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현대시
김권섭 지음 / 산소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학원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있어서 그런지 요근래 시에 익숙해지고 있다. 한동안 비문학에 치중하다가 다시 문학파트를 하게 되어 조금 자신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시가 재미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완벽주의자였기에 토씨 하나라도 다 외워야 직성이 풀리는, 공부못하는 - 완벽하지 않으면 다 포기해버려서 - 아이였다. 그래서 시 하나를 공부할 때도 시어의 함축적인 의미,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각종 표현법 등을 다 외워야 만족했고 그런 방법이 진정 시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이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훌쩍 커버린 지금, 오히려 시가 시 그 자체로 멋스럽게 느껴진다. 왜 각종 암기할 것을 가지고 나를 괴롭히려 들었을까. 왜 시를 가슴으로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거지. 하여튼 달달 외웠던 그 때에도, 시 그 자체를 사랑하는 지금도 나는 시가 여전히 좋다.

 

그런데 오늘 학원에서 시가 어렵다고 징징대는 아이에게 한번 상상을 펼쳐보라고, 틀려도 좋으니까 시의 상황을 그려보라고, 시인의 입장에서 무슨 내용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려고 노력해보라고 조언했지만 그 자체가 낯설었던지 선뜻 응하지는 못하는 걸 보았다. 그래도 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읽는 것은 어색하다길래 내가 시범을 보여 주자 조금씩 따라하려고 노력은 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읽어가면서 느껴지는 분위기, 의미, 상상한 것을 말하는 것은 오늘 처음 시도해본 거라 아직은 시의 의미를 깊게 파악하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조금씩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시를 가슴으로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지만 그 아이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아니다. 나에게 시가 어렵다고 징징대긴 하지만 시에 대한 문제는 다 맞추는 아이라 흡사 모든 함축적 의미를 다 외워야 직성이 풀리는 내 고등학생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학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 중에 문학의 기쁨이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읽어가는 아이는 극히 드물다. 그것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공부를 잘하면 잘한 만큼 수행해야할 학업의 양이 어마어마하고, 공부를 못하면 못할 만큼 게임이나 다른 놀이에 푹 빠져있으니. 아이들이 문학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왜 일어나는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어른들의 잘못이 큰 게 아닌가 한다. 사실 우린 아이가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도덕성이나 인성이 바르게 자라길 바라긴 하지만 그런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 도덕과목에서 배운 것은 시험볼 때만 이용하고 평소에는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 감사할 줄 모르는 어른들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않은 아이들이 어찌 문학의 최고봉인 시를 이해하길 바란단 말인가. 그렇기에 시를 어려워하고 암기해야 할 과목으로 이해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내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았다. 정말 나에게 꼭 맞는 책이 아닌가 싶다. 문학의 상상력을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에게도. 너무 꼼꼼히는 아니여도 시에 대한 해설과 작가에 대해 설명이 나와있는 책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정말 그런 책이 있다니. 사실 나도 어문계열로 전공을 했고 지금 일하는 것도 전공을 살려서 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 성향은 문학 쪽이 아니라 문법 쪽이기에 시를 좋아하긴 했지만 경이원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아하지만 게으른 탓에 시를 많이 접하지 못했던 내게 이 책은 시와 함께 오랜시간 보낼 수 있게 도와줄 것 같다. 아직 교과서에 나온 유명한 시 이외에는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시를 꾸준히 읽고 있으면 시나브로 다 이해되지 않을까.

 

많고 많은 시 중에 내가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에서 보았던 시를 소개하려 한다. 문제를 푸는 것과는 별도로 시어를 울림이 좋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았던 시라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시다.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이 시의 4연에 나오는 '신(神)'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서 쌩뚱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나 혼자서도 시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남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이 읽고 음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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