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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슬픔 - 엉뚱발랄 과부 소피의 팍팍한 세상 건너기
롤리 윈스턴 지음, 송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제야 겨우 유부녀인 것이 익숙해진 소피는 3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냈다.........
이 이야기는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방황을 시작하는 우리의 주인공 소피가 성장하고 일어나는 슬프고도 행복한 소설이다. 우리는 아직 소피가 남편인 에단과 어떻게 만났고 어떤 사랑을 했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듣지 못했는데 에단을 빼앗긴 채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랜 시간 외롭게 지내다가 드디어 만난 유일한 사랑인 에단은, 사실 완벽하진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자동차는 항상 쓰레기 통을 방불케 하는 곳이었고, 자신이랑 시간을 보내도 머릿속 한 구석엔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는 어딘가 어수선한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암에게 빼앗긴 에단은 소피에겐 그 자체로 완벽한 모습으로 현현된다. 그녀는 에단이 죽은 지 3개월이 지난 후에, 차를 집으로 박아넣는다. 그저 남편이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려나온다는 이유로, 그 노래를 받아적으라고 남편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해진다. 그는 없는데 세상은 돌아가고 출근을 해야 하고 밥은 먹어야 하니......
프로그래머로 잘 나가는 에단을 위해서 실리콘밸리로 이사왔지만 소피는 새로 옮긴 직장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뭔가를 팔기 위해 문구를 정해야하는 일은 창조적이고 톡톡 튀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지, 이제 막 남편이 죽어 정신을 빼놓고 다니는 소피에겐 무리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침잠해가는 소피는 커다란 상실감에 오레오 쿠키만 먹어대면서 사흘이나 샤워를 안 하고 무단으로 회사를 안 가다가 잠옷차림 그대로 회사를 간 사고를 치고 만다. 생활비가 너무 비싼 이곳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꾹꾹 참다가 이제 뭔가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혼한 친구인 루스가 사는 오리건 주 애슐랜드로 이사를 했다. 항상 이사오라고 성화였던 루스에게 가니 거기도 완벽하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루스는 개망나니 애인을 단지 같이 있어준다는 것 때문에 옆에 있도록 허용하고, 그녀의 아들 시몬은 그에게 못한 대우를 받았고, 그로 인해 소피는 루스와 신경전을 벌이니.... 이거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는 격 아니야? 하루빨리 집을 구해 나가고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로 일해보지만, 아직도 소피의 인생은 뿌옇기만 하다. 그래도 에단이 없는 곳으로 왔으니 뭔가 다를 것 같긴 하지만.
에단과의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곤 누군가 돌봐줄 대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큰형과 큰언니’ 봉사를 신청한다. 고분고분하고 귀여운 어린 아이를 생각했던 그녀에게 배당된 아이는 놀랄 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틈만 나면 자해를 일삼는 비행소녀 크리스털이었다. 아름답지만 인격적으로 심히 부적격한 엄마에게서 배척당해왔기에, 그리고 아빠가 어디에 살아계신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항상 소속되지 못한 상실감으로 떠돌아다니는 크리스털은 자해를 하면서 존재함을 느낀다. 그런 상처를 가진 크리스털을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소피가 잘 다독일 수 있으런지...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소피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를 돌봐야한다는 사실이 아마도 힘을 주는 듯 싶었다. 또한 루스의 애인이 바람이 난 것을 알고 나서 기운 없어 하는 루스에게 든든한 친구 역할까지 해야 했고, 항상 대쪽 같았던 시어머니 마리온이 치매로 정신줄을 놓은 것을 보곤 평소엔 껄끄러웠던 상대지만 에단에게 미안해서라도 같이 살자고 하고 그녀를 보살피는 중에 소피는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사고를 쳐 주방 보조로 자리를 옮긴 소피는 마음껏 케익과 쿠키를 만들며 자신의 소질도 개발했다. 아마 에단이 죽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에단이 죽었기에 큰 상실감을 얻었지만 그가 죽었기에 또 다른 가족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잠깐 해본다. 자신만의 베이커리를 개업하며 크리스털에겐 좋은 조언자로, 루스에겐 든든한 친구로, 또한 새로 생긴 남자 친구에겐 매력적인 상대로 여러 역할을 소화하면서 항우울제를 복용하곤 직장에서 실수만 하는 과거의 소피에게서 빠져나왔다.
에단을 먼저 보내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던 행복이지만, 아마 에단이 살아있었어도 찾을 수 있는 행복일 것이다. 다만 에단을 잃고 난 후의 상실감을 극복하고 이겨낸 뒤의 행복이기에 그 성취감이 더 크게 느껴질 뿐.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소피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이겨냈다. 제 2의 인생을 화려하게 꿈꿀 수 있는 날이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 이제 벌써 남자친구도 생겼으니, 뭐 물론 말썽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소피가 해결하리라 본다. 이젠 남편 잃고 직장 잃고 몸매 잃었던 그 예전의 소피가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