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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로 못질할 만큼 외로워!
마쓰히사 아쓰시.다나카 와타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서정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수채화같은 표지(실제로는 연필스케치에 크레파스 색칠^^)에 붓으로 찍찍 그어놓은 듯한 글씨로 제목이 써있는 <바나나로 못질할 만큼 외로워!> 라는 이 책은 이때까지 보았던 여느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등장인물 간의 사랑이야기에다가 남주인공이 쓰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줄거리가 더해져서 액자소설의 형태를 띠는 이 소설은 설명하는 것이나 주인공이 혼자 독백하는 것이 조금 산만했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 옮긴이의 말을 보니 정신 사나운 면이 조금 있지만 적응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처음엔 이해도 안가고 공감도 안 되었다가 어느새 남녀주인공의 아픔과 상실을 그대로 공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내가 이 소설에 익숙해질 수 없었던 것은 일단 마키에라는 여주인공에게서 현실성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는 비쩍 마른 주근깨 소녀였는데 아가씨가 된 지금은 너무 아름다운 여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소망이 아닌가.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구!!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그녀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남자들과 쉽게 걸걸한 농담도 지껄일 수 아는 울트라 캡숑 나이스 짱 쿨한 여성이었다. 나같이 소심한 여자애(참고로 말씀드리면 서른이 가까운 나이임^^;)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러운 일이라는 것이란 말이야~~ 그래서 그녀에게서 질투가 났는지 쉽게 정리가 되지 않고 나는 나!, 너는 너! 하며 겉돌면서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그녀를 17년 동안이나 짝사랑했던 미하루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캬~~ 누군 좋겠당~~ 나를 짝사랑해줄 사람은 어디 없나~~한 달만이라도,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아니 단 하루라도!!!! 그는 성우를 지망했다가 그쪽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애니메이션의 각본쪽으로 전향해서 탄탄하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는 타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었다. 나도 이런 사람이 좋더라~~ 하지만 나는 마키에같은 왈가닥이 아니니 어딘가 맞지 않을 수도... 그 짝사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지만 차마 고백할 용기를 못 내는 그에게 료헤이라는 친구가 격려를 해준다. 그래서 다음 날 고백을 하러 가겠다고 용기를 내는데 아쉽게도 마키에는 그녀의 전 애인을 우연히 만나 다시 사귀기로 했던 참이었다. 뭐, 인생이라는 게 다 이렇지!
어긋나버린 인연을 다시 이어붙일 힘도, 매력도, 자신감도 없던 미하루에게 오히려 마키에가 적극적으로 다가온다.(실연당한 사람에게 이게 무슨 짓이야~! 잔인해, 잔인해!!) 꽃집을 하기에 밤이나 새벽에는 정말 바쁜 그녀는 한가로운 오후에 짬이 나면(말하자면 일반 회사원인 애인과는 만날 수 없는 시간에^^;) 왈가닥인 그녀답게 한창 대본을 쓰고 있는 미하루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있든 없든 나오라고 해서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 어찌된 일인지 마키에는 애인인 에지마보다도 소꿉친구였던, 그리고 실연시켰던 미하루와 있었던 추억이 더 많아보이는 걸까. 아직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나는 사랑이 뭔지 정말 궁금하지만 마키에와 미하루를 보면 얼핏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서로에게 한 발자국씩 더 가까이 간 그들은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자신들에게 찾아온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가늠하지 못해서 그 소중한 순간을 그냥 놓치고 만다. 나중에서야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 사랑이었음을 그나 그녀가 없는 그 공간에서, 그 순간에 깨닫고 가슴 절절하게 울기만 할 뿐이다. 한 번 어긋난 사랑은 알맞은 타이밍에 붙잡지 않으면 절대로 회복될 수 없다는 것쯤은 사랑을 해보지 않은 나도 알고 있는데 이 두사람은 옆에 자기 사랑이 없다는 것만을 슬퍼할 뿐 더 이상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고백한 자도, 고백을 받은 자도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주저하고 돌아서고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랑 앞에선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나 보이는 사람도, 못나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다 사랑 앞에서는 자신이 없는 거라는. 역시 신은 공평하시다니까!
어쨌든 유쾌한 러브스토리는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해피‘엔딩’이지만 이것이 절대 끝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관심과 배려로 잘 길러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는 화초이니까 마키에와 미하루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계속 표현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찐하게 사랑을 해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