신의 시도가 분명 실패하겠지만, 그 실패가 실패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솔직히 말년에 실패했다는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기에 전무후무한 대단한 천재가 아닌가 한다. 그것도 파격적인 의식 구조를 가진 천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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