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야생중독
이종렬 지음 / 글로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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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광활한 평야에 작열하는 태양, 더불어 한가롭게 노니는 아기 사자 무리들... 이것이 아프리카 평원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아프리카 사막에는 한 번 가고 싶다는, 혹은 그곳에 내 뼈를 묻고 싶다는 자학적인 충동을 느낀 적은 있지만 아프리카는 터를 잡아 살아갈 곳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저 지평선을 바라보이는 자연환경이 부럽고, 살아있는 동물들을 보기엔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지 집이 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 지구상에서 제일 살고 싶지 않은 나라를 꼽으라고 한다면 적어도 5등 안에는 들지 않을까, 아프리카란 나라는? 그 나라에 살아가는 주민들이 무식하다거나 무능력하다곤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네들이었으니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멸종되지 않고 민족을 이루어나갈 수 있었을 거란 감탄을 하곤 한다. 올림픽 육상 종목 중에서 흑인 아닌 선수가 얼마나 되나. 각기 국적만 다를 뿐 종족은 다 한 종족이더라. 그렇게 따지면 가장 강인한 종족은 흑인이고, 그랬기에 그 끔찍한 노예였던 시기가 있었어도 그것이 이겨내고 존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햇볕을 보면 주근깨나 기미가 얼굴에 가득해지는 백인들이 노예로 되었더라면 바로 멸종(?)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아프리카란 야성적인 곳에 아예 가족까지 다 불러 모아 터를 잡아 앉아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쓴 글은 아마 여행기라기보단 생활기라고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다큐멘터리를 찍느라 아프리카를 10년이 넘도록 다녔댄다. 10년이 넘도록 17개국을 돌아다녀보니 아프리카가 매혹적이란다. 그래서 아예 짐을 싸서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왔단다. 나 같은 겁쟁이가 가족들 중에 한 사람 끼어있었다면 가족들의 반대가 있지 않았을까 살짝 우려도 해보지만, 뭐 일단 왔다니 접어두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가 아프리카에 매혹돼 이주를 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탄자니아에 있는 아름다운 세렝게티를 세계에 알린 故 휴고 반 라윅 이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인 이종렬, 그가 세렝게티 무상출입 촬영권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촬영료가 하루 씩해서 100달러가 넘는다는데, 촬영을 하다보면 누가 지나가는 것을 세,네 시간씩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사자를 하루 종일 따라다녀도 하품 한 번 하는 것을 찍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큰 혜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이 가장 아름다웠나. 어쨌든 누구 말마따나 한국인은 손으로 하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 있는 듯 싶다.

 

이 책은 그가 아프리카에 온 주된 목적인 야생의 모습이 대다수 나와있다. 거의 사진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매혹적인 자연의 사진들이 대거 들어가있고, 그가 본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등장한다. 아무래도 아프리카라고 하면 자연 풍광이 기대가 되는데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스라이 안개 속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나 저녁 놀이 지는 평원 그림자는 돈 주고도 사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그리고 사자의 생태와 하이에나와의 공생 관계, 들개와의 상관 관계도 자세히 나타나있고, 가장 중요한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흔들리는 생태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딜 가나 똑똑한 줄 아는 인간이 개입하면 생태계로선 스스로 조절하는 기능을 잃어버리기 마련인 듯 하다. 사자가 전염병에 걸려 앓고 있을 때, 들개들이 모여 공격하는 경우가 늘었던 것을 보고 들개의 개체 수를 줄인다는 것이 멸종시켜버린 것이다. 그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사자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들개가 없어지니 사자의 수가 늘었고, 그러다보니 사자끼리 쟁탈전이 빈번해진데다가 먹이가 없으니 하이에나가 사자 새끼뿐 아니라 표범이나 치타의 새끼까지 죽여 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먹을 것이 없어진 표범이 8살짜리 아이를 하나 물어 죽이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인간이 개입해서 큰 코 다친 사례가 아닌가 한다.

 

그런 양육강식의 이야기 말고도 멋진 마사이 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옛날 국경이란 경계가 없을 때부터 마사이족은 국경을 넘나들며 누처럼 유목을 했던 민족이다. 지금도 문명을 거부한 채 제 부족의 풍습을 지켜나가고는 있지만, 몇몇 마사이족들은 자기 문화를 보여주고 돈을 받으면서 부를 축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젊은 마사이 전사들이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고 자기만의 부족을 만들어가는 것도 보이는데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강인하고 용감한 마사이족들이 아직까지도 존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싶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란 증거물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따뜻하고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그런 아프리카가 가난해서 무궁한 자원을 제대로 개발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곤 많은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엔 희망이 없다고 한단다. 하지만 그네들, 아프리카인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앞으로 100년 후에 충분히 이 세계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여긴다니, 다행한 일이다. 육체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그들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발휘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조금 아프고 가난하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니까 기대가 된다.

 

참고로, 아프리카의 야성적이고 귀여운 동물 사진을 담은 엽서가 같이 왔다. 책 속에서 간직하고 싶은 사진들은 다 모아두었나 싶다. 너무 예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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