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넥타이 긴치마
백혜숙 지음 / 씨앤톡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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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카툰을 보았다. '긴넥타이군'과 '긴치마양'의 2년 남짓 사랑이야기...

 

왜 하필 이름을 '긴넥타이'와 '긴치마'라고 지었을까? 라고 궁금해하기가 무섭게 그에 대한 궁금증을 처음부분에서 풀어준다. 정말 세심한 작가다. [3. 이유(p. 15)]편에 나타나 있는 답변은, 물어보는 '긴치마양'에게 '긴넥타이군'이 대답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건 우리 둘다 아직 많이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계속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길이가 적당해져 있을 거에요. 그 때까지 함께 걸어요. 겸손하게 자신의 어림을 인정하고 계속 성장하기로 다짐하는 모습이 참 진실되어 보였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서 알콩달콩 나누는 사랑이야기라니 그저 그것만 봐도 예뻐보였다. 흑흑..남자친구 하나 없는 나에게 이런 시련을... 

 

'긴넥타이군'은 지방에 살고 '긴치마양'은 서울에 살아서 둘다 수업이 없는 월요일에 기차를 타고 오고 가고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해서 서로에게 더 애틋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요즘에는 하루에 한 번씩은 만나야하고 전화통화는 수시로 해야하는 등 조금은 극성맞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값싸게 연애를 한다. 좋아하면 많이 만나서 상대방을 더 알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로의 공간까지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친할 사이일수록 서로 거리를 두고 예의를 지키라고 하시던 옛 말씀이, 나이가 들수록 새삼 맞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처음 한번 만나서 '긴넥타이군'의 생일을 알게 된 '긴치마양'이 두 번째 만나는 날에 그의 생일선물을 챙겨주었다. 빨간색 보온병. 사실 그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챙기긴 했는데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긴치마양'이 생각했던 말. 현재의 만남이 어색하고 미래의 만남이 흐릿해 보일지라도, 만남에 대한 자세는 언제나 예의바르고 진지하며 성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추위를 타는 그를 위해 이곳 저곳 커피전문점을 찾아다니며 좋아하는 색깔의 보온병을 골라왔던 것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는데...그것을 보면서 저러고 싶을까... 하고 한심해했었는데...이 두 연인은 기본적으로 성실한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3년 전인가 4년 전인가 배우자에 대해 어떤 언니가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언니는 그 때 사귀고 있던 배우자감과 올해 11월에 결혼했는데 6년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집안 식구들의 반대가 심했고 주위에서도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지만 어쩐지 민망해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언니가 확고하게 말했던 건 이거다. 그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줘. 나도 그에게 그렇고.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거지. 결혼하려면 서로에게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나는 정말 배우자를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정해야지 하고 만들어놓은 게 하나도 없었는데 언니의 그 말을 들어보니까 딱 감이 왔다. 내 마음처럼 그의 마음을 알 수 있고 그도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런 관계. 둘이지만 하나인 관계. 항상 내 옆에 있어주고 내가 힘들 때 거들어주고 그가 힘들면 내가 거들어주는 그런 관계...그런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관계를 이 카툰에서 본 것 같다. 둘의 생각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것을 보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만 절로 든다.

 

이 카툰은 정말 볼거리가 많다. 사색의 시간을 주기도 하고 새내기 연인의 알콩달롱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자기가 졸업심사를 어떻게 해내었는지 보여주면서 인간의 노력과 겸손함과 한계를 잘 보여준다. 졸업심사라는 힘든 시기가 있었기에 '긴치마양'이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더러(앗! 그녀는 동양화 전공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카툰을 보면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둘다 성경책을 많이 보고 서로 나누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도 크리스찬이여서 그런 남자친구를 마음에 그리고 있지만 만날 때마다 성경공부를 한다고 하면(이 커플이 만날 때마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먼저 숨이 막힐 것 같아서 걱정이다. 내가 원하는 이상형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런 이상형이 되어야 한다는 말, 역시 진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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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물을 (양장)
새러 그루언 지음, 김정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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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서커스에 대한 기억이 없다. 실제 눈 앞에서 본 적도 없을 뿐더러 텔레비전 속의 서커스 공연도 그다지 즐겨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화려해보이는 겉모습 이면에 뭔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들이 있을거라는 어린 아이의 막연한 혐오감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한 볼거리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난쟁이, 거인, 뚱보 등 기상천외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서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구경거리가 되었겠지만 그래도 인간을 구경거리로 삼는다는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기에. 텔레비전이나 영화같은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에는 서커스가 유일한 오락거리라는 사실도 서커스에 대한 거부감을 씻어주진 못했다. 어쨌든 그런 광대 역할을 하는 자들은 약자이니까.

 

그런데 이 소설을 보고 서커스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배우'와 천막을 치거나 동물을 보살피는 '일꾼'들 사이에는 강자와 약자의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것과 일꾼은 동물들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 '배우'는 아무리 못난이여도, 정상인의 범주에 들지 못하더라도 좋은 숙소를 제공받고 좋은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고, 월급도 꼬박꼬박 받을 수 있지만 '일꾼'들은 기차의 화물칸에서 거적때기를 깔고 자야하고 씻을 물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식사도 허름한 식탁에서 해야할 뿐더러 월급도 제때 받을 수 없었다. 그 받을 월급이 많이 밀리면 달리는 기차에서 '빨간불'을 당한다는 사실은 대표적인 인권유린의 모습이었다. '배우'의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지만 '일꾼'은 보충이 가능하기에 - 더구나 미국은 대공황 시대이기에 - 가차없이 인간을 물건처럼 달리는 기차에서 던져버리는 모습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이런 대공황 때 기차로 이동하는 <벤지니 형제 서커스단>에 합류하게 된 '제이콥'은 수의사 공부를 하다가 만 상태였다. 어쩌다 보니 갈 데가 없어져 마지막 시험을 보지도 않은 채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 인연이 되어 많은 군상들을 만나며 인간에 대해, 동물에 대해,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그가 모든 것을 생생히 전해주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그다지 흥미가 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미 아흔 살이나 먹어버린 '제이콥'이다. 아흔 살, 아니 아흔 세 살의 '제이콥'이 삶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서커스단에서 있었던 일을 풀어놓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건 속으로 빠져들기만 하면 다시 현재로 내팽개치고 다시 집중해서 사건 속에서 '제이콥'이 되어 초조하게 지내다보면 어느새 현재로 튕겨나오니...그런데 그런 구성이 뒷부분에선 진가를 발휘한다. 처음엔 무기력하게 있었던 '제이콥'이 서커스단에 대한 기억을 하나 둘씩 끄집어내다보니까 청년시절에 느꼈던 열정과 활력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치매가 아닐까 걱정하고, 마음에 드는 간호사의 이름을 계속 기억못한다는 것에 절망하고, 새하얗게 센 머리에 쭈글쭈글해진 피부가 보기 싫어 거울을 안보게 되는 노인의 심리를 놀랄만큼 정확하게 그려냈다.

 

서커스의 생리라는 게 거짓으로 환상을 만들어 거짓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는 '오거스트'의 말처럼 진실이 아니여도 그것을 그리워하고 환상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서커스"로 보여주었다. 지금도 서커스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향수와 그리움, 환상을 선사하는지는 알 것 같다. 나도 이 책을 볼 때마다 그런 아련한 그리움 속에 잠길 것 같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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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3 - 흑색화약전쟁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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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에 이 책을 만났을 땐 이미 다른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해 기대치가 아주 컸던 상태였다. 그래서 만만치 않아보이는 두께의 책이 왔을 때 1,2권을 먼저 봐야한다는 이성(?)의 주장을 사알짝 물리치고 바로 3권을 보게 만들었을 정도로 그 끌림은 이루다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 방바닥이 아주 차다는 것이다!!! 오자마자 방바닥에 주저앉아 읽다보니 어쩐지 으슬으슬하고 재채기가 나는 것이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불 속에 들어가 마저 다보았다. 원래 책을 읽다가 중도에 쉬는 걸 용납못하는 성격이라 한 번 잡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해결해야하는 까칠함이 있긴 있었지만 이 책처럼 그 방대한 분량을 이렇게 한번에 다 읽은 것은 처음이다. 마치 누가 쫓아라도 오는 것처럼 부리나케 읽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내가 왜 그랬는지 참 의문이 든다. 어쨌든 다 읽고 나니 새벽 3시 반이 좀 넘었더라..자정에 가깝게 집에 도착했는데 씻기만 하고 소포를 뜯어봤던 게 화근이었다. 그 때 걸린 감기몸살(?)때문에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면 변명일까. 아님, 이런 방대한 내용에 대한 감상을 글로 옮겨낸다는 부담감때문에 그랬던 걸까.

 

1, 2권은 아직 못 읽었으니 앞부분은 각설하고 3권에 대한 이야기는 참 철학적이다. '테메레르'라는 용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중국의 용과 영국의 용의 대우를 비교해보면서 자기 나라에 있는 동료 용들의 처우를 개선시키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영국으로 날아간다는 이야기. 원 줄거리야 그게 아니지만 - '로렌스 대령'이 맡은 임무라든가 그에 따른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의 음모라든가 가는 중간에 맞딱뜨렸던 프랑스와의 전쟁같은 것 - 나에게는 인간의 이야기보다는 용의 이야기가 더 다가왔다. 원 줄거리도 너무 흥미진진했지만 '테메레르'이라는 존재가 마치 우리 인간의 모습인 것 같아서 더 공감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 중에서 '자유'라는 권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노력을 투자했는지를 본다면 '테메레르'의 권리 신장이야기가 비단 남의 이야기같지 않을 것이다. 극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을 제외한 일반 평민들은 무거운 세금을 내기 위해, 귀족들의 생계를 보장해주기 위해 자기 것도 아닌 밭을 일구고 가꾸었던 지난 날의 역사를 본다면 앞으로의 '테메레르'의 꿈이 어떻게 뻗어나가는지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많은 나라에 있었던 신분제도가 17, 8세기에서야 무너진 것만을 보더라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텐데...

 

여기서 '로렌스 대령'의 대응모습을 보면 참 쓴웃음밖에 안 나온다. '테메레르'의 포부를 알고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신이 피지배자인 '용'이 아니라 지배자인 '인간'이기 때문에 우선은 '인간'의 편에 서는 모습이 말이다. 물론 조국인 영국이 전쟁 중이라 '용'의 권리 신장 따위는 거론할 계제가 되지 않지만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모습이 참 '정치인' 같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테메레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기특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 모습 또한 '로렌스 대령'과 다를 바 없다. '로렌스 대령'이 '테메레르'에게 조국인 영국이 전쟁에서 패하면 '용'의 권리 또한 찾을 수 없다고 힘내서 일을 하게끔 꼬시는 부분에서 나도 마음 속으로는 같이 꼬시고 있었으니깐.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왜 그것을 굳이 영국에서만 해야한단 말인가. 사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가 '용'의 입장을 잘 헤아려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나폴레옹이 영국 측보다 '자유'에는 더 가깝지 않을까. '용'들이 다 결속해서 자유를 보장해준다거나 보수를 받게 해주는 나라쪽으로 전쟁을 도와준다고 한다면 아마 영국이든 프랑스이든 적극 협조할 것을.

 

'용'의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테메레르'가 어떻게 얻어낼 것인지 참 궁금하다. '용'의 자유도 보장받길 바라면서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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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
존 스펜스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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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작품이 아닌 작가이야기를 읽었다. 이런 류의 책을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어떤 식으로 작품을 쓰게 되었고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를 알고싶어하는 것은 아무래도 열혈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봄직하다. 특히 나같이 글 잘 쓰는 사람을 무조건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

 

첫 장을 열면 초상화가 쭉 늘어서있고 제인 오스틴의 부게도와 모계도가 나타난다. 제인 오스틴의 부계도는 5대까지, 모계도는 3대까지 조사를 해놔서 그 집안의 형편이나 분위기까지 다 전달해주려는 존 스펜스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는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는데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인 오스틴의 유명세를 톡톡히 알려주는 것이라고 본다.

 

이 시대에는 유산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유산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남성은 직업을 얻기 위한 학비때문에, 여성은 결혼할 지참금때문에 유산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제인의 고조할아버지인 존 오스틴은 그의 아들 존 오스틴이 34세로 폐결핵으로 죽자 첫째 손자인 잭 오스틴에게만 부동산을 전부 남겨주고 다른 여섯 명의 손자와 손녀들에게는 약간의 돈만 주었다. 비록 장자를 우선으로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전례이긴 하지만 보통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학비정도는 주는 게 정상인데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웰러는 잭이 다른 자식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주게끔 하려고 했지만 존 오스틴의 유언으로 잭은 고모부의 손에서 크게 되었다.(그 때 나이 아홉 살 밖에 안된다.) 나중에 크면 엄마때문에라도 도움을 줄까봐 미리 그런 장치를 해놓은 것이었다. 정말 이 이상 악랄할 수는 없다.

 

그 남은 자식들, 즉 프랜시스, 베티, 토마스, 윌리엄, 로버트, 스티븐는 정말 쥐꼬리만한 유산을 가지고 살아남아야 했는데 여기선 어머니 엘리자메스 웰러의 공이 크다. 그녀는 교육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나머지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이 숭고한 유산 - 강인한 의지, 교육의 혜택에 대한 믿음, 가족애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 단절된 가족애에 대한 혐오감 - 은 모든 자식들에게 대물림되어 제인 오스틴의 가정에도 반영되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가 아는 제인 오스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것에만 급급했을테니.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의사교육을 받은 넷째 아들 윌리엄이 바로 제인 오스틴의 할아버지이다. 그도 역시 일찍 죽으면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유산을 남긴다. 그런데 새로 결혼한 아내가 전처의 아이들을 무시하자 형제인 스티븐 오스틴이 아이들을 맡는다. 이 때 등장한 개념이 후견인이다. 유언장에 그렇게 쓰기만 하면 다 후견인이 되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엔 없는 개념이라 너무 신기햇다. 그 아이 중 조지 오스틴은 운이 좋게도 가장 부유한 프랜시스 삼촌에게 후원을 받아 런던에 있는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다른 사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이다.

 

조지 오스틴, 제인의 아버지는 목사 안수를 받고 캐산드라 리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 두사람 모두 철학적인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라 자식들에게 사색적이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성향은 6남 2녀 중 일곱번째로 태어난, 수줍임이 많아 낯선 사람에게는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는 제인 오스틴에게는 상당히 마이너스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다른 가르침 - 교육에 대한 열정(여성은 거의 학교를 안간다), 가족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 은 다 좋은 요소였으나 자신감이 결여된 제인 오스틴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부모님이었으리라. 그래서 제인은 가족들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한 가지 실수를 하면 두고 두고 놀림을 받게 되는 대가족였기에 섬세한 제인에게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따스한 감성의 소유자, 앤 러프로이 부인라는 친구가 생겼다. 그녀는 제인에게 부족한 자긍심과 용기를 주었다. 집 안에서는 항상 경계심을 잃지 않지만 앤에게는 풀어놓고 그냥 그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아마 그런 그녀가 없었더라면 제인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너무 없어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우리는 앤 러프로이 부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어쨌든 이 부분에서 너무 아쉬웠다. 제인이 집안에서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는 가면을 쓰지 않고는 생활하기 어려웠다면 그만큼 감정적인 면이 개발하기 어려웠을 것 아닌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작가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집안 분위기때문이었다니 가정환경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제인이 전업 작가가 되어 책을 출판하려고 할 때, <오만과 편견>이 상당히 잘 팔릴 것이라는 예감을 본인 스스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것의 판권을 팔고(개인적으로 출판을 할 상황이 아니여서) 그것이 성공하자 다른 작품도 그 명성에 힘입어서 팔릴 거라는 아주 계산적인(?) 생각을 했단 것이다.

 

나는 작가라는 존재는 그런 계산적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냥 창조적인 감각밖에는 발달되어있지 않아서 그것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제인은 자신이 광고까지 생각했다는 점이 신기했다. 또 하나 그가 성공할 거라고 한 예감이 맞아떨어졌던 것도 신기하다. 그런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기나 할까. 나라면 자신없어서 출판사에 내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았을텐데. 하여튼 제인이라는 작가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던 같다.

 

제인 오스틴...감미로운 사랑이야기의 대명사라 불리는 그녀의 사랑이야기는 너무나 보잘 것없다. 아마도 그녀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향때문에 그 이야기가 너무나 조용히 넘어가버렸기 때문이겠지. 그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은 톰 러프로이, 앤 러프로이의 조카였다. 아주 매력적인 그는 제인을 홀려놓고는 공부하러 도시로 갔다가 그냥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다. 제인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었던 채로. 그렇지만 앤말고는 아무도 그 둘이 사랑했던 사실조차 몰랐으니 정말 제인답지 않은가. 아무도 그녀가 실연했다는 사실을 모르니 위로를 해달랠 수도, 위로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인내하며 숨죽여 울었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진다. 그런데 그런 인내의 시간들이 주옥같은 사랑이야기로 승화된 거라면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일까.

 

하여튼 제인 오스틴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인생을 돌아보니 참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삶의 한 틈바구니에서 겪어왔던 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글로써 탄생할 수 있다니 역시 작가라는 존재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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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 조선 천재 1000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재구성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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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국사에 대한 관심이 적다보니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본 지는 꽤 오래되는 것같다. 읽어봐야지 하고 쌓아둔 게 아마 몇 권은 된다. 그런데 <조선을 뒤흔든..> 시리즈는 상당히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구성으로 되어있어 골라잡게 되었다. 우선 책이 상당히 두껍다. 아마 역사를 싫어하는 분이라면 반감이 들 듯도 한데 한 번 잡으니 끝까지 읽게 하는 매력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조선시대의 큰 사화악이라 익히 들어왔던 붕당 즉 서인과 동인, 북인과 남인이야기가 주된 무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16세기 조선 선비 1000명이나 죽게 된 사건, 기축옥사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서 죽음을 당하게 된 비운의 주인공은 정여립이라고 하는 조선의 천재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천재가 아닌 이가 없지만서도 하여튼 그 천재가 역모를 꾀했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사건의 정황을 봐서는 역모를 꾀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제쳐두고서라도 그와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1000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더한 비극이다. 정말 1000명이나 그를 추종한 것이 아니라 서인측에서 동인을 제거하기 위해 말을 만들어내어 모진 고문을 하고 죽였다. 이런 일이 일어난 다음 바로 임진왜란이 터졌으니 그 때 죽은 1000명의 인재가 얼마나 아쉬웠으랴. 만약 기축옥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런 비운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이야기만 집고 넘어가려 한다. 각자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세습제를 비판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특히 나라를 다스려야하는 임금이 무능할 때는 더욱 그렇다. 군주란 모름지기 그가 보호해야할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백성을 잘 교화하고 다스리지 못한다면 마땅히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함이 정상이거늘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인물이 바로 기축옥사를 만든 장본인, 선조이다.

 

사실 선조는 방계출신이다.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던, 명종의 후궁 창빈 안씨에게는 아들 덕흥군이 있었다. 이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 선조인 것이다. 명종이 후계자가 없이 죽는 바람에 왕위에 올랐던 종친인 만큼, 그는 평생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시국을 바라보는 안목도 좁았다. 16세에 왕위에 올랐던 때는 학문에 정진했으나, 1575년 이후 동인과 서인이 갈라지고 다시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자 정치 기강이 무너져버렸다. 선조는 나라를 이끌어갈 방향을 잡지 못했다.

 

이러한 때에 선조는 자신이 어느 누구도 믿지못했기 때문에 동인과 서인을 왔다 갔다 하고 결국엔 기축옥사라는 크나큰 비극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정여립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중에는 정말 역모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조대중, 김빙, 최영경, 이발, 정언지, 정언신, 정개청, 유몽정, 이황종...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한국판 마녀사냥이 이랬을 거다.

 

평소 임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선조의 됨됨이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던 신하, 정여립이 마음에 들지않았던 터라 그와 관계가 조금만이라도 있을라치면 선조의 화가 불같이 치솟아 당장 잡아들여서 고문하기는 예사로 대부분 사형에, 운이 좋으면 귀양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군주 밑에서 누구들 살기 평화로웠으리. 반대파에서 모함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런 신하를 만든 이도 역시 선조이니, 그는 기축옥사의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두번째로 정여립의 역모사건이다. 그가 정말 역모를 꾀하려 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가 왕에게 미움을 사 고향으로 내려가서는 대동계라고 하는 모임을 조직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 모임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보름에 모여서 시를 지어 보기도 하고 활쏘기 경연대회를 여는 등 댜양한 문화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장정들을 훈련을 시켜둔 것을 정해년에 침략한 왜구를 막는데 이용한 적은 있었다.

 

이런 모양새를 곱게 보지 않았던 서인측에서 상소를 올려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려한다고 했던 것이 발발되어 1000명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그런데 정여립이 죽은 정황도 자살인지, 타살인지가 정확하지 않아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정여립이 역모를 꾀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믿으련다. 그가 평소에 했던 말 중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귀천의 씨가 따로 없다. 천하는 백성들의 것이지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없다. 누구든 섬기면 임금이 아니겠는가?" 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을 평민이나 종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라, 양반의 입에서 나왔다니...정말 놀랬다. 16세기부터 우리나라에도 공화정을 생각한 학자가 있었다니...

 

그런 사람이 만든 나라는 모르긴 몰라도 백성들을 위한 나라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유토피아는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자리싸움이나 하는 양반들보다야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조선의 천재 1000명이나 죽여버린 기축옥사...이것은 비단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된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교훈인가. 윗분들이 자리 싸움을 하느라 국정을 소홀히 해서 생긴 것이 조선의 절대절명의 위기, 임진왜란이었다. 지금의 윗분들도 그것을 깨달아 무엇이 백성을 생각하는 것인지 바로 알고 정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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