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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다 - 완역결정판
장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6월
평점 :
장자, 호접몽의 주인공이라는 그 유명한 사람의 책을 이제야 본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책을 볼 땐 항상 겪게 되는 심리의 변화가 있는데 그것은 읽기 전엔 대단하게 보였던 것들이 읽은 후엔 별거 아니였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 있는 모든 사상과 사유들이 다 이해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2400년 전의 대단한 사상가의 책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역시 기분이 좋다. 특히 가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의 한 토막이 책에 나올 때면 그런 기분에 훨씬 가까워진다. 이번 책에는 중학생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곤’과 ‘붕’의 이야기가 먼저 나와서 이 책을 접근하는데 있어 어렵지 않게 만들어주었고, 9만리나 되는 새나 물고기의 규모에서부터 장자의 호쾌한 스타일을 엿볼 수가 있었다. 또한 호접몽이란 그 묘한 꿈은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졌다니 이것이야말로 자연과 하나되는 삶이 아닌가. 호접몽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시기는 아마도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었을 게다. 그 이야기도 아마 어떤 동화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한 것을 보니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신선한 이야기로 여겼던 듯 싶다. 그 때의 감상과 지금의 생각이 덧붙여 호접몽에 대한 또다른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기분과는 달리 장자가 쓴 이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 장자 자신의 사상을 가장 극명하게 들어 보여준 실례였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을 우의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였음을 이제서야 알겠다. 예수님도 우둔한 제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겨자씨 비유나 좋은 밭의 비유 등 다양한 비유를 드셨던 것을 보면 어쩜 그렇게나 심오한 비유가 다 있을까 감탄을 거듭하게 되는데 아마 장자도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려했던 사상가였던 것이다. 그러니 호접몽은 옛날 이야기라기보단 그의 ‘무위자연’을 좀 더 쉽게 전달하려는 교묘한 지적 유희였을 게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호쾌하게 날아다녔지만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고 꿈을 깨니 자신이 장주임을 알고서는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이 이야기는 얼마나 절묘한가. 내가 꾼 꿈 중에 꿈을 꾸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못한 적은 거의 없긴 했지만 간혹 의식하지 못했던 꿈들은 실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깨고 나서도 가슴이 심히 두근거렸다. 만약 그러한 경험을 했다면 내가 꿈 속의 주인공인지, 나인지 구별할 방법은 거의 없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장자는 이런 심히 두근거리는 꿈을 꾸곤 이런 우화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내편」, 「외편」, 「잡편」의 총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편」과 「잡편」은 「내편」을 부연해주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 물론 내가 그렇게 느끼기엔 좀 어려웠던 것이 여기에 나온 모든 글이 다 비유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였기에 깊이 숙고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인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비유에 집중해서 읽으면 수월하게 읽을 수가 있다. 또 익숙하게 느껴졌던 비유로는, 「외편」에 나온 황하의 신과 북해의 신 약의 대화편이었다. 황하에 모든 아름다움이 있다고 자만했던 황하가 북해로 가 더 넓은 바다를 보곤 자신의 경솔을 뉘우치곤북해의 신 약에게 가르침을 받는 내용인데, 모든 물이 흘러들어 광활한 대양을 만들어낸 북해의 신 약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지 않고 이 모든 것은 원래부터 만들어진 대로 존재하는 것 뿐이란 내용을 설파했다. 정말 그럴싸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졌던 말이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주어진 혹은 창조된 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그 북해의 신 약의 말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더 감동이었던 것이다. 음, 아직은 모조리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좀 더 음미하고 숙고한다면 이런 원론적으로만 보이는 사상을 실생활에서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