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
존 스펜스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작품이 아닌 작가이야기를 읽었다. 이런 류의 책을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어떤 식으로 작품을 쓰게 되었고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를 알고싶어하는 것은 아무래도 열혈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봄직하다. 특히 나같이 글 잘 쓰는 사람을 무조건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

 

첫 장을 열면 초상화가 쭉 늘어서있고 제인 오스틴의 부게도와 모계도가 나타난다. 제인 오스틴의 부계도는 5대까지, 모계도는 3대까지 조사를 해놔서 그 집안의 형편이나 분위기까지 다 전달해주려는 존 스펜스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는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는데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인 오스틴의 유명세를 톡톡히 알려주는 것이라고 본다.

 

이 시대에는 유산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유산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남성은 직업을 얻기 위한 학비때문에, 여성은 결혼할 지참금때문에 유산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제인의 고조할아버지인 존 오스틴은 그의 아들 존 오스틴이 34세로 폐결핵으로 죽자 첫째 손자인 잭 오스틴에게만 부동산을 전부 남겨주고 다른 여섯 명의 손자와 손녀들에게는 약간의 돈만 주었다. 비록 장자를 우선으로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전례이긴 하지만 보통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학비정도는 주는 게 정상인데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웰러는 잭이 다른 자식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주게끔 하려고 했지만 존 오스틴의 유언으로 잭은 고모부의 손에서 크게 되었다.(그 때 나이 아홉 살 밖에 안된다.) 나중에 크면 엄마때문에라도 도움을 줄까봐 미리 그런 장치를 해놓은 것이었다. 정말 이 이상 악랄할 수는 없다.

 

그 남은 자식들, 즉 프랜시스, 베티, 토마스, 윌리엄, 로버트, 스티븐는 정말 쥐꼬리만한 유산을 가지고 살아남아야 했는데 여기선 어머니 엘리자메스 웰러의 공이 크다. 그녀는 교육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나머지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이 숭고한 유산 - 강인한 의지, 교육의 혜택에 대한 믿음, 가족애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 단절된 가족애에 대한 혐오감 - 은 모든 자식들에게 대물림되어 제인 오스틴의 가정에도 반영되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가 아는 제인 오스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것에만 급급했을테니.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의사교육을 받은 넷째 아들 윌리엄이 바로 제인 오스틴의 할아버지이다. 그도 역시 일찍 죽으면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유산을 남긴다. 그런데 새로 결혼한 아내가 전처의 아이들을 무시하자 형제인 스티븐 오스틴이 아이들을 맡는다. 이 때 등장한 개념이 후견인이다. 유언장에 그렇게 쓰기만 하면 다 후견인이 되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엔 없는 개념이라 너무 신기햇다. 그 아이 중 조지 오스틴은 운이 좋게도 가장 부유한 프랜시스 삼촌에게 후원을 받아 런던에 있는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다른 사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이다.

 

조지 오스틴, 제인의 아버지는 목사 안수를 받고 캐산드라 리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 두사람 모두 철학적인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라 자식들에게 사색적이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성향은 6남 2녀 중 일곱번째로 태어난, 수줍임이 많아 낯선 사람에게는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는 제인 오스틴에게는 상당히 마이너스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다른 가르침 - 교육에 대한 열정(여성은 거의 학교를 안간다), 가족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 은 다 좋은 요소였으나 자신감이 결여된 제인 오스틴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부모님이었으리라. 그래서 제인은 가족들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한 가지 실수를 하면 두고 두고 놀림을 받게 되는 대가족였기에 섬세한 제인에게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따스한 감성의 소유자, 앤 러프로이 부인라는 친구가 생겼다. 그녀는 제인에게 부족한 자긍심과 용기를 주었다. 집 안에서는 항상 경계심을 잃지 않지만 앤에게는 풀어놓고 그냥 그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아마 그런 그녀가 없었더라면 제인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너무 없어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우리는 앤 러프로이 부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어쨌든 이 부분에서 너무 아쉬웠다. 제인이 집안에서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는 가면을 쓰지 않고는 생활하기 어려웠다면 그만큼 감정적인 면이 개발하기 어려웠을 것 아닌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작가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집안 분위기때문이었다니 가정환경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제인이 전업 작가가 되어 책을 출판하려고 할 때, <오만과 편견>이 상당히 잘 팔릴 것이라는 예감을 본인 스스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것의 판권을 팔고(개인적으로 출판을 할 상황이 아니여서) 그것이 성공하자 다른 작품도 그 명성에 힘입어서 팔릴 거라는 아주 계산적인(?) 생각을 했단 것이다.

 

나는 작가라는 존재는 그런 계산적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냥 창조적인 감각밖에는 발달되어있지 않아서 그것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제인은 자신이 광고까지 생각했다는 점이 신기했다. 또 하나 그가 성공할 거라고 한 예감이 맞아떨어졌던 것도 신기하다. 그런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기나 할까. 나라면 자신없어서 출판사에 내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았을텐데. 하여튼 제인이라는 작가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던 같다.

 

제인 오스틴...감미로운 사랑이야기의 대명사라 불리는 그녀의 사랑이야기는 너무나 보잘 것없다. 아마도 그녀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향때문에 그 이야기가 너무나 조용히 넘어가버렸기 때문이겠지. 그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은 톰 러프로이, 앤 러프로이의 조카였다. 아주 매력적인 그는 제인을 홀려놓고는 공부하러 도시로 갔다가 그냥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다. 제인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었던 채로. 그렇지만 앤말고는 아무도 그 둘이 사랑했던 사실조차 몰랐으니 정말 제인답지 않은가. 아무도 그녀가 실연했다는 사실을 모르니 위로를 해달랠 수도, 위로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인내하며 숨죽여 울었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진다. 그런데 그런 인내의 시간들이 주옥같은 사랑이야기로 승화된 거라면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일까.

 

하여튼 제인 오스틴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인생을 돌아보니 참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삶의 한 틈바구니에서 겪어왔던 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글로써 탄생할 수 있다니 역시 작가라는 존재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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