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암살자
데이비드 리스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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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꺼운 분량의 책이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소설 <도덕적 암살자>는 우리 사회 이면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가 인지하지는 못했던, 아니 귀찮아서 인지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를 내 눈앞에 들이댔다. 평생을 동물과 가까이 살아본 적도 없고 그랬기에 동물이 죽는 모습도 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식탁 위에 올라오는 ‘고기’에 대해서 이렇다 할 특별한 견해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평생 동물학대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 분명했던 나에게 이 소설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동물로 실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복사용지를 얼마나 먹으면 실험 대상의 50%가 죽는가 같은 아무 필요도, 쓸모도 없는 실험을 한다는 것은 몰랐다. 도대체 누가 복사용지의 독성에 대해 알고 싶단 말인가. 그것을 먹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의미없는 실험으로 예산을 짜고 보험금을 책정하는 등 여러 서류상으로 필요한 일을 한다는데 내가 보기엔 다 쓸데없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과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소름끼친다. 인간의 생명을 위해서 동물을 희생해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논의하는 문제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인간보다는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한 개를 구해야 한다는 멜포드의 생각 둘 다 아직 내 의견을 형성하진 않았지만 아무 이유도 없는 동물 실험을 반대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극단적인 동물보호론자인 맬포드와 아직 사회에 나가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렘의 만남은 처음에는 어색했던 관계였으나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끝이 난다. 소심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데올로기 안에 머물러있어 자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렘은 훨씬 더 성숙하여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악하게 된다. 그런 그가 대학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사회를 바꾼다면 조금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처음에 이 둘의 만남은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렘이 일류대학에 가기위해 돈을 벌러 백과사전 방문판매를 하러 들어간 집에서 맬포드가 소리없이 들어와 - 돼지 농장에서 도살하는 사람인 - 집주인 둘을 총으로 쏴 죽였기 때문이다. 암살자와 목격자로 만난 그들이 평범한 상황에서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도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든 상황에서 그나마 침착하게 맬포드의 말대로 행동하고 돌아온 렘은 이제까지 수수방관만 하며, 소극적으로 살아왔던 인생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맬포드는 렘을 지켜보며 사회를 좀 더 바르게 볼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멘토 역할을 한다. 그가 했던 행동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맬포드와 렘이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덩치가 큰 형씨들이 와서 시비를 걸었던 때였다. 소심했고 덩치가 크지 않았던 렘은 항상 이런 상황을 두려워했는데 솜씨좋게 해결한 맬포드의 행동을 보고서는 그 행동을 분석하고 자신에게 맞게 바꾼다. 그 때 맬포드는 사람들이 예상하는 행동과는 다르게 반응하면 큰 말썽없이 지나갈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해주면서 그를 가르친다. 참 기묘한 상황에서 만난 맬포드에 대해서 렘은 한편으로는 자상한 선배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자 같은 인물로 여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을 죽였다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맬포드를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다 그에게 사람을 죽인 이유를 묻지만 맬포드는 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지는 않는 대신 조건을 건다.

 


모든 사람은 교도소가 갱생 시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사실 교도소라는 시설이 거꾸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러니까 작은 범죄자를 큰 범죄자로 바꾼다는 걸 안다면 우리는 왜 교도소를 운영하는 거지? 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을 범죄 학교에 보내는 거야?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고 그 대답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때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말해주지.

 


수수께끼가 아니야. 시험이지. 난 네가 알아낼 수 있는지 보고 싶은 거야. 안개 너머를 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반대편에 뭐가 있는지 알아봐야 아무 소용없어. 내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넌 들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 p. 134 인용

 


맬포드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사회를 형성하고 구성하는 이데올로기를 들어서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고 정의하는 그는 확실히 평범하게 안주하기 보다는 좀 더 깨어있길 원하는 사람인 것은 틀림없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으니 죄값을 치러야 한다거나 아니 좀 더 고귀한 목적으로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니 죄값을 치를 필요는 없다고 한다거나 하는 문제는 좀 더 나중에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문제를 들어서 동물학대라고 하는 문제를 다루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나쁜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가 더 시급하다.

 

다음은 렘이 교도소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되어 맬포드에게 말하는 대목이다.

 

범죄자들은 대개 사회의 가장가리에서 생겨요. 그 사람들은 우리 문화로부터 별로 얻는 것이 없어요.

그들이 뭔가 얻으려면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심지어 파괴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새로운 체제로 바꿔야 해요.

물론 더 나은 체제일 수도 아닐 수도 있죠. 그건 상관없어요. 그들은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국 법을 어기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들에게 범죄를 배우죠.

어쩌면 교도소에 가서 훨씬 중요한 법률을 어기는 걸 배우기도 하겠죠.

어느 사이엔가 미래의 혁명가들은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사회는 범죄자는 쉽게 흡수할 수 있지만 혁명가는 받아들이지 못해요.

범죄자들은 체제 안에 자리가 있지만 혁명가는 자리 자체가 없죠.

그래서 교도소가 있는 거에요. 사회의 부적응자들을 살인자로 바꾸는 거죠.

사회에 피해를 주고 분위기를 해칠 수는 있지만 사회를 파괴하지는 않거든요.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가. 한번도 교도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못해봤기에 나에게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대답이다. 나에게 시간이 더 주어지면 나는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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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믿음의 힘 -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성취, 뉴욕타임즈베스트셀러 #1
토니 던지 지음, 이기승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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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믿음의 힘’이면 ‘믿음의 힘’이지 왜 “조용한”이란 단어가 앞자락에 붙는 거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풋볼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에서 우승으로 이끈 인디애나 폴리스의 콜츠팀 감독이라, 스포츠란 단지 숨쉬기 운동 그 뿐이라고 생각하는 나랑은 맞지 않아도 한참 맞지 않았다. 스포츠를 하던 사람인데다가, 더구나 격렬한 풋볼을 하고 있는 스포츠맨에게 “조용한”이란 단어는 무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의 저자 토니 던지는 정말 풋볼 선수로 뛰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조용함”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다른 선수들도 풋볼 선수이지만 절대 시끄럽거나 육체미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온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소개해주었지만 사실, 내가 보지 않으면 믿기기 어렵다. 정말 야만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렬한 운동이지 않은가 말이다. 풋볼이. 허나 작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는 맘으로 일단 수긍하고 책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성공한다면 그들의 뒤에는 그보다 비범한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여기 토니 던지의 부모님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다. 평생을 교직에 계셨던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나오면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과는 상관없이 바로 주위에 널려있는 자동차 공장에 들어가 직장을 구하는 아이들을 안타까워 하셨기에 잭슨고등학교에서 영어와 화술을 가르치며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개발해주곤 하시는데 온 힘을 기울이셨다. 한 번은 그녀가 에세이를 채점하면서 메모를 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A학점을 맞는 아이들보다 B학점을 맞는 아이들을 더 많이 생각하셨는데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어머니가 채점하면서 했던 메모는 이것이다.

 


‘스티브 존스, B학점. 내가 어떻게 하면 스티브가 A학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이 학생은 자신의 잠재능력을 다 발휘하고 있지 않다.’

 


이 메모를 보면서 나는 참 많이 부끄러웠다. 나도 5년째 강사일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잠재능력이 있고 그것을 키워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요 근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달에 학원에서 얻는 보람보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생각돼 이직을 고려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고려해야 할 내 선택조건에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에게 이렇다 할 애착은 없는, 어찌보면 상당히 냉정한 나는 아이들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아이들의 잠재능력이 커가도록 돕겠다는 생각은 눈꼽만치도 하지 않았다. 내가 5년 내내 이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 때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이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다. 그만큼 지치고 힘들었기에. 그 때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이젠 ‘아이들’이 하나의 인격체로 보인다. 아이가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현저히 낮으면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하게끔 강하게, 단호하게 알려주었던 내가 이젠 왜 그러냐고, 어디 아픈 것은 아니냐고 살며시 물어주게 되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언제 아프고 짜증냈었냐는 듯이 수업에 집중해주곤 한다. 아이들의 생각과 의사를 물어주는 것, 단순한 그것이 아이들에게 강압적인 느낌을 들지 않게 하고 오히려 수업이 재미있게 여긴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발견이었다.

 


또한 그의 아버지도 조용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닌 분이셨는데 그와 낚시를 하러나가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경이로운 세계를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동생과 토니가 아버지랑 낚시를 했던 일화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동생에게 낚시를 가르쳐주시다가 낚시바늘이 귀에 걸려 아플 때조차도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지 않으시고 인내하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린덴, 너는 낚싯대를 던지면서 네 낚싯대가 어디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할 뿐 아니라....네 주위에 너 말고 누가 있는지를 살펴야만 해.”

 


나는 사소한 아픔일지라도 난리치며 엄살을 떠는데 토니 던지의 아버지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서 아픔을 꾹 참고 (나 같으면 화를 꾹 참고^^;) 메시지를 주시는 모습은 정말 아이를 가르치는 모든 부모와 모든 교사라면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었다. 아이들이랑 놀다보면 발을 밟힐 때도 있고 (요즘 아이들이 좀 크냔 말이다^^;) 머리로 박는다거나 팔꿈치로 가격당하기도 하는데 보통 아이들 앞에서는 그냥 웃지만 (힘들다...웃기도..^^;) 너무 아팠을 때는 나도 모르게 센 소리가 나가기도 한다. 정말 가르치는 일은 너무 힘들다...

 


이런 두 분의 영향을 받고 자란 토니 던지는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의 형제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일 수 밖에 없다. 정말 부모가 되는 일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그런 그가 흑인이고 쿼터백으로 맹활약할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했어도 코치가 되고서부터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코치가 되었던 장소는 선수로 뛰고 있었던 스틸러스였는데 쿼터백으로 뛰었을 때부터 그를 믿어주었던 척 놀 감독이 어떻게 선수들을 관리하고, 독려하고, 대형을 짜는지 등을 알려주고 준비시켜주었다. 그 이후에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마틴 감독를 거친 다음,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데니스 그린 감독에게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사실 특별한 능력이 없었던, 그래서 코치일이 아무래도 서툰 그가 다른 코치들도 많은데 하필 데니스 그린 감독에게 코치로 뽑힌 것은 정말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차곡차곡 맏들어가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처음 감독으로 일한 곳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였다. 그 팀은 이제까지 1982년 이래 플레이오프에 들어간 적이 없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선수들의 구성은 괜찮은 팀이었다. 던지는 코치팀을 구성하고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게 해주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감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슈퍼볼 우승으로 이끈 팀은 이 팀이 아니라 이 다음에 감독했던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였지만(심지어 버커니어스팀은 토니 던지가 해고당한 다음 해에 슈퍼볼 우승을 거머쥐었다!!!) 토니 던지가 자신의 역량을 가장 많이 드러냈고 선수 하나하나의 인격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끼친 것은 이 팀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사소해보이는 여러 가지를 변화시키면서 선수 개개인이 ‘책임’을 가지게 했다. 예를 들어 자주 없어지는 타월을 보고 개인의 이름을 적어넣는 등 선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무한으로 공급할테니 선수를 의심하지 말게 하게도 하고 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해서 인터뷰를 할 때조차 실패자처럼 하지 않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팀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나지만 실패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팀이었기에 1996년 연속으로 내리 다섯 번을 졌을 때 위기가 왔다. 그 때 구단주가 직접 찾아와서 토니 던지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긴다고 지지하고 갔던 경험은 그가 일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선수들에게도 큰 믿음을 주었다. 그래서 토니 던지 감독은 선수들에게 성질을 부리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찍은 테이프를 보여주면서 점점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데 골몰했다. 그리고 나서 얻었던 미네소타와의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 때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끝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이때의 습관이 토니 던지가 해고당한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렇게 조용한 토니 던지조차 정말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연습시간에 아예 나오지 않는 리건 업쇼우와 사인회를 하느라 지각한 에릭 레트 때문이었다. 그는 그날 풋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태도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기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경기외 필드 바깥일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 강조를 했다. 다른 선수들은 이 부분에 대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그들에게 ‘비전’에 대한 유인물을 나누어주면서 독려했다. 1996년을 이렇게 보내고 나서 도약의 해가 된 1997년을 맞이했다. 5연패를 했던 1996년에는 ‘내가 다시 경기장에 오나봐라!’ 란 모욕적인 말도 들었지만 1997년에는 대박의 행진이었다. 홈에서 첫 경기인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의 경기에서 워릭 던의 활약으로 13대 6으로 승리했고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와의 경기에서도 또 워릭 던의 활약으로 2승을 했고 워릭 던은 ‘금주의 공격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바이킹스를 이기고 나서 다시 홈에서 마이애미 돌핀스를 맞이했는데 유례없던 매진열풍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한 카리스마로 선수 하나하나를 믿음으로 일으키고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있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 선수들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토니 던지는 가족을 우선시하고 아무리 큰 경기가 있는 날이어도 오랜 시간 회의를 한다거나 연습을 하지 않고 풋볼은 풋볼일 뿐 인생 전체가 걸려있는 것은 아니라는 가르침으로 인생을 알차게 살 수 있게 선수들을 독려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의 가르침은 비단 풋볼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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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의 시간 - 빈센트 반 고흐 편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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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워낙에 색에 민감한 나로서는 요 앞에 나갈 때도 옷이랑 악세서리, 신발까지 맞춰야 나갈 정도로 심각한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까탈스러움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색깔 펜을 산다든지 필기할 때 어떤 색으로 조화를 이룰 것인지 생각할 때면 다시금 색에 대해 민감해지고 색에 민감한 내가 너무 좋다. 그랬던 나이기에 미술시간도 참 좋았었다. 아주 어린 초등학생 때는 뭔가를 미리 준비하지 못했고 이렇게까지 색에 민감하지도 않아서 미술시간이 고역이었지만 머리가 점점 커가면서 색에 민감해지더니 고등학생이 된 후에 미술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제껏 미술학원은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으니 소질은 고사하고 기초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냥 미술이 좋다는 감정만 느꼈고 그것을 전공으로 해서 대학에 올인할 자신은 없었기에 그저 희망사항으로만 남기고 넘어갔지만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소질을 키워나갔으면 뭔가 또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해보긴 하지만 뭔가에 전력투구하는 편은 아닌지라 그냥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색칠공부’할 기회가 있어서 냉큼 잡아버렸다. 내 손으로 반 고흐의 유명한 작품을 색칠해볼 수 있다니...내가 어릴 적 포기했던 꿈을 한 자락 잡고자 저질렀던 일이다. 책을 보면서 워밍업으로 선도 그어보고 브렌딩도 해보고 그라데이션도 해본 다음에 본격적으로 ‘색칠공부’를 시작했다. 요즘엔 늦게 퇴근하는 일이 많은지라 색칠은 거의 새벽 1~2시쯤에 이루어졌는데 그나마도 한 번에 다 끝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다가 다음 날로 미뤄 이틀 만에 겨우 하나를 완성했다. 그래서 완성된 것이 제일 첫 장에 있던 <의자>이다. 너무 소심한 성격 탓에 책 뒷장에 있는 밑그림을 이용하지 못하고 그것을 복사해서 복사지에다 색칠을 했는데 문제는 모조지를 사용해야하는데 그냥 복사지에 복사를 해버려서 색칠을 할 때 브렌딩효과는 거의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화를 색연필로 표현해야했기 때문에 브렌딩이 제일 중요한 기법인데 그것을 못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색칠’을 하고 있으려니까 동생이 “이거, 유치원 때 하는 거 아니야?” 라고 장난을 치는데 정말 유치원 때 ‘색칠공부’를 한 기억이 없어서 엄마께 물어봤다. “엄마, 나 어릴 때 색칠공부했어? ” 그러자 엄마는 뜻밖에도 그 나이 또래에는 이것말고는 할 게 없다면서 색칠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셨다. 이상하게도 나는 ‘색칠’하면 너무 들떠버리는데 그것이 어릴 때 ‘색칠’에 대해 못해봤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뭔가 허탈해지기도 했다. ㅋㅋ




왼쪽은 원본이고 오른쪽은 내가 칠한 그림인데 가지고 있던 색연필의 색이 없는 게 있기도 하고 칠한 색이 너무 흐려서 내 맘대로 바꿔서 칠한 것도 있어서 그런지 조금 색감이 틀려졌다. 그리고 칼로 긁어내야하는데 그것은 종이가 너무 얇아서 할 수 없었기에 색이 더 진해진 것 같다. 그 이유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원본은 노란색이고 내 건 갈색이 주종을 이루고 있을까. 어쨌든 색을 칠할 때는 정확한 색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다음 번에 다른 것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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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로 못질할 만큼 외로워!
마쓰히사 아쓰시.다나카 와타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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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수채화같은 표지(실제로는 연필스케치에 크레파스 색칠^^)에 붓으로 찍찍 그어놓은 듯한 글씨로 제목이 써있는 <바나나로 못질할 만큼 외로워!> 라는 이 책은 이때까지 보았던 여느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등장인물 간의 사랑이야기에다가 남주인공이 쓰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줄거리가 더해져서 액자소설의 형태를 띠는 이 소설은 설명하는 것이나 주인공이 혼자 독백하는 것이 조금 산만했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 옮긴이의 말을 보니 정신 사나운 면이 조금 있지만 적응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처음엔 이해도 안가고 공감도 안 되었다가 어느새 남녀주인공의 아픔과 상실을 그대로 공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내가 이 소설에 익숙해질 수 없었던 것은 일단 마키에라는 여주인공에게서 현실성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는 비쩍 마른 주근깨 소녀였는데 아가씨가 된 지금은 너무 아름다운 여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소망이 아닌가.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구!!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그녀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남자들과 쉽게 걸걸한 농담도 지껄일 수 아는 울트라 캡숑 나이스 짱 쿨한 여성이었다. 나같이 소심한 여자애(참고로 말씀드리면 서른이 가까운 나이임^^;)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러운 일이라는 것이란 말이야~~ 그래서 그녀에게서 질투가 났는지 쉽게 정리가 되지 않고 나는 나!, 너는 너! 하며 겉돌면서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그녀를 17년 동안이나 짝사랑했던 미하루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캬~~ 누군 좋겠당~~ 나를 짝사랑해줄 사람은 어디 없나~~한 달만이라도,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아니 단 하루라도!!!! 그는 성우를 지망했다가 그쪽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애니메이션의 각본쪽으로 전향해서 탄탄하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는 타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었다. 나도 이런 사람이 좋더라~~ 하지만 나는 마키에같은 왈가닥이 아니니 어딘가 맞지 않을 수도... 그 짝사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지만 차마 고백할 용기를 못 내는 그에게 료헤이라는 친구가 격려를 해준다. 그래서 다음 날 고백을 하러 가겠다고 용기를 내는데 아쉽게도 마키에는 그녀의 전 애인을 우연히 만나 다시 사귀기로 했던 참이었다. 뭐, 인생이라는 게 다 이렇지!

 


어긋나버린 인연을 다시 이어붙일 힘도, 매력도, 자신감도 없던 미하루에게 오히려 마키에가 적극적으로 다가온다.(실연당한 사람에게 이게 무슨 짓이야~! 잔인해, 잔인해!!) 꽃집을 하기에 밤이나 새벽에는 정말 바쁜 그녀는 한가로운 오후에 짬이 나면(말하자면 일반 회사원인 애인과는 만날 수 없는 시간에^^;) 왈가닥인 그녀답게 한창 대본을 쓰고 있는 미하루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있든 없든 나오라고 해서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 어찌된 일인지 마키에는 애인인 에지마보다도 소꿉친구였던, 그리고 실연시켰던 미하루와 있었던 추억이 더 많아보이는 걸까. 아직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나는 사랑이 뭔지 정말 궁금하지만 마키에와 미하루를 보면 얼핏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서로에게 한 발자국씩 더 가까이 간 그들은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자신들에게 찾아온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가늠하지 못해서 그 소중한 순간을 그냥 놓치고 만다. 나중에서야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 사랑이었음을 그나 그녀가 없는 그 공간에서, 그 순간에 깨닫고 가슴 절절하게 울기만 할 뿐이다. 한 번 어긋난 사랑은 알맞은 타이밍에 붙잡지 않으면 절대로 회복될 수 없다는 것쯤은 사랑을 해보지 않은 나도 알고 있는데 이 두사람은 옆에 자기 사랑이 없다는 것만을 슬퍼할 뿐 더 이상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고백한 자도, 고백을 받은 자도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주저하고 돌아서고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랑 앞에선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나 보이는 사람도, 못나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다 사랑 앞에서는 자신이 없는 거라는. 역시 신은 공평하시다니까!

 


어쨌든 유쾌한 러브스토리는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해피‘엔딩’이지만 이것이 절대 끝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관심과 배려로 잘 길러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는 화초이니까 마키에와 미하루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계속 표현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찐하게 사랑을 해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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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이다 -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대왕 세종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한글을 너무 사랑한다. 내가 영어에 거부감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이 조그만 나라에 이런 과학적이고 독창적인(강대국 중국, 일본과도 완전히 다른^^) 언어가 있다는 것은 정말 자부심이 생길 만한 일이 아닐까. 이런 아름다운 언어를 만드신 분이기도 하고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등용하는(제가 ‘장영실’을 좋아하거든요~) 놀라운 분이 바로 “세종대왕”이시다. 그래서 역사에 아니, 국사에 너무나 취약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왕이다. 그분의 생애와 정치능력과 재능과 말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정리되어 있는 <나는 조선이다>는 정말 제목 그대로 세종대왕이 조선의 정체성을 완성해갔던 것을 잘 보여주었다.

 


평생을 책에 둘러싸여 책읽기를 쉬지 않고 했던 공부벌레였던 그가, 한 나라의 성군이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단순히 책만 들입다 판 사람이 한 나라의 살림을 제대로 해내기는 어려울 듯한데 말이다. 카리스마가 없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되는데 이런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세종대왕은 어느 정도 카리스마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왕이란 신분에서 오는 권위가 있었을 것인데 책을 보니까 세종은 왕이라는 권위를 내세우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그의 진정한 카리스마의 원천은 그가 열심히 파고들었던 옛 문헌이었다. 옛 중국에서 해왔던 문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던 세종이었으니 능력으로 무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지금 시대에서도 한 기업체를 이끄는 CEO를 하라고 해도 참 잘 할 것이다. 그렇게나 성실히 책을 보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사람이니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한 나라를 일구는 데 필요한 여러 능력을 자연히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태종 이방원의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교이념을 정치이념으로 삼고 있었던 조선에서는 절대 왕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세자였던 양녕대군이 워낙에 말썽이란 말썽은 다 일으키고 다녔기에 태종은 셋째였던 충녕대군 곧, 세종를 세자로 책봉했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셋째로 태어났기에 아무런 기대도 없었던 아들, 충녕대군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자로 정치수업을 오랫동안 받지도 않고 두 달여 만에 왕이 되어버린 그가,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성군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운도 아주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그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 세종이 성군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세종에 대해 우리가 꼭 생각하고 넘어가야할 것은 그가 책을 많이 읽어 다양한 방면에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지고있었다는 것이다. 일을 시키는 왕이 이렇게 전문가 뺨 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신하되는 자가 몇 마디라도 의견을 내려면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절대 말 한마디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밑에 있는 신하들도 더욱 정진하며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가 자연히 조성되었던 것이 가장 큰 능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 시대 이후로도 그만큼 전성기가 없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었던 것만은 아주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세종은 정책을 결정할 때 신하들과 토론을 통해 가장 좋은 방법을 결정했는데 이런 방법을 통해 좋은 의견을 수렴하고 그 때 좋은 의견을 낸 자는 신분 여하에 상관없이 전격으로 발탁되는 특혜까지 주었으니 신하들에게 정말 부지런히 공부하고 싶게 만들기도 했던 아주 이상적인 왕이었다.

 



세종 시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름난 신하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적 운명인지 아니면 세종이 잘 다듬어서 쓴 것인지는 모호하지만 일단 능력위주로 대접했던 세종의 전략이 상당히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렴결백의 대명사인 황희 정승만 해도 여러 가지 집안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세종 덕분에 여든 살까지 현역으로 일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황희 정승의 능력은 토론식 정치를 했을 때에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적절히 쳐가면서 조율했던 것으로, 세종의 정치 형태에서는 정말 중요한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너무 성품이 어질고 부드러워서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하는 맹사성도 빼놓을 수 없는 인재 중의 한 사람인데 너무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종과 그의 신하들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맹렬히 계속되는 논쟁을 종결짓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재상으로는 허조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너무 강직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그는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었다. 전근대사회의 규칙이었든지, 인간으로서의 규칙이었든지 그가 말한 규칙은 누구도 그의 말을 들으면 수긍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의 의견은 사회의 규율에서 어긋남이 없었다.

 


세종의 논리는 상당히 약삭빠른 정도로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평소에는 신하들과 토론을 통해서 정책을 결정했지만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칠 만한 내용은 미리 왕의 권위를 들어 밀어부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른 황희정승의 재임과 훈민정음의 창제 등 여러 사람들이 반대할 만한 일은 미리 연막을 쳐두고 일을 진행시켰다. 이 때 그가 쓴 방법이 정말 대단한데 돌아가신 태종의 뜻이었다고 말해서 명분을 세우면 아무도 섣불리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청렴결백한지는 몰라도 자식들의 부정축재나 사위의 문제 등으로 계속 사람들에게 꼬투리를 잡혔던 황희였을지라도 세종은 끝까지 그를 재상의 자리에 놔두고 여든 살까지 부려먹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이 제마다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세종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문종과 단종, 그리고 세조 시대 때는 여러 이유로 세종이 쌓아올렸던 것들을 더 키워내지는 못하고 깎아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8공자들의 뛰어난 능력이 세종이 승하한 후에 바로 화(禍)가 되어버린 것이다. 세자였던 문종이 건강하기만 했더라면 절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어린 단종만을 남겨두고 죽어버려서 일이 커졌던 것이다. 이미 세종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던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을 위해 단종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 때 너무 어린 단종 대신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다고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런 화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어린 왕이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니 그 다음 능력이 있는 자가 정권을 잡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여러 인재들이 죽어나가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했던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틀를 세우는 데 정말 큰 손해이라고 할 수있다. 너무나 큰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세종이라는 왕이 사라지고 나자 그가 이룩해놓았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왕들이 세종 시대의 법대로 따라하려고는 했지만 그다지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던 것은 아마도 세종 시대의 바로 다음 시대에서 그 명맥이 유지되지 못했기에, 그리고 그만한 능력있는 왕이 나타나지 못했기에 그런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를 흉내내는 왕이 그 이후에 더러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것을 진정 자신의 능력으로 만든 왕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 나라의 후손으로서 나는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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