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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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는 것이 놀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자기 변호사에게 범죄 진술하는 편지 형식으로 씌여진 이 소설은, 조금 산만해서 따라가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그가 주장했던 것은 '나폴레옹' 처럼 자신은 진정한 놀이꾼이라면서 삶의 권태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살해', 즉 '불가피한 살해' 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의 논지나 주장은 내가 어느 정도 수긍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 나도 권태로운 것은 못 참는다, 그렇다고 무언가 독특한 것을 추구하지도 않지만 ^^;- 그렇다고 이 소설의 수법이 마음에 든다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왜 그렇게 쓸데없는 내용이 사족처럼 달려있어서 소설의 흐름을 끊고 하냔 말이다. 처음 부분을 읽었을 때부터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 주인공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주인공은 '살해' 를 저질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불가피한 살해' 를 말이다. 그런데 그의 동기라는 게 정말 어이없었다. 자신의 권태를 줄이기 위해 완벽할 정도의 평범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용의주도하게 알아낸 다음, 우연한 사고처럼 가장한 '살해' 를 저질렀던 것은 어떤 이유를 갖다붙여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죽인다?! 이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죽인다' 는 것도 용납이 안되는데 하물며 '심심풀이 땅콩' 용이었다니 더 말도 안 된다.

 

사실 처음보다 작품을 더 이해하게 되면서 계속 다른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박신양이었다. 형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는 있지만 어쨌든 남을 속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 껴려지는 게 정상인데도 왠지 모를 매력 때문에 계속 그를 응원하게 되었던 캐릭터였다. 그를 봐도 인생은 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즐겹게 스릴 만점으로 사는 것은 아마 모든 사람이 한 번쯤 꿈꾸는 일일 것이다. 허나 인생사 중에는 꼭 해야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나보다. 과연 그는 어떤 종족이기에 자신의 권태로움을 이기기 위해 인간을 죽인단 말인가.

 

이해되지도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의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경악스러움을 놓지 않았다. 그의 변호를 맡아 성공리에 재판을 해결한 그의 변호사에게 자기랑 반대편에 서서 자기를 훼방놔주기를 기대했던 것이었다. 그가 외적으로 나무랄데없는 한 명사를 파멸시키기 위해 전략을 짜면 그것을 엎는 전략을 짜달라고 미끼를 던지는 모습은 정말 대단한 놀이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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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비밀 - 행복한 인간관계의 답이 숨어있는
이충헌 지음 / 더난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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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를 볼 때면 도대체 내가 누군지 모를 때가 있다.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돌출 행동도 하고, 남에게 신경쓰지 않아 욕을 먹는가 하면 - 너무 먹어서 배가 부르다 ^^; -, 어떤 때는 나 같지 않게 너무 소극적이라 남이 하라는 대로만 하게 되는 이상한 성격이다. 어떤 언니는 나더러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 이것도 많이 봐준 거지~ - 고 했으며, 어떤 이는 너무 이상하다고 했다. 한 곳에 신경이 쓰이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성격?! 이젠 나도 질린다.

 

오늘도 회사에서 한 소리 들었다. 나를 끔찍하게 생각해주시는 두 분께^^ 참, 그래도 인복은 많은 가봐~~ 이상한 성격인게~~ ㅡ,.ㅡ

어쨌든 그 분들 왈,  "ㅇㅇ 야, 우리는 다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해~ 말 조심 해~ 겪다보면 ㅇㅇ 가 악의가 없다는 걸 알지만 아직 처음이니까 상냥하고 배려하는 말투로 말해~~제발~~~" 

 

알고보니 우리 회사에 온 지 한 달 정도 되신, 나보다 나이가 있으신 분이 있는데 내가 또!!!!! 그 분께 생각없이 말을 막 했나보더라~~ 처음에 내가 막말을 했을 때 힘들어 하신 그 분이 바로 윗 분께 말씀을 드려서 상의를 하셨다고 나에게 귀뜸을 해주셨다. 내가 업무적인 면에서 잘못된 것을 지적할 때 좀 심하게 말을 했는지 나는 기억이 안나는 건데 그 분은 상처를 받으신 거였다. 그런데 이게 한 두번이 아니다. 나는 새로 사람이 오면 걱정이 되는게 사실 내가 일을 가르치는 데 일을 생각하다보면 사람의 기분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고치라고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내가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툭툭 내뱉는 말버릇이 문제가 된다. 나도 이 문제를 안다. 절대 모른 척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이 노력해서 고칠려고 했고 실제로 나를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내가 많이 나아졌다고들 말을 한다. 하지만 그럼 뭐 하나...새로 온 사람은 내 예전 모습을 모르는데...어휴~~ 내 윗분들은 참 골치가 아플거다. 나말고 신경쓸 게 많은데 거기에다 내 뒷처리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았다.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기자로도 활동하는 저자가 다양한 사람의 성격을 풀어낸 책이라 진짜 재미있게 읽힌다. 실제 저자가 환자들을 받은 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우리가 익히 아는 영화 속 인물들을 들어 설명을 해놓았기에 영화를 다시 읽는 즐거움을 같이 느끼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여러 유형의 성격이 조금씩 들어가 있다고 이야기 하면서 실제 자신의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 중 각 장의 끝에 보면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체크하는 란이 있는데 정말 나를 아는데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분류한 성격 유형으로는 열한 가지가 있다.

 

경계성 성격 -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마음 

히스테리성 성격 - 시선에 사로잡힌 사람

자기애성 성격 - 완벽한 가면 뒤의 불안한 내면

반사회성 성격 - 폭력과 착취의 대명사

편집성 성격 - 지나친 의심과 집착

분열성 성격 - 사회 속의 외딴 섬

분열형 성격 -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

강박성 성격 - 지나친 강박주의

회피성 성격 - 자신의 광채를 숨기는 사람들

수동 공격성 성격 - 가슴에 그득한 분노

의존성 성격 - 나 아닌 너 안의 나

 

이것은 제목인데 제목만 봐도 대략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성격들은 어렸을 적 부모와의 잘못된 관계 형성으로 일어난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런데 내 성격을 체크해보니까 나는 반사회성, 히스테리성, 강박성, 분열성, 분열형 성격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데 어렸을 적 무슨 잘못된 관계를 형성했는지는 죽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 부모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면 잘못된 성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지만 그래도 내가 어떤 잘못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에는 솔직히 동의하기가 힘들다. ^^; 하긴 내가 모르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저자가 이 책을 쓸 때 이런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에만 주력을 했는지, 그 본인이 어떻게 하면 성격을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구...

 

내 성격 유형 중 반사회성 성격에는 할 말이 좀 있다. 내가 체크한 반사회성 성격(임기응변에 능하고 충동적이다. 미리 계획을 세우는 법이 거의 없다/성미가 급하고 공격적이어서 자주 싸움에 휘말린다/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쯤이야 할 수 있다.)은 정말 나랑 똑 맞는데 문제는 그 성격이 조폭 같은 범죄자나 사이코패스 같은 환자들에게나 나타난다는 것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던데 나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좀 걱정이다. 그럼, 나는 사이코패스인 건가?? 그런데 사이코패스들은 사회에선 잘 나간다던데...왜 난 안 좋은 거만 닮은 거지??

 

지금 상처받은, 아니 체념에 가까운 내 심정으로는 그냥 사람없는 동굴 같은 데 들어가서 일만 했음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그럴 수도 없고, 그럴 능력도 안되니 - 만약 작가가 될 능력만 있다면 좋을텐데 - 어쩌겠는가, 타협해야지...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들도 한두개 항목은 겹치는 게 있을 거라 생각된다. 그것을 믿고 너무 나 자신을 다그치지 말고 조금씩 노력하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심심할 때 계속 꺼내보고 내 행동을 돌아보는 데 사용하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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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쥘 르나르 지음, 연숙진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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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에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머리가 타는 듯이 붉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한, 한 마디로 너무나 못생긴 아이였다. 그런 그에게는 그를 너무나 못살게 구는 엄마가 있었다. 자기가 배아파 낳은 아이이면서도 그가 못생겼다고 미워하는 것이었다. 사실 정이 안가는 얼굴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학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마 그 엄마는 그 아이가 못생겼다거나 말을 안듣는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에 학대를 한 것이 아니라 그 학대는 결혼 생활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 아니였을까.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경우를 가끔 본다. 남편이 속썩이면 그것을 아이에게 풀고 그러면 그 아이는 비뚤어지거나 위축이 되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 연쇄작용을. 그래서 나는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존재이다. 그런 아이를 엄마의 잘못된 양육 방법 때문에 망친다면 누구의 탓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훌륭한 사람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아이가 훌륭하길 바란다면 우선 엄마가 먼저 훌륭해야 할 것이다. 르픽 부인이 결혼생활에서 불행했다면 애꿎은 아이를 닥달할 게 아니라 무엇이 문제였는지 밝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를 사랑으로 키웠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집단따돌림에 관한 우리 작가의 책을 보았다. 이런 소설류는 일본이나 중국의 작가는 봤어도 우리 나라 작가가 쓴 것은 보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었다. 이경화 작가의 <지독한 장난>. 그녀가 말하는 집단따돌림은 사실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였다. 왜곡된 부모의 관심 속에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 더군다나 몸집이 작아서 덩치 큰 아이들에게 구타를 당한 아이가 나중에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보면서 조그만 상처가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지면서 점점 커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르픽 부인이 자신의 불행을 모두 약자인 홍당무에게 잔인하고도 끔찍한 방법으로 퍼붓는 것처럼. 요강을 두지 않고 오줌쌌다고 아이를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일, 선물을 받을 필요가 없는 아이라고 아빠가 사다주신 선물도 주지 않은 일, 잘못 할 때마다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 일, 오줌을 스프에 넣어 먹게 만드는 일 등... 그녀가 저지른 일은 아동 학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아닌가.

 

내가 보기엔 아이를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 것임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몹쓸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피를 나눈 가족에게 그랬다니... 정말 웬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 있다는 어떤 이의 말이 이 경우에서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홍당무는 이런 역경을 이겨낸다. 그가 이렇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린 아이답지 않은 성숙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말이면 뭐든지 믿어주는 대부와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리광을 피워도 끝까지 받아주는,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대부라면, 미래를 의논하고 인생을 조언해줄 수 있는 어른의 시야를 가지고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마지막에 아버지와 홍당무의 이해가 이루어지면서 얻은 홍당무의 깨달음이 가슴 벅차게 느껴졌다. 험한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홍당무에게 든든한 아군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더이상 홍당무가 당할 수 밖에 없는 '약자'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강자'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르픽부인이 한없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아뭉개도 되는 -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 '약자' 인 줄만 알았던 홍당무가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자 어쩔 줄 몰라 하던 르픽 부인이 사실은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였을까 하고.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이제껏 해왔던 행동을 보면 절대 사랑을 가득 받아보지는 않았을 것같다. 사랑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랑없는 결혼 생활 속에서 빡빡하게 살아오다가 세 아이를 낳았지만 진정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못생긴 홍당무를 아낌없이 사랑해줄 순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니 한없이 악한 자와 한없이 약한 자만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피해자만이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 인생에서도 사소한 상처를 두고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 때문에 피해자만 양성해내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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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 - 나는 누구인가에서부터 경영은 시작된다!
찰스 핸디 지음, 강혜정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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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폴리오 인생’ 이란 말이 무슨 뜻일까 고민하며 읽어 내려갔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인문학자 경영 구루의 책이라고 해서 뭔가 경영 원칙에 대해서만 있을거라, 나름 어렵겠다고 각오하고 읽은 책인데 다행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풀어서 서술할 때는 이렇게까지 아일랜드의 지역적인 특색을 몰랐던 나로서는 상당히 새롭게만 느껴졌다. 학교 다닐 때 영국과 아일랜드는 종족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배우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분리’ 가 되어있을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이렇게 아주 옛 시절(그는 1959년에 셸이란 석유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 때는 나는 태어나기는 커녕 우리 엄마가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다!!! 우와~)을 살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는 전혀 연고가 없을 것 같은 지역(아일랜드 또는 영국)에 사는 사람의 경험을 보니 정말 새롭고 신선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루하기도 했다. 아마 그것은 우리나라가 영국과 아일랜드와 같은 문화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엔 너무 낯설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관과 삶, 열정, 기쁨, 슬픔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혈통이나 가계도를 따져보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래서 찰스 핸디의 가계도부터 쭉 설명되어있는 부분을 역사를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읽어내려 갔다. 찰스 핸디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의 얼마 되지 않는 후손으로, 소수집단이 으레 그렇듯이 똘똘 뭉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그들의 선조들은 17세기에 일어난 그 유명한 청교도 혁명 지도자였던 크롬웰과 함께 건너온 사람들로, 호국경에게 바친 충성심에 대한 보답으로 넓은 땅을 하사받고 아일랜드를 통치하는 ‘지배세력’ 으로 불려왔다. 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사는 아일랜드에서 소수의 개신교도인 ‘지배세력’ 이 다스렸다는데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서로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갔단다. 그래서 학교도 다르게 다니고 문화생활이나 기질조차 다르게 만들어왔기에 찰스 핸디는 자신이 어디를 가고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말하고 어떤 식으로 말하기만 해도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 출신인지 알게 되는 것이 상당히 의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세상에나~ 같은 땅덩어리에서 살아가면서 가는 학교, 미사/예배를 드리는 장소, 모여서 노는 장소, 노는 문화 등 모든 생활 양식이 다르게 이루어졌다니.... 절대 섞일 수 없었다니...완전히 흑인과 백인의 갈등을 보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이해할 수가 있나. 내 눈에는 다 똑같은 서양인일 뿐이니 말이다. 그네들이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겠지, 뭐. 그런 문화의 지배를 받았던 찰스 핸디가 그것을 깨뜨린 것은 나중에 미국으로 1년간 공부하러 갔을 때였다. 중년쯤 되었던 그런 나이에서야 어린 시절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었던 아일랜드인과 ‘지배세력’ 이 사실은 융화될 수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으니 정말 어린 시절 환경의 영향은 무시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융화되어서 친구를 사귀거나 했다면 찰스의 인생에 더 풍요로운 영향을 주었을 텐데 말이다.

 


경영 구루이긴 하지만 인문학자 - 옥스퍼드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다 - 였기에 찰스 핸디의 글은 경영서라기 보다는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이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소신있게 (돈을 많이 받지 못하더라도^^;) 찾아갈 수 있어야 하며 앞으로는 전일제나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없어지기 때문에 - 이런 견해가 지금처럼 일반화되기 훨씬 전에 그가 예측한 개념이다 - ‘포트폴리오 인생’ 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자금을 여러 곳에 나누어 투자하는 것처럼 자신의 일도 여러 개를 나누어서 분산시켜 해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 우리 삶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나만 해도 학원에서는 강사요, 집에서는 딸이자, 누나이자, 동생이고, 교회에서는 헬퍼인 것처럼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할 일이 달라지는 것이 바로 ‘포트폴리오 인생’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젠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에 - 이때는 아직 ‘이직’ 이란 개념조차 일반화되지 않았다!! - 밥벌이할 수단을 여러 개로 나누어서 얻어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셸이라는 조직의 간부로 있으면서, 경영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세인트조지 하우스 학장으로 있으면서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동안 강연을 했을 때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포트폴리오 인생’ 이, 정작 자신이 아무런 월급이 나올 구멍이 없을 때가 돼서야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렵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대단한 경영이론도 탁상공론으로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을 할 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찰스 핸디가 이제까지 영향력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가 지켜가는 가치관, 신념을 그대로 이야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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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장난 -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이경화 지음 / 대교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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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도 중학교 시절에도 ‘왕따’ 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항상 외톨이는 한 명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워낙 존재감이 없고 왜소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외톨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심각한 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처를 받았던 것도 아닌, 숫기가 없어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던 어린 아이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던 나는, 여러 아이들과 우루루 몰려다니는 아이들 중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이 좋았는지 분위기가 그랬는지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학년 때는 외톨이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습 분위기는 아니였어도 교실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그렇게 내가 경험했던 ‘외톨이’ 라고 하는 부류의 아이들은 공부를 조금 못하거나 입고 다니는 옷이 좀 지난 것이라거나 씻고 다니지 않는다거나 하는 뭔가 일반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꼬투리로 삼아 암암리에 경계가 지워졌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내가 경험했던 것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왕따’ 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라 어쩐지 무서운 느낌이 든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목소리 높여 ‘왕따’ 는 더럽다느니.. 어디가 이상하다느니..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실은 정말 더럽거나 어디가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위생관념이 없더라도 조금 배려해주고 만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모르는걸까. 그러나 아이들이 ‘더럽다’, ‘냄새난다’ 고 하는 말은 실제로 그래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꼬투리를 붙여서 ‘왕따’ 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다른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야마와키 유키코의 <나쁜 교실> 이란 책을 인터넷으로 알게 된 후, 바로 신청해서 받아보았다. 그 책은 작가가 집단 따돌림을 당한 아이를 상담한 내용을 적어놓은 책인데 아이들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다른 데에다 풀어버리고 싶어서 그렇게 약자를 공격한다고들 했다. 어른들 세계에서만 보았던 양육강식이 사실은 아이들 세계에서 더 잔인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작가가 상담했던 그 아이는 반 아이들이 냄새난다고 놀리고 급식에다 벌레를 몰래 넣어놓고 밥을 먹으면 벌레를 먹었다고 놀려서(실제로 먹지 않았는데도^^;)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렸었다. 그런 아이가 밥을 안 먹고 학교도 가기 싫어해서 걱정된 부모님이 상담 받으러 왔는데 그 때 부모님께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학교에 대해 원망하고 책망하기 급급해서 아이가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명했던 그 아이의 부모님께서는 학교랑 잘 연계해서 집단따돌림을 주도하는 아이를 변화시켜 나중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친구’ 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좋게 끝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당하는 아이나 가하는 아이나 어른에게는 절대 알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지독한 장난> 의 주인공 ‘준서’ 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힘겹게 살아가시는 부모님을 걱정끼쳐 드리기 싫어서 집단따돌림이 너무 심해져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폭력에 저항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이해되지 않을 뿐. 아마 내가 당했어도 ‘준서’ 랑 똑같이 반응했을 것 같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폭력에 몸이 굳어져버려 미처 저항해도 된다는 것을 모르는, 아니 저항해야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머릿 속에 입력되지 못하면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보고 있으려니까 신은경, 문정혁 주연의 영화 <6월 일기> 가 생각났다.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도중에 밝혀지는 집단따돌림의 실체를 그때 처음 보았다. 그전까지는 ‘왕따’ 가 심각하단 소릴 들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 영화에서 알게 되었다. 집단 구타는 일상생활이고, 걸레 빤 물에 얼굴을 처박지를 않나, 여학생이(주인공은 남학생이다..) 성적 수치심까지 주는 등...내 상식으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식으로 상처를 주면 가해자는 정말로 즐거운 걸까. 왜 그런 일이 자행되는지 정말....그런데 그것보다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 모든 일과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카페에 올리고 서로 의견까지 교환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피해자 엄마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그 영화는 내가 예전에 다녔던 학원 선생님과 같이 봤는데 그 이후에 정말 아이들이 소중해 보였다. 삐뚤게 자라지 말고 항상 깨끗하고 행복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 그런 악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론 어른들의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가정에서 소중하게 사랑받지 못하고 손찌검을 당하거나 남과 비교만 당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그것이 상처가 되거나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남에게 상처주기를 일삼는다. 무료하고 재미없는 현실이 싫어서, 자기가 있는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다른 것으로 잊기 위해서 등 어떤 이유이든 자신이 불행하기에, 자신이 사랑받아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남에게 자신이 받은 그대로를 주는 것이다.

 


<지독한 장난> 의 또 다른 주인공 ‘강민’ 도 그랬다. 강민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공부를 못한다고 걸핏하면 손찌검을 하는 교수인 아버지와, 왜곡된 사랑으로 덮어놓고 자기 자식만 감싸는 어머니 밑에서 뒤틀린 자아상을 만들어낸 그는 오히려 ‘왕따’ 인 ‘준서’ 보다도 더 불쌍한 아이이다. 초등학생 때 왜소한 몸 때문에 동네 형에게 구타당하고 도둑질까지 했던 피해자인 그는, 그 상처 때문에 덩치가 커진 지금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었다. 사실 사랑받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데서 오는 뒤틀린 즐거움을 즐기는 그것이 사실 사랑해달라고 소리치는 행동이 아닐까. 그 중에서 특히 ‘강민’ 이 ‘김현주’ 수학 강사에게 했던 못된 짓, 그리고 ‘김현주’ 강사가 ‘강민’ 에게 했던 못된 짓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나온다. 학벌이 좋지 못한 강사이기에 학원장과 다른 강사에게 실력있는 강사임을 보이기 위해 ‘강민’ 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그녀의 모습이 사실은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아닌가 해서...

 




아이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존재임에도 어른들은 가끔 그것을 잊는다.

어리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어리기에 사소한 상처에도 크게 아파한다는 것을...

 


이제 어른들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 관심, 애정, 격려... 이 좋은 말을 매일 해도 다 못하고 죽는 우리인데 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느라 정작 더 중요한 일에 힘을 못 쓰는 걸까.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해서 앞으로 순탄한 인생을 살았으면 싶고, 남의 자식보다 더 뛰어나게 키우고 싶고, 오로지 공부만 하게 다른 모든 일은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은 잘 알지만 머리만 키우고 마음이 뒤따라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아이가 성장하고 세상을 경험할 때 쉽게 좌절하고 만다는 것을 왜 모르시는 걸까. 아이가 남을 배려하고 자신이 아픈 것처럼 남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항상 격려해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게끔 도와주고 설령 성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 그래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더라도 - 아이니까, 사랑스런 나의 아이니까 참아주고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음을 인정해주고 알게 해준다면 아마 ‘왕따’ 를 당할 아이도, ‘왕따’ 를 만들 아이도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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