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시대 이야기 - 영화처럼 재미있는 창조과학의 세계 창조과학 파노라마 4
이재만.최우성 지음 / 두란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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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책의 서평을 창조과학 입장에서 썼다가 나보다 더 많은 과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반박당한 경험이 있다. 과학전문가도 아닌 순수한 아마추어인 내가 읽고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쓴 글로 인해서말이다. 그 때 느꼈던 것은 ‘아는 것이 힘!’이었다. 참 당연하게도 증명해낼 수는 없지만, 지금 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지극히 사실이고 진리인 창조과학에 대해서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반박하는 그 분께 제대로 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때는 안타깝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인터넷서점에 있는 블로그에 개인적인 의견을 올린 것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만 여겨졌었지만 말이다. 어떤 물리학 관련 책에서는 창조과학은 증명해낼 수 없지만, 지적설계자를 상정해놓고 풀어가는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믈리학은 생물학이나 지질학처럼 드러난 증거가 없는 분야이기에 그 말이 이성적으로 맞긴 하지만, 그것을 읽는 나는 창조과학이 ‘이론’일 뿐이라는 말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물리학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이 책, 『빙하시대 이야기』는 상당히 근거있는 반론을 제기해주어서 든든했다. 자신이 이때까지 믿어왔던 것이 허구일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나는 제대로 알고 있지만 증거로 내놓을 수 있는 지식이 없어서 반박당하는 기분이 더 끔찍했기 때문이다.

 

‘매머드’의 존재만으로도 지구에는 ‘빙하시대’라는 시기가 있었던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나이가 46억 년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은 ‘해빙기’, ‘간빙기’등의 이름을 붙여 빙하시대가 여러 번 일어났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은 나도 그런 주장이나 그런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이니, 이 가설은 아마 상식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에 진화론에 대해서만 줄창 배우다보니, 창조론이라는 믿음과 진화론이라는 학교 지식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구과학 시간에는 선캄브리아 시대, 백악기 시대 등으로 줄창 외우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를 줄창 믿기만 했다. 그래서 조목 조목 따져보며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함에도 무턱대고 믿어가는 맹목적인 믿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고, 흐릿하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 ‘빙하시대’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정말로 창조하셨다는 믿음직한 증거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과거 때보다는 좀 더 생각을 가지고 모든 사실에 대해 이성적인 근거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믿음에 확신을 준 것은 바로 이 책이다. 한 예로, 지나가는 말로 누군가가 성경적인 연대기로 지구는 약 6,000년 쯤 되었다고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는 〈네이처〉라는 과학 잡지에 인간의 현재 인구를 가지고 거꾸로 계산해보면 약 6,000년이 나온다는 조그만 논문이 실린 것을 알려주었다.  

 

지적설계자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불손한 인간이 조그만 단백질 덩어리에서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낭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지구의 나이를 46억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짓말을 해댔는데도, 그것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이 크다. 학교에서도 그런 가설로만 12년 동안 배우니, 이성과 믿음이 충돌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뿐, 어느 것 하나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믿음도 좋고, 말씀도 좋지만, 우리가 배우고 있는, 우리의 생각을 공격하고 있는 이러한 부분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어야 하겠다. 성경에 보면 인간이 범죄하였을 때마다 땅은 저주를 받아 이제껏 살기 좋은 땅에 없었던 것들을 만들어내었다.(성경 중 창세기 3장 17~18절)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 것이 그 대표적인 사실이다. 또한 노아의 홍수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세기 6장 5절) 일어난 땅이 받은 저주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빙하시대도 또한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으로 설정해야 한다. 그런 말씀은 성경에 딱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것을 추측해볼 수 있는 성경이 바로 욥기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해서 놀라움을 안겨줬던 욥기는 그 연대가 모호하지만, 창세기 11장 정도되는 상당히 오래된 시기에 쓰인 시가서이다. 노아의 홍수와 하나님의 아브라함 택하심 사이 즈음으로 추측할 수 있는 욥기를 보면 우리가 ‘빙하시대’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 

 

‘빙하시대’는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인 시대가 아니라 빙하가 광역적으로 뒤덮인 시대이다. 눈이 한꺼번에 많이 내려 그 압력으로 인해 얼음으로 변한 것이 좀 넓게 차지한 시대이지, 전역이 다 빙하로 뒤덮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현재로도 해안가와 적도 부근은 빙하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욥기가 살고 있는 ‘우스’(욥기 1장 1절)는 성경에서 에돔 땅이라고 추정되는 곳이다. 성경에,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예레미아애가 4장 21절)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에돔은 사해 남부에 위치하니 이스라엘 땅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지금도 눈이 오는 곳이 아니며, 얼음이 어는 곳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욥기에는 대화 중에 눈과 얼음에 대한 표현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드러나있는 것을 보면 욥기 시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빙하시대임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욥이나 세 친구의 대화에 보면 그들은 창세기에 드러나있는 사건들, 인간이 만들어진 방법인 흙에 대한 것, 땅이 움직이며 물을 보내신 즉 땅을 뒤집는 노아의 홍수 사건이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그 시대는 바벨탑 사건부터 아브라함 시대 이전까지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창세기에 보면 또하나 극적인 사건이 있다. 인간은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를 대적하여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지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한 그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분화시켜 세계 각지에 흩어지게 해버리셨다. 그리고는 빙하시대를 만드셔서 해수면이 낮아져 대륙붕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인간들이 흩어진 이후에 빙하를 녹이셔서 인간들이 다시 교류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홍수 사건 이후에는 그 전에는 없었던 추위가 생겼고, 그 이후 빙하시대에 와서야 극심한 추위와 열악한 지형을 만드셨다. 그 이전에는 지금의 사막이나 극지방 같은 열악한 지형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나이를 보면 극명하게 알 수가 있다. 홍수 전에는 거의 900살까지 살았던 인간의 수명이, 홍수 이후로는 500살로 내려간다. 그리고 바벨탑 사건 이후에는 250살 정도로 내려가 현재와 비슷하게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추위와 극심한 스트레스가 수명을 단축시킨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지구의 나이가 46억 년인 것도, 빙하시대가 여러번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내리신 땅에 대한 저주가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서계에 매장된 석탄과 석유만 봐도 한꺼번에 국부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의 사체가 그렇게나 많이 썩을 수가 있을까. 홍수 사건이 아니었다면? 공룡의 멸종을 신기하게 여기지만 다른 동물과 똑같이 홍수 이후에 살았다가 빙하시대의 추위로 멸종되었던 것으로 보면 어렵지 않다. 욥기 마지막에 나오는 베헤못, 리워야단이란 동물은 아무리 봐도 하마나 악어로 대비될 수 없다. 그것은 지금은 멸종되어 없는 공룡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면 된다. 꼬리치는 것이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은(욥기 40장 17절) 하마는 없고,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나오는(욥기 41장 19절) 악어는 없으니까 말이다. 인간의 인종 변화도 바벨탑 이후에 극단적으로 단절된 분화의 한 모습으로 보면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모두 성경책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안 기분이다. 이 성경을 옆에 두면서도 많이 읽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깝다. 이 말세의 때에,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있으며 세상의 이치까지도 포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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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나서 혁명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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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메흐멧 누스렛(Mehmet Nusret)으로, 1915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예술 아카데미에서 문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에는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이때부터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4년 육군 중위로 퇴역한 뒤, 신문 기자를 거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신문 기자 시절, 〈카라괴즈〉 등의 신문에 발표한 풍자 소설과 콩트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평론 등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백여 권이 넘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비롯해서 34개국어로 번역되었고,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풍자 문학상을 휩쓸기도 하였다. 1972년에는 고아들에게 교육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네신 재단'을 설립했으며, 1995년 사망 후 유언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 발생되는 모든 인세가 이 재단에 기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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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를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우화집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를 보고서부터였다. 우화 속에 등장한 수많은 동물들은 어리석인 인간을 대표하는지라 내용은 참혹할지라도 읽고 있노라면 싱긋이 미소를 지어지게 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수록단편 중 대표작인 「위대한 똥파리」가 제일 마음에 와닿았는데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파는 인간은 어쩌면 실현가능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무식하게 달려드는 똥파리와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당나귀 표지가 귀여워서 보게 된 책이었는데, 그렇게 아지즈 네신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읽고 나서 마음에 와닿는 반향이 커서 작가가 누구인지 머릿속에 기억해두려고 펼쳐들었던 그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일본인이 아니였다. 일본소설이 우리나라 소설보다는 유쾌하게 울림을 줘서, 혹은 이름이 일본 이름 같아서 그렇게 추측했는데, 실은 터키 작가였던 것이다. 여러 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 환경에서 살아온 나라이다 보니까 기본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소 비슷한 경향을 띠는구나 생각했었는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한창 미디어 매체에서 터키는 우리와 형제 나라 어쩌구 했던 때라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서 봤던 책이 회고록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가 없다』였고, 그 책은 그가 썼던 작품 때문에 유배당했던 경험을 정리해놓은 것으로 인간의 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강인한 정신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작품이 이 단편집에 하나 수록되어 있는데, 다 읽고 나면 허탈한 웃음이나 어이없음만 나올 만큼 인간의 본성은 나약하고 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 내가 그를 알게 된 책처럼 말랑말랑한 우화나 소설류가 아니였기에 그에게서 내가 기대했던 바는 충족시켜주지 못했었다. 냉철하고도 매력적이면서도 절대 방향성을 잃지 않는 그의 풍자를 마음껏 보고 싶었는데 그의 회고록에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쉬웠던 것!! 그래서 그의 진정한 소설적 묘미를 보고 싶다면 역시 소설이 제일이다.



그래서 보게 된 소설이 바로 이 책, 『일단, 웃고나서 혁명』 이다. 이 책은 짤막한 단편집으로 총 열세 편의 단편이 모여 있다. 책 제목처럼 분명 혁명적인 내용은 있지만 그 수준이 미미하거나 조잡하여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속에는 터키의 독재정치나 가난한 생활을 그대로 드러나기도 해서 안타까운 면도 분명 느낄 수 있지만, 그런 모습에서 우리 과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한편으로는 애틋하기도 했다. 언젠가 신문인지 뉴스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값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피 값을 내고 쟁취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가 훨씬 잘 지켜지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내용을 들었거나 읽은 적이 있다. 한 번도 내 나라에 대해서 그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던 평가였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선조들은 민주화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후손들이 그 민주주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뿐 그들은 충분히 제 할 일을 다 하셨다. 그래서 다른 독재 정권 아래에서 놓인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제시하며 혁명을 준비한다고도 하셨다. 원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들 하던가.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좋았던 것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 라는 단편인데, 독재 정권 아래에서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일구려고 했던 한 재야 정치인이 감옥에서 출소한 후에 돈이 없어 시내 중심가에서 방을 얻지 못하고 아주 구석진 시골로 이주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변두리 초라한 집에 방을 얻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일자리를 못 얻어서 방세라도 아끼기 위해 친구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 같이 살아가려고 마음먹지만, 주변에 있는 찻집 주인, 청과물 주인, 구멍가게 주인이 가지 말라고 만류해 그 자리에서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 때 이 정치인은 시민들이 자신이 이제껏 싸워온 자유에 대해서 인정해준다는 생각했다는 것이 가장 슬펐다. 어쩜, 그렇게 순진할 수가 있을까. 결단코 그런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재야 정치인이 나중에 그 내막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속내는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도 안 간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풍자를 사용해 가장 아프고 가장 은밀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아지즈 네신의 소설은 말해서는 안될 것이 많은 요즘 시대에 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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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에서 세상을 기록하다 - 로이터 통신 뉴욕 본사 최초 한국인 기자 이야기
문혜원 지음 / 큰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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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말을 좋아한다. 국내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신기록... 간혹 보면 우린 이런 말을 남발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가장 처음이라는 말이 가지는 매력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로이터 통신 뉴욕 본사 최초 한국인 기자인 문혜원 기자를 처음 봤을 때도 그런 매력에 한껏 빠져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얼굴도 이쁜 것이 머리도 좋았구먼~’ 어떤 분야에 도전하나 그 장소가 뉴욕이면 영어가 네이티브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말로 먹고 사는 기자란 직업이라면 넘어야 할 장벽은 상상을 불허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인이 도전하지는 못할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순수 한국인이기는 하지만 영어를 현지인만큼 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타고났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만약 그녀가 유아기부터 외국에 나가 살 수 있는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면, 한 번도 외국에 서 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로이터 통신 최초 한국인 기자’라는 타이틀을 얻어내지는 못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4살 때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를 시작으로 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은 인도, 태국, 미국, 한국에서 보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은 캐나다에서 보냈으니 그녀가 가진 배경이 얼마나 탄탄한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가 성장할 수 있는 한계를 어느 정도 결정할 뿐.
 
그러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할 시기인 청소년기까지를 외국에서 보냈으니 한국어 실력이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바르게 서있었을까 걱정이 될 만한 경우인데, 이는 교육관이 확고하신 아버지 덕택에 해결될 수 있었다. 밖에서는 영어를 쓰더라도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어를 써야 한다는 규칙을 정해놓고 밥을 굶기는 혹독한 벌을 주시는 아버지 덕분에 자신이 한국인임을 배울 수 있었단다. 미국 국가는 다 외울 수 있으면서 애국가는 못 외우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4절까지 외울 때까지 공부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벌을 받았을 때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해준 중요한 교훈이었다고.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사람 뒤에는 항상 그보다 더 대단한 부모님이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대단한 능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11개월 앞서 태어난 언니도 소위 영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특했고, 그녀의 어머니도 첫 부임지인 나이지리아에서 영어를 만나 끊임없이 가르치고 배워 결국 영어강사자격증까지 취득해서 현재까지 영어가 제 2의 외국어인 사람들에게 가르치신단다. 게다가 아버지는 또 어떤가. 외교관이신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딸이 뉴욕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부터 매일같이 전화로 한국 뉴스를 브리핑해주시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지. 역시나 외교관이셔서 그런지 브리핑하는 내용이 나는 알아듣지 못할 경제 분야를 빠삭하게 정리해주시는 것이 기자급이었다. 이런 가족들 곁에 있으니 뭐가 되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도 처음부터 기자란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경영학과에 진학했는데, 흥미도 없고 성적도 최악이라서 고민을 하는 중에 글을 쓰는 교양 과목에 점수도 잘 나오고 재미있었던 것을 기억해내 영문과로 전과했다. 그러나 경영학과와는 다르게 영문과는 시험 유형이 모두 에세이쓰기라서 회화는 현지인처럼 하지만, 글 쓰기의 깊이가 없던 그녀로서는 부단히 노력했단다. 그러다 글을 하루에 3~4시간을 투자해서 쓰는 노력 중에 학교 학보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글 쓰기 실력을 탄탄하게 다지게 되는 계기를 얻었다. 결국 기자라는 직업에 필이 꽂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따끈따끈하게 막 꾼 꿈에다가 글 쓰기 실력은 바닥인 그녀가 졸업하고 지원한 유명 언론사는 모조리 “NO”를 외치니, 얼마나 좌절했을까. 그 중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실패자라고 보는 것이 더 괴로워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엔 공업개발기구에 인턴으로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하지만 포기했다고 했던 그 꿈이 더욱 강렬하게 갖고 싶은 것이 되어버린 그녀에겐 유엔이란 꿈에 그린 직업이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고즈넉한 풍경에 여유로운 환경에서 열정적으로 개발도상국의 공업에 대해서 조사하여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인류의 꿈을 위해 뛴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그만 그 자릴 박차고 다시금 한국에서 기자란 꿈에 도전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연합뉴스에서 기자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고, 굵직굵직한 특종도 쓰고 상도 받으면서 나름 잘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뉴욕 본사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알게 되었다. 모르면 몰랐지, 이왕 알게 된 것은 호기심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한국의 혹독한 수습기자생활도 해냈는데 뉴욕에서 무얼 못하겠나 싶었던 그녀는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것이 성공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확고한 꿈이 있어서 어릴 적부터 글 쓰기나 사건을 관찰하는 것을 해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살아오는 동안 해온 여러 경험 중에서 자신의 열정을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대상을 찾았고, 그를 위해 실패와 좌절을 해보고 나서 그 분야에 성공을 이루는 것도 가히 나쁘지 않다. 그러니 그녀는 점점 노력하면서 성취하는 유형이었다. 처음부터 머리가 좋거나 뛰어나게 영특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꾸준히 그 꿈을 놓지 않고 매달리는 승부 근성 하나만을 가지고도, 살벌하기 그지 없는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앞으로 종군기자가 될지, 정치의 중심 워싱턴 DC에서 한국인 최초로 백악관 출입 기자가 될지, 칸의 영화 담당 기자가 되거나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기자가 될지, 아직 아무것도 결정난 것은 없다. 하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과정처럼만 준비한다면 이번에도 그녀가 꿈꾸는 그것을 얻게 될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뉴요커의 생활이나 기자의 생활, 다채로운 경험을 얻고자 한다면 딱히 기자에 관심이 없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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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탁월함에 미쳤다 - 공병호의 인생 이야기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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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국내 1호 1인 기업가의 길을 걷고 있는 공병호 소장은 여러 모로 뛰어난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겐 딱 한 권의 책이 남긴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그 이후 그가 낸 수많은 책들을 본 적이 없어, 그에 대한 내 평가는 항상 가치절하되어 버렸다. 첫 인상이 오래 간다고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책에 대한 첫 인상이 상당히 오래 간다. 그래서 유명하고 이름 있는 그의 책을 다시는 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내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전에 읽었던 단 한 권의 책은 그의 이름에 대해서만 기억하게 했을 뿐, 정작 그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실속 없는 사람이 겉모습이 화려하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처럼 책만 예뻤을 뿐이다. 그 책을 읽고 들었던 생각은 ‘이 정도의 글은 나도 쓰겠다!’였으니, 그 때의 내 평가가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해에 300여 건의 강연을 함에도 매일 집필을 꾸준히 한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런데 그 때의 내가 본 그 글은 비전문가도 쓸 수 있는 정도의 수기였기에 내게는 별로 매력적으로 비춰지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그 때 호기심으로 그의 전공분야와 관련된 다른 책을 읽었다면 내 부정적인 생각이 순식간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었을 테니까 말이다.
 
자기경영이니, 자기관리니 하는 말은 요즘 들어 많이 사용하는데,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모든 것을 ‘경영’이라는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한 것일 뿐, 사실 다들 해왔던 것이다. 그런 것이 좀 더 확실한 스킬이 등장해서 일반인도 좀더 용이하게 자기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게 제공되었을 뿐, 원래 특출난 인물들은 그렇게들 해오지 않았던가. 물론 이것도 다 책에서 제공받아 알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멋들어지게 말하는 인생철학은 어딘가 아쉽다. 전에 읽은 『빌딩부자들』이란 책에서도, 공병호 소장이 말하는 것처럼 부자가 되기 위해서 단계적으로 접근하고, 현재의 즐거움보다는 미래의 풍요로움을 즐기기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여러 방안들을 말하고 있고, 또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맞긴 하지만,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려가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병호 소장은 언제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던가. 그것이 30대인지, 60대인지를. 미리 젊을 때 그 대가를 지불해놓으면 노년이 편할 수 있고, 만약 젊을 때 미래를 위해 대비를 해놓지 않으면 노년에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이다. 한번 더 말하지만, 다 맞는 말이다. 특히 공병호 소장의 경우에는 20대의 특유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치열한 노력과 쉼없이 달려온 근성으로 대체했기에 50대가 된 지금 남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가 한국경제연구원에 있을 때도 얼마나 쉼없이 달려왔는가. 그도 말했듯이, 사기업에서는 성과가 바로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 없다고 하지만, 연구소 같은 곳은 그럭저럭 일한 듯 하게 보일 수 있는 느슨한 곳에서도 그는 항상 일을 찾아다니면서 했다. 그 당시에는 별로 돈이 되지 않는 기고도 칼럼부터 해외 신간을 요약해주는 것, 그리고 뜨고 있는 사업가 몇몇을 인터뷰하겠다는 것까지 스스로 기획해서 제의할 정도로 그는 뭔가에 몰두해온 사람이었다. 그런 선택과 집중이 현재의 공병호 소장을 만들어왔다는 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해왔던 치열한 일처리와 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고나 방송 출연 등이 옳았던 방법임도 부인할 수 없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본 여행이나 - 이젠 평생 못가게 생겼다. 일본에 원자로가 문제 생겼으니 - 그가 일에 매진하며 스스로 몰아붙였기에 파생했던 온갖 부정적인 것들, 즉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 사내 정치에 휘말리게 된 것이나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의 신의를 매정하게 저버린 것이나 자신의 정체성을 재점검하지 못해 오랜 시간 쌓아온 인맥과 경력들을 다 팽개치고 순간의 충동에 못 이겨 이직을 한 것들 같은 그의 삶을 돌아봤을 때 더 풍요로울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다.
 
특히 자신이 가진 모든 경력들을 버려두고 전직한 기업에서 그만둘 때 손을 내밀어 준 일본의 객원 교수의 신의를 저버린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서문에서 공 소장이 말하길, 그를 실제 만나보면 소탈하고 구김살 없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워한다고 했었나. 그런데 그의 인생 역정을 들여다 보니 놀라워할 것이 하등 없었다. 자신의 마음이 가고자 하지 않아서 먼저 손을 내밀어 일본에 잠시 머물 곳을 찾아달라고 해놓고서 냉큼 철회해버린 결정은 자기만 생각하는 못된 이기심 때문일 것이고, 연구원으로 있을 때 사내 정치에 휘말린 것은 평소 덕을 베풀지 않아 사람들을 다독이지 못한 그의 인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니까. 그도 시인하길, 그 때는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그가 반성한 것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시인보다는 튀면 그만큼의 시기 질투를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지 않은가. 쉬지 않고 노력하고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료 연구원에 대한 시기를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노력도 안하고 남 험담하기만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당연히 노력한 자에게 보상이 더 많이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보상 차원이 아니라 그가 시발점이 되어 그 연구소가 다 성장할 순 없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가 진짜로 소탈하고 구김살이 없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사견이다. 그 당시에는 아마도 그가 조금은 공격적이지 않았을까. 성공만 생각하고, 앞으로 갈 것만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삶이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그에게 반성이라는 단어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토요일,일요일마다 시행하는 자기경영 아카데미는 사실 리더십에 대한 것이 아닌가. 자기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경영 프로그램을 그에게서 사람들이 사는 이유는 실은 공병호 소장의 리더십에게서 한 수 배우고 가고 싶은 바람인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기 자신을 구하는 자기만을 위한 행위가 진정한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다른 사람들까지도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 않은가. 공병호 소장이 뭐 대단한 위인이라고 인품까지도 요구하느냐 하면 뭐, 할말은 없다만 그 당시 그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그도 50대가 된 지금에서야 지금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반성이 있고, 공감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가리켜 공감을 잘 하는 강연자라고 하는데, 그 공감은 그가 나이가 먹었고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기에 얻어진 것이다. 철없던 30대에서는 그런 것이 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도 유학시절 자신을 잠식해왔던 불안과 초조감 때문에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좀 더 여유롭게 접근하지 못했던 것과, 학위를 딴 후 현지에서 직장을 얻어서 좀 더 현지화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그가 미국에서 첫 직장을 얻었다면, 조금만 더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가졌다면 그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1인 사업가’가 아닌 세계에서 통용되는 ‘1인 사업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일궈낸 모든 것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쉬지 않고 달려온 그의 근성에도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한 가지 덧붙여 대학생들과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목표를 정해 쉬지 않고 달려오되, 아침과 저녁에는 감사와 반성을 해야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현재를 만들어온 모든 것에게 감사를 하고, 하루를 마감하면서 반성을 한다면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현재를 즐기고, 그가 되고 싶은 무언가가 되는데 있어 너무 성과에만 연연해하지 않고 그 자체를 기쁘게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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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시작했습니다
히라사와 마리코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작고 아주 귀엽게 나온 책이다. 게다가 응용력도 대단해서 이 책에 등장한 대로 따라하기만 하더라도 베란다를 다양한 용도로 꾸미기에는 제격이다. 특히 전체적으로 따스한 일러스트로 되어 있는 책이라서 손쉽게 읽을 수 있을 수도 있고, 아기자기한 그림 속에 빠질 수도 있다. 손글씨와 일러스트를 특별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책을 최상의 소장 가치가 있는 책으로 보는데 이런 특별한 책을 만나게 되어 참 기쁘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한 해에 출간되어 나오는 책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 나와 만나 깊은 생각을 소통하는 책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좋은 책도 많고, 실용적인 책도 많지만 나랑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책은 극히 찾기가 어렵다. 또한 다양한 책들이 봇물 같이 쏟아져 나오니까 책을 고르는 방법면에서도 내가 신중하지가 못한 것을 가끔 본다. 그러나 책의 종류는 다양해서 마음을 나누어야 할 책도 있지만, 이렇게 응용해봐야 하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당연히 후자인데, 그냥 설명으로 나올 수도 있는 것을 그림으로 일일이 그려주는 정성을 보여준다. 저자가 일본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까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더라. 그러니 이런 책이 나온 것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금물이다. 언제나 감사해야지... 어쨌든 얇고 작고 간단해서 한 번에 읽어버렸다. 앙증맞아서 계속 읽게 되는 책이다.

 

베란다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어쩌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것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베란다를 터서 거실을 넓게 지낸다거나 정원으로 꾸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TV에서  봤는데,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던 그것을 이 책에서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아파트에 딸려있는 베란다는 우리나라의 그것처럼 건물 안에 있지가 않다. 아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샤시 공사를 하기에 하나의 완성된 건물 안에 베란다가 있는데 일본의, 이 저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샤시 공사를 하지 않아서 완전히 개방된 공간이었다. 만약 샤시라는 것이 있다면 답답하게 보일 것 같은 구조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책을 보고 적용할 때는 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베란다에서 물빠짐이 안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천인공노할 일일 테니까 말이다. 당연히 베란다에 세탁기나 화분을 놓을 수 있도록 물도 빠지고 수도도 설치되어 있는데 이 책에는 수도꼭지도 없고 물이 빠져나가는 하수구도 없었다. 그래서 그것에 맞게 흙을 깔고 잔디로 깔았는데 나름 괜찮았다. 완전한 콘크리트 바닥에 흙을 깔고 그 위에 살아있는 잔디를 깔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나름 충격적이었는데, 일본에는 그런 공사를 해주는 전문점까지 있으니 한국에서도 찾아보면 충분히 가능할 듯 싶다. 잔디를 깔기 위해서는 먼저 튼튼한 비닐 시트를 깔고 그 위에 울퉁불퉁한 플라스틱 재질의 합성수지를 깔고 중간에 움푹 패인 부분은 펄라이트(진주암)이란 돌로 메워야 한다. 그 위에 흙이 흘러내려 가지 않도록 침수시트를 조심스레 깔아놓은 다음, 그 위에 모래처럼 보이는 흙을 깔고 물을 충분히 뿌려 모래가 날리지 않도록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타일 상태로 된 잔디를 조금씩 틈을 줘가며 늘어놓고 잔디 표면에 흙을 휙휙 뿌려주면 끝이다.

 

바닥을 다 했으면, 이제 전체적인 배치를 마무리해야 한다. 일단 옆집의 시야를 차단시키기 위해 나무 판자로 벽을 만들어 세웠고, 그 위에 정원 용품을 걸어두거나 작은 다육식물을 종이화분에 심어 걸어두어도 운치있다. 적당히 분위기 있게 녹이 슨 난간에는 물이 빠지는 소재로 된 가방을 매달아놓고 알로에나 작은 꽃을 심어두었고, 저녁 시간에 무드를 주려고 걸어둔 핸드메이드 랜턴은 모로코에서 산 민트티 유리컵에 철사로 엮어 고정시켜두고 속에 작은 양초를 넣어두면 된다. 그리고 에어컨 실외기를 나무로 만든 탁자로 씌워 활용도가 높은 탁자로 쓸 수 있게 만들면 이제 완성이다. 이것을 보면 베란다는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훨씬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되거나 덤으로 생긴 공간으로 쓰거나 둘 중 하나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것도 생각만 잘할 수 있으면 훨씬 다채롭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말고도 베란다에서 잠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점심 메뉴도 등장하고, 창가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일단 창가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는 아크릴 물감으로 커튼에 간단하게 선만 그리는 것과 창문에다가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놓는 것, 이 두 가지인데 정말 간단하면서도 그 효과가 크다. 또 모빌을 만들어서 매달거나 종이를 오려서 오브제를 붙여도 색다르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조금만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으로도 베란다는 확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을 명심해야 한다. 봄이 성큼 가까이 온 이 때에, 베란다를 봄으로 변신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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