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 조선 천재 1000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재구성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워낙 국사에 대한 관심이 적다보니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본 지는 꽤 오래되는 것같다. 읽어봐야지 하고 쌓아둔 게 아마 몇 권은 된다. 그런데 <조선을 뒤흔든..> 시리즈는 상당히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구성으로 되어있어 골라잡게 되었다. 우선 책이 상당히 두껍다. 아마 역사를 싫어하는 분이라면 반감이 들 듯도 한데 한 번 잡으니 끝까지 읽게 하는 매력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조선시대의 큰 사화악이라 익히 들어왔던 붕당 즉 서인과 동인, 북인과 남인이야기가 주된 무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16세기 조선 선비 1000명이나 죽게 된 사건, 기축옥사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서 죽음을 당하게 된 비운의 주인공은 정여립이라고 하는 조선의 천재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천재가 아닌 이가 없지만서도 하여튼 그 천재가 역모를 꾀했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사건의 정황을 봐서는 역모를 꾀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제쳐두고서라도 그와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1000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더한 비극이다. 정말 1000명이나 그를 추종한 것이 아니라 서인측에서 동인을 제거하기 위해 말을 만들어내어 모진 고문을 하고 죽였다. 이런 일이 일어난 다음 바로 임진왜란이 터졌으니 그 때 죽은 1000명의 인재가 얼마나 아쉬웠으랴. 만약 기축옥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런 비운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이야기만 집고 넘어가려 한다. 각자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세습제를 비판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특히 나라를 다스려야하는 임금이 무능할 때는 더욱 그렇다. 군주란 모름지기 그가 보호해야할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백성을 잘 교화하고 다스리지 못한다면 마땅히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함이 정상이거늘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인물이 바로 기축옥사를 만든 장본인, 선조이다.

 

사실 선조는 방계출신이다.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던, 명종의 후궁 창빈 안씨에게는 아들 덕흥군이 있었다. 이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 선조인 것이다. 명종이 후계자가 없이 죽는 바람에 왕위에 올랐던 종친인 만큼, 그는 평생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시국을 바라보는 안목도 좁았다. 16세에 왕위에 올랐던 때는 학문에 정진했으나, 1575년 이후 동인과 서인이 갈라지고 다시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자 정치 기강이 무너져버렸다. 선조는 나라를 이끌어갈 방향을 잡지 못했다.

 

이러한 때에 선조는 자신이 어느 누구도 믿지못했기 때문에 동인과 서인을 왔다 갔다 하고 결국엔 기축옥사라는 크나큰 비극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정여립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중에는 정말 역모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조대중, 김빙, 최영경, 이발, 정언지, 정언신, 정개청, 유몽정, 이황종...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한국판 마녀사냥이 이랬을 거다.

 

평소 임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선조의 됨됨이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던 신하, 정여립이 마음에 들지않았던 터라 그와 관계가 조금만이라도 있을라치면 선조의 화가 불같이 치솟아 당장 잡아들여서 고문하기는 예사로 대부분 사형에, 운이 좋으면 귀양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군주 밑에서 누구들 살기 평화로웠으리. 반대파에서 모함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런 신하를 만든 이도 역시 선조이니, 그는 기축옥사의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두번째로 정여립의 역모사건이다. 그가 정말 역모를 꾀하려 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가 왕에게 미움을 사 고향으로 내려가서는 대동계라고 하는 모임을 조직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 모임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보름에 모여서 시를 지어 보기도 하고 활쏘기 경연대회를 여는 등 댜양한 문화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장정들을 훈련을 시켜둔 것을 정해년에 침략한 왜구를 막는데 이용한 적은 있었다.

 

이런 모양새를 곱게 보지 않았던 서인측에서 상소를 올려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려한다고 했던 것이 발발되어 1000명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그런데 정여립이 죽은 정황도 자살인지, 타살인지가 정확하지 않아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정여립이 역모를 꾀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믿으련다. 그가 평소에 했던 말 중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귀천의 씨가 따로 없다. 천하는 백성들의 것이지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없다. 누구든 섬기면 임금이 아니겠는가?" 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을 평민이나 종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라, 양반의 입에서 나왔다니...정말 놀랬다. 16세기부터 우리나라에도 공화정을 생각한 학자가 있었다니...

 

그런 사람이 만든 나라는 모르긴 몰라도 백성들을 위한 나라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유토피아는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자리싸움이나 하는 양반들보다야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조선의 천재 1000명이나 죽여버린 기축옥사...이것은 비단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된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교훈인가. 윗분들이 자리 싸움을 하느라 국정을 소홀히 해서 생긴 것이 조선의 절대절명의 위기, 임진왜란이었다. 지금의 윗분들도 그것을 깨달아 무엇이 백성을 생각하는 것인지 바로 알고 정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