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 소설에서 찾은 연애, 질투, 간통의 생물학
데이비드 바래시.나넬 바래시 지음, 박종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인생을 축약적으로 나타내주는 소설에서의 많은 것(연애, 질투, 간통, 부모 자식간의 관계, 의붓자식간의 관계, 이타주의 등)을 생태학적, 즉 진화생태학적인 관점으로 풀어놓은 이 책은 정말 새로운 시도였다. 나는 소설을 보면서 이런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보고자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과연 누가 해봤겠냐마는)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맞아! 맞아! 추임새를 넣어가며 읽기도 하고 피식~하고 웃으며 쓴웃음으로 작가의 말에 동의를 하기도 했던 독서 시간이었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은 문학과 생태학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8가지의 현상을 생태학적인 관점으로 분석해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여덟 가지의 현상은 남성의 성적 질투, 여성이 남자를 고르는 과정, 남성이 생각하는 연애의 대상과 결혼의 대상, 간통의 생물학, 대부를 만드는 이유, 의붓자식들 간의 투쟁, 부모 자식 간의 갈등, 호혜주의와 우정이다. 생태학은 생물과 그를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 관계를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인데 여기서 말하는 생태학은 진화생태학을 말하기 때문에 인간이 진화해오면서(개인적으로 ‘진화’란 말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주위 환경에 따라 어떤 식으로 인간의 선호도가 바뀌었는지를 연구해두었다. 참고로 말하지만 너무 방대한 자료를 들어 두었기에 이 책의 반도 다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남성의 성적 질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으로 설명을 했다. 한 명의 남자는 수많은 여자를 수태시킬 수 있다는, 가장 중요한 남녀 양성 간의 이 생물학적 차이가 이런 비극을 낳았다고 한다. 남성은 생물학적인 자손번식의 목적으로 최대한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게 마련인데 다른 남성에 대해서 성적 경쟁심을 느끼고, 자기 여성에게는 성적 질투심을 느끼는 경향 때문에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더라도 자기 여성에게 성적 질투심을 여전히 느끼는 것이 원인이다. 그러니까 남성의 성적 질투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기에 상대방이 배려하든지 아예 그런 오해를 살 여지를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참신하다고 할 수 있는데 책의 구성이나 길이에서 조금 명쾌함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하게 정리해서 알아보기 쉽게 써야 할 것을 계속 부연하고 또 부연하고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하고 계속하고 계속해서 읽으면서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을 한 두번 한게 아니다. 물론 자신만의 주장을 확고하게 심어놓으려면 있을지도 모를 반론을 원천에 봉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이 책은 오히려 그런 면이 지나쳐 반감을 산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각주에 달려있는 글에서 편집자가 원본에는 이런 글이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더욱 더 신빙성이 떨어지고 억지 주장같은 느낌이 드니 역시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란 옛 말씀이 더욱 와닿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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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외화를 볼 때 자막을 보기 싫어서 영어를 배웠다는 사람도 있다는 소문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나는 여전히 외화를 볼 때 자막에 100% 의존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원어를 이해할 수 있지? 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신기해하는 나는 참...한국인은 한국어를 써야지, 흠흠...사실 영어테이프에서 나오는 원어민의 유창한 발음은 알아들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데(절대로 100%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발음을 영~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발음과 근접하지도 않으니...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 나에게 이 사람만큼 부러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외화 번역가인 이! 미! 도! 씨. 그의 첫 산문집인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는 그의 영화이야기, 영어이야기, 인생이야기를 짤막하고도 흥미롭게 엮어냈다. 제목에 ‘영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그가 어떤 식으로 영어를 정복했는지가 나오는 것으로 오해할 수는 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사실 나도 그런 기대감 때문에 이 책을 펼치게 되었지만 딱히 ‘영어’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영화에 대한 소소한 여러 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나에게는 오히려 더 좋았던 산문집이었다.


요즘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많은 이들이 책을 내는데 나는 그런 책에서 그가 소개하는 분야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그의 생각까지 읽을 수가 있어서, 즐겨 읽는 편이다. 그 대상은 대부분 책이나 영화, 음악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느 정도까지 경지에 이른 그들의 경험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책을 읽든, 음악을 듣든, 영화를 보든, 모든 것이 부족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이미도 씨의 이 산문에서는 자신이 번역하는 에피소드 중에서 자신이 의역한 일화를 소개해주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차지한다. 그가 언급한 영화만 해도 100편이 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중에 내가 본 것은 반도 안 된다. 이름을 들어봤거나 아님 줄거리까지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순수하게 즐기면서 본 게 거의 없다.^^;


허나 나도 영화를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정말이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일 년에 몇 편의 영화를 보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한 손바닥을 쫙 펼쳐놓고도 손가락 몇 개는 접어야 할 것이다. ^^; 일 년에 몇 편 보지도 않으면서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주장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엔 변함없다. 좋아하는데 밖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것도 너무 춥고(올 겨울엔 정말 추위를 너무 많이 탔다..^^;), 집에서 비디오를 본다고 해도 다른 것 할 시간도 부족한 와중에 영화를 보고 있기엔 너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기에, 아님 너무 피곤하기에 약간 미뤄두는 것 뿐이다. ^^;;(여기저기에서 던진 돌들이 보인다...)


그래서 생활이 점점 바빠지고 게을러지기에 나는 이렇게 알기 쉽게 영화를 소개해 놓은 책을 너무나 좋아한다. 특히 옛날 영화 중에서 좋은 것이라면 따로 스크랩까지 해두곤 매년 정리를 해서 점점 볼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좋은 건 너무 좋다. 이미도 씨가 소개한 영화 중에서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가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이 영화는 책으로도 봤는데 무엇을 먼저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책을 볼 때나 영화를 볼 때나 둘 다 닐이 자살을 했을 때, 키팅 선생님이 해고당할 때 울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이 영화 중에서 이미도 씨가 꼽은 좋은 대사는 이것이다.


“말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

Words can change the world.


또한 이 책에서 소개된 영화 중에서 나는 보지 못했지만 정말 보고픈 영화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이다. 명성으로 치자면 일류 연애소설가이지만 실전 연애에선 삼류처럼 서툰 남자가 여인에게 이렇게 고백한단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해요.”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남자의 이 말에 감격해하는 여자의 촉촉한 화답이 이어진다.


"지금껏 들어본 최고의 찬사이지 싶어요."

That's maybe the best compliment of my life. 


역시 아이들이 성장하는 드라마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너무 좋다. 이런 영화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가끔씩 피난처를 찾을 때 유용해서 나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이 산문집엔 영화이야기와 영어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 책에 대한 이야기나 그의 인생 각오도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딱딱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그냥 부담없이 이미도 씨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거나 그가 외화를 번역하는 과정을 조금 훔쳐본다면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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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노인이 없다>...이 책을 읽고 당대의 최고의 작가라는,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마약에 대한 스릴러이면서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따온 제목이라니...처음부터 이 말도 안 되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순에 흥미를 느낀 탓에 이 책을 꺼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릴러에 이 시가 왜 붙어있는 건지,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것을 파악하고자 애썼지만 실패했다. 책을 읽기 전에 시를 읽어봐도,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 시를 읽어보아도 전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나에겐 미궁이었다.



처음부터 진도가 나가지 않던 진행방식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그것은 모든 사건이 단조로운 문제로 이어지고 긴장감이나 숨막힘이 느껴지기 보다는 싱겁게 끝나는 결말에다가 묘사는 최대한으로 줄여놨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건만 해도 오래 걸렸다. 줄거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모스’라는 주인공이 마약거래에서 사용된 돈가방을 발견해서 그것을 가지고 도망을 치자 그를 따라다니는 살인마 ‘시거’는 숨통을 조여오고 그 지방을 관리하는 보안관 ‘벨’은 무기력하게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그런데 내가 더 짜증이 났던 이유는 이 책이 대단한 평을 광고했단 것이다. 읽는 도중에 이해는 커녕 더 이상 쳐다 보기조차 싫어졌을 때 보았던 겉표지에 붙어있는 별 다섯 개가 정말 어이없었다. 광할한 텍사스를 무대로, 악마와 경주를 벌이는 지옥의 레이스처럼, 숨가쁘게 내달리는 오싹한 이야기...제일 처음에 쓰인 서평이다. 누가 악마이고(시거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지만, 악마는 아닌 듯^^;) 어디가 지옥인지...그것이 레이스였는지도 몰랐다...^^; 그 만큼 묘사가 배제되어 있어서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기에.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묵시록적이다. 보안관 벨의 독백이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데 (처음에는 주인공 ‘모스’의 독백인 줄 알았다.^^; - 그러면 주인공은 ‘벨’인가?) 그가 전망하는 미래의 모습은 너무나 우울하다. 40년 전에 교사들에게 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했을 때는 떠드는 것, 숙제 안 해오는 것 등이었는데 40년 후에 다시 설문지를 돌리니 강간, 방화, 살인, 마약이 가장 어려운 점이란 대답이 돌아왔단다. 앞으로 40년이 더 지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상상되지 않는다고 한 ‘벨’의 말에서,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지만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미래에 대해 나는 무기력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떤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도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마땅히 혼이 나야 하는 데도 멀쩡한 세상을 보면서 어쩜 화도 나고 원망스럽다가 이제는 화낼 기운도 없어, 무감각해질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글을 읽는다고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이상적인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하고,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조명해야 한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런 어려운 이론에는 관여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해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은 아니라고 본다. 세상은 이렇게 막나가도 문학만큼은 그래도 이 세상이 살 만하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건 몰라도 재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해줘야 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나 몰입이 되지 않아서 딴 생각을 하게 만든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주로 인문 쪽의 실용서적을 많이 읽기에 몰입이 되지 않았던 책(철학은 정말 힘들다^^;)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기에. 정말 코맥 매카시라는 인물이 그렇게나 대단한 인물인지, 아니면 소문만 무성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것인지....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시.는. 코맥 매카시라는 이름만 들으면 멀찍이 떨어져서 외면할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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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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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50년 정도 과거로 가버리면 어떨까, 아니면 미래로는? 여기 그런 이야기가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중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던 비행훈련병 이사바 고이치와 200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빈둥거리며 게임 크리에이터를 꿈꾸던 철부지 오지마 겐타가 서로의 시대로 넘어가버리는 이야기. 더 놀라운 것은 서로의 모습이 정말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시대가 아닌 때에 떨어졌어도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들을 자신이 믿는 존재로 생각해버린다는 것!!!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그들은 정말 자기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이 의문이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가 떨어진 시대에서 조금씩 적응해가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정보를 쌓아갔다. 그런데 자기 친인척도 아닌데 흡사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으면 뭔가 신비로운 힘이 개입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주인공 겐타도 그랬다. 처음에는 몰래카메라일거라 생각했다가 군대에 끌려가서 모진 기합을 받고나니 태평스런 원래 그의 성격과는 다르게 발빠르게 적응해가고 있을 때 자기 여자친구인 미나미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만났고 또 자신의 할아버지까지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계속되는 우연의 연속에 사실은 뭔가 다른 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겐타는 1945년으로 오게 된 것일까.

 


역사적으로 21세기에 자신과 미나미가 태어나기 위해선 그들이 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것만 믿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겐타에게 존경했던 다부치 사관은 한 마디 한다.

 


정신 차려, 바보 같은 녀석. 뭐가 괜찮다는 거냐, 어디가 괜찮다는 거냐, 말해봐라!

 


그제서야 겐타는 깨달았다. 역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달라져 버린다는 것을. 21세기에서 태평하게 살던 그가 부모 몰래 대입도 공부하고 게임 크리에이터를 준비하고는 있었지만 전쟁을 준비하던 훈련병들처럼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해본 적은 없었다는 것을. 겐타에게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어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이런 뜨거운 삶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었을까.

 


한편, 고이치는 역사책을 통해 일본이 패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힘들어 했지만 빨리 자기 근무지로 돌아가서 21세기의 비법을 전수해준다면 패전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혼자 고민하고 노력했다. 그러다 21세기의 일본이 너무나 무질서하고 일본이기 보다는 서양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니 자기가 과연 목숨을 바쳐 구하려고 했던 그 일본이 맞는 것인지 자문하게 되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후대가 될 것이었다면 차라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게다가 점차 겐타의 여자친구인 미나미를 사랑하게 되어 더 이상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전에는 여자를 가까이 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남아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하나의 소망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과거에 고이치가 조국을 위해 꿈과 사랑과 젊음과 가족도 모두 다 포기한 채 그렇게 죽음의 길로 당연하게 걸어 들어갔던 것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왜 그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을까. 원래대로라면 이사바 고이치는 세계 2차대전에서 죽어버려서 남겨진 후손조차 없던 인물인데. 그가 죽기 전에 21세기에 오게 해서 자신의 인생을 되찾고 삶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했던 것일까.

 


과연 겐타의 삶, 고이치의 삶 중에서 어떤 삶이 더 낫다, 못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것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할 때는 수동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따라하지 말 것이며, 제일 중요한 것은 인생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둘다 시간을 뛰어넘어 이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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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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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별순검>이란 드라마가 일찍이 종영이 되었다. 그 드라마를 내가 알게 된 것은 동생과 언니가 컴퓨터로 다운을 받으면서까지 수집을 해놓았기 때문인데 원래 드라마를 꾸준히 볼 수 없는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한 편을 보고 나니까 상당히 수준급의 과학지식으로 무장하고 정의를 위해 이리저리 뛰는 별순검들이 흥미로웠다. 외화시리즈 <CSI 과학수사대>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봤던 거라 현대에는 과학수사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실제 해부를 하지 않아도 사인을 밝혀낸다든가 어떤 즙을 바르면 상흔이 남는 등의 지식은 정말 신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이런 것도 우리가 우리의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모습의 한 단면이겠지.

 


일단 이 책은 조선시대의 별순검이란 기관이 있었지만 이는 대한제국 때 잠깐 존재했다는 것을 문헌을 들어 알려준다. 아마 인기리에 종영되었던 드라마 <별순검>의 여파이겠지만. 조선 말기에 있었던 기관이기에 드라마에서 일본인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 정치에 근본이기에(지배계층을 위협만 하지 않는다면^^;) 무고하게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몇 번이나 다시 수사를 하도록 지시했고 관리들이나 왕까지도 과학기술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살인범은 대부분 사형이 내려졌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을 가능성이 많으니 증거에 입각해서 수사를 해야할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조선왕조가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나라이다 보니까 인간의 생명보다도 계급에 대한 것을 우선시했다는 단점이 있다. 이영규가 노복 김도흥때문에 곤욕을 치르자 발로 찼는데 그만 죽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것을 노비의 아들인 김득복이 그 주인을 직접 고발하지는 못하고 다른 사람이 고한 것으로 꾸몄다. 그런데 살인사건 때는 그렇게나 정의롭게 수사를 진행하고 판결을 내리던 관리들이 완전 딴판으로 행동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잘못 이해했는줄 알았다. 오히려 고소한 노비의 아들이 벌을 받았던 것!!! 이것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다가 맨 마지막에 보니 신분에 관련된 법조항을 상당히 많이 제시해주면서 생명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계를 위협하는 행위는 아예 엄벌을 내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오늘날에는 모순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왕의 친족에 관련된 사건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유희서라는 고위 관리가 도적떼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포도청에서 조사를 해보니 임해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해당한 유희섭의 애첩이 임해군과 놀아나자 화를 냈더니 수하들을 시켜 죽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살인을 저지른 수하들을 결박해놓았지만 임해군을 심문할 수가 없어 지지부진 하던 차에 죽은 유희서의 아들 유일이 혼자서 수사를 하고는 임해군과 얽힌 일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고소해버렸다. 그러자 임해군은 유일이 자신을 무고하게 모함을 하는 것이라고 항소를 복잡하던 차에 갑자기 포도청에 결박되어 있던 그 수하들이 모조히 살해당해버려 살인사건이 포도청의 관리 허술이라는 문제로 넘어가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유일은 모진고문을 받고 모함했다는 거짓증언을 하고 포도청 관리들은 모조리 파직을 당해버렸다. 이 모든 것이 선조의 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인륜에는 위반되지만 전제국가이라는 점에서는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완전히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공정하게 판결했다면 그 나라는 전제국가가 아니라 공화정이었을테니까.

 


이 책에서 내가 놀랐던 부분은 조선시대에서 법률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강력한 전제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리들의 재량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사례에 대한 법률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그래서 우리보다 다양한 사례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것을 본따왔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대명률>>이다. 이것을 기본으로 가지고 사용하되, 점점 다양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법률을 하나씩 만들어서 상당히 복잡한 법전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만든 것이 <<경국대전>>과 <<속대전>>!! 그리고 그것에 맞게 판결을 내리지 않는 관리들은 엄격하게 다스렸다니 관리들과 왕들은 이 많은 법률을 다 읽고 이해하고 있어야 했기에 법률에 얽매여 살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법률이 많은 나라의 병폐라고 하는데 중국의 한 나라가 존속했던 것이 200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이 500년이나 존속했던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단어 하나 하나가 너무 어려워서 쉬이 읽혀지지 못했다. 옆에라도 표기하고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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