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다 - 완역결정판
장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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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호접몽의 주인공이라는 그 유명한 사람의 책을 이제야 본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책을 볼 땐 항상 겪게 되는 심리의 변화가 있는데 그것은 읽기 전엔 대단하게 보였던 것들이 읽은 후엔 별거 아니였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 있는 모든 사상과 사유들이 다 이해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2400년 전의 대단한 사상가의 책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역시 기분이 좋다. 특히 가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의 한 토막이 책에 나올 때면 그런 기분에 훨씬 가까워진다. 이번 책에는 중학생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곤’과 ‘붕’의 이야기가 먼저 나와서 이 책을 접근하는데 있어 어렵지 않게 만들어주었고, 9만리나 되는 새나 물고기의 규모에서부터 장자의 호쾌한 스타일을 엿볼 수가 있었다. 또한 호접몽이란 그 묘한 꿈은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졌다니 이것이야말로 자연과 하나되는 삶이 아닌가. 호접몽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시기는 아마도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었을 게다. 그 이야기도 아마 어떤 동화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한 것을 보니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신선한 이야기로 여겼던 듯 싶다. 그 때의 감상과 지금의 생각이 덧붙여 호접몽에 대한 또다른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기분과는 달리 장자가 쓴 이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 장자 자신의 사상을 가장 극명하게 들어 보여준 실례였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을 우의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였음을 이제서야 알겠다. 예수님도 우둔한 제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겨자씨 비유나 좋은 밭의 비유 등 다양한 비유를 드셨던 것을 보면 어쩜 그렇게나 심오한 비유가 다 있을까 감탄을 거듭하게 되는데 아마 장자도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려했던 사상가였던 것이다. 그러니 호접몽은 옛날 이야기라기보단 그의 ‘무위자연’을 좀 더 쉽게 전달하려는 교묘한 지적 유희였을 게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호쾌하게 날아다녔지만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고 꿈을 깨니 자신이 장주임을 알고서는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이 이야기는 얼마나 절묘한가. 내가 꾼 꿈 중에 꿈을 꾸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못한 적은 거의 없긴 했지만 간혹 의식하지 못했던 꿈들은 실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깨고 나서도 가슴이 심히 두근거렸다. 만약 그러한 경험을 했다면 내가 꿈 속의 주인공인지, 나인지 구별할 방법은 거의 없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장자는 이런 심히 두근거리는 꿈을 꾸곤 이런 우화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내편」, 「외편」, 「잡편」의 총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편」과 「잡편」은 「내편」을 부연해주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 물론 내가 그렇게 느끼기엔 좀 어려웠던 것이 여기에 나온 모든 글이 다 비유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였기에 깊이 숙고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인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비유에 집중해서 읽으면 수월하게 읽을 수가 있다. 또 익숙하게 느껴졌던 비유로는, 「외편」에 나온 황하의 신과 북해의 신 약의 대화편이었다. 황하에 모든 아름다움이 있다고 자만했던 황하가 북해로 가 더 넓은 바다를 보곤 자신의 경솔을 뉘우치곤북해의 신 약에게 가르침을 받는 내용인데, 모든 물이 흘러들어 광활한 대양을 만들어낸 북해의 신 약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지 않고 이 모든 것은 원래부터 만들어진 대로 존재하는 것 뿐이란 내용을 설파했다. 정말 그럴싸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졌던 말이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주어진 혹은 창조된 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그 북해의 신 약의 말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더 감동이었던 것이다. 음, 아직은 모조리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좀 더 음미하고 숙고한다면 이런 원론적으로만 보이는 사상을 실생활에서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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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탄생 - 예술가의 창조력을 일깨운 뮤즈 이야기
유경희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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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술가의 이야기는 사실 예술 작품보다도 더 예술적일 때가 많다. 가장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반 고흐의 귀 자른 사건은 그의 예술작품을 더욱 예술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만약 그 사건이 없었다면 그의 자화상은 한낱 그림일 뿐이었지만, 그의 그런 인생이 있었기에 그의 작품 속에서 살아숨쉬는 진정한 인간의 삶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예술품보다도 더 예술적인 열세 명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요즘에는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기 어려운 진정한 예술가들을 말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며 지금 이 순간을 바꾸길 소망하는 그런 열정의 원천인 그런 예술가들을!! 그런 한편, 서문에서 그런 예술가들의 부재에 경종을 울리고 이 세상의 겉치레에 빠져있는 예술품 생산자로 전락해버린 많은 예술가들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요즘 세상에도 과거에 존재했던,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여서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떠나갔던 예술가가 있을까 궁금했던 내게 해답을 준 서문이기도 했다. 아, 과연 요즘 시대에 진정한 예술가는 극히 드물구나! 그래서 여기에 등장한 열세 명의 예술가들이 지극히 소중할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예술가들에게 궁금한 것은 어떤 대상에게서 영감을 얻을까 하는 것일 게다. 특히 난 음악가들이 음악을 작곡하고,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만들어가는지 그것이 항상 궁금했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 당시에 환영받지 못했던 많은 화가들이 모델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그런 반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봤을 땐, 예술이 과연 도덕과는 담을 쌓아야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예술적인 감성이 그 때만큼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일반인에게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없어야 영감이 풍부한 예술가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끊임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것만은 분명하다. 거개가 옳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된 열정이었지만 그 안에서만 폭발적인 영감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통과 사랑, 그리고 꿈을 향해 돌진하는 그들의 몸사위가 그리 탐탁하진 않지만 그런 삶에서만 위대한 예술품이 나올 수도 있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일반인 눈에 뭔가 강렬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삶이 단순하거나 일상적이여선 말이 안 되니까. 그렇게 따지면  좋은 학교 나와서 교수가 되고 좋은 학벌을 가진 배우자랑 결혼해 재능을 가진 자녀를 낳아 기르는 삶은 정말 예술가의 삶이 아니겠구나!!

 

좋은 인생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좋은 예술가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존 레논의 아내로 더 유명한 요코 오노, 퇴폐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비난당했던 구스타프 클림트, 누드 모델로 시작해 여성 작가가 된 조지아 오키프, 작품을 낸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갈라, 근친상간의 괴로움을 온통 떠안아야 했던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끊임없이 고통과 싸워야만 했던 프리다 칼로, 귀가 먼 후에야 인간을 담아내고 이해하는 그림을 그려낸 프란시스코 데 고야, 트라우마에 꽁꽁 얼어버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자신을 놓아버린 잭슨 폴록, 자유를 꿈꿨으나 지극히도 이기적으로 제 열정만 생각했던 폴 고갱, 팝 아트의 창시자로 예술가 중 최초로 거부가 된 앤디 워홀, 많은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자의 무위자연과 흡사하게 살아간 마르셀 뒤샹, 고귀한 뜻을 펼치고 싶어했지만 병약한 탓에 요절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많은 이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30년 지기의 몰이해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폴 세잔.... 이들이야말로 그의 위대한 작품만큼, 아니 그들의 작품보다도 더 예술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책에 실린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내 눈을 끌었던 것은 마르셀 뒤샹의 「샘」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기울어진 타원형 얼굴의 여자 조각상이었다. 남자 변기를 가져와 ‘샘’이라 명명하고 떡 하니 전시회에 내놨을 그를 생각하자니 그 어린 마음에도 뭔가 거저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저 궤변을 늘어놓고 돈과 명예를 얻으려고 약삭빠른 짓을 하는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일상을 놓고 보자니 일 년에 한 작품만 만들어줘도 거금을 주겠다고 요청하는 많은 갤러리들의 부름을 무시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평생 검소하게 살았던 것을 보고 그를 잘못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쩜,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으로 침잠하고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좀 아쉽긴 했다.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야 좋겠지만 한 평생 사는 동안 그의 영향력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많은 일이 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조금은 그가 인생을 낭비한 듯도 싶었다. 어쨌거나 그에 대한 내 오해를 풀어서 좋았다. 또한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조각품을 만드는 모딜리아니는 처음부터 회화보다는 조각을 목표로 했었는데 워낙 병약한 몸 탓에 조각할 때 나오는 미세한 조각가루가 몸에 해로운 영향을 끼쳐 조각을 중단했단다. 게다가 회화마저도 서른 중반의 나이로 죽었기에 많이 남기지 못했는데 너무 안타깝다. 사진을 보아하니, 상당히 수려한 외모였는데다가 그가 죽은 후 아기를 가진 채로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동거녀 때문이라도 너무 슬픈 사연이었다.

 

역시 인간이 만든 작품은 인간적인 사연이 스며들어가야 더 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중섭의 눈물 겨운 이야기가 살아숨쉬어야 천도복숭아와 같이 놀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이 더욱 애틋해보이지 않겠는가. 그것이 마냥 아이들이 좋을 때 그린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감동을 주진 못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병으로 먼저 보내고 나서 그린 그림이라는 사연을 알 때, 그의 애끓는 사랑과 영혼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가다운 예술가가 귀한 요즘, 이들은 정말 주옥같은 예술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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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도전 박지성
박지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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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박지성 선수의 두 번째 에세이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를 빌리고 나서 이 책을 샀다. 사실 한 달째 가지고 있는 책이라 빨리 돌려주어야 할 책인데, 왠지 이 책을 먼저 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빨리 지른 책이다. 2010년에는 얼마 전에 끝난 남아공월드컵이 있었던 때라 박지성 선수의 에세이가 출간된 것은 시기적절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책을 두 권이나 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서 두 번째 에세이를 빌리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아마 왜소하고 별 특징이 없던 그가 2002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진가를 인정받으면서 2003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 진출하고, 더 나아가 2005년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된 쾌거 덕에 그에게 책을 내라고 제의했던 것이겠지. 전에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에세이를 무척 감명깊게 본 터라 그의 에세이도 참 재미있을 것 같았다. 역시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오히려 재미는 두 번째의 책이 좀 덜했다. 아마도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우리가 8강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우리가 너무 결과에만 연연해했기에, 2006 독일월드컵에서의 16강 진출 실패를 가지고 너무 부정적으로만 몰아가는 것처럼 나도 그 결과에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충분히 우리에겐 승산이 있어 보인다. 한국 축구 팬의 일원으로서 나도 우리 한국의 월드컵 우승을 꿈꾼다.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나는 순진하게도 그것이 비록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2006 독일월드컵에 16강에 탈락했던 것이 2010 남아공월드컵의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게 한 것이 아닌가. 2002 한일월드컵 평가전에서 히딩크 감독이 세계 최강이라는 유럽 축구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계속해서 유럽하고만 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처럼 우리 한국 축구에는 세계적인 경험이 필요할 뿐이다. 축구는 실패의 경기인 것처럼 많은 실패를 통해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정말 이 책을 보면서 2002 한일월드컵 때의 기적을 다시 체험할 수 있었다. 평가전 때 워낙 부진했던 터라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 소문으로만 5대 0으로 졌다더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런 시기를 보내고 난 후 우리 대표팀은 확실히 달랐다. 유럽 팀과 맞붙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지, 실력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냈지 않았나. 한국대표팀의 대표적인 약점이었던 체력 면을 증강하고 헌신으로 대표되는 정신력을 키우니 우리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동양인이 그렇게나 필드에서 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최초가 아닌가 싶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연장전에, 승부차기로, 진을 뺄 대로 빼고 4강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아마 월드컵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결승에 올라 1위와 붙었을지도 모르는 것. 그만큼 한국 대표팀은 성장했고 앞으로도 더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 축구는 행운의 게임이고, 그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축구에서 행운이란 여신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을 꼽으라면 정말 박지성 선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축구 명문고를 놔두고 수원 공업고등학교로 가게 된 것도, 거기서 이학종 감독을 만나 체력 훈련보다 체격을 키우라고 코치받은 것도, 고등학교 졸업 후 아무도 스카웃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자리가 난 명지대에서 김희태 감독이 스카웃한 것도, 명지대에서 훈련 중에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치르게 된 것도, 그 경기에서 허정무 대표팀 감독에게 발탁되어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어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고 배우게 한 것도 모두 우연을 가장한 행운의 손짓이었다. 그 때부터 우리의 눈에 띄게 되는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연결되고,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하게 되고,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행운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그것은 모두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행운이다. 박지성 선수가 전체 연습이 끝나도 개인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 초등학교 때부터 감독님이 하신 모든 말을 고지식하게 따른 지독한 연습벌레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발의 모든 부분에 3000번 공이 닿아야 감각이 느낄 수 있다는 말에 연습을 계속했던 그였기에, J-리그에 진출해서 단체 연습이 끝나고도 연습량이 부족하다고 느껴 주의를 받을 정도로 개인연습을 계속 해냈던 그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갓 대학에 들어간 그를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지능적이고 체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말만 빌리더라도 그가 얼마나 자신을 잘 만들어왔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런 그를 단지 체격이 왜소하단 이유로(고등학교 때까진 158cm밖에 안 되었다) 뽑지 않았던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무명선수에서 올림픽 대표팀 선수로, 월드컵 공격수로,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의 입단으로, 프리미어리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넓고 곧은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무대에서 자신을 낮추고 받아들이며 배우고 이겨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서의 그의 부진이었다. 홈경기만 하면 야유를 퍼붓는 홈팀 팬들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원인 모를 무릎 통증으로 신체적으로도 힘겨운 시기였다. 그 시기를 무릎 수술과 정신적 무장으로 이겨내고 당당히 그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된 야유 속에서 다시 일본으로 오라는 러브콜도 받았고 부모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어떻게 끝까지 남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마도 얌전하게 보이는 겉모습 속에는 인정받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다는 오기가 불타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그는 결국 계속되는 부진을 털어버리고 괜찮은 경기를 모아다가 머릿속에 재생시키며 감각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감각을 되찾은 데에게는 히딩크 감독의 전략이 주효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의 은인이었던 히딩크 감독이 부른 네덜란드 행이었다. 그런데 끝까지 그를 지켜준 히딩크 감독은 홈구장에서 야유를 받는 그를 배려해 원정 경기에만 나가게 했고, 그 때부터 경기 감각과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2004년 2월 28일, UEFA컵 16강전 이탈리아 페루지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회복한다. 1년 후, 4강까지 진출하는데 힘을 보탠 그에게 에인트호번 팬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주기에 이른다. 정말 대단한 승부사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끝까지 남아 자신의 기량을 다 보여주고 영국 맨유로 옮겼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게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커는 앞으로도 한 발자국을 내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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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슬픔 - 엉뚱발랄 과부 소피의 팍팍한 세상 건너기
롤리 윈스턴 지음, 송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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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 겨우 유부녀인 것이 익숙해진 소피는 3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냈다.........
 
이 이야기는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방황을 시작하는 우리의 주인공 소피가 성장하고 일어나는 슬프고도 행복한 소설이다. 우리는 아직 소피가 남편인 에단과 어떻게 만났고 어떤 사랑을 했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듣지 못했는데 에단을 빼앗긴 채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랜 시간 외롭게 지내다가 드디어 만난 유일한 사랑인 에단은, 사실 완벽하진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자동차는 항상 쓰레기 통을 방불케 하는 곳이었고, 자신이랑 시간을 보내도 머릿속 한 구석엔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는 어딘가 어수선한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암에게 빼앗긴 에단은 소피에겐 그 자체로 완벽한 모습으로 현현된다. 그녀는 에단이 죽은 지 3개월이 지난 후에, 차를 집으로 박아넣는다. 그저 남편이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려나온다는 이유로, 그 노래를 받아적으라고 남편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해진다. 그는 없는데 세상은 돌아가고 출근을 해야 하고 밥은 먹어야 하니......
 
프로그래머로 잘 나가는 에단을 위해서 실리콘밸리로 이사왔지만 소피는 새로 옮긴 직장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뭔가를 팔기 위해 문구를 정해야하는 일은 창조적이고 톡톡 튀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지, 이제 막 남편이 죽어 정신을 빼놓고 다니는 소피에겐 무리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침잠해가는 소피는 커다란 상실감에 오레오 쿠키만 먹어대면서 사흘이나 샤워를 안 하고 무단으로 회사를 안 가다가 잠옷차림 그대로 회사를 간 사고를 치고 만다. 생활비가 너무 비싼 이곳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꾹꾹 참다가 이제 뭔가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혼한 친구인 루스가 사는 오리건 주 애슐랜드로 이사를 했다. 항상 이사오라고 성화였던 루스에게 가니 거기도 완벽하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루스는 개망나니 애인을 단지 같이 있어준다는 것 때문에 옆에 있도록 허용하고, 그녀의 아들 시몬은 그에게 못한 대우를 받았고, 그로 인해 소피는 루스와 신경전을 벌이니.... 이거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는 격 아니야? 하루빨리 집을 구해 나가고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로 일해보지만, 아직도 소피의 인생은 뿌옇기만 하다. 그래도 에단이 없는 곳으로 왔으니 뭔가 다를 것 같긴 하지만.
 
에단과의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곤 누군가 돌봐줄 대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큰형과 큰언니’ 봉사를 신청한다. 고분고분하고 귀여운 어린 아이를 생각했던 그녀에게 배당된 아이는 놀랄 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틈만 나면 자해를 일삼는 비행소녀 크리스털이었다. 아름답지만 인격적으로 심히 부적격한 엄마에게서 배척당해왔기에, 그리고 아빠가 어디에 살아계신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항상 소속되지 못한 상실감으로 떠돌아다니는 크리스털은 자해를 하면서 존재함을 느낀다. 그런 상처를 가진 크리스털을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소피가 잘 다독일 수 있으런지...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소피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를 돌봐야한다는 사실이 아마도 힘을 주는 듯 싶었다. 또한 루스의 애인이 바람이 난 것을 알고 나서 기운 없어 하는 루스에게 든든한 친구 역할까지 해야 했고, 항상 대쪽 같았던 시어머니 마리온이 치매로 정신줄을 놓은 것을 보곤 평소엔 껄끄러웠던 상대지만 에단에게 미안해서라도 같이 살자고 하고 그녀를 보살피는 중에 소피는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사고를 쳐 주방 보조로 자리를 옮긴 소피는 마음껏 케익과 쿠키를 만들며 자신의 소질도 개발했다. 아마 에단이 죽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에단이 죽었기에 큰 상실감을 얻었지만 그가 죽었기에 또 다른 가족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잠깐 해본다. 자신만의 베이커리를 개업하며 크리스털에겐 좋은 조언자로, 루스에겐 든든한 친구로, 또한 새로 생긴 남자 친구에겐 매력적인 상대로 여러 역할을 소화하면서 항우울제를 복용하곤 직장에서 실수만 하는 과거의 소피에게서 빠져나왔다.
 

에단을 먼저 보내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던 행복이지만, 아마 에단이 살아있었어도 찾을 수 있는 행복일 것이다. 다만 에단을 잃고 난 후의 상실감을 극복하고 이겨낸 뒤의 행복이기에 그 성취감이 더 크게 느껴질 뿐.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소피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이겨냈다. 제 2의 인생을 화려하게 꿈꿀 수 있는 날이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 이제 벌써 남자친구도 생겼으니, 뭐 물론 말썽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소피가 해결하리라 본다. 이젠 남편 잃고 직장 잃고 몸매 잃었던 그 예전의 소피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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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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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깨달았다.... 그 사랑이 죽고 난 뒤에...........

 

메이 아줌아가 돌아가셨다. 밭을 가꾸다가 그렇게... 밭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메이 아줌마였기에 밭에서 가신 것은 다행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너무 충격이었다. 나에게도........... 오브 아저씨에게도...........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두 분을 보면서 그런 게 사랑임을 자연스레 알아지게 되고, 그로써 일찍 돌아가신 자신의 엄마가 자기에게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사랑을 많이 남겨주셨다는 것 또한 터득하게 해주신 그 메이 아줌마가 떠나버린 것이다. 오하이오에 있는 친척을 보러 왔다가 알게 된 나를 데리고 와서 여섯 살짜리 여자애에게 해주어야 할 모든 사랑을 다 베풀어주신 그 아줌마를 잃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벌써 두 계절이 지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아줌마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직 메이 아줌마가 가신 것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오브 아저씨를 먼저 챙겨야 했다. 메이 아줌마를 떠나보내지 못해서 정신을 딴 곳에 두고 오거나 영혼과 만난다는 현실성 없는 일에만 발벗고 나설 태세였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일은 정신나간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오브 아저씨를 어떻게든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라도 내키지 않는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메이 아줌마를 만나보려는 여행을...... 그리 허망하게 가버리신 아줌마와 조금이라도 말을 나눌 수만 있다면 억만금이 아깝지 않는 오브 아저씨를 앞세우고, 불청객 하나와 그렇게 여행을 떠났다. 얼토당토 않는 계획이 성사되는 것을 봤는가. 안되는 일이었고 될 수 없는 일이었건만 마음을 둘 곳이 필요해서 그러게 무모한 행동을 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꼭 그 여행이 완전히 쓸모 없지는 않았다. 

 

삶을 이해했으니까....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니까.... 메이 아줌마가 가신 것은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려 주기 위한 방법이었으니까...

가야했고, 갈 수 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남아있는 사람들도 그리 외롭지는 않다. 메이 아줌마가 차고 넘치도록 부어주신 사랑이 아직 넉넉하게 남아있으니 말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어쩜, 무 자르듯이 잘라버리는 냉정함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그것도 사랑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임을. 먼저 간 사람이 남겨준 사랑으로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영원토록 메이 아줌마가 보고 싶겠지만, 이제 그 사랑을 가슴에 묻고 땅에 발을 붙이고 치열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메이 아줌마가 원하시는 대로....

 


 
한때는 왜 하느님이 너를 이제야 주셨을까 의아해하기도 했지. 왜 이렇게 다 늙어서야 너를 만났을까? (...) 하지만 그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니, 어느 날 답이 떠오르더구나. (...) 하느님은 우리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길 기다리신 거야. 아저씨와 내가 젊고 튼튼했으면 넌 아마도 네가 우리한테 얼마나 필요한 아이인지 깨닫지 못했을 테지. 넌 우리가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가 늙어서 너한테 많이 의지하고, 그런 우리를 보면서도 너도 마음 편하게 우리한테 의지할 수 있게 해주신 거야. 우리는 모두 가족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꼭 붙잡고 하나가 되었지. 그렇게 단순한 거였단다. (p. 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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