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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시대 이야기 - 영화처럼 재미있는 창조과학의 세계 ㅣ 창조과학 파노라마 4
이재만.최우성 지음 / 두란노 / 2011년 4월
평점 :
예전에 어떤 책의 서평을 창조과학 입장에서 썼다가 나보다 더 많은 과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반박당한 경험이 있다. 과학전문가도 아닌 순수한 아마추어인 내가 읽고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쓴 글로 인해서말이다. 그 때 느꼈던 것은 ‘아는 것이 힘!’이었다. 참 당연하게도 증명해낼 수는 없지만, 지금 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지극히 사실이고 진리인 창조과학에 대해서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반박하는 그 분께 제대로 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때는 안타깝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인터넷서점에 있는 블로그에 개인적인 의견을 올린 것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만 여겨졌었지만 말이다. 어떤 물리학 관련 책에서는 창조과학은 증명해낼 수 없지만, 지적설계자를 상정해놓고 풀어가는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믈리학은 생물학이나 지질학처럼 드러난 증거가 없는 분야이기에 그 말이 이성적으로 맞긴 하지만, 그것을 읽는 나는 창조과학이 ‘이론’일 뿐이라는 말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물리학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이 책, 『빙하시대 이야기』는 상당히 근거있는 반론을 제기해주어서 든든했다. 자신이 이때까지 믿어왔던 것이 허구일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나는 제대로 알고 있지만 증거로 내놓을 수 있는 지식이 없어서 반박당하는 기분이 더 끔찍했기 때문이다.
‘매머드’의 존재만으로도 지구에는 ‘빙하시대’라는 시기가 있었던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나이가 46억 년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은 ‘해빙기’, ‘간빙기’등의 이름을 붙여 빙하시대가 여러 번 일어났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은 나도 그런 주장이나 그런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이니, 이 가설은 아마 상식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에 진화론에 대해서만 줄창 배우다보니, 창조론이라는 믿음과 진화론이라는 학교 지식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구과학 시간에는 선캄브리아 시대, 백악기 시대 등으로 줄창 외우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를 줄창 믿기만 했다. 그래서 조목 조목 따져보며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함에도 무턱대고 믿어가는 맹목적인 믿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고, 흐릿하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 ‘빙하시대’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정말로 창조하셨다는 믿음직한 증거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과거 때보다는 좀 더 생각을 가지고 모든 사실에 대해 이성적인 근거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믿음에 확신을 준 것은 바로 이 책이다. 한 예로, 지나가는 말로 누군가가 성경적인 연대기로 지구는 약 6,000년 쯤 되었다고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는 〈네이처〉라는 과학 잡지에 인간의 현재 인구를 가지고 거꾸로 계산해보면 약 6,000년이 나온다는 조그만 논문이 실린 것을 알려주었다.
지적설계자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불손한 인간이 조그만 단백질 덩어리에서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낭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지구의 나이를 46억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짓말을 해댔는데도, 그것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이 크다. 학교에서도 그런 가설로만 12년 동안 배우니, 이성과 믿음이 충돌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뿐, 어느 것 하나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믿음도 좋고, 말씀도 좋지만, 우리가 배우고 있는, 우리의 생각을 공격하고 있는 이러한 부분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어야 하겠다. 성경에 보면 인간이 범죄하였을 때마다 땅은 저주를 받아 이제껏 살기 좋은 땅에 없었던 것들을 만들어내었다.(성경 중 창세기 3장 17~18절)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 것이 그 대표적인 사실이다. 또한 노아의 홍수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세기 6장 5절) 일어난 땅이 받은 저주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빙하시대도 또한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으로 설정해야 한다. 그런 말씀은 성경에 딱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것을 추측해볼 수 있는 성경이 바로 욥기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해서 놀라움을 안겨줬던 욥기는 그 연대가 모호하지만, 창세기 11장 정도되는 상당히 오래된 시기에 쓰인 시가서이다. 노아의 홍수와 하나님의 아브라함 택하심 사이 즈음으로 추측할 수 있는 욥기를 보면 우리가 ‘빙하시대’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
‘빙하시대’는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인 시대가 아니라 빙하가 광역적으로 뒤덮인 시대이다. 눈이 한꺼번에 많이 내려 그 압력으로 인해 얼음으로 변한 것이 좀 넓게 차지한 시대이지, 전역이 다 빙하로 뒤덮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현재로도 해안가와 적도 부근은 빙하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욥기가 살고 있는 ‘우스’(욥기 1장 1절)는 성경에서 에돔 땅이라고 추정되는 곳이다. 성경에,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예레미아애가 4장 21절)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에돔은 사해 남부에 위치하니 이스라엘 땅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지금도 눈이 오는 곳이 아니며, 얼음이 어는 곳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욥기에는 대화 중에 눈과 얼음에 대한 표현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드러나있는 것을 보면 욥기 시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빙하시대임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욥이나 세 친구의 대화에 보면 그들은 창세기에 드러나있는 사건들, 인간이 만들어진 방법인 흙에 대한 것, 땅이 움직이며 물을 보내신 즉 땅을 뒤집는 노아의 홍수 사건이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그 시대는 바벨탑 사건부터 아브라함 시대 이전까지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창세기에 보면 또하나 극적인 사건이 있다. 인간은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를 대적하여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지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한 그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분화시켜 세계 각지에 흩어지게 해버리셨다. 그리고는 빙하시대를 만드셔서 해수면이 낮아져 대륙붕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인간들이 흩어진 이후에 빙하를 녹이셔서 인간들이 다시 교류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홍수 사건 이후에는 그 전에는 없었던 추위가 생겼고, 그 이후 빙하시대에 와서야 극심한 추위와 열악한 지형을 만드셨다. 그 이전에는 지금의 사막이나 극지방 같은 열악한 지형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나이를 보면 극명하게 알 수가 있다. 홍수 전에는 거의 900살까지 살았던 인간의 수명이, 홍수 이후로는 500살로 내려간다. 그리고 바벨탑 사건 이후에는 250살 정도로 내려가 현재와 비슷하게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추위와 극심한 스트레스가 수명을 단축시킨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지구의 나이가 46억 년인 것도, 빙하시대가 여러번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내리신 땅에 대한 저주가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서계에 매장된 석탄과 석유만 봐도 한꺼번에 국부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의 사체가 그렇게나 많이 썩을 수가 있을까. 홍수 사건이 아니었다면? 공룡의 멸종을 신기하게 여기지만 다른 동물과 똑같이 홍수 이후에 살았다가 빙하시대의 추위로 멸종되었던 것으로 보면 어렵지 않다. 욥기 마지막에 나오는 베헤못, 리워야단이란 동물은 아무리 봐도 하마나 악어로 대비될 수 없다. 그것은 지금은 멸종되어 없는 공룡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면 된다. 꼬리치는 것이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은(욥기 40장 17절) 하마는 없고,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나오는(욥기 41장 19절) 악어는 없으니까 말이다. 인간의 인종 변화도 바벨탑 이후에 극단적으로 단절된 분화의 한 모습으로 보면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모두 성경책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안 기분이다. 이 성경을 옆에 두면서도 많이 읽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깝다. 이 말세의 때에,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있으며 세상의 이치까지도 포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