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탄생 - 예술가의 창조력을 일깨운 뮤즈 이야기
유경희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예술가의 이야기는 사실 예술 작품보다도 더 예술적일 때가 많다. 가장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반 고흐의 귀 자른 사건은 그의 예술작품을 더욱 예술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만약 그 사건이 없었다면 그의 자화상은 한낱 그림일 뿐이었지만, 그의 그런 인생이 있었기에 그의 작품 속에서 살아숨쉬는 진정한 인간의 삶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예술품보다도 더 예술적인 열세 명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요즘에는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기 어려운 진정한 예술가들을 말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며 지금 이 순간을 바꾸길 소망하는 그런 열정의 원천인 그런 예술가들을!! 그런 한편, 서문에서 그런 예술가들의 부재에 경종을 울리고 이 세상의 겉치레에 빠져있는 예술품 생산자로 전락해버린 많은 예술가들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요즘 세상에도 과거에 존재했던,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여서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떠나갔던 예술가가 있을까 궁금했던 내게 해답을 준 서문이기도 했다. 아, 과연 요즘 시대에 진정한 예술가는 극히 드물구나! 그래서 여기에 등장한 열세 명의 예술가들이 지극히 소중할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예술가들에게 궁금한 것은 어떤 대상에게서 영감을 얻을까 하는 것일 게다. 특히 난 음악가들이 음악을 작곡하고,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만들어가는지 그것이 항상 궁금했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 당시에 환영받지 못했던 많은 화가들이 모델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그런 반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봤을 땐, 예술이 과연 도덕과는 담을 쌓아야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예술적인 감성이 그 때만큼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일반인에게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없어야 영감이 풍부한 예술가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끊임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것만은 분명하다. 거개가 옳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된 열정이었지만 그 안에서만 폭발적인 영감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통과 사랑, 그리고 꿈을 향해 돌진하는 그들의 몸사위가 그리 탐탁하진 않지만 그런 삶에서만 위대한 예술품이 나올 수도 있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일반인 눈에 뭔가 강렬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삶이 단순하거나 일상적이여선 말이 안 되니까. 그렇게 따지면  좋은 학교 나와서 교수가 되고 좋은 학벌을 가진 배우자랑 결혼해 재능을 가진 자녀를 낳아 기르는 삶은 정말 예술가의 삶이 아니겠구나!!

 

좋은 인생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좋은 예술가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존 레논의 아내로 더 유명한 요코 오노, 퇴폐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비난당했던 구스타프 클림트, 누드 모델로 시작해 여성 작가가 된 조지아 오키프, 작품을 낸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갈라, 근친상간의 괴로움을 온통 떠안아야 했던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끊임없이 고통과 싸워야만 했던 프리다 칼로, 귀가 먼 후에야 인간을 담아내고 이해하는 그림을 그려낸 프란시스코 데 고야, 트라우마에 꽁꽁 얼어버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자신을 놓아버린 잭슨 폴록, 자유를 꿈꿨으나 지극히도 이기적으로 제 열정만 생각했던 폴 고갱, 팝 아트의 창시자로 예술가 중 최초로 거부가 된 앤디 워홀, 많은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자의 무위자연과 흡사하게 살아간 마르셀 뒤샹, 고귀한 뜻을 펼치고 싶어했지만 병약한 탓에 요절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많은 이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30년 지기의 몰이해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폴 세잔.... 이들이야말로 그의 위대한 작품만큼, 아니 그들의 작품보다도 더 예술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책에 실린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내 눈을 끌었던 것은 마르셀 뒤샹의 「샘」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기울어진 타원형 얼굴의 여자 조각상이었다. 남자 변기를 가져와 ‘샘’이라 명명하고 떡 하니 전시회에 내놨을 그를 생각하자니 그 어린 마음에도 뭔가 거저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저 궤변을 늘어놓고 돈과 명예를 얻으려고 약삭빠른 짓을 하는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일상을 놓고 보자니 일 년에 한 작품만 만들어줘도 거금을 주겠다고 요청하는 많은 갤러리들의 부름을 무시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평생 검소하게 살았던 것을 보고 그를 잘못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쩜,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으로 침잠하고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좀 아쉽긴 했다.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야 좋겠지만 한 평생 사는 동안 그의 영향력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많은 일이 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조금은 그가 인생을 낭비한 듯도 싶었다. 어쨌거나 그에 대한 내 오해를 풀어서 좋았다. 또한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조각품을 만드는 모딜리아니는 처음부터 회화보다는 조각을 목표로 했었는데 워낙 병약한 몸 탓에 조각할 때 나오는 미세한 조각가루가 몸에 해로운 영향을 끼쳐 조각을 중단했단다. 게다가 회화마저도 서른 중반의 나이로 죽었기에 많이 남기지 못했는데 너무 안타깝다. 사진을 보아하니, 상당히 수려한 외모였는데다가 그가 죽은 후 아기를 가진 채로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동거녀 때문이라도 너무 슬픈 사연이었다.

 

역시 인간이 만든 작품은 인간적인 사연이 스며들어가야 더 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중섭의 눈물 겨운 이야기가 살아숨쉬어야 천도복숭아와 같이 놀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이 더욱 애틋해보이지 않겠는가. 그것이 마냥 아이들이 좋을 때 그린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감동을 주진 못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병으로 먼저 보내고 나서 그린 그림이라는 사연을 알 때, 그의 애끓는 사랑과 영혼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가다운 예술가가 귀한 요즘, 이들은 정말 주옥같은 예술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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