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현대시
김권섭 지음 / 산소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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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있어서 그런지 요근래 시에 익숙해지고 있다. 한동안 비문학에 치중하다가 다시 문학파트를 하게 되어 조금 자신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시가 재미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완벽주의자였기에 토씨 하나라도 다 외워야 직성이 풀리는, 공부못하는 - 완벽하지 않으면 다 포기해버려서 - 아이였다. 그래서 시 하나를 공부할 때도 시어의 함축적인 의미,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각종 표현법 등을 다 외워야 만족했고 그런 방법이 진정 시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이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훌쩍 커버린 지금, 오히려 시가 시 그 자체로 멋스럽게 느껴진다. 왜 각종 암기할 것을 가지고 나를 괴롭히려 들었을까. 왜 시를 가슴으로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거지. 하여튼 달달 외웠던 그 때에도, 시 그 자체를 사랑하는 지금도 나는 시가 여전히 좋다.

 

그런데 오늘 학원에서 시가 어렵다고 징징대는 아이에게 한번 상상을 펼쳐보라고, 틀려도 좋으니까 시의 상황을 그려보라고, 시인의 입장에서 무슨 내용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려고 노력해보라고 조언했지만 그 자체가 낯설었던지 선뜻 응하지는 못하는 걸 보았다. 그래도 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읽는 것은 어색하다길래 내가 시범을 보여 주자 조금씩 따라하려고 노력은 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읽어가면서 느껴지는 분위기, 의미, 상상한 것을 말하는 것은 오늘 처음 시도해본 거라 아직은 시의 의미를 깊게 파악하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조금씩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시를 가슴으로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지만 그 아이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아니다. 나에게 시가 어렵다고 징징대긴 하지만 시에 대한 문제는 다 맞추는 아이라 흡사 모든 함축적 의미를 다 외워야 직성이 풀리는 내 고등학생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학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 중에 문학의 기쁨이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읽어가는 아이는 극히 드물다. 그것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공부를 잘하면 잘한 만큼 수행해야할 학업의 양이 어마어마하고, 공부를 못하면 못할 만큼 게임이나 다른 놀이에 푹 빠져있으니. 아이들이 문학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왜 일어나는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어른들의 잘못이 큰 게 아닌가 한다. 사실 우린 아이가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도덕성이나 인성이 바르게 자라길 바라긴 하지만 그런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 도덕과목에서 배운 것은 시험볼 때만 이용하고 평소에는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 감사할 줄 모르는 어른들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않은 아이들이 어찌 문학의 최고봉인 시를 이해하길 바란단 말인가. 그렇기에 시를 어려워하고 암기해야 할 과목으로 이해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내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았다. 정말 나에게 꼭 맞는 책이 아닌가 싶다. 문학의 상상력을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에게도. 너무 꼼꼼히는 아니여도 시에 대한 해설과 작가에 대해 설명이 나와있는 책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정말 그런 책이 있다니. 사실 나도 어문계열로 전공을 했고 지금 일하는 것도 전공을 살려서 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 성향은 문학 쪽이 아니라 문법 쪽이기에 시를 좋아하긴 했지만 경이원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아하지만 게으른 탓에 시를 많이 접하지 못했던 내게 이 책은 시와 함께 오랜시간 보낼 수 있게 도와줄 것 같다. 아직 교과서에 나온 유명한 시 이외에는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시를 꾸준히 읽고 있으면 시나브로 다 이해되지 않을까.

 

많고 많은 시 중에 내가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에서 보았던 시를 소개하려 한다. 문제를 푸는 것과는 별도로 시어를 울림이 좋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았던 시라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시다.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이 시의 4연에 나오는 '신(神)'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서 쌩뚱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나 혼자서도 시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남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이 읽고 음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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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스 1
오진원 지음 / 풀그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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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깜찍하게 알려주는 동화라고나 할까. 읽기는 예전에 읽었는데 이런 깔끔한 이야기를 열심히 정리하려고 하다보니 시기가 늦어졌다. 인간은 누구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그것을 위로를 제 시기에 받으면 슬픔을 딛고 더 성장할 수 있겠지만 위로를 해줄 대상이 없거나 위로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면 그것이 고여서 터지고 만다. 그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이 동화의 주인공도 바로 그런 경우이다. <3일 안에 아빠를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동화는 주인공인 아빠가 슬픔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해 곪아 터져버린 후, 개같이 행동하다 정말 개가 되어버렸다. 깜짝 마법으로!! 그러다가 초록복지사의 등장으로 아빠는 다시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잊고 있었던 여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 건강하게 슬픔 이겨내기

어른임에도 슬픔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알콜중독자가 된 주인공(아빠)를 보니 슬픔을 이겨내는 사소한 일이 사실은 정말 중요한 인생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만큼 아프고 애절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어른이고 책임져야할 아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무너져내릴 만큼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기에 어른이니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다들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더 무서운 법. 소리내어 울고 불고 화내면서 서서히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엄마를 잃은 슬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대해 서로 나누고 좋았던 기억들을 추억하며 서로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말이다.

 

# 아이들은 어른의 축소판

개가 된 아빠를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안나는 아빠에게 못된 행동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빠는 억울하다는 생각은 잠시, 소름이 쫙 끼쳤다. 안나가 한 행동이 사실 그가 제정신이 아닐 때 안나에게 했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많이 경험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이가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똑같이 따라할 때 그 기분이 어떨까. 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자기 자신때문에 많이 속상해하지 않았을까. 누구나 안다. 아이가 어른을 보고 배운다는 것을. 하지만 거의 실천하기가 어려워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알콜중독자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가 똑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배나 높다는데 정말 아이를 사랑하고 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이런 것을 마음 깊숙히 생각해서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된다

아빠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했던 안나의 행동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엄마의 냄새가 나는 자스민으로 꽃목걸이를 만들어 아빠에게 걸어주면서 자기에게는 오빠가 있는데 아빠는 혼자여서 엄마가 보고 싶은 걸 참을 수 없다고 위로해주는 장면은 이 책의 장면 중에 정말 압권인 부분이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무너져내렸던 그에게 안나의 위로는 그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이것이 바로 가족일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이어도 가족들끼리 서로 보듬고 위로해준다면 어떤 일이든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 거꾸로 바라보기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파파스'라는 꼬마마법사덕분이었다. 그는 뭐든지 거꾸로 했다. 때론 거꾸로 보면 모든 게 똑바로 보일 수도 있는 거야. 사람들은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주인공이 나중에야 깨닫는다.

 

 

"왜 아내를 죽었다고만 생각했을까.

파파스의 말대로 거꾸로 생각해볼 수는 없었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내가 죽은 게 아니라 가슴 속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다면,

모든 것이 이렇게 비뚤어지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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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아 - 세상에 하나뿐인 하얀 래브라도 레트리버
가사이 게이코.후치가미 사토리노 지음, 김석희 옮김, 사와타리 시게오 그림 / 작가정신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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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그들이 이제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는데도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도 있듯이 이젠 정말 애완동물들의 천국이 되었다. 그런 반면에 키우고 있던 애완동물을 사정이 어려워서 혹은 너무 커버린 게 예쁘지 않아서 혹은 아프다고 버리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정말 애완동물의 천국인지 지옥인지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따라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애완동물에게는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관계가 전적으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데, 여기 정말 대단한 관계를 맺은 사람-개 커플이 있다.

 

운명처럼 만난 새카만 래브라도 레트리버인 소니아가 주인공인 이 이야기는, 두 손으로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새끼였던 소니아가 작은 아이가 탈 수 있을 정도로 커져버린 세월 동안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남편이 소니아를 싫어했지만 태어난 지 다섯 달이 된 후부터 같이 산책을 하면서부터 소니아에게 푹 빠져버렸다. 남편은 세계 각지를 다녀와서 원대한 꿈이 있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실현하지 못한 꿈에 대해 아쉬움을 소니아와 나누면서 서로의 우정을 키워갔다. 사실 개와 인간의 우정이라고 해봤자 개는 인간을 음식을 주는 존재라고 밖에 인식하지 못할 것 같은데 소니아는 여느 개와 다른 건지 아니면 같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특별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아니 애완동물과 같이 사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동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심지어는 힘들거나 슬플 때 위로해준다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동물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내게 말해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그런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감정은 전달되는 것처럼 동물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은 통하는 가보았다. 살아있는 생명체인데 당연히 동물들도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에는 '애완동물'이란 말보다는 '반려동물'이란 말을 쓴다고도 했다. 반려. 짝이 되는 동무. 적합한 말이 아닐까. 아무런 조건없이 나를 기다려주고 나에게 어리광을 부려주는 반려동물.

 

소니아와 주인공의 남편과의 관계도 바로 그러했다.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 그러다가 남편이 죽음으로 그 관계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과 마음이 나눈 관계인데 그것이 이어지다가 끊어지다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안간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마음의 상실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살아가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데 동물은 어떨까. 다른 동물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미 마음이 이어져버린 소니아에게는 까맣게 윤기가 흘렀던 털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마음의 고통이 심했던 것은 분명하다.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소니아를 보면서도 정말  신기했지만 의학적으로 규명이 되지 않아 사실은 속은 느낌이 든다. 분명 내 눈으로 사진을 봤음에도 말이다. 내가 의심이 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걸 어쩌겠는가. 이사가버린 전주인을 다시 찾으러가는 개이야기처럼 말이다. 사실이겠지만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왠지 어색한 내 마음은 도대체...? 하긴 순수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면 남이 순수하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이미 기적을 보고도 기적인 줄 모를 만큼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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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arose 2008-01-2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을 가까이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동물과 인간과의 감정교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사가버린 전주인을 찾으러가는 개의 사연은 생각보다 아주 많습니다. 대부분의 진도개는 주인이 바뀌면 끼니를 걸러 바싹 마르기도 합니다.
사람도 걱정을 많이 하면 백발이 돼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듯이 개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놀라운 사실이긴 하지만요. 개를 가까이 해보면 인간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치이야기의 하치공처럼 말이죠.
모든 걸 그대로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가끔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북매니아 2008-04-25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물을 가까이 해본 적은 없는데도 강아지의 맑은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가 내 상처를 위로해준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ㅎㅎ 그래서 소니아의 경우가 잘 이해되었답니다....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하느님의 구두 - 거룩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클리프 에드워즈 지음, 최문희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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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후, 예술가적인 정열과 혼돈, 불안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강렬하게 호소하는 뭔가가 있다고는 생각되었지만 그게 뭔지도 몰랐고 혼란으로 가득찬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그림을 좋아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다. 얼마전에 반 고흐에 대한 책을 이벤트로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신청했었다. 아는 건 없어도 그림은 일단 좋았기 때문에 나도 신청해보았지만 아쉽게도 떨어졌었다. 그런데 그 때 신청했던 사람들의 수도 많았지만 반 고흐에 대해 알고 있는 배경지식도 많았던 사람들을 보고선 정말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그림에 다들 왜 난리야?

 

얼마 전 EBS에서 나온 방송도 동생 테오와의 관계에 대해서만 많이 다루어지고 그의 종교관이라거나 가치관보다는 그가 얼마나 불안한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암울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나와서 그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리고 알아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는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운좋게 다른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본격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느님의 구두>. 어찌해서 반 고흐와 '하느님'이 연결될까 하는 호기심이 들어 신청했던 책이었다. 그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충동이나 불안한 심정이 강해서 귀도 자르고 자살을 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는 예술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것이 아니라는 것과 내가 그에 대해 얼마나 큰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아버지가 목사이었으나 카톨릭이 대다수인 네덜란드에서 조그만 개신교 교회를 운영하셨기에 다섯 형제를 먹여 살리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랬기에 그는 목사가 되고는 싶었지만 부모님들이 그의 학비를 대줄 수가 없어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 그 후에도 반 고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명이라도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목사가 되길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스무 일곱 살까지 노력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자, 그 이후에는 연필을 들어 연약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래서 세상이 그들을 보고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학으로 그림을 배우는 그가 힘들어 할 때 후원하고 격려한 동생 테오가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는 없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가 작품 속에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즉 사람들이 반 고흐의 작품을 보고 열광하는 이유였다. 사실 섬세한 붓터치도 아니고 강렬하기만 한 색감이라 그다지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가 그렇게 표현한 이유를 아니까 처음부터 사람이 달라 보였다. 헨리 나우웬도 그를 가리켜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할 정도로 반 고흐는 우리의 삶에 있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동참하기를 권했다. 하지만 그는 외적으로 보았을 땐 자기 귀를 잘라버리는 등 여러 문제가 많아보였으나 그가 그렇게까지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기에 아마 자기 나름의 실패와 고뇌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모두들 그의 작품에 환호하고 그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그 모든 이유들보다도 그에게 내가 감동을 느낀 것은 이것이다. 그가 겪은 삶의 절망, 불안, 꿈이 깨었을 때 오는 실망감 등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든 소박한 것에 대해 가장 충실했고 작은 생명에 대해서 끊임없이 찬양했던 것이다!!! 이렇게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자포자기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자포자기를 드러내는 방법 중의 으뜸은 바로 자살이겠지만 그의 자살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님을 그의 생각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지난해, 어느 책에선가 책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기를 키우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자연스럽고 가장 훌륭하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이 일들을 어떻게든 서로 비교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 글은 그가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그는 예술지상주의를 원칙으로 삼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삶은 인간의 생명을 계속 탄생시키고 보전시키는 신성한 노동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런 겸손한 생각을 가진 예술가이기에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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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 시골의사 박경철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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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병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데노 칼시노마(선암), '가락지 모양의 세포타입'의 위암, 위암 3기, 박리성 동맥류, 대장의 다발성 용종, 대장암, 말기 유방암, 말기 간경화, 완선증, 급성 루게릭, 쿠싱 증후군, 유루증, 청신경종, 신장암, 안면열상, 전신타박상, 뇌진탕, 경요추염좌, 회음부 열상, 무릎 좌상, 손목과 발목 염좌, 담낭 용종, 비장정맥류, 정신적 문제로 인한 육체적 증상, 간암, 급성 편도선염, 심장병, 관절염, 치매, 간경화, 식도 정맥류, 기관지 천식, 심부전, 뇌경색, 고혈압, 대상포진, 당뇨, 뇌졸증, 감기, 복부대동맥 정맥류, 과로, 심장 부정맥.... 여기서 내가 들어본 병은 반도 되지 않는다. 스물 아홉 평생을 큰 병없이 지낸 나로서는 이런 병명 자체가 별나라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반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연하고 눈물겹고 힘들었는지는 나도 작가도 정확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 저러한 기구한 사연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끊임없이 나타나니까 오히려 그들의 삶이 힘들었는지, 눈물겨운지를 알지못하고 무심히 지나간다. 그러나 작가의 반성이라고 생각되는 마지막 글까지 읽고 나니까 그들이나 우리나 그저 그런 하나의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한다고 해서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도 그들이 겪었던 기구한 운명이 비켜가지도 않으리란 것을. 그저 우리네 인생사가 다 고만고만한 걱정과 기쁨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여정이라는 것을.

 

그렇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억울하고 노엽고 힘든 일일지라도. 인생이 뭐 이리 개같애~라는 푸념을 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허투루 버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흔히 인생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오늘은 어제 죽었던 사람이 그렇게나 바랐던 내일이다. 우리는 무한한 생명이 있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고 노력을 낭비하고 인생을 낭비하지만 사실 건강에 적신호가 찾아오면 그 무한해 보였던 생명이 얼마나 보잘 것 없어지는지 모른다. 그 때가 되서 우왕좌왕할런지 우리 인생에서 제 몫을 잘 담당할지는 모르지만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소외되고 가장 가난한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라는 제목이 왜 붙여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찌보면 그들은 우리의 인생 속에서 그냥 지나치는 별볼일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우리보다 더 험한 인생 속에서 먼저 견뎌왔던 대선배가 아닐까. 어찌 건강이 무너지고 가정생계가 어려워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는 상황 속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 주인공 중에는 의연히 견디는 분도, 인생을 포기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무어라 비난을 하거나 세상를 평가하는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우리의 인생도 어찌될지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정말 선하게 깨끗하고 정정하게 의연하게 견디는 몇몇 분들은 어떻게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 우리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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