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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나서 혁명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본명은 메흐멧 누스렛(Mehmet Nusret)으로, 1915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예술 아카데미에서 문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에는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이때부터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4년 육군 중위로 퇴역한 뒤, 신문 기자를 거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신문 기자 시절, 〈카라괴즈〉 등의 신문에 발표한 풍자 소설과 콩트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평론 등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백여 권이 넘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비롯해서 34개국어로 번역되었고,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풍자 문학상을 휩쓸기도 하였다. 1972년에는 고아들에게 교육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네신 재단'을 설립했으며, 1995년 사망 후 유언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 발생되는 모든 인세가 이 재단에 기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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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를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우화집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를 보고서부터였다. 우화 속에 등장한 수많은 동물들은 어리석인 인간을 대표하는지라 내용은 참혹할지라도 읽고 있노라면 싱긋이 미소를 지어지게 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수록단편 중 대표작인 「위대한 똥파리」가 제일 마음에 와닿았는데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파는 인간은 어쩌면 실현가능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무식하게 달려드는 똥파리와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당나귀 표지가 귀여워서 보게 된 책이었는데, 그렇게 아지즈 네신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읽고 나서 마음에 와닿는 반향이 커서 작가가 누구인지 머릿속에 기억해두려고 펼쳐들었던 그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일본인이 아니였다. 일본소설이 우리나라 소설보다는 유쾌하게 울림을 줘서, 혹은 이름이 일본 이름 같아서 그렇게 추측했는데, 실은 터키 작가였던 것이다. 여러 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 환경에서 살아온 나라이다 보니까 기본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소 비슷한 경향을 띠는구나 생각했었는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한창 미디어 매체에서 터키는 우리와 형제 나라 어쩌구 했던 때라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서 봤던 책이 회고록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가 없다』였고, 그 책은 그가 썼던 작품 때문에 유배당했던 경험을 정리해놓은 것으로 인간의 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강인한 정신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작품이 이 단편집에 하나 수록되어 있는데, 다 읽고 나면 허탈한 웃음이나 어이없음만 나올 만큼 인간의 본성은 나약하고 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 내가 그를 알게 된 책처럼 말랑말랑한 우화나 소설류가 아니였기에 그에게서 내가 기대했던 바는 충족시켜주지 못했었다. 냉철하고도 매력적이면서도 절대 방향성을 잃지 않는 그의 풍자를 마음껏 보고 싶었는데 그의 회고록에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쉬웠던 것!! 그래서 그의 진정한 소설적 묘미를 보고 싶다면 역시 소설이 제일이다.
그래서 보게 된 소설이 바로 이 책, 『일단, 웃고나서 혁명』 이다. 이 책은 짤막한 단편집으로 총 열세 편의 단편이 모여 있다. 책 제목처럼 분명 혁명적인 내용은 있지만 그 수준이 미미하거나 조잡하여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속에는 터키의 독재정치나 가난한 생활을 그대로 드러나기도 해서 안타까운 면도 분명 느낄 수 있지만, 그런 모습에서 우리 과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한편으로는 애틋하기도 했다. 언젠가 신문인지 뉴스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값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피 값을 내고 쟁취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가 훨씬 잘 지켜지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내용을 들었거나 읽은 적이 있다. 한 번도 내 나라에 대해서 그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던 평가였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선조들은 민주화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후손들이 그 민주주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뿐 그들은 충분히 제 할 일을 다 하셨다. 그래서 다른 독재 정권 아래에서 놓인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제시하며 혁명을 준비한다고도 하셨다. 원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들 하던가.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좋았던 것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 라는 단편인데, 독재 정권 아래에서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일구려고 했던 한 재야 정치인이 감옥에서 출소한 후에 돈이 없어 시내 중심가에서 방을 얻지 못하고 아주 구석진 시골로 이주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변두리 초라한 집에 방을 얻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일자리를 못 얻어서 방세라도 아끼기 위해 친구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 같이 살아가려고 마음먹지만, 주변에 있는 찻집 주인, 청과물 주인, 구멍가게 주인이 가지 말라고 만류해 그 자리에서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 때 이 정치인은 시민들이 자신이 이제껏 싸워온 자유에 대해서 인정해준다는 생각했다는 것이 가장 슬펐다. 어쩜, 그렇게 순진할 수가 있을까. 결단코 그런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재야 정치인이 나중에 그 내막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속내는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도 안 간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풍자를 사용해 가장 아프고 가장 은밀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아지즈 네신의 소설은 말해서는 안될 것이 많은 요즘 시대에 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