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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암살자
데이비드 리스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두꺼운 분량의 책이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소설 <도덕적 암살자>는 우리 사회 이면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가 인지하지는 못했던, 아니 귀찮아서 인지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를 내 눈앞에 들이댔다. 평생을 동물과 가까이 살아본 적도 없고 그랬기에 동물이 죽는 모습도 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식탁 위에 올라오는 ‘고기’에 대해서 이렇다 할 특별한 견해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평생 동물학대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 분명했던 나에게 이 소설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동물로 실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복사용지를 얼마나 먹으면 실험 대상의 50%가 죽는가 같은 아무 필요도, 쓸모도 없는 실험을 한다는 것은 몰랐다. 도대체 누가 복사용지의 독성에 대해 알고 싶단 말인가. 그것을 먹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의미없는 실험으로 예산을 짜고 보험금을 책정하는 등 여러 서류상으로 필요한 일을 한다는데 내가 보기엔 다 쓸데없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과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소름끼친다. 인간의 생명을 위해서 동물을 희생해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논의하는 문제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인간보다는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한 개를 구해야 한다는 멜포드의 생각 둘 다 아직 내 의견을 형성하진 않았지만 아무 이유도 없는 동물 실험을 반대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극단적인 동물보호론자인 맬포드와 아직 사회에 나가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렘의 만남은 처음에는 어색했던 관계였으나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끝이 난다. 소심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데올로기 안에 머물러있어 자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렘은 훨씬 더 성숙하여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악하게 된다. 그런 그가 대학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사회를 바꾼다면 조금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처음에 이 둘의 만남은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렘이 일류대학에 가기위해 돈을 벌러 백과사전 방문판매를 하러 들어간 집에서 맬포드가 소리없이 들어와 - 돼지 농장에서 도살하는 사람인 - 집주인 둘을 총으로 쏴 죽였기 때문이다. 암살자와 목격자로 만난 그들이 평범한 상황에서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도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든 상황에서 그나마 침착하게 맬포드의 말대로 행동하고 돌아온 렘은 이제까지 수수방관만 하며, 소극적으로 살아왔던 인생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맬포드는 렘을 지켜보며 사회를 좀 더 바르게 볼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멘토 역할을 한다. 그가 했던 행동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맬포드와 렘이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덩치가 큰 형씨들이 와서 시비를 걸었던 때였다. 소심했고 덩치가 크지 않았던 렘은 항상 이런 상황을 두려워했는데 솜씨좋게 해결한 맬포드의 행동을 보고서는 그 행동을 분석하고 자신에게 맞게 바꾼다. 그 때 맬포드는 사람들이 예상하는 행동과는 다르게 반응하면 큰 말썽없이 지나갈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해주면서 그를 가르친다. 참 기묘한 상황에서 만난 맬포드에 대해서 렘은 한편으로는 자상한 선배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자 같은 인물로 여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을 죽였다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맬포드를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다 그에게 사람을 죽인 이유를 묻지만 맬포드는 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지는 않는 대신 조건을 건다.
모든 사람은 교도소가 갱생 시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사실 교도소라는 시설이 거꾸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러니까 작은 범죄자를 큰 범죄자로 바꾼다는 걸 안다면 우리는 왜 교도소를 운영하는 거지? 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을 범죄 학교에 보내는 거야?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고 그 대답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때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말해주지.
수수께끼가 아니야. 시험이지. 난 네가 알아낼 수 있는지 보고 싶은 거야. 안개 너머를 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반대편에 뭐가 있는지 알아봐야 아무 소용없어. 내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넌 들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 p. 134 인용
맬포드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사회를 형성하고 구성하는 이데올로기를 들어서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고 정의하는 그는 확실히 평범하게 안주하기 보다는 좀 더 깨어있길 원하는 사람인 것은 틀림없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으니 죄값을 치러야 한다거나 아니 좀 더 고귀한 목적으로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니 죄값을 치를 필요는 없다고 한다거나 하는 문제는 좀 더 나중에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문제를 들어서 동물학대라고 하는 문제를 다루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나쁜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가 더 시급하다.
다음은 렘이 교도소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되어 맬포드에게 말하는 대목이다.
범죄자들은 대개 사회의 가장가리에서 생겨요. 그 사람들은 우리 문화로부터 별로 얻는 것이 없어요.
그들이 뭔가 얻으려면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심지어 파괴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새로운 체제로 바꿔야 해요.
물론 더 나은 체제일 수도 아닐 수도 있죠. 그건 상관없어요. 그들은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국 법을 어기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들에게 범죄를 배우죠.
어쩌면 교도소에 가서 훨씬 중요한 법률을 어기는 걸 배우기도 하겠죠.
어느 사이엔가 미래의 혁명가들은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사회는 범죄자는 쉽게 흡수할 수 있지만 혁명가는 받아들이지 못해요.
범죄자들은 체제 안에 자리가 있지만 혁명가는 자리 자체가 없죠.
그래서 교도소가 있는 거에요. 사회의 부적응자들을 살인자로 바꾸는 거죠.
사회에 피해를 주고 분위기를 해칠 수는 있지만 사회를 파괴하지는 않거든요.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가. 한번도 교도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못해봤기에 나에게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대답이다. 나에게 시간이 더 주어지면 나는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